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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슥 8:18-23; 행 11:1-18; 막 7:24-30)성령강림 후 셋째 주일(6월21일) 6·25민족화해주일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0.06.19 16:48

1. 쥐도 코너에 몰리면, 고양이에게 덤빈다!

지난주 말씀을 통해 우리는 일본 선교에 관해 살펴보았습니다. 현재 일본과의 관계가 잘 해결되지 않으면 동북아에 진정한 평화가 올 수 없습니다. 따라서 비록 정치적, 경제적으로는 대결할지라도 민간 차원에서, 곧 종교적 차원에서 소통과 교류가 필요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일본만 있는 것이 아니죠?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미국이라는 강대국이 한반도를 중심으로 힘의 대결을 벌이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은 미국과 중국이 세계 최강의 자리를 놓고 경제 전쟁을 벌이고 있죠? 그리고 이번에는 코로나-19 발병과 관련해서, 또 홍콩 문제로 인해 그 대결이 극심해져 가고 있습니다. 특별히 홍콩 문제 같은 경우 사안이 굉장히 민감합니다. 사실 홍콩에 관한 중국의 주권행위는, 우리가 독도에 관해 일본에 느끼는 감정과도 비슷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홍콩문제는 인류 보편적 인권의 문제와 민주주의 질서를 홍콩시민들도 누려야 된다는 당위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미국, 중국 두 강대국은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문제도 그렇지만, 모든 사안에 있어서 우리에게 어느 한쪽을 택하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전통적인 우방인 미국과 최대 경제교역국가인 중국 사이에서 그 옛날 이스라엘 민족이 겪었던 약소국의 서러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러한 외적 위기와 동시에 한반도 상황도 녹록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처럼 남과 북이 갈라져 있는데다가 최근에는 관계가 악화되고 있습니다. 사실 한반도는 현재 휴전협정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정전협정(停戰協定), 혹은 평화협정이 아닙니다. 잠시 전쟁을 쉬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난 6월 16일 오후 북한은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습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만난 두 남북 정상이 427선언을 통해 설치된 일종의 외교공관입니다. 판문점 선언에는 “남과 북은 당국 간 협의를 긴밀히 하고 민간교류와 협력을 원만히 보장하기 위하여 쌍방 당국자가 상주하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개성지역에 설치하기로 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소통과 협력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장소를 폭파했다는 것은 남북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낳게 합니다. 대북 경제제재로, 또한 코로나-19로 인해 북한은 지금 코너에 몰린 쥐가 되어, “살려 달라!”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 내부적으로는, 이러한 상황을 주도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자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확고히 하며 국정 제 2인자로서 존재감을 과시하는 것으로도 보입니다. 김여정은 지금까지 스마일 마스크, 평화의 상징 등 직책에 비해 가벼운 모습을 보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지난 4월 김정은 위원장 사망설 해프닝이 발생했을 당시, 전 세계 언론은 김정은 사후 후계 구도에 대한 전망을 내놓았는데, 당시 1순위로 지목된 인물이 김여정이었습니다. 백두혈통을 잇는다는 것이죠. 따라서 김여정의 행보와 말이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이러한 대내외적인 위기의 상황에, 오늘 세 본문 말씀은 6·25민족화해주일을 맞이하여 성령을 통한 생명의 역사는 민족이나, 이념, 적과 아군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을 보여줍니다. 세상을 향한 구원의 빗장을 활짝 여신 성령께서 생명의 축제를 확장시키는 것입니다. 구약 말씀에 의하면, 말이 다른 이방 백성들에게도 하나님의 영이 임합니다. 복음서 말씀에서는 이방지역인 헬라 수로보니게 여인에게까지 성령의 생명의 역사가 임하십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말씀에 의하면,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제자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 곧 이방인들에게도 주셨으니, 누가 이 생명의 역사를 막을 수 있겠느냐고 묻고 있습니다(행 11:17).

2. 말이 다른 이방 백성 열 명

먼저 구약의 말씀을 볼까요? 선지자 스가랴는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고국으로 귀환한 유다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의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위기가 끝난 다음에, 유다 백성들이 회복할 새로운 세상에 관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스가랴는 유다 예루살렘을 향한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이, 결국 예루살렘을 회복시키고, 예루살렘은 영광을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 말씀이 스가랴 8장에 잘 나와 있습니다.

