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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하시는 일, 구원과 치유성령과 믿음 (1)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 승인 2020.07.10 22:30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타락하고 부패한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영원한 멸망에 처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중보자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참 하나님이시며 참 인간이신 그리스도는 예언자, 왕, 제사장으로서 중보자의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이것이 제2권의 요지였습니다.

그러나 칼빈은 사도신경의 세 번째 조항, 곧 성령론에 대해 말하는 제3권의 제목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참여하는 방법”이라고 붙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한 마디로, 그것은 성령이 아니고서는, 아니 성령의 능력에 의해서만 우리는 그리스도와 그의 모든 유익을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 입니다(III.i.1).

오직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구원이

역사 속에서 약 2,000년 전, 골고다 언덕에서 일어났던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성령을 통하여 지금 그리고 여기서 우리를 위한 사건이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능력에 의하여 성경에서 증언되고 교회에서 선포된 그리스도는 우리 밖에 있는 단순한 대상, 또는 공간과 시간의 넓고 깊은 도랑에 의해 분리되는 과거의 먼 사건으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는 성령의 능력에 의해서 오래 전에 이미 떠나버린 사람, 혹은 미래에 올 사람에 대한 단순한 기억이나 상상 속의 인물이 아니라, 정확히 지금 여기에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바로 이것이 칼빈이 저 제목을 통해 말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음의 구절에서 명백하게 진술됩니다.

우선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밖에 계시고 우리가 그와 떨어져 있는 한,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그가 고난당하시며 행하신 일은 모두가 우리에게 무용, 무가치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아버지에게서 받으신 것을 우리에게 나눠주시기 위해서는, 그가 우리의 것이 되며 우리 안에 계셔 야 했다. 그러므로 그를 우리의 ‘머리’(엡4:15),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롬8:29)이라고 하였다. 또 우리 편에서는 그에게 ‘접붙임을’ 받으며 (롬11:17),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고 하였다(갈3:27). 이는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우리가 그와 한 몸이 되기까지는 그가 가지신 것이 우리와 아무 상 관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이것을 얻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복음을 통해서 제시된 것, 즉 그리스도와의 친교를 모든 사람이 무차별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님을 볼 때에 우리는 더 높은 견지에서 성령의 신비 로운 역사를 검토하는 것이 사리에 닿는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성령의 작용에 의해서 그리스도와 그의 모든 유익을 누리게 되기 때문이다 (III.i.1).

말하자면, 우리는 성령이라는 “띠”를 통해서만 그리스도와 효과적으로 연합되게 된다는 것입니다(III.i.1). 이 성령의 작용을 통해서만, 그리스도는 신자들의 형제가 되고, 바꿔 말하면, 신자들은 진실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모든 일의 유익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칼빈이 인용하는 성령의 첫 번째 성서적 명칭은 “양자의 영”입니다.

즉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독생자 안에서 우리를 받아 주시고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 주시는 그 값없이 베푸시는 사랑을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양자의 영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갈 4:6)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III.i.3). 그리고 칼빈은 여기서 성경에 나타난 다양한 성령의 칭호들을 열거합니다.

성령은 세상에서 나그네와 같은 우리에게 구원의 확신을 주시기 때문에 우리의 기업에 대한 “보증과 인”으로 일컬어집니다(고후1:22; 엡1:14). 성령은 의로 말미암는 “생명”으로 지칭지기도 합니다(롬8:10). 또한 성령은 마치 물처럼 우리에게 부어져 우리의 의의 싹을 돋게 하시기 때문에 자주 “물”이라고 불리기도 하고(사55:1; 요7:37), 사람들의 생기를 회복시켜주 며 강하게 하시기 때문에 “기름”과 “기름부음”으로 불리기도 하십니다(요일2:20, 27).

반면에 성령은 우리의 악한 육욕을 태워버리시며, 우리 마음에 하나님께 대한 열렬한 사랑과 헌신의 불길을 일으키시기 때문에 “불”이라고(눅3:16) 일컬어지기도 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성령은 그로부터 모든 하늘의 은사가 우리에게 흘러나오는 “샘물”로 불리기도 합니다(요4:14).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권능을 행사하시는 “주의 손”(행 11:21)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III.i.3).

우리 믿음의 근원

칼빈은 성령의 신성에 대해서는 이미 제1권 삼위일체 하나님에 관한 장(13장)에서 다루었습니다. 여기서는 성령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 집중합니다. 칼빈은 무엇보다도 먼저 “믿음은 성령의 역사”라고 말하면서, “성령이 하시는 가장 중요한 일은 믿음을 일으키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III.i.4).

사실,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이 없다면, 도저히 믿을 수 없습니다. 믿음은 결코 자생적인 것이 아닙니다. 믿음과 믿음 의 확실성은 혈과 육, 즉 우리 안에 있는 자연적인 힘에서 생기는 것 이 아니라 전적으로 성령의 감동으로 생겨납니다. 이 세상에 이 일을 스스로의 힘으로 해낼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성령께서 믿음을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인간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라는 고백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셨다는 것도, 그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는 것도, 죽었던 그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도 믿을 수 없습니다. 이런 일들은 인간의 이성과 이해력으로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고전1:23, 참조). 우리는 혈과 육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성령의 감동에 의해서만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님, 구주로 믿을 수 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얻게 됩니다(요1:12-13).

이런 의미에서 개혁교회 신학에서는 믿음을 치유의 사건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요한복음 8장에는, 나면서부터 소경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고침을 받은 사건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에, 안식일을 범했다고 예수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잡아넣을 셈으로 소경을 찾아 심문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요9:25).

이렇게 믿음을 전에는 귀먹고, 눈 멀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이제는 듣고, 보고, 말하는 치유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1) 그러므로 어느 누가 믿게 되고, 그리스도를 주라 고백하며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한 사람의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성탄절이나 부화절의 기적만큼이나 위대한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2)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이 받아들일 수 없는 ‘진리의 영’(요 14:17)을 제자들에게 보내주셔서, 그들이 하늘의 지혜를 받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 진리의 영을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완전한 구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구원에 참여할 수 있게 됩니다.

완전한 구원은 그리스도에게서 발견된다고 우리는 말했다. 따라서 우리 도 그 구원에 참여할 수 있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며(눅3:16), 그의 복음을 믿는 신앙의 빛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며, 우리를 거듭나게 하셔서 새 피조물이 되도록 하신다(III.i.4).

 

미주

(미주 1) 칼 바르트, 『복음주의 신학입문』, 이형기 옮김 (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3), 113.
(미주 2) 칼 바르트, 『칼 바르트가 읽은 주의기도/사도신조』, 최영 옮김(서울: 다산글방, 2000),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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