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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징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0.06.21 16:45
이것이 너희에게 표징이다. 너희는 아기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있는 것을 볼 것이다.(누가복음 2,12)

주께서 몸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은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던 참으로 놀라운 사건입니다. 베들레헴 지역에서 밤에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좋은 소식[=복음]으로 온 백성에게 이를 ‘큰 기쁨’을 전합니다.

그 소식이 왜 하필이면 목자들에게 전해졌을까요? 그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간절히 메시아를 기다려서일까요? 한 밤중에 깨어있는 어쩌면 유일한 사람들이어서였을까요? 목자들이라면 마굿간 구유의 아기를 아무 스스럼 없이 맞을 것 같아서였을까요? 모두 어느정도 타당한 이유들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혹시 그들이 목자들이어서가 아니었을까요? 이야기는 메시야가 그들처럼 한밤에도 ‘들의 양떼’를 지키는 목자임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훗날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기신 양떼를 하나도 잃지 않고 보전했다고 하십니다.

천사는 그 목자/구주가 지금 ‘너희에게’ 나셨다고 합니다. 이것이 그가 전하고자 하는 ‘좋은 소식’이며 그의 출생은 그들에게 그리고 모든 백성에게 큰 기쁨을 가져올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구주의 출생을 어떻게 알 수 있는지요? 천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있는 아기가 그 표징이라고 일러줍니다. 구주가 태어났다는 것이 ‘좋은 소식’의 내용이라면, 그 아기는 그 내용을 가리키는 일종의 상징입니다.

여기서 약간의 어려움이 발생합니다. 구주의 나심과 구유의 아기는 동일 사건이면서 구분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아기의 태어남은 구주의 태어남으로 그 자체가 ‘좋은 소식’일 뿐 아니라 구주의 비밀을 푸는 열쇠입니다. 그 비밀은 그의 생을 통해 지속적으로 밝혀지고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할 것입니다.

갓 태어난 아기를 포대기로 감싸는 것은 지극히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그는 이렇게 평범한 모습으로 땅에서의 삶을 시작합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여행 중이었고 민족대이동 때문에 제대로 머물 곳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세상’에는 세상에 온 그를 맞이할 곳이 없습니다. 그의 생에서 이런 사정은 이때 뿐이 아닙니다. 그가 십자가에서 내려졌을 때에도 그를 맞을 곳은 없었습니다. 빌린 마굿간 구유와 빌린 무덤, 그것이 그의 땅 위 삶의 시작과 끝입니다. 양자는 참 닮았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고 하나님에 의해 일으켜졌음을 생각하면, 그의 처음과 끝은 완벽한 짝을 이룹니다.

이러한 처음과 끝은 내려오심과 올라가심으로 둘러싸여 있고, 오심은 큰 기쁨을 약속하고 올라가심은 이를 목격한 제자들에게 큰 기쁨을 가져왔습니다(24,52). 그 기쁨은 또한 우리의 기쁨이 될 것입니다.

예수 사건을 기뻐하는 사람들에게 약속된 평화를 누리는 오늘이기를. 가장 낮은 곳에 있는 한 아기에게서 구원의 주를 뵙고 인내하고 기다리며 기쁨으로 주를 따르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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