“유다 족속아,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이방인 가운데에서 저주가 되었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희를 구원하여 너희가 복이 되게 하리니,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손을 견고히 할지니라.”(슥 8:13)

나라가 멸망하고 포로로 잡혀가 고생하던 고통의 시대를 기념하였던 금식이 기쁨과 즐거운, 희락의 절기로 바뀔 것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그 내용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넷째 달의 금식과 다섯째 달의 금식과 일곱째 달의 금식과 열째 달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들이 되리니 오직 너희는 진리와 화평을 사랑할지니라.”(슥 8:18-19)

넷째 달 금식은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기원전 586년 4월 9일 예루살렘 성벽이 훼파된 사건을 기념하기 위한 것입니다. 또한 다섯째 달 금식은 솔로몬 성전이 파괴된 기원전 586년 5월 7일을 기념하기 위한 것입니다(왕하 25:8-9). 일곱째 달 금식은 멸망 당시인 시드기야 왕 11년인 기원전 586년 7월에 유다 총독 그달랴와 수많은 유다 백성들이 학살당한 사건을 기념하기 위한 것입니다(렘 41:1-10). 그리고 열째 달의 금식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함으로, 성중에 굶주림이 시작된 날인 시드기야 왕 9년, 곧 기원전 588년 10월 10일을 기념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금식이 변하여 희락의 절기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이 날에는 놀라운 일들이 생깁니다. 말씀을 볼까요?

“만군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다시 여러 백성과 많은 성읍의 주민이 올 것이라. 이 성읍 주민이 저 성읍에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속히 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자. 하면 나도 가겠노라 하겠으며,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리라.”(슥 8:20-22)

놀라운 말씀이죠? 이 날에는 유다 백성들만 예루살렘에 모여드는 것이 아니라,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할 것이라고 합니다. 곧 시온이 세계의 중심이 된다는 말입니다. 이어지는 말씀도 동일한 말씀이죠?

“만군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그 날에는 말이 다른 이방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슥 8:23)

말이 다른 이방 백성 열 명이, 곧 만 백성이 유다 백성과 함께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은, 또한 성령을 통한 생명의 역사는 민족의 경계를 넘어선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복음서 말씀에서도 동일한 말씀이 이어집니다. 예수님께도 유다 백성을 넘어, 이방인들까지도 구원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3. 헬라인 수로보니게 여인까지

복음서 말씀을 볼까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이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은 것에 관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함께 ‘장로들의 전통’으로 논쟁을 하신 후에, 이방 땅인 두로 지방으로 가셨을 때입니다. 장로들의 전통은 조상으로부터 전수되는 교훈이나 관습법으로 모세의 율법에 포함되지 않은 수많은 규칙입니다. 아무튼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막 7:24).” 같은 민족과 같은 종교인이었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논쟁을 하셨던 예수께서 이방 땅으로 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땅, 곧 두로 지방에 오신 것을 숨기려고 했으나, 숨길 수 없었습니다.

▲ 두로와 시돈 지역 위치

두로는 지중해 연안에 불쑥 튀어나온 섬 위의 항구인데, 시돈 남쪽으로 40km 지점에 있습니다. 시돈과 함께 베니게(페니키아) 성읍들 가운데 가장 강한 성읍이었습니다. 오늘날에는 레바논 지역에 반도처럼 되어 있는 도시로 지금은 티레(Tyre)라고 불립니다. 아무튼 역사가들은 이 성읍이 세워진 때를 주전 2,700년경으로 잡습니다. 또한 두로는 그 위치 때문에 난공불락의 ‘요새 성읍’으로 통했습니다(사무엘하 24:7). 따라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도 두로를 13년 동안 에워싸고도 정복하지 못했습니다(겔 29:18).

▲ 알렉산더의 두로 포위 공격

그러나 나중에 알렉산더 대왕이 육지에서 섬까지 700-800m 정도 흙으로 제방(堤防)을 쌓은 다음, 일곱 달 만에 두로를 점령했습니다. 아무튼 이러한 두로 지역에 시리아 출신 이방 여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아래에 엎드리니,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막 7:25-26)

▲ 예수님과 수로보니게 여인

오늘날도 마찬가지지만, 시리아는 레바논을 ‘위대한 시리아’의 일부하고 주장하지만, 레바논은 페니키아인들의 후손이고 시리아는 페니키아인과는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을 수로보니게 족속이라고 하죠? 수로보니게(Syrian Phoenicia)는 ‘시리아’와 ‘페니키아’를 합친 합성어입니다. 아마도 시리아 출신이지만 페니키아(레바논), 곧 두로 지방에 살게 된 여인이었을 것입니다. 아무튼 유대인 입장에서 보면 이방지역에 사는 또 다른 이방여인인 것입니다.

