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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 주체사상과 그리스도교의 만남의 한 접점북한 선교를 위해 꼭 알아야 할 주체사상 100문 100답(84)
정대일 연구실장(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 | 승인 2020.05.07 17:00

Q: 주체사상은 사회적 존재인 사람의 ‘영생하는 생명’을 무엇이라 하나요?_사람의 ‘자주성’(3)

A: 지난 연재에서는 사람의 ‘자주성’이 자연의 구속과 사회적 예속에서 벗어나려는 ‘사회적 인간’의 속성이라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연재에서는 지난 연재에 이어서, 사람의 ‘자주성’에 대한 주체사상의 설명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주체사상에 따르면, ‘자주성’은 ‘사람의 본질적 속성’입니다. 자주성이 사람의 본질적 속성을 이루는 것은 그것이 사람의 고유한 성질일 뿐 아니라, 사람에게 특유한 생활과 활동에 일관하고 있으며, 다른 모든 인간적 속성에 구현되고 거기서 발현되는 근본성질이기 때문입니다.

‘자주성’은 ‘사람의 생활과 활동의 모든 계기에서 일관하게 발현’되는 ‘근본속성’입니다. ‘사람의 생활과 활동’은 자기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자각하고, 그에 맞게 활동목적과 그 실현방도를 세우며, 자신의 정신적 및 육체적 힘을 발휘하여 그것을 구현해나가는 것과 같은 여러 가지 계기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의 생활과 활동의 이 모든 계기에서 일관하게 발현되는 성질이 ‘자주성’입니다.

사람의 활동의 원천으로, 근본동인으로 되는 사람의 ‘요구’ 자체가 자주적입니다. 생명을 유지하려는 생물학적, 본능적 요구만을 가지는 생명물질 일반과는 달리, 사회적 존재인 사람은 자연의 구속과 사회적 예속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려는 요구, ‘자주적인 요구’를 가집니다. 사람은 이와 같이 자주적인 요구를 가지기 때문에 자주성을 가진 존재로 됩니다.

물론 사람의 요구에는 ‘생물학적 요구’와 ‘사회적 요구’가 있으며, 사회적 요구 가운데는 ‘자주적 요구’와 ‘비자주적 요구’가 있습니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사람에게 고유한 요구는 ‘자주적 요구’입니다. 사람의 요구만이 아니라 그의 ‘활동’도, 사람의 ‘생활’도 자주적입니다. 사람은 다만 요구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활동하는 존재이며 그것을 실현한 존재입니다. 사람은 ‘자주적인 요구’를 가질 뿐 아니라 그것을 ‘자주적인 활동’을 통하여 실현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자주성을 가진 존재’로 됩니다.

사람의 고유 활동 (1) - 노동활동과 혁명투쟁

주체사상에 따르면, 사람에게 고유한 활동인 ‘노동활동’과 ‘혁명투쟁’은 ‘자주적인 활동’입니다. 노동활동과 혁명투쟁의 ‘자주적인 성질’은 그것이 본능에 따라서가 아니라 자주적인 요구에 의해서 추동되는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객관적 세계에 순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개조하고 지배하기 위해서 벌이는 활동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힘으로 객관적 법칙을 조절통제하면서 자연과 사회를 자기에게 복무하도록 만드는 활동이라는 데서 표현됩니다. 그리고 사람은 노동활동과 혁명투쟁을 통하여 자연의 구속과 사회적 예속에서 벗어나 자주적인 생활을 누리게 됩니다.

▲ 주체사상은 속박 당한 상태에서 벗어나는 사람의 자주성을 강조한다. ⓒGetty Image

이와 같이 ‘사람의 활동’은 그 ‘목적’으로 보나, ‘과정’과 ‘결과’로 보나, 일관하게 ‘자주적’입니다. 사람의 활동의 원천, 근본동인으로 되는 ‘요구’가 자주적이며, 이 요구를 실현해나가는 ‘활동’이 자주적입니다. 그 결과 사람이 누리는 ‘생활’이 자주적이므로, ‘자주성’은 사람의 생활과 활동의 모든 계기에 일관하고 있는 ‘근본성질’로 되며 ‘사람의 본질적 속성’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자주성’은 또한 사람에게 특유한 ‘속성’들에서 일관하게 ‘발현’되는 ‘근본성질’입니다. 사람은 다른 모든 물질적 존재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수한 속성인 사유하는 속성, 도덕생활을 하는 속성, 예술활동을 하는 속성, 언어를 가지는 속성, 노동하고 혁명투쟁을 벌이는 것과 같은 여러 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주성은 사람에 고유한 개별적 속성의 하나가 아니라, 그 모든 것에서 발현되는 근본성질입니다. 사람에게 특유한 모든 속성이 자주적 성질을 가지는 것은, 그것들이 자연의 구속과 사회적 예속에서 벗어나 자주적으로 살려는 요구에 따라 주동적으로, 독자적으로 진행되는 사람의 활동이라는 것과 관련됩니다.

