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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람믿음, 소망, 사랑(고린도전서 13:11-13)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0.05.10 16:39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가정의 달 5월입니다. 지난 주일은 어린이 주일이었고,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어버이 주일에 보통 전하게 되는 말씀은 부모님께 잘해야 한다는 말씀이거나, 반대로 그리스도인으로서 부모의 역할 잘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저희는 오늘 이보다는 조금 더 포괄적으로 사랑에 관한 말씀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사랑에 관한 말씀이라고는 했지만, 사랑 자체에 대한 말씀이라기보다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사랑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믿음, 소망, 사랑

고린도전서 13장 13절은 대표적인 성경 암송 구절입니다. 예전 성탄절 행사 때라던가 교회학교 발표회 때 빠지지 않고 암송하던 구절입니다.

그런데 예전부터 고린도전서를 읽으면서 생각했던 점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 이야기를 적고 있기 때문에 사랑이 제일이라는 사도 바울의 마지막 이야기는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믿음과 소망은 왜 갑자기 나타난 것일까요?

믿음과 소망은 우리에게 친숙한 단어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소망은 강단에서 자주 언급되고, 우리 신앙에 있어서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어찌보면 우리에게 친숙한 믿음, 소망이 기록되었다는 점은 이상하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궁금했던 점은 이야기의 고린도전서의 흐름상, 왜 사랑을 이야기하는데 믿음과 소망도 함께 이야기하는가 입니다.

고린도전서에서 그 답을 찾으려고 했는데, 다른 바울 서신을 통해서 그 해답의 단편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5-6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인해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실 구원의 소망을 품게 됩니다. 그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놀라우신 사랑을 통해 확신으로 이어집니다. 그렇기에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이 됩니다.

이는 로마서 5장 1-11절에서 더 구체적으로 나타납니다. 로마서 5장 1절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자고 말하며 시작됩니다. 어찌보면 한때 교회에서 유행했던 ‘사영리’의 근거로 보입니다.

사영리는 우리가 원죄로 인해 하나님과 분리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과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우리가 이미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사영리와는 근본 인식이 전혀 다릅니다.

로마서 5장은 우리가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는 즐거움만 있지 않습니다. 환난도 있고 고통도 있습니다. 믿음은 이 환난과 고통 중에도 즐거움을 잃지 않는 힘을 줍니다. 이 즐거움을 갖고 인내하는 이에게 환난과 고통은 연단이 되며, 연단은 믿는 이에게 소망을 주게 됩니다. 이것이 로마서 5장 2-4절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환난과 고통만 있는 삶 속에서 계속 즐거움과 평안을 유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신앙이 없는 이들이 보기에는 어리석어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우리가 소망을 계속 품을 수 있도록, 세상의 눈길이 우리를 어리석게 보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연약한 우리를 위해, 아직 죄인인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목숨을 버리도록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사랑은 우리에게 확실한 증거가 되며, 우리가 더욱 굳은 믿음과 소망을 갖게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게 되었고, 구원의 소망을 품고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3절에 믿음, 소망, 사랑이 나타나고 있는 점은 사도 바울의 설교나 서신을 자주 접한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들리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주 했던 말씀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여러 서신에서 발견되는 흔적은 사도 바울이 가진 신앙을 보여줍니다. 믿음으로 소망을 품고, 소망을 품은 이들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이를 통해 다시금 믿음의 확신으로 나아가는 순환 구조가 그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

