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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성장, 경제성장에 종속될 수 없다지구 살림살이를 위한 녹색성장-녹색성장의 생명학적 토대 구축 시도 (3)
이기상 명예교수(한국외대 철학과) | 승인 2020.06.07 16:40
▲ 녹색성장은 경제성장을 위한 한 요소로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 ⓒGetty Image

앞서 소개한 비판적 지적에도 불구하고 한국 발 “녹색성장”이라는 화두가 전 세계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이 기회를 활용하여 이 화두를 심화시키고 지평을 넓히고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여 21세기 인류를 위한 명실상부한 <패러다임>으로 발전시켜 나갈 사명감을 지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지적 받은 비판을 고려에 넣으면서 좀 더 설득력 있고 논리가 탄탄한 큰 그림을 그려내야 한다. 

녹색성장의 지평 확대 필요성

녹색성장은 성장은 성장이되 ‘녹색’이 강조되는, 다시 말해 환경을 배려하는 성장임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그리고 여기서의 성장은 물론 생물학적인 성장이 아닌 경제적 성장을 가리킨다. 그래서 ‘녹색’이 생명을 뜻하는 색깔로 은유적으로 사용된 것이고, ‘성장’도 유기체적 성장을 경제에 적용하여 비유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그런데 경제성장에 주로 초점이 맞추어지다 보니 그 밑바탕에 환경, 생태, 자연, 생명의 차원을 함축하고 있는 ‘녹색’이 단순히 경제성장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고 있는 감을 풍긴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보다도 좁혀진 두 개념의 폭을 넓히고 심화시켜 그 개념들이 갖는 더 깊고 넓은 의미를 찾아내어 새롭게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고 거기에 맞는 전략적 실행방안을 짜는 것이다.

‘녹색’과 ‘성장’, 이 두 낱말은 잘 알다시피 생물의 세계에서 차용해온 개념들이다. 그것이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국가발전전략에서는 탄소를 줄여 환경의 부담을 덜어주며 전개되는 경제성장이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기후변화 위기와 에너지 자원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가능한 한 환경보전도 하면서 경제적 성장도 꾀한다는 상생[윈-윈] 작전인 셈이다. 녹색이 성장을 위한 그림씨이다보니 어쩔 수 없이 성장이 전면에 부각되고 녹색은 그를 위한 방편이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개념으로 볼 때도, 이념으로 볼 때도 이것은 본말이 전도된 상황이다. 어차피 ‘녹색성장’이라는 은유적 표현을 썼다면 이 표현을 계속 활용하면서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더더구나 그것이 한국적인 문화전통과 합치하는 것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녹색’과 ‘성장’이 만나는 곳이 어딘가? 그 둘을 포용할 수 있는 더 넓은 개념은 무엇인가?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생명>이다. 21세기 탈근대가 따라야 할 패러다임으로 생명의 패러다임을 주장하고 있는 학자들이 많다(이기상, 2008). 이것이 우연인가? 아니다. 이것은 시대의 징표이고 문명사적 흐름이고 우주진화사적 단계이다.

따라서 ‘녹색성장’을 이러한 시대적 추이에 맞게 생명의 패러다임 안에서 제자리를 찾아 제 역할을 하도록 한다면 이론적 토대와 나아갈 방향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녹색성장’은 우선 일차적으로 유기체적 성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알아들을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생명체의 성장이며, 생명체는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생태적 환경이 요구된다. 대지[토양], 물, 공기, 다양한 생물들 그리고 이것들이 생명의 환경에 맞갖게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생명체가 성장해나갈 수 있다.

녹색성장은 따라서 생명성장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생명성장은 큰 차원에서 볼 때 결국 지구생명성장이다. 이것은 더 넓게 우주생명성장이라는 우주진화의 차원에까지 확장될 수 있다. 어쨌든 이렇듯 녹색성장은 그 근원을 찾아 올라가면 결국 <지구생명>과 만나게 된다. 이렇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면, 녹색성장은 지구생명성장을 위한 포석인 셈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의 말을 들어보자. 그는 이제 인류가 인간 의식의 세 번째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고 본다(제러미 리프킨, 『유러피언 드림』, 이원기 옮김 [서울: 민음사, 2005], 480 이하). 이 단계는 인간이 자유 의지로써 자연과 재결합하는 단계다. 이제 인간은 지구를 존중되고 보호될 가치가 있는 생명체로 보기 시작하였다. 인간 의식의 제3단계는 인류의 연계성을 지상권(geosphere)에서 생물권(biosphere)으로 전환시킨다.

