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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쉴 수 없다!(민 11:24-29; 행 2:37-47; 눅 12:8-12)성령강림후 첫째주일(6월7일) 환경주일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0.06.05 16:51

1. 내가 숨을 쉴 수 없으면, 당신도 숨을 쉴 수 없다!

▲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5월 30일(현지시간) “숨을 쉴 수 없다” 피켓을 들고 시위 하고 있는 흑인 남성

“숨을 쉴 수 없다(I Can’t Breathe).” 이 말은 2020년 5월 25일(현지시간)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파우더호른에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위조지폐를 사용하다 발각되어 백인 경찰에 의해, 수갑을 찬 채 9분 간 목이 눌려 숨져가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현재 미국 흑인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구호가 되어 미국 전역을 뒤덮고 있습니다. 콜로라도주 덴버에서는 시민들이 9분 동안 바닥에 엎드려 “숨을 쉴 수 없다”고 외치는 항의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백인 경찰의 흑인 살해 때마다 거리로 나선 시민들은 “흑인들의 목숨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라고 외쳤지만 또 다시 비극이 되풀이되자, 분노는 극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중국의 ‘홍콩 인권탄압’을 비난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무색해졌고, 미국 여러 도시는 시위와 약탈과 최루탄과 곤봉으로 아수라장으로 변했습니다. 물론 상점을 약탈하고, 폭력을 수반한 항의 시위는 문제입니다. 숨진 플로이드의 동생도 “폭력시위를 멈추고, 누굴 찍어야하는지 공부해서 투표하라!”라고 말합니다.

사실 미국 흑인들의 죽음과 시민들의 항의 시위는 몇 년 새 계속 반복되어 왔습니다. 2012년 플로리다주 샌포드에서 백인 자경단원 조지 짐머만이 트레이본 마틴이라는 17세 흑인 소년을 사살한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이듬해 짐머만은 무죄판결을 받았고, 배심원단 6명 중 5명이 백인이었던 것으로 드러나, 거센 비판과 항의시위가 일어났습니다.

2014년 8월 미주리주 퍼거슨에서는 백인 경찰 대런 윌슨이 18세 흑인 소년 마이클 브라운을 사살했습니다. 윌슨은 기소되지도 않았고, 따라서 이에 대한 비판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해 내내 백인 경찰의 흑인 살해가 반복되었고 시위가 이어졌습니다.

퍼거슨 사건 당시 미국 언론들 보도에 따르면, 백인 경찰에 의해 숨지는 흑인은 연평균 96명으로, 매주 2명씩 경찰에 의해 살해당하는 셈이었습니다. 따라서 “숨을 쉴 수 없다”는 구호도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2014년 12월 흑인 노점상 에릭 가너가 뉴욕에서 경찰 6명에 둘러싸여 목 졸려 숨지기 전에 남긴 말도 똑같았습니다. 당시에도 시민들은 “내가 숨을 쉴 수 없으면, 당신도 쉴 수 없다.”며 거리로 뛰어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 후 6년이 지났어도 미국의 현실은 변하지 않았음을 플로이드 사건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미국은 전례 없는 3가지 위기로 무너지고 있습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보건위기’가 ‘경제위기’로 이어졌고, 백인보다는 흑인들에게 혹독한 경제위기가 플로이드 사건을 통해 인종 갈등으로 촉발된 폭동으로 이어져, 심각한 ‘사회위기’로 번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1918년 스페인 독감의 보건위기와 1930년대 대공황의 경제위기, 그리고 1968년의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로 촉발된 인종폭동의 사회위기가 한꺼번에 터진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 위기를 극복할 대통령의 지도력마저 실종되어, ‘지도력 부재’라는 4가지 위기로 심화되고 있습니다.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미국의 평화)의 제국, 미국이 지금 무너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청교도들이 세운 기독교 국가, 미국이 붕괴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이 4가지 위기 보다는 ‘교회의 위기’가 더 심각하죠? 코로나-19를 퍼트린 신천지로부터 시작해, 인천지역 ‘국제에녹부흥사회’ 등 교회의 소규모 모임을 통해 확진자가 늘었습니다. 특히 ‘국제에녹부흥사회’는 매주 목요일 저녁 ‘신유 성회’라는 이름으로 은사-치유 집회를 했고 모임 특성상, 찬양과 기도가 열광적이며 집단 안수 등을 시행했습니다. 집회 중 거리두기와 마스크를 착용 하지 않아, 코로나-19 감염과 확산이 커진 것입니다. 모두 개신교회들입니다. 정부의 코로나 생활방역 5대 수칙을 따르지 않고, 지역 주민들과 소상공인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자신들만 아는 배타성, 몰상식한 이기심으로 뭉친 거짓된 종교인들의 모습입니다.

