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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하시는 일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0.06.03 17:02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산다면 또한 성령과 보조를 맞춰야 한다.(갈라디아서 5,25)

성령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성령에 대한 진술이 다양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성령에 대한 뚜렷한 상(像)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성령 하면 으례 은사와 능력을 연상하고 거기에만 국한시켜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성령을 오해케 할 뿐만 아니라 성령의 더 중요한 활동을 무시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요한복음 14-16장에서 예수는 성령을 위로자 또는 진리의 영이라고 부름으로써 그가 할 일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개념적으로 말하면 이 이름들이 은사와 능력 보다도 상위 개념이라고 해야 됩니다.

하위 것들은 상위 것들에 종속되고 그것들에 기여할 때만 유효합니다. 그런데도 많은 경우 우리의 시선은 하위 것들에 머물고 맙니다. 우리 눈에는 그것들이 더 크고 더 좋아 보이는 듯합니다.

▲ Gian Lorenzo Bernini, 「Dove of the Holy Spirit」 (1660년경, 바티칸 성 베드로교회 스테인드 클라스) ⓒWikipedia

그런 것들은 때로 사람들 사이에서 인정이나 우월한 지위를 가져오는 현실적인 효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적과 연관된 은사나 능력은 대부분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미래와는 아무 관련이 없고 오히려 장애가 될 수도 있습니다(마 7,22-23  참조). 그것들은 육체의 욕심을 거스르며 성령을 따라 사는 것에 아무 기여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위로자 성령은 슬픔과 괴로움 가운데서 우리를 생명으로 위로하며 새힘을 주고 진리의 영은 우리를 불의하고 부정한 ‘육체의 일들’에 저항하게 하며 진리의 말씀으로 이끕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성령을 따라 성령의 인도에 보조를 맞춰 사는 삶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사람됨을 바꾸고 그 결과 우리 삶의 안팎에서 성령의 열매들이 맺힐 것입니다.

위로와 진리의 영은 사랑하게 합니다. 기뻐하게 합니다. 평화를 찾게 합니다. 오래 참을 수 있게 합니다. 용서할 줄 알게 합니다. 선을 행하게 합니다. 신실하게 합니다. 상처를 돌아보게 합니다. 절제하고 배려할 줄 알게 합니다.

이때문에 성령은 사람들이 서로 존중하게 하며 그들 사이에 따뜻함이 흐르게 하고 악이 들어서지 못하게 하고 선한 뜻이 세워지게 하며 평화가 이루어지게 합니다. 성령의 절기는 우리의 삶이 성령의 인도에 발맞춰 이뤄지고 있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성령의 도움과 인도에 발맞춰 삶의 길을 가는 오늘이기를. 성령의 열매가 우리 삶 구석구석에서 발견되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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