지정학(geopolitics)은 언제나 환경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벌어지는 거대한 전장으로 간주했다. 그 전장에서 사람들은 개인의 생존을 위해 자원을 확보하는 싸움을 벌인다. 반면 생물권 정치(biosphere politics)는 지구가 상호 의존 관계로 구성된, 살아 있는 유기체이며, 우리가 속한 더 큰 공동체를 잘 관리함으로써 생존하고 번성한다는 개념에 기초한다. 자아에서 다른 사람으로 관계를 확대하고 지구를 살아 있는 유기체로 만드는 다양한 관계들과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는 것이다(리프킨, 2005: 482 이하). 

녹색성장의 생명학적 단초 모색

지구 온난화, 원시림의 난개발, 오존층 파괴, 생물 서식처 파손, 생물 종 멸종, 국지 전쟁, 테러, 기아, 빈부격차 심화, 이민 문제 등은 결국 우리의 안정되고 평화로운, 지속 가능한 삶을 위협하고 있다. 그리고 그래서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환경문제, 생태문제, 생명파괴 또는 생명경시문제는 결국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문제를 인간 측의 관점에서 벗어나 생명 그 자체의 문제로 볼 수도 있고, 지구상 모든 생명체들의 존립의 문제로도 볼 수 있다. 인간이라는 생물 종의 생존이 걸린 개체 삶[낱생명, 종생명]의 문제로 볼 것인가, 아니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들이 함께 어우러져 생명의 그물망을 만들어나가는 더불어 삶[한생명, 온생명]의 문제로 볼 것인가, 아니면 우주 140억년의 역사 속에서 전개되어 온 생명의 진화 전체를 염두에 두고 생명의 의미[뜻생명]를 문제 삼을 것인가 등 문제제기는 다양한 방향으로 펼쳐질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 전개되든 결국 그것은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의 지금 여기에서의 구체적인 삶과 미래에서의 지속 가능성이 걸린 삶의 문제이자 또한 생명[그 자체]의 문제이다(이기상, 「생명의 진리와 생명학, 지구생명시대의 생명문화 공동체」, 『해석학 연구』제22집[2008년 가을], 267〜303).

생명은 그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우주[자연]의 신비이다. 생명은 말로 합당하게 규정될 수 없다. 우리는 그 현상의 본질적인 차원과 구조를 찾아내어 그에 맞갖게 서술하려고 노력할 수 있을 뿐이다. 생명에서는 보이는 현상이나 질서가 전부가 아니다. 생명에서는 현상을 감싸고 있는 근원과 조건, 그리고 거기에 따라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나가는 헝클어트림과 뒤엉킴의 흐름이 필수적이다. (코스모스의 세계이기보다는 카오스의 세계에 속한다.)

생명은 제각기의 생명체를 그 생명체이게끔 하는 사름과 돌림[살림]의 힘이다. 생명은 존재[자]의 질서에 속하지 않는다. 생명은 고요하고 안정적인 있음의 영역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혁과 변이가 일어나 계속해서 새로운 것이 생성[창출]되고 옛것이 사라지는[죽는] 되어감의 영역에 속한다. (따라서 생명 설명의 모델은 변하지 않는 이데아나 실체, 순수 존재일 수는 없다.)

생명은 우주의 끊임없는 새롭게 되어감의 과정 속에서 우주와 더불어 우주 안에서 일어난, 그리고 계속 일어나고 있는 우주적 사건이다. 생명현상은 보이게 보이지 않게 우주 전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우주진화의 일정한 시점에 생명창출에 적합한 외적․내적 조건이 갖추어져 생명체가 생성되어 나왔다. 물질의 세계에 전과는 다른 새로운 사름과 돌림의 사건이 전개되기 시작한다(이기상, 『글로벌 생명학. 동서 통합을 위한 생명 담론』[서울: 자음과모음, 2010], 59 이하; 65 이하).

