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성서 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욥은 보지 못한 것을 보았던 욥의 아내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0.05.17 17:26

그(~욥)의 아내가 그에게 말합니다. 당신이 자기의 온전함을 아직 굳게 지키고 있을 때 하나님을 ‘찬양하고’ 죽으라. 그가 대답합니다. 그대는 한 어리석은 여자가 말하듯이 말하는구려. 그래,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복은 받고 화라고 안받을 것이오?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죄짓지 않았다.(욥 2,9-10)

וַתֹּ֤אמֶר לוֹ֙ אִשְׁתּ֔וֹ עֹדְךָ֖ מַחֲזִ֣יק בְּתֻמָּתֶ֑ךָ בָּרֵ֥ךְ a אֱלֹהִ֖ים וָמֻֽת׃
 וַיֹּ֣אמֶר אֵלֶ֗יהָ כְּדַבֵּ֞ר אַחַ֤ת הַנְּבָלוֹת֙ תְּדַבֵּ֔רִי גַּ֣ם אֶת־הַטּ֗וֹב נְקַבֵּל֙ מֵאֵ֣ת הָאֱלֹהִ֔ים וְאֶת־הָרָ֖ע לֹ֣א נְקַבֵּ֑ל בְּכָל־זֹ֛את לֹא־חָטָ֥א אִיּ֖וֹב בִּשְׂפָתָֽיו׃ פ

위의 번역은 일반적인 성서 번역과 조금 다릅니다. 하지만 이 문장을 의문문으로 바꿔 읽을 이유는 없습니다. 게다가 전치사 ‘오드’(עֹדְךָ֖)는 여기서 단순히 ‘아직’이 아니라 ‘아직... 때’ 또는 ‘... 동안’을 뜻합니다.

따라서 욥의 아내의 말은 위와 같이 옮길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달라지는가요? 마치 저주처럼 들리던  욥의 아내 말은 사실상 염려와 안타까움 가득한 정반대의 말입니다.

그는 왜 그렇게 말했을까요? 앞뒤 문맥을 보건대 욥의 태도 변화 때문일 것입니다. 욥은 처음에는 모든 것을 잃고 나서도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그의 몸에 종기들이 심하게 솟자 그는 침묵합니다.

이 변화를 그의 아내는 읽었습니다. 지금이야 침묵 속에 버티고 있지만 그 변화의 끝이 무엇일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의 아내는 바로 이 점을 염려했습니다.

▲ Albrecht Durer, 「Job and His Wife」(1504) ⓒWiki Art

(이때문에 욕하다로 옮겨진 히브리어는 본래 의미 그대로 축복하다, 찬양하다로 새기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욥은 실제로 버티지 못합니다. 그는 친구들 앞에서 자기의 생일을 저주함으로써 간접적이지만 하나님을 원망하고 ‘욕합니다.’ 이렇게 바뀌고 있는 욥을 알고 있을 그의 아내가 욥에게 무슨 다른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욥의 고통이 그토록 심해서 차라리 죽는 게 나아 보일 수도 있는데, 그래도 계속 버텨야 한다고 강권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욥으로서는 그가 비록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그렇게 된다고 해도 아내가 그에게 그 전에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말하면, 그것이 아무리 욥을 생각해서 하는 말일지라도, 지나친 말로 들릴 것입니다. 욥은 실제로 그의 아내에게 어리석은 여자처럼 말한다고 핀잔을 줍니다. 복이든 화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니 우리가 받고 안 받고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취지의 말을 덧붙입니다.

그는 그의 아내가 왜 그리 말하는지 몰랐고 자신이 바뀌고 있다는 것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결코 변하지 않을 거라고 자신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찬양하라는 말도 욕하라는 말로 알아들었을 것입니다.

나래이터도 욥이 입으로 범죄하지 않았다고 함으로써 그러한 욥을 편들었습니다. 이때문에 3장에서 보는 욥의 원망과 저주는 독자들에게 더 충격적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모두에게 ‘오해받은’ 욥의 아내입니다.

그는 욥이 온전함을 잃지 않기를 바랬습니다. 이하의 이야기에서 욥의 ‘온전함’은 형태를 달리하며 지켜질 것입니다. 복처럼 화도 받아야 한다고 했던 욥은 하나님께 왜 자신이 화를 당해야 하는지 묻고 하나님께 구박을 당하면서도 그 물음을 끝까지 놓지 않습니다.

그가 끝까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의 아내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자신의 생일을 저주함으로써 위기에 처하기도 하지만 그의 아내는 그가 고난 속에서도 아직 온전함을 지키고 있음을 보았고 혹 잃지 않을까 염려했습니다. 그런 아내 덕에 욥은 자신의 온전함을 끝까지 신뢰하고 지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맑은 눈으로 사람과 세상을 보고 편견을 넘어서는 오늘이기를. 고통이 우리를 왜곡시키지 않고 고통 속의 사람을 받아들이고 함께 아파하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상기 목사(백합교회)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이해학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해학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0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