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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바디스, 도미네?(렘 23:1-4; 벧전 5:1-11; 요 21:15-19)부활절 다섯째주일(5월10일)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0.05.08 16:33

1.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

지난주 말씀에 우리는 말씀을 듣고 떡을 나누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도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간 베드로와 제자들의 침묵을 보았습니다. 그들의 나약함을 본 것입니다. 이것은 부활의 증인으로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보여줍니다. 쉽게 말해 예수님을 잘 믿는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부활의 증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혹은 제대로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오늘 복음서 말씀이 그 답을 잘 보여줍니다. 바로 말씀의 핵심으로 가 볼까요? 공동번역으로 보겠습니다.

“이어서 ‘정말 잘 들어두어라. 네가 젊었을 때에는 제 손으로 띠를 띠고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나이를 먹으면 그 때는 팔을 벌리고 남이 와서 허리를 묶어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끌고 갈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의 이 말씀은 베드로가 장차 어떻게 죽어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될 것인가를 암시하신 말씀이었다. 이 말씀을 하신 뒤,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다.”(요 21:18-19)

이것은 예수께서 베드로의 죽음에 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젊어서는 마음대로 살았지만, 예수께 사로잡히면 원하지 않는 곳에도 끌려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말씀을 듣고 떡을 나누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면, 이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잘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을 믿는 우리 기독교가 잘 죽는 것,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무기력하고, 침묵하며 소금과 빛의 역할을 제대로 행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르지 카발레로비치 감독의 영화 <쿼바디스 도미네>(2004)를 보면, 네로 황제의 핍박을 피해 로마를 빠져나가는 베드로가 길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가시는 방향은 베드로가 떠나온 로마입니다. 그때 베드로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쿼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 곧,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묻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로마로!” 즉, 베드로가 핍박이 두려워서 도망친 로마로 간다는 뜻입니다. 

“베드로야, 네가 도망친 로마로 나는 다시 가서 십자가를 짊어질 것이고, 또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위해 가는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러자 고민하던 베드로는 발길을 돌려, 자신의 죽음을 요청하는 로마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른 박해받는 그리스도인들을 위로하고, 용기를 줍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결국 십자가에 거꾸러 매달려 처형을 당합니다. 

▲ 귀도 레니 성베드로의 십자가 처형(1604-1605)

기독교는 믿기 힘든 종교입니다. 대부분의 종교는 복 받기 위해 믿습니다. 처음 믿는 분들도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래 믿는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믿으면 믿을수록 자꾸 죽으라고만 합니다. 성경은 읽으면 읽을수록 자기를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라고만 합니다. 편안하게 살고 싶은데, 자꾸 힘든 곳을 찾아가 사랑을 실천하라고 합니다.

예수 믿기가 참 힘듭니다. 아니, 진정으로 예수 믿기가 힘든 것이죠? 설렁설렁, 대충대충 믿기는 너무 쉽습니다. 교회 다니는 것은 쉽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오늘 본문 말씀에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질문을 한 것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볼까요?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ἀρνία, 유아기의 양들)’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πρόβατά, 성장한 양들)을 치라(Ποίμαινε, 지배하고 다스리라) 하시고,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λυπέω)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요 21:15-17a)

마지막 세 번째 대답에서 베드로는 근심합니다. 여기서 ‘루페오’는 ‘고민하다’는 뜻도 됩니다. 따라서 베드로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주님께 대한 자신의 사랑을, 주께서 아신다고 슬쩍 넘어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πρόβατά)’을 먹이라(Βόσκε, 가축을 기르라!)(요 21:17b)”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죽음을 예고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믿는 것은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앞에 있는 아르니온(유아기의 양)을 잘 기르는 것이며, 또한 성장한 양인 프로바티온도 잘 다스리며 기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양을 위해 선한 목자가 자신의 목숨을 내어준 것처럼(요 10:11) 그렇게 모든 이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주시며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으라는 말씀입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 사람을 이용하고, 자기 욕심을 위해 사람을 속이거나, 종교와 제도, 권력을 이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 이익을 위해 예수님을, 또한 교회와 사람들을 이용하는 거짓 목자들을 보게 됩니다. 구약의 말씀이 그러한 삯꾼 목자들을 잘 보여줍니다.

