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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n번방NCCK신학위 <사건과 신학> 4월호 (5)
이효성(춘천사는 기독청년, 진보정당활동가) | 승인 2020.05.27 00:31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신학위원회는 ‘사건과 신학’이라는 이름으로, 매달 시대적 요청에 대한 신앙고백과 응답을 신학적 접근과 표현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사건과 신학 블로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번 2020년 4월 <사건과 신학> 주제는 “n번방 사건: 이 사건에 본인의 책임은 없다며 선 긋지 말아주세요.”입니다. 이글은 모두 7편의 글 중에서 <이효성>(클릭하면 원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님의 글입니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마주하면 마음이 많이 무겁다. 내가 소비했던 폭력적인 영상들과 여성들에게 잘못했던 일들이 떠오른다. 그래서 당장 공분해야 함에도 얼굴이 붉어지고 입이 잘 안떨어진다. 직·간접적 가해의 기억들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묵직하게 내려앉은 느낌이다. 나는 n번방 사건의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대열에 더 가까이 있는 사람이다.

아주 어렸을 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초등학교를 다니면서부터 여자아이들과 어울려서 노는것이 점점 어색해졌다.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여자아이들과 놀 때 “좋아한대 좋아한대” 하면서 또래 남자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았고, 나도 다른 남자아이를 놀려댔던 것 같다.

중학교 때는 폭력적인게 곧 남자다운거라는 간접적이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매일 마주했다. 남자들 사이의 위계형성을 위한 싸움판이 교실 안에서 자주 벌어졌다. 나는 한참 왜소한 아이여서 다행히도 덩치들의 힘겨루기 싸움판에선 빗겨나 있었다. 하지만 위계를 정하고 서열을 나누어야 한다는 생각은 우리또래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안착했다. 침을 뱉으며 다니기,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에게 길을 비켜주지 않기와 같은 무례한 행동들을 하는게 세 보이는 방법으로 통용되었다. 남녀공학이긴 했으나 합반은 아니었기에 또래 여자친구들과 어울릴 기회는 없었다. 여성과는 소통의 필요도, 소통의 방법도 모른 채 중학교를 지났다.

고등학교 시절, 성인동영상을 처음 접했다. 여성, 특히 여성의 몸을 질문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 자체를 부끄럽고 민망한 일로 여겼었다. 나는 이 영상들을 성교육 자료이자 새로운 즐길 거리로 여기며 부지런히 소비했다. 영상이 합법인지 불법인지에 대한 인지도 없었고 이 사이트가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진 건지는 아예 관심 밖의 문제였다.

대학에 와서 페미니즘을 접했다. 내가 사는 세상이 남성중심의 폭력적이고 획일화된 세상이라는 것, 나 역시 그 안에서 작은 피해자이자 큰 가해자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폭력을 가하는 성인물은 피했지만 여전히 남성이 여성을 일방적으로 대하는 성인물을 모니터라는 익명성에 기대어 소비했다.

2년 전, 성범죄 영상물로 막대한 이익을 얻은 위디스크 양진호회장 사건이 세간에 알려졌다. 나는 이 사건을 알게 된 후 위디스크 사용을 중단했다. 이 사이트를 이용하는 것 자체가 여성을 상대로 한 폭력적인 행위에 가담하는 것이라 여겼다. 불법 촬영물을 소비하진 않았지만 배우가 연기한 합법 촬영물도 대부분이 여성을 함부로 대하는 스토리였기에 성인물 소비에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 사이트를 끊은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위디스크 이용자라는게 알려질까봐 두려워서였다.

나는 여성을 폭력적으로 대하는 영상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영상의 수위를 조절하려고 했지 그것을 끊을 행동을 하려고 하진 않았었다. 문제를 인식하는 것과 인식한 문제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어쩌면 다른 문제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인식했다고 생각하고 넘겼던 것이 사실은 제대로 인식한게 아니었다는 것이 더 솔직한 말인 것 같다.

폭력적인 영상을 끊도록 나의 행동을 강제한 것은 누군가의 낭만적인 인도가 아니라, 죄책감, 두려움이었다. 페미니즘이 나의 폭력적인 성향에 죄책감을 주었고, 위디스크라는 사건이 내게 공론화라는 두려움을 주어 결국 폭력적인 영상을 멀리하게 만들었다. 죄를 죄라고 알려준 것이다.

n번방 사건으로 불리는 텔레그램 성착취 방 사건이 많이 알려져서 가해자들이 반드시 처벌받기를 바란다. 이번 사건이 미투만큼,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또 하나의 커다란 기폭제로 작용하기를 바란다. 폭력적인 것이 곧 남성적인 것이라 여기며 여성들을 폭력적으로 대해 온 나를 포함한 많은 남성들이 이번 사건을 죄책감과 두려움으로 마주하기를 바란다. 자기 안의 폭력적인 것들과 단절할 수 있는 기회라 여기면 더욱 좋겠다. 나도 가해자라는 동류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과거를 철저히 돌아보면서 사건공론화 및 가해자·가담자 처벌에 목소리내면 좋겠다.

염치없지만 아직은 구원을 소망하기에, 나로인해 피해입은 많은 이들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이 사건이 퍼져가는데 노력 할 것이다. 내면의 폭력성을 매일 돌아보며 참회하는 마음으로 이번사건을 무겁게 마주 할 것이다. 어쩌면, 나를 포함한 수많은 남성들이 텔레그램 n번방의 가담자를 찾는 일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할 일은 “내 안의 n번방”을 찾는 일이다.

이효성(춘천사는 기독청년, 진보정당활동가)  kncc@knc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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