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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변화와 사람의 속성의 발전북한 선교를 위해 꼭 알아야 할 주체사상 100문 100답(90)
정대일 연구실장(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 | 승인 2020.06.18 16:39

Q: 주체사상이 말하는 사람의 본질적 속성의 성격은 어떠한가요?_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은 사회적 속성(2)

A: 지난 연재에서 주체사상이 말하는 사람의 본질적 속성인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이 사람의 생물학적 속성이 아니라, ‘사회역사적 성격’을 가진 ‘사회적 속성’이라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연재에서는 사람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이 ‘사회역사적으로 형성 발전하는 사회적 속성’이라는 것에 대해 ‘인류사회의 발전역사’를 통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번 연재를 통해서 우리는 주체사상이 가지고 있는 사회역사발전에 대한 견해와, 주체사상이 주장하는 사람의 본질적인 속성인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과 역사발전의 상관관계를 구체적인 역사 사례를 통해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사람의 속성과 노동과의 관계

주체사상에 따르면, 첫째, 사람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은 ‘자연의 예속에서 벗어나 자연을 지배하고 개조하기 위한 사회적 실천행정’에서 역사적으로 형성 발전하여 왔습니다. 오늘의 유인원과 비슷한 인간선조의 무리생활과정에 우연적으로 발생한 자연의 돌이나 나뭇가지를 그대로 이용하는 본능적 형태의 노동과 무리 안의 협력관계가 반복되는 과정에, 한편으로는 유인원의 육체가 ‘사유기능과 노동기능을 수행하는 인간의 육체’로 생물학적 진화를 이룩하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편으로는 노동도구를 제작 이용하는 ‘의식적 노동’과 ‘사회적 관계’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사회를 형성’하고 ‘의식적인 노동’을 하기 시작하는 과정은 동시에, 자연의 구속에서 점차 벗어나 자연과의 관계에서 ‘자주성’을 가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연을 인식하고 개조하는 창조적 능력을 키워 ‘창조성’을 가지며, 자기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반영한 사상의식을 형성하고 ‘의식성’을 가지게 되는 과정이었습니다. 원시인들이 자연의 돌을 그대로 이용하던 데로부터 그것을 깨뜨려서 날을 세워 사용하기 시작하였다는 사실은, 그들이 자주성과 창조성, 의식성을 가지게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사람이 타제석기를 만들어 사용하였다는 사실은 자연에 순응하여 살려고 하지 않고 자연의 구속에서 벗어나 ‘자주성’을 획득하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돌을 깨뜨리면 날이 서며, 날이 선 돌은 생산에 유리하다는 자연법칙의 발견에 기초한 것입니다. 즉 사람이 추상적 사유를 하는 의식을 가지게 되었으며 자연에 기성형태로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것을 만드는 ‘창조성’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그것은 자기의 인식활동과 실천활동을 규제하는 속성, ‘의식성’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돌을 깨뜨리면 날이 선다는 법칙의 발전과 이용은 사회적으로 축적된 경험의 일반화에 기초한 것입니다. 이는 사람이 ‘사회적 관계’를 맺고 생활하였다는 것과 사유의 표현수단이며 교제수단인 ‘언어’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집단노동의 요구로부터 원시무리 안에서는 사람들의 생활과 활동을 공동의 이익에 맞게 통일적으로 조직하고 지휘하는 사회적 기능이 발생하고, 사람들의 생활과 활동을 규제하는 질서가 세워짐으로써 점차 사회적 관계가 형성되게 되었습니다. 최초의 사회적 관계는 동물의 생물학적 유대에 기초한 무리생활에서 갓 출현한 것이며, 또 당시 사람들의 활동이 분화되지 못하고 다양하지 못한 유치한 것이었으므로 혈연적 유대에 의하여 결속된 원시적 사회관계로밖에는 달리 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사회적 관계의 형성과 발전’은 노동에서 협력관계를 강화하고 생산과 의식, 언어의 발전을 추동하였습니다.

자연을 개조하기 위한 원시인들의 ‘사회적인 집단노동’은 사람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의 형성발전의 기초로 되었는데, 그 자체는 자주성과 창조성, 의식성의 발현이었습니다. 자연을 개조하는 ‘사회적인 집단노동의 발생발전과정’과 사람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의 형성발전과정’은 ‘동시적 과정’입니다. 만일 자연을 개조하는 사회적인 집단노동의 발생이 자주성과 창조성, 의식성의 형성에 선행하는 것으로 본다면, 자연을 개조하는 사회적 집단노동이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의 발현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게 됩니다.