시리아는 아람이죠? 이스라엘의 북쪽에 있는 나라와 그 주민을 말하는데, 오늘날 이슬람국가(Islami State, IS)로 유명한 시리아에 해당됩니다. 수도는 다메섹이죠? 아무튼 유대인이 아닌, 이방여인이 예수님께 자기 딸을 고쳐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답이 놀랍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막 7:27).”

당연합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이고, 이 여인은 이방여인입니다. 유대인의 구원이 중요하지 이방인들에게는 아직 관심을 둘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의 상황에서 이렇게 들립니다. 비록 같은 민족이지만, 인류 보편적 인권의 문제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추구하는 우리나라가 전혀 다른 왕조 체제를 가진 비인권국가인 북한에 관해 매몰차게 대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보십시오.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막 7:28).”라고 말합니다. 개같이 하찮은 인간들도 숨을 쉬어야 합니다. 생명이 있기에 먹어야 합니다. 비록 자녀들이 먹다 바닥에 떨어진 부스러기라도 먹고 살게 해달라는 간절한 고백입니다. 저는 김여정의 담화나 지금 북한의 행동이 바로 이 수로보니게 여인의 고백과도 같다고 봅니다.

전쟁철학과 군사학 분야의 최고 고전인 『전쟁론』 (갈무리, 2016)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나폴레옹과의 전쟁에 직접 참전했던 군인이자, 프로이센의 전쟁 이론가인 카알 폰 클라우제비츠(1780-1831)의 작품입니다. 그는 이 책에서 전쟁은 카멜레온과 같다고 말하며 전쟁의 3요소에 관해 이렇게 정리합니다.

“첫째로 증오와 적대감이라는 원시적인 폭력성인데, 이것은 맹목적인 본능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로 개연성과 우연의 도박인데, 이것은 전쟁을 자유로운 정신 활동으로 만든다. 셋째로 정치의 수단이라는 종속적인 성질인데, 이 때문에 전쟁은 순수한 지성의 영역에 속하게 된다.”

곧, 전쟁이 일어나려면 이러한 전쟁의 3요소가 충족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지금 북한은 ‘증오와 적대감’이라는 원시적 폭력성을 드러냈습니다. 전쟁의 3요소 첫 번째입니다. 두 번째, ‘개연성과 우연의 도박’인데, 이것은 김여정의 담화와 앞으로 이어질 북측의 발언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개연성(probability)은 ‘절대적으로 확실하지 않으나, 아마 그럴 것이라고 생각되는 성질’을 말합니다. 개연성은 현재로서는 가능합니다. 특히 탈북단체가 북한에 뿌린 대북전단지의 내용이 개연성을 촉발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본성인영화 광고 이미지에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은의 부인인 리설주를 반라로 합성시켜 만든 전단지를 뿌린 것입니다. 전단지의 순수성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 대북 전단지 내용

셋째로, 이것이 정답인데, ‘정치의 수단’입니다. 클라우제비츠도 잘 분석했죠? ‘전쟁은 순수한 지성의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노동당 제1부부장인 김여정을 앞세우지만, 국방위원장 김정은은 조용합니다. 무언가 말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곧, 정치를 하고 싶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 볼까요? 여인의 말을 들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막 7:29-30).” 예수님께서 수로보니게 여인의 소원을 들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의 선교 활동과 메시지가 유대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도 위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남북 위기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대화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게다가 북한은 다른 민족도 아닌, 우리와 같은 민족입니다. 이것은 성령 강림 이후, 제자들이 복음을 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행전 말씀은 베드로가 자신의 환상을 통해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의 문이 열려 있음을 간증합니다. 사도행전 말씀을 볼까요?

