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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신화와 생활세계적 이성삼신 할매 신화에서 읽어내는 한국인의 살림살이 이성 (1)
이기상 명예교수(한국외대 철학과) | 승인 2020.06.28 16:39
▲ 마고(삼신할머니)의 초상. 우리는 잃어버린 마고상들이 중국 송대, 명대, 청대의 민화로 전해지고 있다. ⓒGetty Image

‘삼신 할매의 살림살이 이성’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먼저 이 논의의 배경과 전제를 밝히고 넘어가는 것이 필요하겠다.

왜, 할머니 신인가

우선 이 제목에서 눈에 띄는 것은 ‘삼신 할매’이다. 그것은 하나의 ‘신화’ 아닌가? 그것도 무속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무당들의 굿풀이 이야기 아닌가? 그렇다면 여기에서 무속[미신] 신화에 대해 느슨하게 이야기하자는 말인가?

그렇다. 삼신 할매는 분명 아주 오랜 옛날부터 무녀들의 굿풀이를 통해 한국의 민중들에게 전해져 내려온 설화이며 신화이다. 그런데 신화는 민중의 집단 무의식을 반영하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신화에는 보이지 않게 그 민족의 삶의 문법이 갈무리 되어 있지 않는가? 신화에는 고난에 대처하며 삶의 역사를 일구어온 민중들의 삶의 지혜가 새겨져 있지 않는가?

그렇다면 이제라도 한번 우리는 그리스-로마 신화에만 광분하지 말고 우리 자신의 이야기인 우리의 신화에 관심을 가져 수천 년 동안 우리의 집단 무의식 속에서 우리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조상들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여 볼 때가 되지 않았는가? 왜 우리에게는 제우스나 아폴론, 헤르메스나 디오니소스, 프로메테우스나 시지프스 등과 같은 위대한 남성신이 아닌 ‘삼신 할매’라는 ‘엉뚱한’ 신화적 인물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가? 거기에는 그만의 독특한 사연이 있지 않겠는가?

왜 할머니인가? 도대체 할머니가 신화적 인물로서 등장하는 문화권이 한국 말고 어디 다른 데에도 있는가? 왜 우리는 할머니를 신[삼신]으로까지 승화시켰는가? 그렇게 만든 민중의 집단 무의식은 어떤 것이고 그들의 삶을 유지시켜왔던 삶의 문법과 삶의 지혜는 무엇인가?

일그러지 이성의 모습을 되찾는 현대적 노력

그 다음 눈에 걸리는 것은 ‘살림살이 이성’이라는 표현이다. 신화에 이성을 접목시키는 것도 의아한데, 그 ‘이성’이라는 것이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살림살이 이성이라니? 그것도 이성인 것이 맞으며 그렇게 아무거나 이성이라고 불러도 되는가 하는 의심이 든다.

신화에 이성적인 요소가 있는가? 신화의 출현 자체가 합리성의 발로라는 데에는 이제 이론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신화에는 어떤 형태이건 이성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도 당연하다. 그렇다면 그런 이성을 로고스나 이론, 학문이나 과학에서 말하는 이성과 구별지어 무엇이라 명명하고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가 문제이다.

이성(Vernunft, reason)이라는 낱말이 너무 추상적이고 모호해서 요즘은 학계에서 흔히 합리성(Rationalität, rationality)이라는 용어가 선호된다. 이성에 부합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들을 묶어서 구조적으로 분석하여 그 특징을 정리하는 식으로 접근하는 방법론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설명이 안 되고 있을 뿐이지 암암리에 이성이라는 기준이 전제되고 있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이성 또는 합리성 하면 아주 좁게 과학적 또는 이론적 합리성만을 생각했다. 칸트가 이성을 이론적 이성, 실천적 이성, 미적 이성으로 세분화해서 논의했지만 실증주의와 과학주의의 영향 아래 이론적 이성만이 참다운 합리성으로 간주되고 다른 두 이성은 합리성에서 배제되기에 이른다. 그러다 보니 윤리 도덕, 종교와 예술 등이 합리성과는 아무 연관이 없는 순전한 주관적 느낌의 영역으로 밀려나게 된다.

이런 협소해진 이성의 위상을 되찾기 위한 노력이 20세기 들어서서 하이데거를 비롯해서 하버마스 등을 통해 시작되었다. 하버마스는 칸트의 세 가지 이성을 다 포괄하고 함축하는 넓은 의미의 이성을 제안하며 그것을 ‘의사소통적 이성[합리성]’이라고 이름했다.(1) 그러면서 그것이 실존세계, 사회세계, 사물세계의 배경과 태반이 되는 생활세계를 형성해나가며 문화와 사회 그리고 인격[인성]을 이루게 하는 근본이라는 의미에서 ‘생활세계적 이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2)

그런가 하면 벨쉬(Wolfgang Welsch)라는 철학자는 그의 방대한 『이성』이라는 대작에서 이성을 ‘가로지르기[횡단적] 이성(transversal Vernunft)’이라고 이름한다. 그는 이성이 다양한 영역과 문화권들을 가로질러 옮겨다니며 옮김[이행]의 활동을 하는 것에 착안하여 그렇게 명명했다. 서로 다른 다양한 역사와 전통, 문화권들이 서로 얽혀 하나의 지구촌 시대를 이루며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다른 문화와 세계를 이해하게 만들어주는 ‘권역 가로지르기’에서 이성의 독특한 역할을 본 것이다.(3)

그런데 벨쉬가 서양철학 전반을 검토하면서 새롭게 제안하고 있는 ‘가로지르기 이성’ 외에도 우리는 한국의 생활세계와 문화 속에 결과 무늬로 새겨져 전해 내려오는 ‘살림살이 이성’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살림살이 이성은 서양의 세계관이 고려에 넣지 않았던 다른 관계론적 구조와 생명학적 특징을 담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살림살이 이성으로 ‘이성개념’의 새로운 구조적 차원을 열어보일 수도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아래에서 우리는 먼저 ‘삼신 할매’라는 이름이 가리키는 다양한 의미차원을 훑어본다. 그 다음 서사무가와 무당의 굿풀이 형태 속에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삼신 할매의 신화를 간략하게 살펴본다. 그러면서 그 신화 속에 암묵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집단 무의식의 의미를 읽어내려고 시도해본다. 그런 뒤 삼신 할매 신화의 독특함을 전체적으로 요약정리하며 거기서 주목해야 할 살림살이적 이성의 요소들을 끄집어내본다. 끝으로 서양의 이성개념과 비교하며 살림살이 이성이 가지는 독특한 구조적 차원을 정리해본다.

미주

(미주 1) 참조. J. Habermas, Theorie des kommunikativen Handelns. Bd. I. Handlungsrationalität und gesellschaftliche Rationalisierung (의사소통 행위 이론. 제1권: 행위의 합리성과 사회적 합리화), Frankfurt a.M. 1981; Theorie des kommunikativen Handelns. Bd. II. Zur Kritik der funktionalistischen Vernunft (의사소통 행위 이론. 제2권: 기능주의적 이성 비판을 위해), Frankfurt a.M. 1981.
(미주 2) 참조. 이기상, 『하이데거의 존재사건학』, 서광사, 2003. 제1장 <다문화 시대에 문화의 새틀 짜기: 해석학, 화용론 그리고 사건학>, 19〜77.
(미주 3) 참조. Wolfgang Welsch, Vernunft. Die zeitgenössische Vernunftkritik und das Konzept der transversal Vernunft (이성. 현대의 이성비판과 가로지르기 이성 구상), Frankfurt a.M., 1996, 761 이하.

이기상 명예교수(한국외대 철학과)  saemom@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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