생명의 출현 이후 우주는 새로운 진화의 궤도를 밟게 된다. 물질의 세계는 생명체의 출현으로 새로운 차원의 세계에 개방된다. 생명의 개입으로 물질은 외적․내적으로 변화의 흐름에 내맡겨진다. 우주에서의 사물들은 서로 사이에 새로운 관계[사이]의 시대에 들어서게 된다. 물리적 화학적 영향관계[관계맺음]와는 다른 새로운 사이와 관계가 생겨나 사물의 세계에 큰 변화가 초래된다. 유기물질이 생겨나 무기물질을 에너지로 삼아 자신을 새롭게 사르고 주변세계를 새롭게 돌리게 된다. 유기물질과 무기물질, 유기물질과 유기물질 사이에 새로운 사름과 돌림의 관계가 만들어져 새로운 유형[패턴]의 영향관계[관계맺음]가 생성된다.

물질과 같이 원자나 분자가 아닌 세포를 구성단위로 한 유기체 또는 생명체라는 새로운 존재자가 등장한다. 이 최초의 생명체는 전혀 다른 사름과 돌림의 구조, 관계맺음과 되어감의 독특함을 갖고 무섭게 활동하며 자기를 복제 재생산해내면서 확산되어 퍼져나간다. 생명체는 비슷한 생명체와 모여 살면서 다른 생명체와 생존의 관계를 유지하며 주변의 다른 사물들을 사름과 돌림의 도구로 활용하는 식으로 주변의 모든 것과 서로 영향관계 속에 있으면서 [관계를 맺으면서] 자기로 되어간다.

생명체는 개체로서는 생명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슷한 생명체와 다른 생명체 그리고 주변의 모든 다른 사물들과 함께 더불어[공생(共生)] 서로 사르며 돌리면서[상생(相生)] 산다. 생명의 시작에 생명체 각자의 자기로-됨은 개체로서의 자기로-됨이 아니라 그 생명체가 함께 모여 사는 그 종(種)이나 류(類)의 자기로-됨이다. 이러한 종이나 류의 자기로-됨은 일정한 경향과 성향[됨됨이]으로 자리가 잡혀 자기복제 속에 다음 세대에 전달된다. 생명체의 기초 구성단위를 이루는 세포 속에는 이러한 종의 됨됨이가 일종의 강력한 생식인자로 각인되어 유전인자를 이룬다.

먹이섭취를 위한 사름의 활동과 종의 보존과 확산을 위한 돌림의 활동을 갖춘 생명체는 활동양식의 변화를 통해 활동범위와 영역을 넓혀나간다. 감각활동의 능력을 갖추어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다른 생명체와 사물들과 관계를 맺게 되는 생명체[동물]는 자기 자신과, 비슷한 류의 생명체와, 다른 생명체들과 사물들과는 다른 방식과 양식으로 관계를 맺게 된다. 주변 전체, 비슷한 생명체 부류에 대한 결속성 또는 종속성이 약화되는 대신에 자기 자신에 대한 생존본능과 자각심[의식]이 강화된다.

지각활동의 발달과 더불어 개체성이 커져간다. 개체성이 커져감에 따라 생명체는 다른 생명체와 사물도 낱낱의 차원에서 관계맺는 방식을 터득하게 된다. 신호체계, 기호체계가 발달되고 그것은 종국 상징체계, 언어체계로 진전된다.

개체성이 발달됨에 따라 자기 자신과 자기가 속한 집단 또는 사회, 주변세계 전체에 대한 의식도 달라지게 된다. 개체화된 의식은 생명의 통전성을 깨달아 생명의 그물망을 지키고 키워 넓혀나가기 위해 개개의 그물코를 보살피고 돌보아야 하는 우주적 사명을 깨달아야 한다(이기상, 2010: 65 이하).

생명학은 우주 진화 속의 생명의 출현과 그 전개과정이라는 <생명의 진리>에 관심을 갖는다. 다시 말해 인간 종을 포함한 개개 낱생명들과 종생명들의 구체적인 삶의 진리에, 모든 생명체들이 서로 얽히고설키면서 만들어나가는 우주적 온생명의 진리에 관심을 갖는다. 구체적 역사적 시공간에서의 생명 현상에서 드러나는 생명의 진리를 탐구하려고 시도한다. 우리는 녹색성장을 이렇게 우주 진화 속의 생명성장, 즉 지구생명성장이라는 넓은 지평에서 논의할 수 있다.

이기상 명예교수(한국외대 철학과)  saemom@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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