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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기억연대를 둘러싼 흑색 저널리즘민중신학자의 눈으로 세상 읽기 (21)
강원돈 교수(한신대 신학부/민중신학과 사회윤리) | 승인 2020.05.25 17:19

인문학적 소양과 저널리스트

페미니스트 윤리학자이자 법 철학자인 마사 누스바움은 『시적 정의』라는 환상적인 제목의 책에서 법관이 생활세계에 대한 통찰을 얻기 위해서는 문학에 전념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감정과 의지와 이성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얽혀서 살아가는 삶을 살피는 문학은 철학과 같은 추상적인 사유가 접근할 수 없는 통찰들과 진리들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사람들 사이의 분쟁과 갈등을 처리하는 법관은 정의의 원칙만이 아니라 사람의 삶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비롯되는 지혜도 갖추어야 한다.

누스바움은 학사와 석사 과정에서 고전 문헌학과 연극학을 전공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론에 관한 논문을 써서 고전문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수 천 년의 역사적 시간을 가로지르며 고전 문학을 해석하는 훈련을 한 그녀는 역사와 문학과 철학을 아우르는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탁월한 지식인이다. 그런 점에서 누스바움이 『시적 정의』에서 말하고자 하는 지론은 법관과 같이 전문적인 직업을 수행하며 사람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에게 인문학적 소양이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이라고 고쳐 말할 수 있다.

사실 인문학적 소양은 너, 나 할 것 없이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지만, 전문직 수행자들이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다. 전문 지식과 정보에 몰두하다 보면 시각이 좁아져서 다차원적이고 다면적인 삶의 맥락을 포괄적으로 살피고 성찰하는 일을 소홀히 하게 되는 경향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아마 우리 시대의 전문직 종사자들 가운데서 인문학적 성찰 능력을 제대로 갖추어야 할 사람들은 저널리스트들일 것이다.

언론은 뉴스를 생산하고 편집하고 공급하는 과정을 통하여 고발자와 비판자로서 사회 정화에 이바지하고 사회적 의제와 정치적 의제를 설정하여 공론의 형성에 이바지하는 것이 그 고유한 과제이다. 그 일을 감당해야 할 저널리스트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계를 깊이 들여다보고 헤아리고 가늠하는 역량이다. 그 역량은 인문학적 소양에서 나온다. 오늘 그러한 역량을 갖춘 저널리스트들이 드물기에 언론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저널리스트들이 도매금으로 ‘기레기들’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것이다.

정의기억연대와 윤미향 씨에 대한 언론보도 행태를 개탄한다

필자가 저널리스트의 인문학적 소양에 대해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은 것은 지난 5월 7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씨의 기자회견을 계기로 언론 매체들이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기억연대)와 그 이사장이었던 윤미향 씨에 관하여 보도하는 행태가 실로 개탄스럽기 때문이다.

▲ 지난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438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신임 이사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용수 씨가 기자회견에서 말한 내용은 크게 세 가지였다. 하나는 ‘수요집회’ 위주의 활동을 한일 양국 청소년 교류와 역사교육 중심으로 전환하여야 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정의기억연대가 모금한 돈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제대로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이고, 마지막 하나는 열린시민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당선된 윤미향 씨가 정의기억연대를 떠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 기자회견에 접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등 보수 언론을 위시하여 거의 모든 언론 매체들은 이용수 씨의 회견 내용을 대서특필했다. 정의기억연대의 회계부정 의혹을 크게 부각시키는 가운데, 정의기억연대와 윤미향 씨의 운동 방식을 문제 삼기 시작했다. 우선, 회계장부 기재 누락이나 과다 지출 의혹, 안성 쉼터의 고가 매입과 저가 매도 의혹 등을 차례차례 보도하고, 급기야 윤미향 씨 부친이 안성 쉼터 관리인으로 일했다든지, 윤미향 씨의 주택거래 자금 마련에 의혹이 있다는 등 신상 털기 행태의 보도를 서슴지 않았다. 정의기억연대와 윤미향 씨의 꼼꼼한 해명을 제대로 보도하는 매체는 거의 없었다. 그 다음, 언론 매체들은 ‘수요집회’ 등 정의기억연대의 중점 사업이 청소년들을 동원하고 그들에게 해로운 성노예, 강간, 국가범죄 등에 관한 내용을 전파하여 청소년들을 학대했다고 비난했다. 이 두 가지 사안에 관련된 대대적인 언론 보도에 접한 극우 시민단체들은 회계부정 혐의와 청소년 학대 혐의 등을 내걸어 정의기억연대를 검찰에 고발했고, 검찰은 신속하게 정의기억연대와 관련 단체들의 사무실을 압수 수색했다.