아무튼 미국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흑인들이 느끼는 차별은 더욱 커진 것으로 보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위기와 사망률은 백인들보다 흑인들과 유색인종들이 많았습니다. 2020년 1월 갤럽 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백인과 비백인의 ‘행복도 격차’가 커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백인들의 75%는 자녀가 미국 사회에서 편안한 삶을 누릴 기회를 갖가질 것이라고 대답했지만, 흑인들 중 같은 응답을 한 사람은 16%뿐이었습니다. 응답자의 65%는 지금은 미국에서 흑인으로 살아가기에는 ‘나쁜 시기’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흑인들이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유색인종들이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2. 위기의 때에

오늘 복음서 말씀은 이러한 위기의 때에 성령께서 우리를 가르치신다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을 당하리라.”(눅 12:8-9)

물론 이 위기는 감염병의 위기도, 또 지도력 부재의 위기도 아닙니다. 인종차별의 위기도 아닙니다. ‘예수를 믿고 따른다’고 고백함으로 받는 위기입니다. 아무튼 이 위기의 때에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눅 12:10).”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신성(神性)이 인성(人性)에 가리어져 있을 때는, 사람들이 그것을 깨닫지 못했고, 또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단순히 예수님을 한 인간으로 알고 예수님의 말씀을 거역했다면 사하심을 얻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성령에 의하여, 예수님의 신성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성령의 역사를 거역하는 것으로, 성령을 모독하는 죄, 곧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성령강림절을 지났습니다. ‘After 성령’ 시대에는 성령의 역사를 거스르면 용서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세상은 이러한 성령의 사람들을 핍박합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볼까요?

“사람이 너희를 회당이나 위정자나 권세 있는 자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눅 12:11-12)

여기서 회당은 유대교 회당을 말하죠? 곧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예수 믿는 사람들, 곧 성령의 사람들이 끌려간다는 말입니다. 위정자나 권세 있는 자는 로마의 권력을 뜻합니다. 예수 믿는 이들은 그들에게도 끌려가 핍박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도 로마서에서, 이렇게 끌려가는 성도들에게 성령께서 도우실 것이라고 하며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롬 8:26-27)

성경께서 도우신다는 말씀입니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신다는 것입니다. 사실 성령 강림으로 말미암아 초대 교회가 탄생했으나, 교회의 시작에는 많은 핍박이 있었습니다. 지금 미국에서 흑인들이 당하는 핍박과도 같고, 또 우리나라의 경우는 일제 시대와 같고, 군사 독재 치하 때와도 같았습니다. 믿는 이들은 유대교 회당들에서 심문을 받았고, 또 예수님을 따른다는 이유로 핍박을 받았습니다. 물론 로마의 권력, 곧 세상 권세자들 앞에서도 고난을 받았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일들을 예견하시면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또한 성령 받은 사람들이 핍박하는 자들에게 끌려갔을 때, 어떻게 또 무엇으로 대답하며 말할지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께서 마땅히 할 말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나는 숨을 쉴 수 없다.”입니다. 그리고 “내가 숨을 쉴 수 없으면, 당신도 숨을 쉴 수 없다.”는 말입니다.

숨은 히브리어로 루아흐(ר֣וּחַ)인데, 이것은 움직이는 공기이자 바람, 혹은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을 의미합니다. 헬라어 프뉴마(πνεῦμα)도 마찬가지, 두 단어 모두 발음할 때 목에서 바람을 내뿜어 내는 소리입니다. 우리가 내쉬는 숨입니다. 이 숨이 바로 성령이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령은 우리를 핍박하는 이들까지도 감싸 안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도 숨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생명의 호흡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박해자 앞에서 믿는 이들의 담대한 복음증거를 통해, 핍박하는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이나, 로마의 위정자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랑을 깨닫고, 생명의 숨, 곧 성령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숨 못 쉬는 흑인뿐만 아니라, 숨을 못 쉬게 만드는 백인조차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3.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까지

이렇게 예수님의 놀라운 생명의 복음은 핍박자들에게 까지 증거 되어야 합니다. 오늘 사도행전 본문 말씀은 오순절 날 예루살렘에 모인 세계 각지에서 온 유대인들이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 곧 생명과 구원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찔린 사람들의 질문으로 시작됩니다. 말씀을 볼까요?