반면에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의 형성이 사회적 집단노동의 발생에 선행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의 형성의 사회적 기초를 외면하고 그 기원을 생물학적 속성에서 찾거나, 신에 의하여 주어지는 것으로 신비화하는 데로 떨어집니다. 사람은 자연을 개조하는 사회적인 집단노동의 발전정도만큼 자주성과 창조성, 의식성을 가지게 되며,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지는 정도만큼 자연을 개조하기 위한 사회적 노동을 하게 됩니다.

자연과의 관계에서 사람의 자주성과 창조성, 의식성은 자연을 개조하고 지배하는 사람의 투쟁의 발전에 상응하게 발전하여 왔습니다. 사람이 자연을 개조하는 힘인 ‘사회의 생산력과 과학기술의 발전정도’는 자연과의 관계에서 사람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의 발전정도를 표시하는 중요척도가 됩니다. 원시시대의 유치한 타제석기로부터 현대의 자동화된 기계와 최신과학기술에 이르기까지의 사회적 생산력과 과학의 발전과정은 바로 자연과의 관계에서 사람의 자주성과 창조성, 의식성이 ‘역사적으로 발전’하여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회발전과 사람의 속성

주체사상에 따르면, 둘째, 사람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은 ‘사회적 예속에서 벗어나기 위한 사회적 실천’에 기초하여 역사적으로 형성 발전하여 왔습니다. 원시사회, 씨족공동체사회에서는 사람들 사이에 원시적 평등이 보장되어 있었으며 이해관계의 대립이 없었습니다. 이 사회에는 지배와 예속의 관계가 없었으므로 사회적 예속에서 벗어나는 문제는 아직 제기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사회에서 사람들 사이의 평등과 단결은 이해관계와 목적의 공통성에 대한 자각에 기초해서가 아니라 혈연적 유대에 기초한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씨족공동체의 관습에 따라 맹목적으로 순종하였습니다. 이것은 어머니에 대한 어린아이의 관계처럼 씨족공동체 안에서 독자성을 가지지 못하고 그에 혈연적으로 종속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조건에서 사람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이 보다 발전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혈연적 유대에서 떨어져나와야 하였으며, 그러자면 무엇보다도 생활과 활동에서 독자성이 보장되어야 하였습니다.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아이에게서는 자주의식과 창조적 능력이 발전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자주성과 창조성, 의식성이 보다 발전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생활과 활동에서 독자성이 보장되어야 하였으며, 그러자면 사람들의 혈연적 유대에서 벗어나야 하였고, 이로부터 씨족공동체의 해체가 역사의 일정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한편 원시사회에서 자연을 개조하기 위한 투쟁행정에서 형성 발전된 사람의 자주성과 창조성, 의식성은 씨족공동체의 해체를 준비하였습니다. 사람의 자주성과 창조성, 의식성이 높아지는 데 따라 석제도구로부터 청동제도구를 거쳐 철제도구를 이용하게 되고, 과실의 채취와 수렵생활로부터 경작과 목축을 위주로 하는 데로 이행하고, 농업으로부터 수공업을 분리시켜나갔습니다. 생산도구와 분업이 발전하는 데 따라 공동체의 집단노동은 가족이나 개인의 노동으로 분화되게 되었습니다.

노동생활에서의 이와 같은 변화에 기초하여, 한편으로는 씨족공동체로부터 개별적 사람들이 떨어져나와 독자적으로 활동하게 됨에 따라 자기 자신에 대한 자각을 가지며 창조적 능력을 발전시키게 되었습니다. 다른 편으로는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가 출현하고 빈부의 차이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사유재산이 발생하고, 노동이 적으나마 잉여생산물을 생산하게 된 조건에서 다른 사람을 착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고, 전쟁포로와 채무자, 도적을 노예로 만들게 됨으로써 최초의 착취제도인 노예제도가 출현하게 되었습니다.

