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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 분노한 사람들은 장사꾼이 아니었다성전이 무너지는 때(눅 19:46-48)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0.05.03 16:30
45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46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47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48 백성이 다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하였더라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저희 교회는 두 달 동안 교회에서 예배 모임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조심스럽게 모임을 재개하려고 합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모여서 예배를 드립니다. 하지만 다시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우리의 자세는 예전과 똑같아서는 안 됩니다. 무언가 우리의 신앙에 달라짐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뭔가 달라져야 하며, 교회의 모습도 함께 변해야만 합니다.

세상의 역사를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면, 지금 교회에 일어난 일 역시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역사의 일부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번 사태를 통해 하나님께서 교회에 어떠한 음성을 들려주고 계신다면, 우리는 그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오늘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또 과거 예언자들의 외침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함께 고민해보려고 합니다.

예언자들이 전한 성전

오늘의 본문은 ‘성전 정화 사건’이라고 불리는 이야기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신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무언가를 사고파는 사람들, 성전세를 내기 위한 동전을 바꿔주는 사람들,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을 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내쫓으시며 오늘 본문의 유명한 말씀을 남기십니다.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우리는 흔히 예수님께서 장사꾼들을 향해 ‘강도’라고 말씀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에서 예수님의 이런 행동과 말씀에 적개심을 품은 사람들은 성전에서 내쫓긴 장사꾼들이 아니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었습니다.

왜 장사꾼들이 아닌 성전 종사자들이 분노하게 되었는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말씀의 본래 의미가 무엇인지는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두 가지 본문, 이사야 56장 7절과 예레미야 7장 11절의 말씀을 살펴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56장 7절을 인용하시며 성전은 본래 어떤 곳인지 설명하십니다. 성전은 ‘기도하는 집’입니다. 저희가 읽은 누가복음 본문과 마태복음의 평행 본문에는 빠져있지만, 이사야와 마가복음에는 ‘만민’이라는 단어가 덧붙어 있습니다. 이사야와 마가복음은 성전이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합니다.

이사야 56장 1-8절의 말씀은 정의와 공의를 지키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56장 2절을 보면,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않는 사람, 손을 더럽혀 악을 행하지 않는 사람, 이런 이들은 복이 있다고 선포합니다. 이런 사람에는 이방인과 고자도 포함됩니다.

즉 과거에는 이스라엘의 총회에 포함되지 못했던 사람들도 안식일을 바르게 지키며 악을 행하지 않고, 정의와 공의를 행한다면,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올 수 있고, 복과 구원을 얻는 사람이 된다고 이사야는 선포합니다. 그렇기에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됩니다.

▲ El Greco, The Purification of the Temple(1600) ⓒGetty Image

다음으로 예수님께서는 예레미야 7장 11절의 말씀을 인용하시며 현재 성전이 어떤 상태인지를 말씀하십니다. 지금의 성전은 ‘강도의 소굴’입니다. 강도의 소굴은 강도들의 아지트, 피난처를 의미합니다. 강도들이 강도 행위를 하는 곳은 자신들의 아지트가 아닙니다. 강도들은 밖에서 강도 행위를 하고 약탈한 물건을 가지고 자신들의 아지트에 모입니다.

예레미야의 본문을 살펴보면 이는 분명합니다. 예레미야 7장 4절은 예레미야의 유명한 선포로 시작됩니다.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그 후 예레미야는 이어서 예루살렘 백성을 향해 말합니다.

“너희가 세상 속에서 거짓말에 의존하고, 도둑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다른 신을 섬기면서, 이 성전에 와서 ‘나는 구원받았다’라고 말하니 이곳이 도둑의 소굴로 보이냐?”

세상에서는 자기 마음껏 죄를 범하고 살면서 성전에 와서 구원받았다고 말하는 너희는 강도들이고, 이곳은 강도들의 아지트일 뿐이라고 예레미야는 말합니다.

또 한 가지 측면에서 이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간 사람들에게 내리시는 은혜입니다. 세상에서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던 이들이 성전에 나와 자신은 구원받았다고 말한다면, 이는 강도의 행위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구원마저 강도짓 하려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강탈해 가려고 합니다. 이것이 예레미야가 이야기한 ‘강도의 소굴’이고 예수님께서는 이를 인용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비판하신 것은 단지 성전에서 장사하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구분하여야 하는 성전이 여전히 선악의 구분이 아닌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분, 정결함과 부정함의 구분으로 나뉘어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유대인 중에서 악을 행하며 살아가는 이들은 유대인이라는 기준으로 인해 성전에 마음껏 들어와 하나님의 구원을 받았다고 말하며 기쁨을 누립니다. 반면에 이방인과 결함이 있는 이들은 아무리 선하게 살아왔다 하더라도 성전 안뜰에 들어설 수조차 없었습니다.

이러한 구분의 잘못과 함께 성전에 들어와 있는 이들이 모습에도 잘못이 있습니다. 이들이 삶에서 선을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행하지 않는다는 데에 잘못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들은 성전에서 기도하며 자신은 구원 받았다고 말합니다.