▲ 프라 안젤리코(1395-1455)의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행 2:37-38)

이러한 죄 사함과 성령의 선물은 세계 각지에서 온 유대인들뿐 만이 아니라, 이들의 자녀와 또 모든 먼 데 사람, 곧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이들에게 까지라고 합니다. 계속 말씀을 볼까요?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행 2:39-40)

따라서 이러한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41절 말씀이죠?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행 2:41).” 이들은 세계 각지에서 온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다시 자신들의 삶의 자리로 돌아가 복음을 전하여 세계 복음화가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처럼 무한하십니다. 그의 영을 모든 백성들에게 부어 주사, 새로운 세상, 곧 ‘After 성령’의 시대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숨을 쉴 수 없는 세상에 성령의 바람을 통해 숨구멍을 뚫어주시고,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었던 것입니다. 구약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모세와 70인 장로뿐만 아니라, 모든 백성들에게 부어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4. 그의 영을 모든 백성에게 주사

먼저 말씀의 배경을 볼까요? 민수기 11장 말씀은 출애굽을 통해 가나안으로 가는 여정 중, 모세가 백성의 장로 70인을 세워 함께 이스라엘 공동체를 책임지는 상황입니다. 오늘 본문은 아니지만, 앞의 말씀을 볼까요? 민수기 11장 16절 말씀입니다. 공동번역이 잘 설명해 줍니다.

“야훼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너는 이 백성을 지도해 온 장로 칠십 명과 함께 나에게로 오너라. 그들을 데리고 만남의 장막으로 와서 서 있어라. 내가 내려가 거기에서 너와 말하리라. 그리고 너에게 내려주었던 영을 그들에게도 나누어주리라. 그리하면 그들이 백성에 대한 무거운 책임을 나누어 져서 너 혼자 애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민 11:16-17)

하나님께서는 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끄는 모세의 힘겨움을 아시고 백성들 중에서 70명을 데리고 오면, 그들에게 신(하나님의 영)을 임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그리고 70명의 장로는 성령을 받아, 모세가 백성의 짐을 담당한 것과 같이, 짐을 지게 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이제 모세는 사명자로서 외롭고 힘들지 않을 것이며 70명의 장로는 모세의 외로움과 고통을 함께 나누는 동반자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히 장로교가 그렇죠? 교인의 대표인 장로를 세워 목사와 함께 공동체를 이끌어 가야 합니다. 모세의 외로움과 고통을 함께 짊어지는 것이지, 반대하고 비판하고, 목회를 방해하라고 세운 것이 아닙니다. 아무튼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영이 모세의 동반자인 70 장로들에게 임하는 장면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모세가 나가서 여호와의 말씀을 백성에게 알리고 백성의 장로 칠십 인을 모아 장막에 둘러 세우매,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강림하사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그에게 임한 영을 칠십 장로에게도 임하게 하시니, 영이 임하신 때에 그들이 예언을 하다가, 다시는 하지 아니하였더라.”(민 11:24-25)

▲ 성령을 받은 모세와 70장로들

70명의 장로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예언을 했고, 또 예언을 그쳤다고 합니다. 다시는 하지 않았다고 하니, 한번 인치심을 받는 것으로 족하다는 말씀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한 사건이 생깁니다. 그 가운데 “그 기명된 자 중 엘닷이라 하는 자와 메닷이라 하는 자 두 사람이 진영에 머물고 장막에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나, 그들에게도 영이 임하였으므로 진영에서 예언(민 11:26)”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기명된 자라는 말은 70인의 장로로 택함을 받은 자를 말합니다.

