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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야훼를, 야훼는 그들을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0.07.02 16:23
‘이제’ 야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받으리라. 그렇다! 야훼께서 말씀하신 대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 '구원'이 있으리니 야훼께서 부르시는 남은 자들 가운데 있으리라.(요엘 2,32)

여기에는 약간(?) 구별되는 두개의 진술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는 구원이 조건적임을 말하는데, 다른 하나는 구원이 제한적임을 말합니다. 어느 하나만을 선택해서 읽는 것은 성서를 왜곡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비록 양자를 함께 읽는 것이 우리의 한계 밖의 일일지라도, 그 한계 인식을 바탕으로 한계를 넘어서려는 겸허한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어려움을 바로 앞 본문에서도 만납니다.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이 부어지리라는 놀라운 약속 바로 다음에 하늘과 땅의 두려운 변화가 언급되고 이것은 야훼의 날이 이를 징조로 간주됩니다.

▲ 미캘란젤로가 예언자 요엘을 묘사한 시스티나 성당의 프레스코화 ⓒWikipedia

그러면 하나님의 영 사건은 어떤 의미를 가질런지요? 모든 육체에게 부어지는 영의 활동이 예언과 꿈과 환상이라면 이것들은 모두 미래와 관련되고, 아마도 그 미래는 크고 두려운 우주적 사건들 저 너머를 지시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 사건은 그 두려운 시간을 견디도록 준비시키는 하나님의 배려가 됩니다.

이 경우 때가 되었을 때 누구나 야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당연할텐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해집니다. 야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단순한 언어 행위가 아니라 예수께서 말씀하시듯 야훼의 뜻을 행하는 것일까요? 그러면 그리 하지 않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보거나 꿈꾸거나 예언했음에도 그들에게 닥친 어둠의 시대를 ‘말씀의’ 빛 가운데 살지 않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하반절에 새로운 진술이 더해집니다. 그 시대에 구원은 야훼께서 부르시는 남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납니다. 그들은 누구일까요? 혹시 위에서 말한 의미로 야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일까요? 그렇다면 이 장면은 그들이 야훼의 이름을 부르고 야훼는 그들을 부르는 모습입니다. 우주가 빛을 잃는 어둠 속에서 구원의 외침이 마주치는 참으로 감격스런 장면입니다.

이로써 심판의 날이었던 야훼의 날은 삶이 담긴 부름으로 구원을 낳는 날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아직 그 날이 멀다고 말하는 바로 그때에도 적용되고 실현되는 말씀입니다. 구원은 지금 그의 뜻이 실천되는 곳에서 일어납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불려질 때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부르실 것입니다.

우리의 야훼 이름 부름과 하나님의 우리 이름 부르심이 마주 치는 오늘이기를.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을 따라 기쁨으로 주의 뜻을 사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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