성전이 무너지는 때

예언자 예레미야와 예수님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성전의 잘못됨을 비판하였고, 그가 살아가는 중에 성전의 파괴를 목격하였습니다. 예레미야 7장과 26장에서 ‘예루살렘이 실로와 같이 되리라’고 말한 부분은 성전 파괴에 대한 예언으로 봐도 크게 무리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기간 중 성전 파괴를 직접 목격하시지는 못했지만, 예수님의 활동이 기원후 33년까지라고 생각했을 때, 예수님의 선포 이후 50년이 되지 않아 성전은 또다시 파괴됩니다. 예수님께서 성전 파괴를 예언하셨고, 성전을 향해 예레미야를 인용하신 일은 우연일 리가 없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우리가 아는 한 두 번 건축됩니다. 솔로몬에 의해서 처음 건축되었고, 이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해 파괴됩니다. 포로기 이후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에 의해 2차 성전이 건축되었고, 예수님 시대에 헤롯 대왕은 이를 증축하여 솔로몬 성전보다 훨씬 화려한 성전으로 만듭니다. 그러나 이 성전은 로마에 의해 파괴됩니다.

두 번 건축되었던 성전은 두 번 다 파괴되었고, 지금은 성전의 서쪽 벽, 일명 ‘통곡의 벽’만이 남아있습니다. 현재 예루살렘 성전 자리에는 이슬람 모스크인 ‘알아크사 사원’이 세워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름을 두신 성전은 왜 파괴되어야만 했고, 어째서 지금에 와서는 국제적인 문제, 이슬람과 유대교의 갈등으로 인해 다시 건축조차 할 수 없는 상태에 놓였을까요?

예레미야의 예언과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듯이 성전이 그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성전은 이사야가 선포한 바와 같이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이들이 회복되며 복을 얻게 되는 장소, 하나님께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며 구원을 얻는 장소였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곳은 삶에서는 온갖 잘못을 행하며 잠시 와서 기도 한 번 하면 구원 받는다고 여기는 이들, 즉 구원을 강탈하려는 이들의 공간이 되어버렸습니다. 마치 이 공간에 오기만 하면 내가 행한 잘못은 모두 사라지고 구원을 얻게 된다는 마법 같은 공간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성전 종사자들은 이러한 신앙을 계속 부추겼고, 그를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챙겼습니다.

그것이 성전이 무너지게 된 이유입니다. 이런 시기에 성전은 무너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맞습니다.

교회의 흩어짐과 지금의 교회

지금 우리는 교회의 흩어짐을 경험했습니다. 이를 교회가 파괴되었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직전의 상태를 경험하도록 역사를 이끄셨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교회는 어떤 공간이 되어야 할까요? 교회는 우리가 삶에서 지치고 힘들 때, 다시금 힘을 얻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세상과 삶이 전제될 때에 교회도 그 의미를 얻게 됩니다.

이는 지금 교회의 모습들에 비춰보았을 때, 한 가지 문제점을 발견하게 합니다. 나의 영적 회복, 세상에서의 복과 은혜를 위해서 우리가 교회에만 머물러 있다면 그 교회는 의미를 잃은 교회라는 점입니다.

지금까지 교회는 교회라는 공간에만 집중해왔습니다. 아픈 사람이 병원에 입원한 이유는 병원에서 평생 살아가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치료하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입원 치료를 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우리가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하기 위한 회복의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이는 방향성의 문제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교회로’ 향하도록 이끌었습니다. 세상은 잘못되었으니 교회로 모이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 반대를 이야기합니다. ‘교회에서 세상으로’ 나아가라고 말합니다. 이곳은 회개와 회복의 장소이지 머물며 복을 누린다고 여기는 자기만족의 장소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교회에서 우리는 지친 영을 회복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고, 복을 받게 됩니다. 이는 우리가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으로 살아가고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며, 복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나 혼자 그곳에 머물며 은혜를 느끼고 복을 받고 영을 채운다면 교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공간이 되어버립니다.

하나님을 향한 예배 의식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점,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모두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점은 우리의 삶입니다. 예배 의식은 그 삶을 위한 회개의 시간이며 회복의 시간입니다.

우리 교회가 회복되는 장소가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라는 공간에 한정될 필요가 없이, 성도님들 한분 한분이 교회를 이루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평소에도 서로 연락하며 격려하고 아끼고 사랑한다면, 그곳 역시도 회복의 장소가 됩니다.

영적으로 회복되신 성도님들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정의와 공의를 행하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나의 의지와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지금의 위기를 넘어 새로운 교회를 세우시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복과 은혜가 세상으로 흘러넘치게 될 줄 믿습니다. 성전의 무너짐이 자명해 보이는 이 시기에 그 무너짐을 막고 오히려 새로운 교회를 세우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여러분에게 늘 힘과 능력으로 채워주시며 여러분의 모든 삶에 복으로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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