4.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비난하여 이르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행 11:1-3)

여기서 무할례자는 고넬료를 말하는 것이죠? 사도행전 10장에 나오는 인물입니다. 가이사랴 지방에 있는 이달리야 부대의 백부장입니다. 이 부대는 본래 로마에만 주둔하던 이탈리아 출신들의 엘리트 부대입니다. 그런데 본토가 아니라, 식민지 지역인 가이사랴 지방에 와 있는 것입니다. 가이사랴는 고대 이스라엘의 최대 항구 도시이죠? 쉽게 비유하면 우리나라가 일제 치하 때, 조선 땅 부산이나 목포에 와 있던, 우리를 괴롭히던 일본 경찰, 혹은 군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말씀은 고넬료를 이렇게 평가합니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행 10:2)” 경건한 사람은 일본에도, 미국에도, 중국과 러시아에도, 그리고 북한에도 있다는 말입니다. 아무튼 이러한 고넬료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환상 중에 나타나 베드로를 청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도 환상이 있었습니다.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 대”(행 10:11-14)

▲ 베드로의 환상

그러나 이러한 소리가 세 번 있은 후에 고넬료가 보낸 사람이 베드로를 찾아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고넬료를 만나게 됩니다. 베드로는 이방인인 고넬료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행 10:34b-35).” 이렇게 이방인에게도 구원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그러나 이방인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한 사건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분노를 초래하였습니다. 오늘 사도행전 본문 말씀은 베드로가 예루살렘 유대인 성도들에게 하는 해명의 말씀이죠? 베드로의 해명을 들어볼까요?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 이르되, 내가 욥바 시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환상을 보니,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네 귀에 매어 하늘로부터 내리어 내 앞에까지 드리워지거늘, 이것을 주목하여 보니, 땅에 네 발 가진 것과 들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보이더라. 또 들으니,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 하거늘, 내가 이르되, 주님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거나 깨끗하지 아니한 것은 결코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 하니, 또 하늘로부터 두 번째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하지 말라 하더라.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에 모든 것이 다시 하늘로 끌려 올라가더라.”(행 11:4-10)

이렇게 베드로가 자신이 본 환상에 관해 설명하고, 그 다음 고넬료의 집에 가서 복음을 전한 것을 이야기 합니다. 11절 말씀이죠?

“마침 세 사람이 내가 유숙한 집 앞에 서 있으니, 가이사랴에서 내게로 보낸 사람이라. 성령이 내게 명하사, 아무 의심 말고 함께 가라 하시매,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가서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가 우리에게 말하기를 천사가 내 집에 서서 말하되, 네가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너와 네 온 집이 구원 받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 함을 보았다 하거늘,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행 11:11-15)

성령이 제자들에게도 임했지만, 동일한 성령이 고넬료와 같은 이방인에게도 임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베드로는 유대인의 사도요, 사도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라고 알고 있으나, 오늘 사도행전 본문 말씀에 의하면 베드로 역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했던 이방인의 사도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말을 계속 들어볼까요?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행 11:16-17)

그러자 할례자들인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행 11:18).”라고 고백합니다.

5. 곰의 수염을 겁 없이 뽑는 여우는 곰의 인내심을 시험할 뿐이다!

오늘은 6·25민족화해주일입니다. 비록 현 상황이 좋지 않지만, 비가 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질 것입니다. 쥐도 코너에 몰리면, 고양이에게 덤빕니다. 또한 곰의 수염을 겁 없이 뽑는 여우는 곰의 인내심을 시험할 뿐입니다. 같은 민족끼리 조금만 마음을 열고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서 화해의 길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앞서 소개해드린 클라우제비츠는 이렇게 말합니다. “전쟁은 정치의 수단이다.” 그러나 이러한 클라우제비츠의 말을 전복한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는 이렇게 말합니다. “정치는 전쟁의 수단이다.” 그렇습니다. 지금 한반도에 필요한 것은 푸코의 통찰이겠죠? 바로 정치입니다. 정세현 민주평통 부의장의 말처럼, 특사는 북한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 보내야 합니다. 남과 북이 자주적으로, 또한 주체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할 수 있는 것을 먼저 실행하고, 미국에는 평화를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해야 합니다.

김대중 정부 때인 1998년 금강산 관광을 미국 허락 없이 시작했습니다. 2005년 노무현 정부 때는 개성공단을 미국 허락 없이 시작했습니다. 물론, 둘 다 차후 승인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 후손들에게, 우리 자녀들에게 이러한 대결과 파국으로 치닫는 비극적인 상황을 물려줘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한반도 문제를 강대국의 힘의 논리에 눈치 보며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끼리 대화하며 풀어가야 할 것입니다. 코로나-19의 위기를 잘 극복한 문재인 정부가 어떻게 남북의 문제를 지혜롭게 풀어갈 수 있을지 기도하며 기다려 봅니다. 왜냐하면 일본도 마찬가지지만, 북한 동포들에게도 하나님께서 같은 선물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곰의 인내력이 여우의 버릇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디까지를 참아야 하는지도 고민해 봅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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