예전에 고린도전서로 말씀을 전했을 때, 믿음과 소망은 하나님과 관련된 신앙이고, 사랑은 사람들 간의 관계로 말씀드린 일이 있습니다. 정확하게 이런 구분으로 말씀드리진 않았지만, 설교문을 다시 읽어보니 그렇게 구분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뭔가 일관성이 없게 자신의 신앙을 전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당시의 저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하고 일반적으로 교회에서 전해 들었던 말씀들을 바탕으로 생각하면서 말씀을 전해드렸던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 소망, 사랑 세 단어 모두를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앞서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 소망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소망, 사랑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증거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 이야기 전체도 하나님에 대한 사랑,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사람 간의 관계를 말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사도 바울의 다른 서신들과 비교하며 생각했을 때, 그 사랑의 대상은 하나님이 맞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이기도 합니다. 4-7절에 나타난 말씀, ‘사랑은 오래 참고’로 시작되는 말씀은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사랑의 표현으로 볼 수도 있지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확실한 증거인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다면 우리의 신앙과 행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도 바울의 신앙으로 해석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항상 사도 바울이 이야기한 사랑을 우리의 감정,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감정으로 읽고 받아들여 왔을까요? 그것은 고린도전서 전체가 교회의 이야기, 성도들 간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분명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말합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쓴 전체적인 편지 속에서 이는 더 큰 의미로 확장됩니다.

교회 안에서 성도들 간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라는 의미로 확장됩니다. 이는 지금 말씀을 읽고 있는 우리들의 개인적인 삶, 가정과 직장과 삶에서의 믿음, 소망, 사랑으로도 더욱 확장되어 갑니다.

로마서 5장에서도 11절에서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하나님 안에서 얻은 믿음, 소망, 사랑은 하나님과의 관계만을 화목하게 할 뿐 아니라 우리로 화목하게 하며 이를 통해 또한 즐거워한다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도 마찬가지입니다. 5장 13-15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사도 바울은 믿음, 소망, 사랑을 하나님과의 관계에만 한정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성도들 간의 관계 속에서도, 더 나아가 가정에서도 드러나게 되기를 권면하며 마칩니다.

일전에 가정예배 설교문에서 ‘믿음이 없는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상대방을 향한 믿음을 가져야 하며, 더 나아가 내가 믿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믿음은 그 사람에 대한 소망으로 이어집니다. 소망은 무엇인가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믿는 사람에게 무언가 바라는 마음, 소망을 품게 됩니다. 하지만 사람의 소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잘 알 수 없습니다. 또 상대방의 소망을 무엇이든지 다 이루어 줄 능력도 없습니다. 때로 사람은 과도한 소망을 품을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소망을 다 이루어줄 수는 없을지라도, 그가 우리를 계속 믿을 수 있도록 만들 수는 있습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표출할 때에 상대방은 우리를 향한 믿음을 더욱 키워가게 되고, 자신의 소망을 맞춰가게 됩니다. 그때 화목함이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할 일

사도 바울의 믿음, 소망, 사랑의 공식을 우리 삶에 적용해본다면, 우리가 누군가를 믿고, 그에게 소망을 품는다면 그는 우리에게 사랑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서 그런 응답을 얻기는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믿고 바람을 가져도 상대방은 우리에게 사랑을 보여주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반대로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사랑을 요구하기보다 내가 먼저 그렇게 하면 됩니다. 내가 믿음을 줄 수 있는 사람, 신뢰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누군가 나를 믿기에 소망을 품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를 믿고 나에게 작은 소망이라도 품고 있는 이가 있다면, 그에게 사랑으로 응답하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행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를 우리에게 확실한 증거로 주셨기 때문에 우리도 그렇게 행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지금의 세상은 믿음의 결과가 배신이며, 소망은 헛된 바람이 될 뿐이라고 말합니다. 사랑은 돈으로도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그런 세상에서 올바른 결과를 만들어 가길 바랍니다. 믿음에는 소망이 이어지며, 소망에는 사랑이라는 응답이 돌아오는, 그래서 더욱 큰 믿음을 갖는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세상을 우리가 이루어 가길 바랍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과 화목함을 이루시게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함으로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되실 줄 믿습니다. 더 나아가 여러분 주변의 모든 이들과 화목을 이루시게 될 줄 믿습니다. 또 그 안에서 끊이지 않는 즐거움을 누리게 되실 줄 믿습니다.

가정의 달 5월에 먼저 우리의 가정에서부터 이를 실천하시고 그곳에서 먼저 화목을 이루시는 성도님들 되시며 점차 여러분의 일터, 이웃들과 그 화목을 이루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크신 구원의 역사가, 늘 사랑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여러분에게 들리게 될 줄 믿고 축원합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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