사람의 고유 활동 (2) - 사유활동

사람의 노동활동과 혁명투쟁뿐 아니라 ‘사유활동’도 자주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유활동은 자기의 요구와 이해관계로부터 출발하여 현상으로부터 본질의 인식에로 파고드는 능동적인 인간활동입니다. 사유활동은 대상의 본질을 파악할 뿐 아니라, 자기의 요구에 맞게 그것을 지배하고 개조하기 위한 방도를 탐구하고, 자기의 태도를 결정하며, 자기의 활동을 계획하는 적극적인 활동입니다.

이것은 사유활동이 그 출발적 기초에서나, 그 과정에서나, 자주적인 성질로 일관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도덕생활’은 선악에 대한 독자적인 판단능력과 자기의 행위를 스스로 결심하고 통제하는 능력 및 자기 행위에 대한 책임성을 전제로 하는 만큼 자주성으로 일관되어 있습니다. ‘예술활동’ 역시 자기의 요구와 이익에 맞게 객관적 세계를 예술적 형상을 통하여 재현하는 활동이므로 자주적 성질을 가집니다.

사람의 ‘언어’는 사회적 실천의 산물이며, 사유의 물질적 외피이며,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기 위한 투쟁의 무기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기초에서나, 내용에서나, 역할에서나, 자주성으로 일관되어 있습니다. ‘자주성’은 이와 같이 사람에게 고유한 개별적 속성이 아니라 ‘모든 활동에 일관하고 있는 근본성질’이므로 ‘사람의 본질적 속성’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주성을 본질적 속성으로 가짐으로써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고 지배합니다. 자주성으로 하여 사람은 자연의 구속을 극복하고, 사회의 온갖 예속을 반대하며, 모든 것을 자신을 위하여 복무하도록 만들어나갑니다. 사람은 자연의 구속을 극복하고, 사회적 예속을 반대하며, 모든 것을 자신을 위하여 복무하게 만들어나가는 존재이므로 ‘자주성을 가진 존재’라고 하는 것이며, 자주성을 가진 사람은 현실적으로 온갖 구속과 예속을 반대하고 모든 것을 자신을 위하여 복무하도록 만들어나간다는 것입니다.

사회정치적 생명

주체사상에 따르면, ‘자주성’은 사람의 본질적 속성 가운데서도 ‘사람의 생명’을 이루는 주요한 속성이 있습니다. ‘자주성’이 사회적 존재인 사람에게 있어서 ‘생명’이라는 것은, 사회적 인간에게 있어서는 자주성이 가장 귀중하다는 것입니다. 자주성이 없으면 사회적 존재로서의 가치를 잃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자주성이 생명이라고 할 때, 그것은 ‘사회정치적 생명’을 말합니다. 사람은 육체적 생명과 함께 사회정치적 생명을 가집니다. 육체적 생명은 생명유기체 일반이 가지는 생명입니다.

‘육체적 생명’이 ‘생명유기체로서의 사람의 생명’이라면 ‘사회정치적 생명’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사람의 생명’이다. 사람은 본질에 있어서 사회적 존재이므로 사람에게 있어서는 사회정치적 생명이 육체적 생명보다 더 귀중한 ‘제일생명’(第一生命)을 이룹니다. 사람이 사회정치적 생명을 잃게 되면 사회적 존재이기를 그만두게 되고 단순한 생물학적 존재의 수준에 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사회정치적 생명’은 ‘자주성’을 옹호하는 데서 유지됩니다. 사람이 자주성을 잃어버리면, 더는 사회정치적 생명을 지닌 사회적 존재로 남아 있지 못하게 됩니다. 사람이 자연과의 관계에서 자주성을 잃어버리면 자연에 순응하여 사는 다른 생명물질과 다름없는 것이 됩니다.

사회정치적으로 자주성을 잃고 남에게 예속되면 사람으로서의 대우를 받지 못하게 되고 가축처럼 취급당하게 됩니다. 사회정치적으로 남에게 예속된 사람은 사람답게 살 수 없습니다. 사람으로서의 존엄을 지킬 수 없으므로, 비록 육체적 생명은 붙어 있다 하더라도 사회적 인간으로서는 죽은 몸이나 다름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육체적 생명은 생물학적 물질대사에 의해서 유지되지만, 사람의 ‘사회정치적 생명’은 ‘자주성을 옹호하기 위하여 투쟁’함으로써 유지되고 빛내어집니다. 사람이 사회적 예속을 반대하여 투쟁하지 않고 착취와 억압, 멸시와 천대를 감수하면서 목숨이나 유지하려고 한다면 사회정치적 생명을 가질 수 없습니다.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가지지 못하게 됩니다.

사람은 사회적으로만 자연의 구속과 사회적 예속에서 벗어나며, 자주성을 옹호하고 실현할 수 있으므로, 개인의 사회정치적 생명은 사회와 인민, 민족과 국가의 자주성을 위한 ‘혁명투쟁’을 통하여 유지됩니다. 사회와 인민, 민족과 국가의 자주성을 옹호하기 위한 혁명투쟁을 벌이지 않고 개인의 안일과 향락만을 추구한다면 사회정치적 생명을 가질 수 없으며 사람다운 생활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육체적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활동이 다만 개체의 보존을 위한 활동이라면, 사회정치적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투쟁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가치와 존엄을 지키기 위한 투쟁입니다. 사회와 인민의 자주성을 위한 투쟁입니다. 개체의 생명활동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육체적 생명에는 끝이 있지만, 사회와 인민의 자주성을 위한 투쟁은 그것이 완전히 실현될 때까지 대를 이어 계속되는 투쟁입니다.