매개 사회성원들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이 발전되기 위해서는 그들이 독자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되어야 할 뿐 아니라, 자주적인 사상의식과 창조적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물질적 조건이 사회적으로 평등하게 보장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생활의 거의 모든 시간을 바쳐 생활수단을 힘들게 생산하고 있는 동안은 자기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반영한 사상을 내놓을 수도 과학지식을 발전시킬 수도 없으며, 따라서 자주적인 사상의식과 창조적 능력을 키울 수 없습니다. 원시씨족공동체사회가 해체될 당시에는 사람들의 자주성과 창조성, 의식성의 발전수준이 낮았으므로, 사회의 모든 성원들에게 자주적인 사상의식과 창조적 능력을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물질적 조건을 마련해줄 수 있을 만큼 생산이 발전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당시 노동은 잉여생산물을 생산할 수 있었으나 그것은 매우 보잘 것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상의식과 과학을 발전시키기 위한 정신노동은 육체노동에서 완전히 벗어나야만 진행할 수 있었으나 당시 조건에서는 한 사람이 육체노동에서 벗어나려면 그 몫을 수많은 사람들이 담당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시씨족공동체사회를 교체하여 나온 사회는 극소수사회성원들만이 정치경제적 지배권과 정신노동에 종사할 수 있는 권리를 누리며 절대다수의 사회성원들은 가혹하게 억압착취당하는 노예사회로 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원시씨족공동체사회로부터 노예사회로의 이행은 사람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 발전의 일정한 단계에서 그 가일층의 발전을 위하여 필연적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에게 착취의 본성이 있어서가 아니라, 사람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의 발전수준이 아직 낮았던 일정한 역사적 단계에서 불가피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원시적 평등을 누리던 사람이 노예의 멍에를 쓰고 자주성과 창조성, 의식성을 극도로 유린당하게 된 것은 그것을 원해서가 아니라, 당시 그들의 자주적 의식과 창조적 능력이 사회적 예속에서 벗어나리만큼 발전하지 못하고 있었던 사정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노예사회에서 노예소유자계급은 더욱더 커가는 치부욕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노예대중을 가혹하게 착취 억압하였습니다. 노예대중은 사회적 질곡에서 벗어나려는 자주적인 요구를 가지게 되고, 노예제도를 반대하는 투쟁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이때로부터 사회적 예속에서 벗어나 ‘자주성을 실현’하는 문제와, 사회를 변혁하기 위한 혁명적인 ‘창조적 능력을 발전’시키는 문제가 역사의 일정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착취사회의 전 기간에 걸쳐 ‘자연의 구속에서 벗어나기 위한 투쟁’과 ‘사회적 예속에서 벗어나기 위한 투쟁’은 밀접한 연관 속에서 진행되어 왔습니다. ‘사회적 관계’는 사람이 ‘자연을 개조하기 위한 투쟁의 사회적 형식’을 이룹니다. 그러므로 ‘자연에 대한 사람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의 발전’은 사회에 대한 자주성과 창조성, 의식성의 발전을 위한 ‘전제’가 됩니다.

사람의 속성을 통한 해방 활동

자연에 대한 사람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이 발전하면 사람은 그의 가일층의 발전을 억제하는 낡은 사회적 관계를 반대하기 위한 투쟁을 벌이게 되며, 또 사회적 관계를 변혁함으로써 자주성과 창조성, 의식성을 더욱 발전시킵니다. 한편 ‘사회에 대한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의 발전’은 자연에 대한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의 발전을 위한 ‘필수적 조건’으로 됩니다. 반동적 착취제도는 사람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사회적으로 억제하고 유린함으로써 자연을 개조하기 위한 투쟁에서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발휘하지 못하게 합니다.

사람은 사회적 예속에서 벗어나면 날수록 자연을 개조하기 위한 투쟁에서 자주성과 창조성, 의식성을 높이 발휘합니다. 그러므로 착취사회의 조건에서는 사람들이 사회와의 관계에서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실현하는 것이 자연과의 관계에서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발전시키기 위한 선결조건을 이룹니다.

사회에 대한 사람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은 혁명투쟁을 통하여 낡은 사회제도를 새로운 사회제도로 변혁해나가는 행정에서 발전합니다. 사람은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의 발전정도에 상응하게 혁명투쟁을 진행’하여 ‘사회제도를 순차적으로 변혁’해나감으로써 사회적 예속에서 점차적으로 벗어나게 되며, 또한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한 걸음 한 걸음 발전시켜나감으로써 마침내 사회적 예속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됩니다.

최초의 적대적 계급사회인 노예사회는 사람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극도로 유린하는 가장 가혹한 착취사회였습니다. 이 사회에선 노예는 마음대로 사고 팔 수 있고 죽일 수 있는 노예주의 완전소유물이었으며, 말하는 도구로 인정되고 가축처럼 취급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노예들은 노예제도를 반대하여 끊임없이 투쟁하였습니다.

그러나 노예들의 자주의식과 창조적 능력은 정권을 쟁취하고 유지할 만한 조직된 혁명역량을 이룩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착취관계를 없애고 모든 사회성원들에게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생활을 보장할 수 있을 만큼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의 투쟁을 통하여 노예제도를 멸망으로 이끌었으나 사회적 예속을 없앨 수 없었으며, 낡은 착취제도를 새로운 착취제도로 바꾸어놓는 데 그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노예제도의 봉건제도로의 이행은 노예들의 투쟁의 결과로서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역사적 노정에서 일보 전진이었습니다. 봉건제도하에서 기본대중인 농노는 봉건영주들의 불완전소유로서 봉건영주들이 매매하거나 상속할 수는 있으나, 마음대로 죽이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되었습니다. 농노들은 매우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자기의 경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봉건영주들이 농노농민들에게 한 이러한 양보는 농노농민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기 위한 기만적인 술책이었습니다. 그것은 노예에 비하여 농노들의 생산의욕을 높이고 생산의 발전을 자극함으로써, 보다 많은 잉여생산물을 착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되었습니다.