2. 양떼를 멸하며 흩어지게 하는 목자

예레미야 23장 말씀은 거짓목자와 거짓선지자에 관한 말씀입니다. 말씀의 배경은 바벨론에 의해, 민족의 패망을 앞 둔 상황에서도 불의를 행하는 유다의 영적 지도자들에 관한 예언자의 고발과 심판의 예언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은 거짓목자에 관한 말씀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목장의 양 떼를 멸하며 흩어지게 하는 목자에게 화 있으리라(렘 23:1).” 목자들에게 저주를 퍼붓고 있습니다. 그들의 죄는 목장의 양 떼를 멸하며 흩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볼까요?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 백성을 기르는 목자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내 양 떼를 흩으며 그것을 몰아내고 돌보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내가 너희의 악행 때문에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23:2)

오늘 본문 말씀에는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지만 23장 전체에는 이러한 거짓목자들의 타락상을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목장에서 양 떼를 죽이고 흩어 버린 목자입니다(1절). 또한 이들은 사악하여 하나님의 집에서도 악을 행합니다(11절). 이들은 풍요와 다산의 상징인 바알을 의지하고 예언합니다(13절). 쉽게 말하면 영혼의 정결함이 아니라, 육체적 쾌락과 물질적 복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들은 그 옛날 소돔과 고모라와 다름이 없다는 것입니다(14절).

이들 거짓목자들은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묵시가 아니라, 자기 마음속에서 나오는 헛된 예언을 말합니다(16절). 주님을 멸시하는 자에게도 너희가 평안하리라고 말하며 악을 행하는 사람들에게도 재앙이 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17절). 결국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이름을 잊게 만듭니다(27절). 이들은 알곡이 아니라, 겨입니다(28절). 양의 탈을 쓴 늑대입니다. 따라서 이 거짓 목자들을 하나님께서 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30-31절).

▲ 양의 탈을 쓴 늑대와도 같은 거짓 선지자

그리고 이제 오늘 본문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알곡과 같은 목자, 참 목자를 다시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다윗의 계보를 통해 오실 메시아이기도 하지만, 1차적으로는 참된 목자, 진실한 목자를 뜻합니다. 말씀을 볼까요?

“내가 내 양 떼의 남은 것을 그 몰려갔던 모든 지방에서 모아, 다시 그 우리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의 생육이 번성할 것이며 내가 그들을 기르는 목자들을 그들 위에 세우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려워하거나 놀라거나 잃어버리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23:3-4)

이 시대에 참된 선생이 없다고 합니다. 교회적으로 참된 목자를 쉽게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것이 오늘 한국 교회의 불행입니다.

3. 부머 리무버

‘부머 리무버(Boomer Remover)’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말로는 ‘꼰대제거기’ 정도로 번역됩니다. 최근 코로나-19 감염병이 퍼지면서 이 신조어가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습니다. 곧, 코로나-19가 기성세대인 ‘베이비부머’ 세대를 제거한다는 말입니다. 베이비부머는 나라마다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2차 세계 대전 이후인 1945년부터 1960년 중반까지 태어난 이들을 말합니다. 우리나라는 86세대 이상을 뜻하겠지요. 아무튼 10대들은 기성세대가 탐욕에 찌들었으며, 경제를 망가뜨렸고, 지구를 병들게 했다고 비난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아저씨들은 그냥 앉아 있기나 해!”, “그 정도 했으면 충분하지 않나?”

