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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 않는 인간의 고집부드러운 마음(왕상 19,1-8; 막 6,46-52)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0.06.18 16:36
▲ Rembrandt van Rijn, 「Christus in de storm op het meer van Galilea」(1633) ⓒWikipedia

엘리야는 지금 도망길에 있습니다. 사마리아를 떠나 멀고 먼 유다 남쪽 끝 브엘세바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거기서 광야길로 들어섭니다. 며칠전 그는 갈멜산 꼭대기에 있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스라엘을 향해 바알이냐 야훼냐 선택하라고 다그치고 바알 선지자 450명과 싸웠던 엘리야입니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광야에 있습니다. 그가 떠나온 거리만큼이나 낮은 곳으로 내려와 있습니다. 그 호기롭던 엘리야는 어디가고 도망치는 초라한 엘리야만 남았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심한 가뭄으로 곤란을 겪는 중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때문에 바알을 찾았습니다. 바알은 구름과 비의 신이요 풍요의 신으로 여겨지던 가나안의 신입니다. 이스라엘은 계속 되는 가뭄에 그렇지 않아도 희미해져가던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접고 바알에게 매달렸습니다.

그러나 그 가뭄은 엘리야가 선포한 대로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가뭄입니다. 긴 시간동안 계속되는 가뭄에도 바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엘리야에 대한 응답으로 비를 내리셨고 가뭄이 해소되었을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에게 돌아왔을까요?

이세벨의 위협 소식을 듣고 도망길에 오른 엘리야는 인적 없는 광야길을 갑니다. 그에게 그 길을 가는 목표가 있었던 것일까요? 그는 광야에서 하룻길을 갑니다. 희망을 찾으려 했을까요? 그의 처지와 미래에 대해 당연히 묻고 또 물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광야의 고요처럼 하나님은 침묵하십니다. 그는 절망한 듯 거기서 멈추고 하나님에게 죽음을 간구합니다. 이스라엘이 가뭄으로 생존 위협을 당한 시간에 비하면 매우 짧은 시간입니다. 이스라엘이 바알을 찾은 것과 그가 하나님께 죽음을 청하는 것이 과연 그렇게 다른 것일까요? 아닐 것입니다.

희망의 부재가 배반과 죽음을 낳습니다. 그는 죽음을 기다리듯 잠에 듭니다. 하나님은 어찌 하실까요?

하나님이 침묵을 깨시고 천사를 보내 그를 위로하듯 어루만지며 일으키시고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십니다. 그는 먹고 마시지만 다시 눕습니다. 그에게 다가온 이가 누구인가를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의욕을 상실한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죽음에 대한 생각만이 그를 지배합니다.

그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천사는 그에게 또 다시 다가와서 어루만져주며 일어나 먹으라 하십니다. 이번에는 그에게 갈 길을 말씀하십니다. 다 가지 못하면 안 되니까 먹으라고 하십니다. 그가 생각했던 길이 죽음의 길이었을지라도 하나님은 그 너머 다른 길로 그를 이끌어 가시려 하십니다.

희망 없는 그의 가슴에 희망을 일깨우려고 하십니다. 죽음의 길을 생명의 길로 바꾸려고 하십니다. 죽음의 자리에서 멈춘 그를 일으켜 세우십니다. 멈춘 그의 발길을 계속 이어지게 하려 하십니다. 그에게 주어진 목표는 40일길 떨어진 곳에 있는 하나님의 산입니다. 새로운 목표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은 갈 수 있게 희망을 주셨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 안에서 생명으로 이끄는 새목표를 발견할 수 있고, 이스라엘의 가뭄이 그랬던 것처럼 코로나19가 우리를 짓누르지만 그 상황에서도 우리 속에 새희망이 자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길을 계속 가는 그가 정말 바뀌었을지는 그 다음 이야기에서 알 수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그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때까지도 하나님은 그를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참으로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분이 지금 우리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그는 왜 그렇게 바뀌지 않았을까요?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왔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기적을 베풀었고 바알대전에서 통쾌한 승리를 거두었던 그입니다. 그런 그가 왜 하나님 앞에서 이토록 완강하게 자기를 고집하게 되었을까요?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와 떨어져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중입니다. 그런데 역풍이 불어와 전진하기가 힘들어졌습니다. 바람이 거세 아무리 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이 애쓰는 것을 보시고 그들에게 다가오셨습니다. 제자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유령으로 생각했습니다. 겁에 질려 소리를 지르고 어쩔 줄 몰랐습니다.

예수께서는 배에 오르시기도 전에 급히 ‘나니까 놀라지 말라’고 다독이시며 배에 오르셨습니다. 이들이 주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 어둠 때문이었을까요? 너무 힘들어서 그랬을까요? 주님이 그렇게 오실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해서였을까요? 부분적으로는 다 이유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본문은 그 이유를 조금은 다른 것에서 찾습니다.

이 사건 직전에 제자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엘리야가 갈멜산 기적을 경험했던 것과 비슷합니다. 그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한계를 넘어서는 기적이었습니다.

제자들은 거기서 무엇을 보았을까요? 그 후 다른 사람들은 예수 때문이 아니라 떡과 고기 때문에 예수를 따라다녔습니다. 제자들도 그랬던 것일까요? 그들 역시 떡과 관련하여 깨달은 것이 없었다면, 그들은 무엇을 깨달아야 했던 것일까요? 그들의 마음이 돌같이 되었다면, 그것은 무엇을 말할까요?

깨달음은 단순히 말하면 자신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나 잘못 생각했던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마음이 돌처럼 굳어졌다면, 그것은 그들의 선입견이나 편견이 강화되었다는 것 아닐까요? 예수께서는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제자들의 시선이 무수하게 나누어진 그 떡과 물고기가 아니라 그렇게 하신 주님에게 향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아마도 제자들에게 예수는 오병이어의 사건을 통해 자신들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분 정도로 각인되지 않았을까요? 그들은 그 이상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 때문에 물위를 걸어 그들에게 다가오시는 주님을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예수상에 맞지 않는 예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는지요? 예수와의 만남이 우리의 눈을 밝히고 우리 마음의 껍질들을 벗겨내고 예수를 보게 하는지 아니면 그에게서 얻은 것에 우리의 생각이 머물며 우리의 편견이 강화되고 우리는 그 속에 주님을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어야 할 것입니다.

엘리야 역시 하나님을 자기 속에 가두려고 했습니다. 갈멜산에서 승리한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언제나 승리를 안겨주어야 하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이세벨의 위협대신 아합의 큰 상이 그에게 주어져야 했을까요? 그와 같은 그의 하나님 이해에 어긋나는 현실은 바로 그 하나님 앞에서 그를 좌절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를 도망치게 했습니다. 그의 위로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여러차례에 걸친 하나님의 끈질긴 설득도 소용없었고 그를 깨우치기 위한 시도들도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이처럼 은총의 경험은 우리를 자유케 하는 것임에도 우리를 편견과 선입견의 종이 되게 할 수 있으니 두렵기만 합니다. 우리의 눈이 현상에 머물고 현상의 반복을 기대하기에 그렇게 됩니다. 현상을 넘어 현상을 일으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눈이 은총 자체가 아니라 은총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볼 때 하나님의 말씀과 위로는 우리의 영을 살리고 우리 속에 새희망이 자라게 하고 우리의 마음은 부드러워질 것입니다. 그 속에서 우리의 생각은 선입견과 편견으로 굳어지지 않고 나날이 새로워질 것입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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