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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을 허무는 사람들평화를 비는 마음(사 55,6-13; 엡 2,11-19)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0.06.25 16:30

70년이면 전쟁의 아우성이 완전히 끝날 줄 알았는데, 현재의 상황은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불신과 갈등의 벽이 예전 못지않게 높아져갑니다. 우리가 70년을 왜 이렇게 맞아야 하는지요?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지 않기에 더욱더 아쉽고 또 슬프기만 합니다. 그 이유는 크게 보아 미국에 종속된 미완의 해방이 하나이고 그 역사의 결과로 현재 우리 정부가 보여준 행동의 부재가 또 다른 하나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출 수도 없고, 과거로 되돌려서도 안 될 것입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지도 않기에 더욱 더 그렇습니다. 해방의 완성, 이 한마디에 다 들어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스스로 자주적이 아니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목표입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거나 이익만 추구한다면 시도조차 할 수 없는 망상입니다. 하나님은 그 목표를 지지하고 거기에 도달하도록 우리를 북돋우십니다. 하나님은 한반도의 평화를 비는 마음으로 평화를 향해 행진하는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이 그의 아들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신 까닭은 무엇보다도 이 세상을 죄의 힘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이 세상과 화해하기 위함입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자기희생은 그 세상 사람들의 삶의 방향을 바꾸고 하늘과 사람과 자연의 조화로운 관계를 이루고자 함입니다. 하나님의 이 시도는 현재의 세상이 보여주는 대로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실패일까요? 보기에 따라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절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낙심하고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엘리야에게 7000명을 남겨두셨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에게도 ‘교회’를 남겨두셨다고 말씀하시지 않을까요? 하나님의 역사는 이미 완성된 것이 아니고 완성을 향해 갑니다. 그렇기에 그 역사는 실패일 수 없습니다. 아니 실패한 역사를 다시 살려내려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철저하게 망해서 희망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들은 ‘목마르고 주린’ 상태로 묘사됩니다. 자신들이 가진 수단들을 다 활용하여 이를 해소하려고 하지만 할 수 없습니다. 그런 그들을 향해 하나님은 ‘오라’고 외치십니다. 와서 값없이 수고 없이 좋은 것을 즐기라고 하십니다. 그들이 치를 수고와 값은 그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상 가장 큰 수고요 값일 것입니다. 그의 말을 듣는 것은 삶으로 응답하는 것이고 존재의 기반을 다시 닦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려야 하나님에게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것들과 다른 하나님의 길을 가고 하나님의 생각을 좇는 삶입니다. 그것은 돈이든 수고든 자기 힘으로 얻을 수 없는 기쁨과 평화를 약속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이같은 부름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자신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다시 되돌아보게 되지 않을까요? 삶의 터전을 다시 닦고 목표를 새로이 세우지 않을까요? 그들의 불평등이 망하는 한 요인이었기에 그들은 평등을 꿈꿀 수 있고, 그들의 억압과 폭력에서 비롯된 갈등과 분열이 또 다른 요인이었기에 그들은 화해와 일치를 추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자연과의 조화로 응답하실 것입니다. 산들과 언덕들이 노래하고 나무들이 손뼉칠 것입니다. 잣나무가 가시나무 대신 자라고 은매화가 쐐기풀 대신 올라올 것입니다. 이 변화는 아담에게 내린 벌과 비교하면 더욱 더 놀랍습니다. 사람의 죄 때문에 하나님은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자라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마치 에덴동산의 평화와 풍요를 회복시키시겠다고 약속하시는 듯이 보입니다.

온갖 수고와 비용을 들여 거두었던 절망을 떠나 이제 하나님께 돌아갈 용기와 희망을 발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역사는 더 이상 실패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의미의 ‘남은 자’들을 우리 가운데 남겨두셨고 계속 그 수를 더해 가실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10명이 없어 망했고 예루살렘은 의인 한 사람이 없어 용서받지 못했습니다(렘 5,1). 이러한 세상에 하나님은 희망을 뿌리십니다. 오늘 우리의 역사가 아무리 참담하고 아무리 절망적으로 보인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그 가운데 그 역사를 다시 시작할 사람들을 남겨두시고 그들 속에 희망을 심고 가슴에 불 지르십니다. 행동하게 하실 것입니다. 행동하는 ‘교회’를 만들어 가실 것입니다.

그 ‘교회’는 그리스도가 우리의 평화임을 고백하고 우리 사이를 막는 차별의 담을 헐어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교회입니다. 이익을 위해 분열과 갈등을 일으키고 위협과 폭력으로 지배를 꾀하는 세상의 풍조 따르기를 거부하고 일치가운데 평화와 기쁨과 풍요를 누리게 하는 하나님의 길에 들어서는 ‘교회’입니다. 그 교회는 모든 차이를 넘어 하나님 나라의 평등한 시민임을 고백하며 일체의 차별에 저항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인종도 체제도 국가도 종교도 빈부도 신념도 젠더도 성지향도 낄 자리가 없습니다. 그 ‘교회’는 그 나라를 확장시키기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운동 중심에 있습니다. 그 ‘교회’는 세상의 희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 ‘교회’로 부르십니다.

남과 북의 긴장과 갈등이 고조되는 지금 교회는 잠잠할 수 없습니다. 그 속에서 작동하고 있는 악의 세력을 분명하게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그 세력은 공중 권세 잡은 영의 지배 아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그 지배로부터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해방된 우리는 그 악의 세력에 굴복할 수 없습니다. 침묵을 깨뜨리고 그에 저항할 때 우리는 남북을 잇고 하나 되게 하는 평화의 띠가 되고, 그 띠가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는 사랑의 띠입니다.

사랑과 평화의 띠를 두른 교회
외치는 소리가 되는 교회
행동으로 희망을 일구는 교회
이 교회가 우리 교회이기를 바랍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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