보수적인 언론 매체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용수 씨가 평소에 일본 정부에 ‘위안부’ 문제에 대한 법적 책임과 배상을 계속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정의기억연대와 똑같은 입장을 취했다는 것을 애써 묵살하고, 서로 엇나간 말들을 크게 부풀려 이용수 씨와 윤미향 씨의 관계를 갈라놓으려 하고, 피해자 중심주의를 내건 윤미향 씨가 피해자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독선적으로 정의기억연대를 이끌었다고 비난하는 보도를 서슴지 않았다. 윤미향 씨가 2015년 한일 양국 정부의 ‘위안부’ 합의 내용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이에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합의 발표 이후에 반대 입장을 취했다고 왜곡 보도를 하는가 하면, 피해자들이 2015년 합의에 따른 보상을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회유와 종용’을 서슴지 않았다고 보도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일련의 보도들은 전형적인 왜곡보도나 가짜뉴스에 속한다. 이러한 보도들을 통하여 특히 보수적인 언론 매체들은 메신저의 도덕성을 공격하여 메시지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효과를 거두고자 하는 판에 박힌 전술을 구사한 것이 틀림없다. 정의기억연대와 그 중심인물인 윤미향 씨의 회계 부정 의혹이나 운동 방식에 대한 세평 등을 끌어들이고 이를 부풀림으로써 그들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그들이 추구하는 운동의 진정성을 외면하게 만들고자 한 것이다.

그렇다면, 보수적인 언론 매체들은 무엇을 위하여 정의기억연대 활동의 신뢰성과 정당성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것일까? 정의기억연대가 추구하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해결이 한국과 일본을 포함하여 동북아시아의 역사에서 갖는 의미를 놓고 보거나 세계 시민사회에서 인권 운동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놓고 본다면, 보수적인 언론매체들의 보도 태도는 실로 개탄스럽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일본군 성노예제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공식적인 사과나 배상에 나서지 않고 있는 일본 정부와 일본 극우 세력에 힘을 보태주는 꼴이기에 더욱 그렇다. 아니나 다를까, 일본 극우 세력과 그에 준동하는 국내 친일 세력들은 정의기억연대를 비난하고 그 운동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이 갖는 역사적 의미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정의기억연대는 그 뿌리를 이루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 시절부터 그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지원하고, 그 문제를 공론화하고 정의로운 해결책을 찾기 위해 헌신해 온 단체이다. 그 중심에는 처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윤미향 씨가 있었다.

정의기억연대는 그 동안 통용되었던 용어인 ‘정신대’나 일본군 ‘위안부’를 전쟁에 동원된 ‘일본군 성노예’로 재규정함으로써 일본군 성노예제가 엄청난 전쟁범죄임을 우리 사회와 전세계에 알렸고, 일본정부가 그 전쟁범죄의 당사자임을 인정하고 사과할 것을 촉구하고, 일본이 국가적 차원에서 일본군 성노예제 범죄에 대해 법적인 책임을 지고 피해에 대해 배상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다시는 그러한 전쟁범죄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그 범죄를 기억하고 정의를 위해 연대하는 운동을 국내외에서 일관성 있게 벌여왔다. 우리나라와 세계 곳곳에 세워진 ‘소녀상’은 그 운동의 가시적인 흔적이다.