‘42만→38만→34만→30만→32만’이라는 숫자가 있습니다. 최근 5년간의 출생아 숫자입니다. 그리고 ‘68만→66만→70만→74만→78만’이라는 숫자는 올해부터 5년간 매년 65세가 되는 인구의 숫자입니다. 바야흐로 대한민국은 아주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고, 그 중심에는 베이비부머(1955~1964년생) 세대가 있습니다.

조금 확장해서 살펴볼까요? 1955년부터 1974년 20년 동안 태어난 이들이 현재 1680만 명이라고 합니다. 전체 대한민국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합니다. 2019년 중위(中位)연령, 곧 전체 인구를 연령 순서대로 세웠을 때, 정 중간에 있는 사람의 나이가 43세였습니다. 그러나 약 10년이 지난 2030년에는 50세가 됩니다. 인구 절반이 50세 이상이 된다는 말입니다.

왜 이렇게 인구 이야기, 베이비부머 세대 이야기를 할까요? 지금 대한민국 인구의 1/3을 차지하는 세대가 제대로 해야 다음세대들에게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어버이 주일인데, 지금 기성세대들인 우리 어버이들은 어쩌면 다음 세대의 목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 교회를 봐도 그렇습니다. 교회의 인구 비율이 역삼각형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서신서 본문 말씀은 교회의 지도자들인 장로들에게 하는 베드로 사도의 권면이자, 어버이주일 어버이들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물론 젊은이들에게도 권면합니다. 말씀을 볼까요?

4. 장로와 젊은 자들에게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τύποι)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벧전 5:1-4)

먼저 교회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원함으로 하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고 합니다. 여기서 본으로 사용된 ‘튀포이’라는 말은 ‘튀포스’라는 말의 복수로 ‘튚토(때리다, 상하게 하다)’라는 동사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따라서 ‘튀포스’라는 말은 ‘무언가를 때리고 쳐서 만들어진 틀이나 흔적, 혹은 자취나 모형’을 뜻합니다. 이것은 맞은 흔적, 고난의 자취, 핍박의 모형을 뜻합니다.

쉽게 말하면 지도자들의 잘난 것을 양 무리들이 본받으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로 인하여 고통 받고 핍박받은 상처를 통하여 지도자들이 양 무리의 본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쿼바디스 도미네?”를 물었던 베드로가 그렇게 마지막 순간을 살았습니다.

또한 젊은이들에게는 교회의 지도자들을 존경하고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고 합니다. 나아가 모든 염려를 다 주님께 맡기라고 합니다. 함께 말씀을 볼까요?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 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5-7)

오늘 개신교회는, 아니 한국교회는 세상의 존경을 받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거룩하지 못하다’, ‘교인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 탐욕적이다’, ‘목회자의 윤리의식과 도덕성이 일반인보다 못하다.’ 등등. 베드로는 고난 중에 있는 교회의 지도자들과 성도들에게 당부합니다. 그리고 이 당부는 오늘날에도 유효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는 사자와 같이 우리의 대적 마귀가 두루 다니며 삼킬 사람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권능이 세세무궁하도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벧전 5:8-1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코로나-19가 잠잠해지고 나면, 이제 진정한 예수의 제자와 교회가 어디인지 드러날 것입니다. 이기적이고 교만하고 자기 유익만 챙기는 교회와 목사와 교인들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을 것입니다. 아무 쓸 데 없어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밟히는 소금이 될 것입니다(마 5:13b).

그러나 겸손하고, 타자의 아픔에 공감하며, 시대를 읽는 교회와 목사와 교인들은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될 것입니다. 그 좁은 길로 가야만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존경받고 교인들이 인정받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고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 7:13-14).”

오늘 베드로가 “쿼바디스 도미네?”라고 물었을 때, 예수께서는 “로마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로 죽으러 가는 길, 그 좁은 길에 참된 부활과 생명이 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불의의 넓은 길로 갈 때, 우리 깨어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옳고 진실한 좁은 길로 가야 할 것입니다. 거기에 희망이 있습니다. 그 길을 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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