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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정과 부정에서 풀려난 자유”살며 묵상하며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 승인 2020.05.14 17:25
5 예수께서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는 마을에 이르셨다. 이 마을은 야곱이 아들 요셉에게 준 땅에서 가까운 곳이며, 6 야곱의 우물이 거기에 있었다.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피로하셔서 우물가에 앉으셨다. 때는 오정쯤이었다. 7 한 사마리아 여자가 물을 길으러 나왔다.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마실 물을 좀 달라고 말씀하셨다. 8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가서, 그 자리에 없었다. 9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은 유대 사람인데, 어떻게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유대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과 상종하지 않기 때문이다.) 10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대답하셨다.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알고, 또 너에게 물을 달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았더라면, 도리어 네가 그에게 청하였을 것이고, 그는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요한복음 4:5~10/새번역)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 사이에 오간 대화를 음미합니다. 내면에서 다른 질문들, 대답들이 파문처럼 번져갑니다. 그 물음과 대답으로 주님을 바라봅니다. 주님께 묻고 귀를 기울입니다.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을 달라고 합니까?” 이 질문엔 전제가 있습니다. 9절에 나타나듯이 유대인이 사마리인과 상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앗시리아인들에게 정복당하면서 생겨난 혼혈인들이기 때문입니다. 부정한 사람들이라는 낙인을 찍고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경계를 자유로이 드나드십니다. 사마리아 여인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십니다.

규정은 곧 부정입니다. 규정을 통한 부정은 우리 일상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거룩한 사람을 규정하면 어느새 부정한 사람을 배제하면서 거부감을 느낍니다. 선민을 규정하면 역시 버림받은 천민을 배제하면서 부정합니다. 정상을 규정하면 비정상을 구분하면서 배제합니다. 사마리아인을 규정하면서 상종 못할 종자로 배제했던 것처럼.

▲ Johnson Tsang,「Open Mind」 ⓒpinterest

최전방 철책선에 근무할 때 철창 없는 감옥이라 느껴질 때가 있었습니다. 보이는 것이라곤 하늘과 땅이 전부였습니다. 민간인 통제구역 안에서 갈 곳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즐길 게 뭐가 있었겠습니까. 사회에서는 가고픈 곳에 가고 먹고픈 것을 먹고 이것저것 즐길 게 많았는데… 상념이 스칩니다. 마음 속에 철책선 생활은 감옥이고 사회는 자유로 규정된 겁니다.

답답함과 그리움으로 철책선의 하늘과 땅을 바라보다가 문득 깨달았습니다. 자유와 감옥이라는 구분이 환상이구나! 사회에 있다고 해도 얼마나 자유롭습니까? 가고픈 곳, 먹고픈 것을 어찌 마음대로 다 할 수 있겠습니까? 반대로 철책선 생활도 생각보다 자유롭습니다. 벗어나고 싶다는 열망이 감옥을 만듭니다. 그 욕망을 내려놓고 현실을 받아들일 때 자유로워지기 시작합니다. 철책생활을 받아들이면 할 수 있는 게 적지 않습니다. 책도 읽고 그림도 그리고 운동도하고 기도, 묵상…

“감옥은 이 사회 전체가 감옥이 아니라는 것을 가시화하기 위하여 저기 저렇게 따로 존재한다.”(이진경 저, 『철학과 굴뚝청소부』(서울: 그린비, 2005), 372) 보드리야르도 감옥의 존재이유를 감옥 밖이 자유롭다는 것을 반증하려는 것으로 봤습니다. 감옥 밖에 있다는 것만으로 자유롭다고 착각한다는 뜻입니다. 이데올로기의 감옥, 생각의 감옥, 두려움의 감옥, 편견의 감옥, 상처의 감옥, 교리의 감옥, 종교의 감옥… 자신을 가둔 수많은 감옥을 은폐합니다. 그래서 감옥 밖의 자유, 그것은 환상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감옥 안에서도 자유할 수 있습니다. 양심의 자유, 정의의 자유, 신앙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철창 안에 자신을 가둘 수 있습니다. 눈을 떠 깊이 바라보면, 감옥과 자유라는 경계가 모호해지고, 감옥과 자유가 서로에게 침투해 뒤엉킵니다.

천국과 지옥은 또 어떻겠습니까? 죽어서 가는 곳을 천국이라고 규정하면, 지금 여기 현실을 부정하기 쉽습니다. 적어도 여긴 천국은 아닙니다. 지옥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라져야할 허상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감옥 밖의 자유가 환상이듯, 지금 여기가 천국이 아니라는 부정 역시 환상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누가복음 17:21)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 천국입니다. 천국과 지옥, 천국과 현세 사이의 경계 역시 허물어집니다. 지금 여기의 삶 속으로 천국이 침투해 들어옵니다. 믿음은 여기에 그윽한 천국을 사는 삶입니다.

정상과 비정상, 정상인과 환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신병원 안에 있으면 비정상, 환자이고, 병원 밖에 살면 정상, 정상인일까? 정신과상담의 조차 정기적으로 상담을 받아야 합니다. 정신과의사들이 정상인과 정신질환자를 구분하지 못한 유명한 실험도 있습니다. 정상인과 정신질환자를 섞어 놓았는데, 정상인들을 정신질환자로 판정한 것입니다.

거룩과 부정, 거룩한 자와 부정한 자의 경계도 모호합니다. 사마리아 여자, 세리, 창녀는 부정하고 바리새인, 제사장, 서기관은 거룩하다 여겼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선 그 경계를 허물어 뒤집어 버리셨습니다. 복 받았다고 거룩하다고 여겼던 사람들에겐 화가 있을 것이라 선언하십니다. 오히려 가난하고 허물 많아 보이고 죄인으로 낙인찍은 이들에게 복되다, 행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선 편견어린 시선을 허물어 버리십니다. 거룩과 부정, 축복과 저주, 천국과 현세의 경계들을 허물어 버리십니다. 역전시켜 새롭게 바라보도록 편견의 안대를 벗겨버리십니다. 그것이 믿음이요, 구원입니다. 믿음의 눈에 보이는 탁 틘 구원의 풍경입니다.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devi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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