일본군 성노예제 범죄를 규탄하고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수요집회’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몇 주 거른 것을 제외하면, 1992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열렸고, 지난 5월 20일에는 제1440차 집회가 열렸다. 이것은 단일 이슈로 벌이는 시위로는 세계 최장으로 기록되고 있다. 아마 일본군 성노예제 범죄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한, 그 집회는 계속될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이토록 집요한 운동을 이끌어가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먼저 그 운동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일본군 성노예로서 형용할 수 없는 고통과 한과 트라우마를 겪는 피해자들에게 공감하고 그들과 연대하여 문제를 풀겠다는 마음을 먹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지적해야 한다. 그들은 일본이 저지른 국가범죄인 성노예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불의, 전쟁, 성착취, 인권유린으로 점철된 과거사를 청산하고 정의, 평화, 여성해방, 인권보장의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없다고 확신했다. 그 잔혹한 국가범죄에 종지부를 찍지 않고 어물쩍 넘어간다면, 어두운 역사는 반복될 것이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언젠가 다시 고통당하고 희생당할 것이다. 그렇기에 그 전쟁범죄는 반드시 기억되어야 하고, 정의의 원칙 아래서 그 범죄에 대한 일본의 국가적 책임을 ‘최종적으로, 불가역적으로’ 물어야 한다. 이처럼 성노예 피해자들에 대한 공감과 역사를 바로 세우겠다는 굳건한 의지가 없었다면, 윤미향 씨와 정의기억연대는 일본군 성노예 범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토록 오랫동안 헌신할 수 없었을 것이고, 일본군 성노예로서 겪었던 일에 대해 ‘침묵’해 온 피해자들로 하여금 범죄의 역사를 ‘증언’하게 하고, 스스로 나서서 일본 정부에 문제를 해결하도록 요구하는 ‘주체’로 서게 하는 그 어려운 일을 인내심 있게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정의기억연대 운동과 그 운동의 지도자들은 우리 사회의 귀중한 자원이고, 그 자원은 소중히 지켜져야 한다. 만에 하나 그 단체와 지도자들이 실수나 오류를 범한 것이 있다면, 그 실수나 오류에 대한 지적과 비판은 엄정한 사실 확인에 근거해서 한정된 책임을 요구하는 데 그쳐야 하고, 그 운동의 의의와 지도자들의 헌신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효과를 빚어서는 안 된다.

정론의 요구는 다만 이상일 뿐인가?

정의기억연대와 윤미향 씨의 언론 보도 태도를 보면서 정론을 펴는 언론 매체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SNS에 올라오는 수많은 글이나 팟캐스트 형식의 보도나 논평은 말할 것도 없고, 유수한 일간지들에서 왜곡보도와 심지어 가짜뉴스를 자주 접하다보니, 더더욱 그렇다.

언론 매체가 정론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자각은 아주 오래 전에 싹텄고, 1920년대에 미국신문편집인협회의 윤리강령에 새겨졌다. 거기에 명시된 정직, 신뢰, 정확, 불편부당 등 네 가지 규범적 요구 사항은 정론이 갖추어야 할 요건으로 널리 인정되어 왔다.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신문윤리강령도 이 네 가지 요건들을 빠짐없이 구현하고 있다. 방송매체 종사자들에게 적용되는 윤리강령과 편성준칙도 마찬가지이다.

언론 매체가 정직, 신뢰, 정확, 불편부당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하는 까닭은 언론 매체가 공론의 장을 형성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공론의 장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면서 사회적 합의와 정치적 합의를 이루어가는 과정이다. 공론의 장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공개하여 모든 사람들의 비판적 검토 아래 놓아야 한다. 근거 없는 의혹이나 사실의 왜곡이나 날조는 공개적인 검토 과정을 통하여 공론의 장에서 퇴출되고, 사실에 부합하고 설득력 있는 논거를 갖춘 의견들이 사람들에게 수용되어 사회적 합의와 정치적 합의의 바탕을 이룬다. 그것이 이성의 공적인 사용에 근거하여 공동체를 규율하는 공화주의적 법치국가를 실현하는 이상적인 조건이다. 임마누엘 칸트나 위르겐 하버마스 같은 철학자들이 개방성, 진지성, 진실성, 이성적 논거 등을 이상적인 의사소통공동체의 요건들로 삼은 것도 그 때문이다.