사람의 육체적 생명은 비록 종결되어도 그가 지니고 있던 ‘사회정치적 생명’은 대를 이어 계승되어나가게 되며, 인류와 더불어 ‘영생’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존재’인 사람에게 있어서는 남의 노예가 되어 목숨이나 유지하는 것은 수치로 되고, ‘자주성’을 위한 혁명투쟁을 벌이다가 죽는 것이 영예로 되는 것입니다. 자주성을 위한 혁명투쟁에 육체적 생명을 서슴없이 바침으로써 ‘사회정치적 생명’을 유지하고 빛내어나가는 삶이 가장 고귀한 삶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자주성’은 사회적 존재인 사람에게 있어서 생명으로, 육체적 생명보다 더 귀중한 ‘사회정치적 생명’으로 됩니다. 그러므로 ‘자주성’은 사람의 본질적 속성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주요한 속성으로 됩니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사람

자주성이 사람의 본질적 속성, 주요한 속성이라고 할 때의 ‘사람’은 어디까지나 ‘사회적 존재로서의 사람‘입니다. 자주성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사람만이 가지는 속성입니다. 사회적 존재가 아니라면 아무리 발전한 존재라고 하더라도 자주성을 가질 수 없습니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사람’은 ‘자연과 사회를 지배하고 개조해나가는 존재’입니다.

자연과 사회를 지배하고 개조하는 데 참가하지 않거나 그것을 방해하는 자의 생활에는 자주적 성질이 없습니다. 그런 자는 한갓 생물학적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주성’은 어디까지나 ‘사회적 존재로서의 사람에게만 고유한 본질적 속성’입니다.

‘자주성’은 주로 ‘세계의 주인으로서의 지위’로 표현되는 사람의 속성입니다. 자주성이 세계의 주인으로서의 지위로 표현된다는 것은 ‘자주성을 가진 사람’이 ‘세계의 주인으로서의 지위’를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자주성은 자연의 구속과 사회적 예속을 반대하고 세계와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 자유롭게 살려는 사회적 인간의 속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주성을 가진 사람은 자연의 구속을 극복하고 사회적 예속을 없애며 모든 것을 자신을 위하여 복무하도록 만들어나갑니다. 그러므로 자주성을 가진 사람은 세계의 주인으로서의 지위를 차지하게 됩니다. 따라서 자주성은 세계의 주인으로서의 사람의 지위로 표현된다는 것입니다.

자주성은 물론 세계에서 사람이 하는 ‘역할’로도 표현됩니다. 사람은 자주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창조성도 가지게 됩니다.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는 역할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세계에서 하는 ‘역할’은 주로 세계를 개조하는 ‘창조적 활동’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주성’은 주로 세계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주인의 ‘지위’로 표현되며, 세계에서 사람이 하는 ‘역할’은 주로 ‘창조성’을 표현하게 됩니다. ‘자주성’이 세계에서 주인으로서의 지위를 차지하는 사람이 가지는 본질적 속성이라면, ‘세계의 주인으로서의 지위’는 자주성을 가진 사람이 차지하는 지위라는 것입니다.

주체사상의 사회정치적 생명과 그리스도교의 영생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주체사상은 사회적 존재인 사람의 ‘자주성’이 사람의 ‘제일생명’인 ‘영생하는 사회정치적 생명’이며, 사람은 ‘자주성’을 가지고 있음으로 하여 ‘세계의 주인’으로서의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영생을 믿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고백하는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게 되는 생명의 영생이며, 이러한 영생관은 그리스도교 구원신앙의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종교와 관념론을 비판하는 유물론에 입각한 주체사상은 ‘영생’에 대해 새로운 견해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주체사상은 사람이 ‘사회적 존재’라는 것에 착목하여, ‘사회’적 차원에서 형성되는 ‘사회정치적 생명’이 ‘영생’한다는 진리주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체사상의 ‘사회정치적 생명의 영생’에 관한 진리주장은 그리스도교의 구원신앙에서 고백되는 ‘그리스도를 통해 얻는 영생’과의 비교 속에서 다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해석 손정도 목사의 ‘구원신앙’이 주체사상의 창시과정에서 사람의 ‘제일생명’ 문제에 대한 통찰을 주었다면, 이제 전일적으로 체계화 된 주체사상과의 대화를 통해, 주체사상이 내놓은 ‘영생하는 사회정치적 생명’과 우리를 해방하시며 자유하게 하시고 참된 주인으로서의 삶으로 초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 간의 상호이해를 증진시키는 작업은 통일시대 주체신학의 과업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정대일 연구실장(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  jungsc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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