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성서
“시선의 금식”살며 묵상하며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 승인 2020.06.25 16:27
“그러므로 이렇게 구름 떼와 같이 수많은 증인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우리도 갖가지 무거운 짐과 얽매는 죄를 벗어버리고, 우리 앞에 놓인 달음질을 참으면서 달려갑시다.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봅시다. 그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기쁨을 내다보고서, 부끄러움을 마음에 두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히브리서 12:1,2/새번역)

“대체 너 지금 뭘 하고 있는 거니?” 가만 보니 원숭이가 냇물에서 물고기를 집어 올려 나뭇가지 위에다 갖다 얹고 있길래 물어 보았더니, “빠져죽지 않게 건져 주는 참이야.”
- 앤소니 드 멜로, 「원숭이 물고기 건지기」, 『종교박람회』, 정한교 역(서울: 분도출판사, 1983), 21쪽.

물고기를 살리고 싶은 원숭이의 마음은 고우나, 오히려 죽임의 폭력이 되고 있습니다. 자신의 만족과 편견과 방법을 뒤집어씌우기 때문입니다. 이 우습지도 않은 일이 우화에만 있으면 좋겠습니다. 상처와 분노, 걱정과 좌절로 쓰러진 사람에게 하나님을 믿으면 된다고, 다 맡기라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고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이해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완곡하게 말해도 날카로운 칼날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의 처방이 믿고 맡기면 되는데 왜 그러지 못하느냐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만연했던 일입니다. 당시의 가치관과 율법으로 무수한 약자를 죄인으로 낙인찍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판단하고 배제하고 억압하였습니다. 믿음과 진리라는 신념체계가 도우려는 선한 손길에서 날카로운 비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비수로 주님 역시 찔렀습니다. 죄인이라는 낙인을 떼어내고 안아줬다는 이유로. 오늘날 교회는 얼마나 다를까요?

나를 통해 너를 볼 때, 사랑이란 이름으로 너의 숨통을 조일 수도 있습니다. 같은 햇빛이 독수리의 눈은 뜨게 하고 부엉이의 눈은 멀게 합니다. 부엉이를 돕고 싶은 독수리이라면, 달빛을 선물하기 위해 어둠을 맞이해야 합니다. 사랑은 나의 눈을 감고 너의 눈을 허락합니다. 아니 자신이 누구이기에 허락하겠습니까. 받아들이며 함께 바라볼 뿐입니다. 사랑은 타자의 눈과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자기비움입니다.

믿음 역시 사랑의 눈으로 새롭게 바라봅니다. 믿음은 고난과 역경을 보이는 대로 보지 않습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고후 4:18) 고난과 역경만 새롭게 보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바라는 것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히11:1)라 믿을 때,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은 사랑을 봅니다. 무엇보다 사랑으로 봅니다. 신념체계나 교리가 다 담을 수 없는 사랑의 신비를 통해 봅니다.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고난이든, 역경이든, 이해가 가닿을 수 없는 타자이든, 함께 계신 예수님을 통해 주님으로 바라봅니다.

전도사로 처음 맞은 사순절 특별새벽기회, 모두 집으로 돌아간 침묵 속에 십자가를 바라봤습니다. 간절했던 소원을 더 아뢰려다 멈추고 말았습니다. 자신을 다 주신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내려다보시는 듯했습니다. 무엇을 원하느냐, 물어보시는데, 침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을 다주셨는데 무엇을 더 달라고 할지. 그저 조용히 주님을 바라보고 또 바라봤습니다. 모든 것을 주신 주님 품에 가만히 안기는 침묵, 그것으로 부족하지 않은 쉼이었습니다. 간절한 소원을 아뢸 수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소원이 이뤄지느냐 아니냐에 갇히지 않는 자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저 주님을 바라보고 마주 앉은 것만으로 부족하지 않은 자리가.