SNS, 팟캐스트, 유튜브 등을 통하여 엄청난 양의 정보들과 의견들이 통용되고 사실의 왜곡과 가짜뉴스가 범람하는 오늘의 담론 상황에서 정론의 역할은 매우 커졌다. 정치적 목적이나 상업적 이익에 따라 사실과 사실 아닌 것을 뒤섞거나 아예 사실을 날조한 가짜뉴스들이 자극적인 표제어로 치장된 채 반복적으로 전달되고, 인터넷 포털의 알고리즘에 따라 걸러진 유사한 콘텐츠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이러한 가짜뉴스들과 콘텐츠들에 접한 사람들이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골라 보며 확증편향을 강화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런 사람들은 악질적인 의도를 가진 세력들의 흑색선전과 흑색선동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흑색 저널리즘이 판을 치는 상황에서는 보도의 대상이 되는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사실 보도의 맥락을 검토하고 정론을 형성하는 언론 매체가 제 역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문제는 정론의 위상을 갖는 언론 매체들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유수한 일간지들이 왜곡보도를 일삼고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장본인이 되는 경우가 많기에 언론 매체의 신뢰성은 땅에 떨어졌다. 어찌 보면, 정치권력의 압력, 사주의 정치적 이해관계, 광고 수주 압박 등에 노출된 언론 매체 종사자들에게 기사 작성과 편집의 자유를 운위하고 정직, 신뢰, 정확, 불편부당 등 정론의 4대 요건을 충족시키라고 요구하는 것은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론의 4대 요건이 언론 종사자들에게 한갓 이상적인 규범적 요구라 할지라도, 저널리스트들은 최소한 사실을 왜곡하고 날조하는 일만큼은 피해야 할 것이고, 왜곡보도와 가짜뉴스를 걸러낼 수 있는 내부 통제 장치를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저널리즘은 겸손하여야 한다

정론이 갖는 가치를 제아무리 강조한다 하더라도, 언론 매체의 보도는 과학적 사실에 대한 엄밀한 서술이 아니라, 단지 담론적 구성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미셸 푸코가 강조하듯이, 담론은 권력의 효과 아래서 만들어지고, 권력의 효과는 미세한 권력 장치들의 배치에서 발생하기에 담론에 작용하는 권력의 효과는 거의 의식되지 않는다. 그 때문에 담론의 생산자는 자신이 권력의 효과 아래서 사실에 관하여 구성한 담론이 마치 사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것처럼 여기는 착각에 빠진다. 담론적 구성물이 사실의 재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담론의 구성을 계보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비판적 담론 분석 능력을 발휘하고자 하는 사람은 고도의 인문학적 사유 역량을 닦아야 한다.

만일 저널리스트들이 언론 보도가 담론적 구성물임을 인정한다면, 그들은 겸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의 담론이 권력의 효과 아래서 구성되는 한, 그 담론은 정치적이고, 따라서 불편부당할 수 없다. 저널리스트들이 권력관계에 대해 갖고 있는 예민한 촉수는 그들의 담론이 세력관계에 영합하는 진영논리에 손쉽게 빠져들게 만들고, 경우에 따라서는 고고한 듯이 보이는 양비론을 앞세워 난처한 상황을 모면하도록 이끈다. 언론 보도가 담론의 구성물이기 때문에 갖는 이 어쩔 수 없는 편향을 알면서도, 저널리스트가 시시비비를 가리는 최종적 심판자인 양 나서는 것은 참람한 짓이다. 그러한 편향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저널리스트들은 현실을 가장 잘 아는 듯이 행세하지만 청맹과니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정의기억연대와 그 지도자인 윤미향 씨를 둘러싼 의혹은 충분히 해명되어야 하고,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 검찰의 강제 수사가 시작되었으니, 의혹의 실체를 법률적으로 구성하는 수사 결과가 나올 것이고, 검찰이 수사 결과에 근거하여 기소한다면 법원에서 판결이 나올 것이다. 그때까지는 누구나 기다려야 할 시간이다. 지금은 단편적인 정보들과 사실들을 짜맞추어 의혹을 사실인 양 둔갑시키고 그것에 근거하여 정의기억연대와 윤미향 씨를 모욕하고 정죄할 때가 아니다. 언론 보도나 검찰 수사 결과나 심지어 법관의 판결마저도 담론적 구성물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인문학적 성찰 능력을 갖추지 못하는 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 정의기억연대의 실천과 그 지도자의 헌신에 치명상을 입히는 어리석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그 누구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공과 과가 있다면,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처리하면 된다.

지금 정의기억연대와 윤미향 씨는 확증편향을 강화시키는 저널리즘의 함정을 헤치고 나와서 의연하게 갈 길을 가야 한다.

강원돈 교수(한신대 신학부/민중신학과 사회윤리)  wdkang55@h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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