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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창조성에 대한 주체사상과 그리스도교 해석북한 선교를 위해 꼭 알아야 할 주체사상 100문 100답(85)
정대일 연구실장(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 | 승인 2020.05.14 17:31

Q: 주체사상이 말하는 사람의 본질적 속성인 ‘창조성’은 무엇인가요?_사람의 ‘창조성’(1)

A: 주체사상은 사회적 존재인 사람의 본질적 속성에는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이 있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습니다. 지난 연재들에서 우리는 주체사상이 밝힌 사람의 본질적 속성 중 ‘자주성’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연재부터는 사람의 본질적 속성 중 하나인 ‘창조성’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주체사상의 인간 창조성

주체사상은 ‘창조성’이 사회적 존재인 사람의 본질적 속성의 하나라고 주장합니다. 사람은 ‘창조성’을 본질적 속성으로 가지고 있는 존재, 창조적으로 생활하고 활동하는 사회적 존재라는 것입니다. 주체사상이 내놓은 사람의 본질적 속성으로서의 ‘창조성’은 ‘자주적인 요구에 맞게 목적의식적으로 세계를 개조하고 자기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성질’을 표현하는 개념입니다.

주체사상에 따르면, 사람은 자기의 ‘자주적인 지향과 요구’에 맞게 ‘목적의식적으로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고 ‘자기 운명을 개척’해나갑니다. 다른 생명물질에는 목적의식적으로 세계를 개조하는 성질이란 없습니다. 그것들은 생리적, 본능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자연의 사물을 그대로 이용할 뿐이며, 주어진 환경에 개체를 적응시킬 뿐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생명물질은 생리적, 본능적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자연의 사물이 없어지거나, 변화된 환경에 개체를 적응시키지 못하면 생존을 유지할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은 다른 생명물질에는 세계를 자기에게 쓸모 있고 이로운 것으로 개조하는 창조적 성질이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생명물질 일반과는 달리, 사회적 존재인 사람은 자연이 주는 기성형태의 사물을 그대로 이용하는 데 만족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자연이 주는 기성형태의 사물로써는 최소한의 생리적 수요조차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사람은 ‘자연을 개조’하고 기성의 형태로는 존재하지 않던 새것을 만들어내야 필요한 생활수단을 마련할 수 있고, 생활에 유리한 자연적 조건을 조성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모든 물질적, 문화적 재부들은 다 자연의 사물을 개조하여 만들어낸 것입니다.

사람은 또한 주어진 사회적 환경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생활에 불리한 낡은 ‘사회적 관계를 개조’하여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세워야 생존에 유리한 사회정치적 조건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사람의 요구는 끊임없이 높아지므로,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자연과 사회를 더욱더 넓고 깊이 개조해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람은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여야 살아나갈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실지로 목적의식적으로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냅니다. 이와 같이 ‘목적의식적으로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고 새것을 만들어내면서 자기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사람의 성질’이 ‘창조성’이라고 합니다.

인간 창조성의 표징

주체사상에 따르면, ‘사회적 존재인 사람의 속성’으로서의 ‘창조성’은 생명물질 일반의 생명활동의 속성과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일련의 ‘표징’들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창조성의 표징’은 첫째로, 인간 활동의 ‘목적의식적 성질’입니다. 생명물질 일반의 활동에는 ‘합목적성’은 있으나 ‘목적의식성’은 없습니다. 곤충을 잡기 위하여 줄을 늘이는 거미의 활동이나 먹이를 저장하는 다람쥐의 활동은 그의 생존을 위한 합목적적인 활동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은 의식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결과를 예견하고 진행하는 것도, 미리 목적을 세우고 진행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본능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진행되는 것이지, 목적의식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물질 일반과는 달리, 사람은 세계와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 살려는 요구로부터 출발하여, 활동에 앞서 먼저 머리 속에서 자연과 사회를 자기에게 쓸모 있고 이로운 것으로 ‘개조’하기 위한 ‘목적’을 세우고, 이 목적에 맞게 창조될 새것을 구상하고 설계하며 그 실현방도를 강구한 다음, 그것을 구현하기 위하여 실천 활동을 의도적으로 벌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의 활동은 목적의식적으로 진행되므로 ‘목적의식성’은 사람의 고유한 ‘창조성의 표징’의 하나를 이룬다고 합니다.

