상단여백
HOME 성서 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모든 ‘것’이 그리스도이고 모든 것 안에 그리스도가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0.05.03 16:27
거기(~그 지식)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 할례자나 무할례자,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 종이나 자유인(의 구별)이 없고 그리스도가 모든 것이시고 모든 것 안에 계신다.(골로새서 3,11)

앞 절에는 ‘새사람’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 이 새 사람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져서, 참 지식에 이르게 됩니다.”(3,10) 그의 갱신은 그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형상’(1)을 따른 ‘지식/인식’에 이릅니다.

이 구절을 이렇게 읽으면 이미 짐작하셨겠지만 그것은 창세기 1-3장을 염두에 둔 말씀입니다. 에덴 동산에 있던 나무 가운데 하나는 ‘좋고 나쁜 것을 (구별할 줄) 아는’ 나무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그 능력을 획득했습니다.

차이를 구별하고 좋고 나쁜 것을 판단하는 분별력은 동산밖 일상생활을 하는데 없어선 안될 사람의 기본능력입니다. 하지만 그것엔 순기능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차별과  혐오를 생산하는 역기능도 있습니다.

오히려 이 역기능이 순기능을 압도할 수 있습니다. 좋고 나쁜 것을 자신의 손익 내지 유불리 관점에서만 파악할 때 공감능력은 상실되고 이에서 비롯된 차별과 혐오는 배제와 폭력으로 귀결될 것입니다. 그때문에 폭력이 난무하고 피로 물든 세상이 바로 홍수 직전의 세상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세상을 심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홍수 이후 달라진 것 없는 사람과 함께 다시 세상을 이끌어가시고자 합니다.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지은 이유가 땅에 생명이 자라도록 하기 위함이었는데, 홍수 이후 하나님은 그의 창조목적에 맞게 사람의 존재를 보장하십니다.

곧 땅이 있는 동안 ‘심고 거두는’ 사람의 활동은 계속될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하나님의 은총을 볼 수 있지만, 구별하는 사람의 인식능력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습니다. 여전히 차이는 차별의 근거가 되고 특히 약자와 소수자에 대해서는 다름이 혐오와 배제를 정당화하는 심리적 기제가 됩니다.

그러한 사람이 만들어갈 세계가 하나님과 사람과 자연과 친화적인 세계가 되도록 하는데 윤리와 법이 조금의 도움은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분별 능력과 그 확대에 기초하고 있는 삶의 형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 세계는 홍수 이전 세계를 향해 계속 달려갈 것입니다. 따라서 희망은 그러한 한계를 뛰어넘은 새사람의 출현에 있습니다.

새사람을 정의하는 길이 여럿 있겠지만 여기서는 인식의 측면에서 새사람을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사람이 인식 나무 열매를 따먹음으로 획득한 것과는 다른 류의 인식입니다. 앞에 언급된 대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르는 인식입니다. 창세기 1장에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여기서는 인식과 연관됩니다. 어떤 것일지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그것을 규정하기 보다는 이  구절이 보여주는 특징을 통해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그 인식에서는 인종, 종교, 문화, 신분 등의 차이가 소멸됩니다. 그것은 소위 분별지를 넘어서는 새로운 인식으로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은 사람의 인식방식입니다. 그는 차이에 얽매이지 않고 그 밑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봅니다.

그렇기에 사람의 차이가 어떤 것이든 차별을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요? 이것은 위 구절 하반부를 다르게 옮기면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그 인식에서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이고 모든 것 안에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누구에게서나 이를 볼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인식의 대전환이 일어남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에 따른 또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식은 모든 것 안에 그리스도가 있기에 모든 차이를 넘어 모든 것에서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형상을 봅니다. 이것이 새사람의 인식입니다. 공감과 상생의 인식입니다. 코로나19이후의 세계는 이러한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지 않을까요?

새사람으로 차이를 차별의 이유로 삼는 대신 이해와 존중의 근거로 삼는  오늘이기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롭게 되어 모든 것 안에서 그리스도를 보고 모든 것이 그리스도임을 인식하는 이날이기를. 하나님께서 태후와 아이들과 파이 속에서 새사람을 낳고 키우시는 지금이기를.

미주

(미주 1)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는 일반적으로 ‘새로와지다’는 동사를 수식하는 것으로 이해하지만, '지식/인식'을 꾸미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상기 목사(백합교회)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19 한국기독교회관 503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3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