그러나 봉건제도는 노예제도에 비하여 사람들의 자주적인 의식과 창조적 능력의 발전을 위하여 상대적으로나마 유리한 조건을 이루었습니다. 농노농민들은 봉건적인 신분적 억압과 경제적 착취를 반대하여 끊임없이 투쟁하였으나 분산된 소규모의 낙후한 개인경리와 연결된 계급적 처지로 하여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와 착취관계를 없앨 데 대한 요구를 제기할 수 없었습니다. 또 자기 손에 정권을 쥐고 유지할 수 있는 창조적 능력을 가지지 못하였으므로 혁명투쟁의 열매를 자본가계급에게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자본주의는 봉건적 신분제도를 철폐하였습니다. 봉건적인 인식적 예속을 청산한 것은 자주성을 위한 투쟁에서 또 하나의 전진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노동자들을 자유경쟁의 노동시장에 내몰고, 기아의 규율로써 노동강도를 높여 그들의 고혈을 야수적으로 짜냅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표방하는 《민주주의적 자유와 권리》, 《인권옹호》는 다만 자본가계급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노동계급을 비롯한 근로인민대중은 아무런 정치적 권리와 자유도 가지지 못합니다. 근로인민대중은 또한 자본가계급이 퍼뜨리는 반동적 사상독소에 의하여 자주적인 의식의 발전을 억제당합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계급은 생산수단을 완전히 박탈당하고 있는 한편, 현대적 산업과 연결된 가장 선진적인 계급인 만큼 자기의 계급적 요구를 반영한 과학적이며 혁명적인 세계관을 가지게 되며, 쉽게 조직화되어 위력한 혁명적 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노동계급의 자주적인 의식과 창조적 능력의 이와 같은 발전은 자주성을 실현할 수 있는 확고한 주체적 요인으로 됩니다. 노동계급은 착취계급의 정권을 뒤집어엎고 정권을 자기 손에 틀어쥐며, 생산관계를 사회주의적으로 개조함으로써 사회적 예속을 없애고 사회정치적 자주성을 실현하게 됩니다.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사람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이 자연에 대한 관계에서나 사회에 대한 관계에서나 전면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됩니다.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근로인민대중이 정권과 생산수단의 주인으로 되므로 사람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억누르는 사회적 질곡이 없습니다. 이 사회에서 사람들의 생산물은 전적으로 그들 자신의 복리증진을 위하여 돌려지므로 사람들은 자연개조와 생산발전을 위하여 높은 자각적 열성과 창조적 적극성을 발휘하게 되며, 자주성과 창조성, 의식성을 빨리 발전시키게 됩니다.

또한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전사회적 규모에서 통일적으로 조직지도 되는 사회생활의 어느 한 고리에서 자기가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을 자각한 데 기초하여 자기의 임무를 독자적으로, 책임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사회발전에 이바지 합니다. 이 과정에 자주성과 창조성, 의식성을 발전시킵니다. 한편 사회주의 사회는 매개 사회성원들의 물질문화적 복리를 증진시키고 그들의 자주성과 창조성, 의식성의 발전을 위하여 최대의 관심을 돌립니다.

그리고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근로인민대중이 자주적인 사상의식과 창조적 능력을 높이 발휘하여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을 힘 있게 밀고나감으로써 착취사회의 유물인 낡은 사상과 기술과 문화의 구속에서 해방되고 자주성을 실현하게 됩니다. 앞으로 공산주의사회에 이르면 사람의 자주성과 창조성, 의식성은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를 것입니다. 사람들은 참으로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생활을 전면적으로 마음껏 누릴 것입니다.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주체사상은 사람의 본질적인 속성인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이 자연의 구속과 사회의 예속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통하여 형성된 사회역사적 성격을 지닌 사회적 속성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체사상이 가지고 있는 역사관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것은 역사는 ‘발전’한다는 것과, 역사는 종국적인 ‘완성’이 있다는 것과, 역사의 주관자는 바로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근본 속성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고백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주체사상 신봉자들과의 대화를 위해 그리스도교의 역사신앙을 되새기고 재정립하는 것은 통일시대 주체신학의 과업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정대일 연구실장(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  jungsc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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