‘창조성의 표징’을 이루는 것은 둘째로, 낡은 것을 없애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면서 자연과 사회를 자기에게 더욱더 쓸모 있고 이로운 것으로 ‘개변시켜나가는 성질’입니다. 다른 생명물질은 기성형태의 사물을 새로운 형태의 사물로 개조하지 못합니다. 다른 생명물질 가운데도 그 무엇을 만드는 활동을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벌과 같이 자체의 분비물로 집을 짓거나, 새와 같이 풀이나 나뭇가지, 흙을 모아 둥지를 트는 활동이지, ‘기성형태의 사물을 변화시켜 새로운 사물을 만들어내는 활동’은 아닙니다.

사회적 존재인 사람은 다른 생명물질과는 달리, 자연의 사물을 가공하여 그 형태를 변화시키며, 기성의 형태로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사물을 만들어냅니다. 사람은 자연을 비롯한 새로운 물질적 재부를 창조할 뿐 아니라, 과학과 예술을 비롯한 새로운 문화적 재부를 창조합니다. 또한 사람은 낡은 사회적 관계를 없애고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세웁니다. 그리고 사람은 낡은 사상을 없애고 새로운 사상을 창조하며, 사람을 개조하여 더욱더 힘 있는 존재로 키웁니다. 사람은 낡은 것을 없애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면서 그 결과를 구체적으로 타산함으로써, 자연환경과 사회적 조건을 자기에게 더욱더 쓸모 있고 이로운 것으로 만들어나갑니다.

물론 사람은 나무를 남벌하여 산을 황폐화하고, 공해산업을 건설하여 환경을 오염시킴으로써 생활조건을 불리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의 창조성이 아직 발전하지 못한 조건에서 산생된 것이거나, 착취계급의 탐욕에 의해서 빚어진 후과라고 합니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사람은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는 목적’을 어디까지나 자연과 사회를 ‘자기에게 쓸모 있고 이로운 것’으로 만드는 데 두며, 이 목적을 실현해나갑니다. 그러므로 ‘자주적인 지향과 요구’에 맞게 낡은 것을 없애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면서 ‘자연과 사회를 자기에게 더욱더 쓸모 있고 이로운 것으로 개변시키는 것’은 사람의 ‘창조적 활동’의 중요특성으로, 사람의 고유한 또 하나의 ‘창조성의 표징’으로 된다고 합니다.

‘창조성의 표징’은 셋째로,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는 데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기성 이론과 경험에 구애됨이 없이 ‘변화된 현실의 구체적 실정에 맞게 풀어나가는 성질’입니다. 생명물질 일반의 생명활동은 개체의 생존의 전 기간 같은 방식으로 반복됩니다. 생명활동방식은 종(種)이 변화하지 않는 한 고정불변합니다.

이와는 달리, 자연과 사회를 인식하고 개조하는 사람의 활동은 ‘대상의 특성과 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각이한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자연과 사회를 인식하고 개조하는 사람의 활동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구체적 환경’ 속에서 진행되며, 그 대상 자체도 다양할 뿐 아니라 변화합니다. 그러므로 자연과 사회를 인식하고 개조하는 데서 나서는 모든 문제들은 고정불변한 방식으로나, 기성이론과 경험으로써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기성이론과 경험은 선행한 역사적 환경과 조건을 반영하여 나온 것이므로, 변화된 새로운 현실에는 그대로 적용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고정불변한 틀에 맞추어 고찰하고 판단하는 ‘도식적인 관점’과 기성이론과 경험에만 매달리는 ‘교조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서는 ‘변화된 새롭고 다양한 현실’을 올바로 인식할 수 없으며, ‘현실을 개조하는 과학적인 방도’를 찾을 수 없습니다. 오직 기성이론과 경험에 구애됨이 없이, ‘구체적인 현실’에 발을 붙이고 모든 것을 ‘실정’에 맞게 풀어나가야 ‘자연과 사회를 인식하고 개조’하는 데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성과적으로 풀 수 있습니다.