침묵 가운데 주님을 바라볼 때, 언어의 금식을 경험합니다. 금식기도가 그저 욕망대로 이루려는 단식투쟁이 돼버린 현실입니다. 그러나 금식기도가 자기 뜻을 어떻게든 이루려는 단식투쟁이 아니라면 어떨까요. 하나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비우고 다 드리려는 금식기도도 분명 있습니다. 아니 절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침묵은 언어를 금식하는 기도의 형식입니다. 자신 안에 꿈틀거리고 소용돌이치는 욕망의 언어를 내려놓는 귀 기울임이 침묵이라면, 주님의 형상을 바라보는 이콘(모상)기도 역시 시선을 비우고 정화하는 금식기도입니다.

무엇인가를 바라볼 때,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경우는 지극히 드뭅니다. 가치관, 욕망, 이해관계, 신념체계라는 렌즈를 통해서 봅니다. 원숭이가 물고기가 위기에 쳐했다고 본 이유입니다. 예수님을 죽여야만 한다고 본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 렌즈를 벗어놓고 주님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시선의 정화, 시선의 금식이 절실한 이유입니다.

동방정교회 전통의 이콘을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낯설고 거북하다 못해 두렵게 느끼는 이도 있습니다. 처음 접한 이콘 기도에서 주님의 얼굴은 낯설다 못해 기이했습니다. 좌우가 다릅니다. 한쪽은 위를 보고 다른 쪽은 아래를 봅니다. 한쪽은 엄해 보이고 한쪽은 온유해 보입니다. 남성과 여성, 아버지와 어머니가 뒤섞인 그 얼굴, 신성과 인성이 함께 있는 얼굴의 눈빛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무엇이라 규정할 수 없는 혼란이 분심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뒤엉키는 분심들을 그대로 흘려보냅니다. 그리고 주님의 시선에 자신을 열어 맡기고 또 맡깁니다. 기도를 마칠 때, 눈을 감고 주님의 시선을 가슴 깊이 모셔오고, 다시 눈을 뜰 때, 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한국샬렘영성훈련원 침묵기도학교(김오성 목사님 인도)에서 이콘 기도를 접하고 이제 일주일정도 해봤으니, 뭐 얼마나 알겠습니까.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깊은 울림을 맛보았습니다. 분심을 흘려보내고 그저 주님의 시선으로 돌아가고 맡기는 연습이 일상에 작은 균열을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마주할 때, 혹은 숲과 자연을 바라볼 때, 문득 주님의 시선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 눈으로 바라봅니다. ‘주님 어떻게 보이시나요.’ 가슴속에 기도가 깨어납니다. 편치 않았던 사람을 마주할 때, 판단의 시선이 가라앉습니다. 판단과 상념을 흘려보내고 주님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주님의 시선으로 바라볼 뿐 아니라, 주님을 바라보기도 합니다. 시선의 정화, 시선의 금식으로 상대의 얼굴을 바라볼 때, 예수 그리스도가 보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고 고백하고 믿습니다. 그러나 타자에게서, 그리고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이 보입니까? 거울을 보고도 드리는 이콘기도도 있습니다. 자기 얼굴을, 자기 눈을 바라보며, 하나님 시선에 열어 맡깁니다. 자신에 대해 용서하지 못했던 감정이 올라와도 동일합니다.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 감정과 판단을 주님께 맡깁니다. 그리고 자신 안에 함께 계신 주님의 눈으로 마주봅니다. 자기 얼굴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그리스도의 시선을 만납니다.

자기를 사랑하지 못하면 타자를 사랑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자기를 사랑할 수 있을 때, 타자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기 얼굴에서 주님의 형상을, 그 시선을 마주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그 시선에 타자의 얼굴은 어떻게 보일까요? “갖가지 무거운 짐과 얽매는 죄를 벗어버리고 …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볼 수 있다면 어떨까요? 시선을 맑히는 기도로 그 모습을 바라봅니다. 살려낸다며 죽이고 있는 시선에도 절실한 금식입니다. 이콘 기도만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시선)를 버리고 십자가를 바라보는 시선의 금식이 절실합니다.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devi3@nav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윤인중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윤인중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0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