그러나 엘닷과 메닷은 다른 68명의 장로들처럼 하나님의 장막으로 나아가지 않았고, 그냥 이스라엘의 진영에 머물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영이 임한 것입니다. 그러자 “한 소년이 달려와서 모세에게 전하여 이르되, 엘닷과 메닷이 진중에서 예언하나이다 하매, 택한 자 중 한 사람 곧 모세를 섬기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말하여 이르되, 내 주 모세여, 그들을 말리소서!(민 11:27-28)”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뭐라고 말하나요?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두고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민 11:29).”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나를 두고 시기하느냐?’는 무슨 의미일까요? 아마도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로서 엘닷과 메닷에 대해 경쟁심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백성 모두가 선지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 가운데 성막과 주변의 이스라엘 진

이것은 또 다른 의미로 하나님의 영을 장막 안에만 국한시키지 않는 것이죠? 이스라엘 진중에서도 예언하는 것을 용납합니다. 여호수아는 거룩한 장막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진영에 있는 두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영이 임한 것, 곧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교회 안에 임한 성령만 인정하지, 우리의 삶의 자리, 곧 집이나 직장, 학교나 이웃과의 삶의 관계 속에서 임하는 성령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여호수아는 나아가 그들에게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임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교회 밖에 구원이 없다(Extra ecclesiam nulla salus).”라는 배타성은 바로 여호수아의 이러한 이기심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백인들이 흑인과 유색인종을 차별하는 것과 같습니다. 피부색의 차이를 다름이 아니라, 차별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성별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성질도 다릅니다(하다못해 성적 취향도 다릅니다). 그런데 그러한 차이를 차별하는 것이 오늘 여호수아를 본받는 우리들의 어리석음입니다.

신학자 샘 킨은 십계명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하여 11계명을 소개합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라!”입니다. 아주 중요한 계명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여 우위를 점하면 기뻐하고, 혹은 못하다고 생각하면 열등감에 빠집니다. 나아가 다른 사람에게도 주시는 하나님의 보편적인 은혜와 사랑을 시기하기도 합니다. 욕심과 교만이 가득한 마음입니다.

따라서 여호수아는 엘닷과 메닷이 예언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을 말려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어떻습니까? 모든 백성이 예언자가 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려줍니다. 모든 사람들이 공기를 마실 수 있고, 숨을 쉴 수 있어야 합니다. 숨을 쉬지 못하게 하면 안 됩니다. 백인도 숨을 쉬어야 하고, 흑인들도 숨을 쉬어야 합니다. 만약 내가 숨을 쉴 수 없으면 당신도 숨을 쉴 수 없습니다. 흑인들이 숨을 쉬지 못하면 백인들도 숨을 쉴 수 없습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성령을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숨이자,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 흑인이 숨을 쉬지 못하면 백인도 숨을 쉴 수 없습니다

5. 내가 숨을 쉴 수 없으면, 당신도 숨을 쉴 수 없다!

‘After 성령’의 시대는 이렇게 내가 숨을 쉬는 것처럼, 당신도 숨을 쉬어야 하는 세상입니다. 나의 생명의 중요한 만큼 당신의 생명은 더 중요하다는 인식에서 ‘After 성령’ 시대는 꽃을 피웁니다. 이렇게 새로운 세상이 열립니다. 사도행전은 그 새로운 세상을 이렇게 그려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2-47)

어떻습니까? 사도들의 가르침, 곧 말씀을 배우고, 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사랑의 교제를 하고 오로지 기도하기만 힘쓸 때, 새로운 세상이 열리죠? 기사와 표적이 나타납니다. 따라서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 떱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공동체 문화입니다. 서로 물건을 통용합니다. ‘능력에 따라 벌고, 필요에 따라 쓰는’ 완전한 원시 공산사회를 이룬 것입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마음을 같이하여 늘 성전에 모이기를 힘씁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일용할 양식을 순전한 마음으로 감사하며 먹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물론, 코로나-19 감염병 시대에 모이고, 먹고, 찬양하며 함께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만, 아무튼! 이러한 초대공동체의 모습이 온 백성들에게 좋게 보였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교회에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 받는 사람들을 날마다 더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마음껏 숨을 쉴 수 있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숨을 쉴 수 없다”고 외치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보건위기로, 또 경제위기로, 마침내 사회위기로 우리 사회는 많이 힘듭니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 사회가 ‘교회의 위기’가 아니라, 교회가 위기의 세상에 대안이 되는 공동체로 변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오늘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 교회의 모습을 회복할 때 가능할 것입니다. 우리 한국 개신 교회들이 그러한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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