사람은 ‘새로운 역사적 조건’을 반영하고 ‘새로운 실천적 경험’을 개관한 데 기초하여 ‘새로운 이론’을 내놓으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실의 ‘구체적 실정’에 맞게 모든 문제를 풀어나감으로써 낡은 것을 없애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면서 역사를 전진시킵니다. 그러므로 기성이론과 경험에 구애됨이 없이 ‘현실의 구체적 실정에 맞게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는 성질’은 사람의 창조적 활동의 중요한 측면의 하나를 이루며, 사람에게 고유한 ‘창조성의 표징’의 하나를 이룬다고 합니다.

주체사상의 인간 창조성과 그리스도교의 인간 창조성

이상에서 우리는 주체사상이 말하는 사람의 ‘창조성’의 내용과 그 표징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체사상이 밝힌 ‘사람의 본질적 속성’ 중 하나인 ‘창조성’에 대해 매우 친근함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창조신앙’을 고백하고 있고, ‘창세기’를 통하여 전해진 ‘창조기사’를 신앙의 진리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체사상이 말하는 사람의 ‘창조성’과 그리스도교가 고백하는 ‘창조신앙’ 사이에서 공통적인 부분을 발견할 수 있으며, 그 공통의 지평을 그리스도교-주체사상 간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노둣돌로 삼을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 28절에 따르면, 하느님은 사람을 창조하시고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이 사람에게 주신 축복이자 명령입니다. 다시 말하여, 하느님은 사람을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하며, 정복하고 다스리는 존재’로 규정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이 명령에 의해 사람의 본성이 규정된 것입니다. 이제 하느님께서 정해주신 이 본성에 따라 사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본분이며,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이 명령에서 주체사상이 말하는 ‘창조성’과 공통되는 부분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며 모든 생물을 다스릴 수 있는 전제 조건은 ‘자연과 사회의 개조’에 있습니다. 사람은 자연을 개조하지 않고는 초보적인 생존조차 유지할 수 없습니다. 땅을 경작하는 것도 자연개조의 한 형태입니다. 또한 사람은 사회를 개조하지 않고서는 땅을 정복하고 다스릴 수 없습니다.

창세기는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 하던 히브리 노예들의 비참한 삶의 자리에서 고백된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담고 있습니다. 히브리 노예들이 이집트의 사회관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땅 가나안에서 새로운 사회관계인 모두가 평등한 지파 공동체의 관계를 만들어내지 않고서는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명령은커녕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하라’는 명령조차 이행할 수 없는 것입니다. 히브리 노예들은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여 노예의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가지고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하느님의 축복을 되새기며, 이를 창세기의 창조기사에 명령의 형태로 새겨놓은 것입니다.

식민지 조선의 애국지사였던 해석 손정도 목사는 식민지 노예로 전락한 ‘조선민족’이 능히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며, 땅을 정복하고 다스릴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리스도교 창조신앙에 입각하여 용감하게 ‘예!’라고 대답하였으며, 전 생애에 걸친 애국적 삶으로 그 대답을 살아내었습니다. 해석 손정도 목사의 창조신앙은 그의 보호 하에 있었던 김성주(일성)를 통해 주체사상의 창시 과정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으며, 그 결과가 주체사상의 체계화 과정을 거쳐 ‘사람의 창조성’에 대한 견해로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교의 창조신앙과 발생학적 연관이 있는 주체사상의 ‘사람의 창조성’에 대해 신학적으로 성찰하는 것은 통일시대 주체신학의 한 과업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정대일 연구실장(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  jungsc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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