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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의 때, 지금”살며 묵상하며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 승인 2020.05.25 17:10
19 여자가 말하였다. “선생님, 내가 보니, 선생님은 예언자이십니다. 20 우리 조상은 이 산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선생님네 사람들은 예배드려야 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합니다.” 21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여자여, 내 말을 믿어라. 너희가 아버지께, 이 산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거나,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거나, 하지 않을 때가 올 것이다. 22 너희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우리가 아는 분을 예배한다. 구원은 유대 사람들에게서 나기 때문이다. 23 참되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을 찾으신다. 24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요한복음 4:19~24/새번역)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예배에서 수도 없이 선포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예배자는 이 말씀에 담긴 뜻을 얼마나 이해할까요? 이해한 후에 몸으로, 삶으로 체득할까요? 영과 진리는 그저 진심으로 성심껏 예배드리는 정도로 이해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주로 예배를 시작할 때, 이 구절만 선포하기 때문에, 원래의 맥락을 놓치고 맙니다. 일주일 중에 정해진 특정 예배에만 해당되는 말씀으로 이해합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주님께 예배 장소에 대해 묻는 맥락의 대답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주님께 묻습니다. 어디에서 예배를 드려야 참된 예배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사람들 예루살렘에서 드려야 한다고 하지만, 여기 사마리아 사람들은 이 산, 곧 그리심 산에서 예배를 드려도 된다고 합니다. 뭐가 맞는 것입니까? 질문을 믿음이 약한 태도로 여기곤 하지만, 이 질문이 깨달음의 열쇠가 됩니다.

이 물음은 사마리인과 유대인 사이의 갈등에서 생겨났지만, 결국 예배의 형식을 묻고 있습니다. 예배의 공간, 장소를 묻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직면한 물음과도 닮았습니다. 교회 공간에 모여서 드리는 예배만이 참 예배냐, 아니면 가정에서 따로 드려도 되느냐? 공간과 형식의 문제입니다.

ⓒAntoine Josse

한편에서는 목숨을 걸고라도 모이는 예배를 지켜야 한다고 고집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데 죽는 게 뭐가 무섭냐!’ 다른 편에서는 장소가 중요하지 않다고, 이웃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가정에서 드려도 된다고 봤습니다. ‘내가 죽는 건 두렵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웃의 목숨을 담보로 예배를 드려서야 되겠느냐!’ 그래서 대안으로 차에 타고 드리는 드라이브 예배도 생겨났습니다. 위험과 비난을 감수하고 모이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모이지 않을 수 없었던 선택입니다.

예배의 공간, 예배의 형식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내 말을 믿어라. 너희가 아버지께, 이 산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거나,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거나, 하지 않을 때가 올 것이다.” 먼저 형식의 물음에서 벗어나 “때”를 말씀하십니다. 여기냐, 저기냐, 이 산이냐, 저 산이냐 하는 물음이 중요하지 않은 때입니다. “23.참되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어디서 드려야 하느냐는 물음을 어떤 사람의 예배인가로 바꾸십니다. 어떤 마음으로 드려야 하는가로 돌리십니다. 장소가 중요한 게 아니라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느냐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때가 언제입니까? 주님께서 바로 일러주십니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먼 미래가 아닙니다. 바로 지금입니다. 뭔가 많은 준비와 훈련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만난 바로 지금이 그때입니다.

그리심산이냐 예루살렘이냐? 장소의 문제 곧, 형식의 문제에서 벗어나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때가 옵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지금이라는 말씀입니다. 한 낮에 유대인이 사마리아인을, 그것도 여자와 우물가에서 독대하는 지금, 사람들이 눈 흘기며 손가락질하기 딱 좋은 그 때조차 영과 진리로 예배할 바로 그 때라는 말씀입니다.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한다는 말씀에는 그러므로 공간과 시간에 대한 파격이 담겨있습니다. 공간의 틀을 허물어 버립니다. 그리심산, 예루살렘성전, 오늘 우리라면 어느 교회의 본당에 갇히지 않는 예배입니다. 또한 시간의 틀도 깨집니다. 어느 특정 절기나 안식일에 갇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부정하다고 손가락질할 만한 때여도, 그곳에서 하나님의 영이 임해 눈을 뜨고 진리를 보면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언제 어디라도 주님을 만난 그곳에서 영과 진리로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틀에서 해방된 예배, 사람들의 시선과 판단에 갇히지 않는 예배를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늘 예배의 시작이나 예배 중에만 선포합니다. 앞의 맥락을 빼버립니다. 그러니 주일 같이 특별히 정한 날이나, 교회와 같이 특정한 공간에 다시 예배가 갇히고 맙니다. 목숨을, 그것도 남의 목숨을 걸고라도 성속의 구별을 지키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래서 지금도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를 애타게 찾으실 수밖에 없습니다. 늘 함께 계신 주님을 언제, 어디서든 알아보고, 그 모든 지금에 예배하는 사람을 기다리십니다.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devi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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