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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장로회 초도제일교회는 그 어떤 차별도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명령을 넘어 사랑으로(고린도전서 14:34-37)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0.07.14 17:28
▲ 성서의 시대적 한계를 인식하고 새롭게 해석하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Getty Image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우리 안에 주어진 평안을 외면한 채 여전히 눈에 보이는 불완전한 삶에서 평안을 찾고 계시지는 않으신가요? 우리에게 주어진 완전한 평안을 선택하고, 누리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지난 주 우리는 주어진 삶 속에서 ‘우리의 길’이 아닌 ‘하나님의 길’을 발견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의 길’로 향할 수 있도록 때로 하나님은 우리의 길을 막으시고 새 길을 열어주시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의 길’만이 우리를 온전하게 살도록 안내하기 때문입니다.

제주도에서 열린 생태공동체운동본부 회의에 참여했다가 보험비와 보험보장을 비교해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1시간 정도면 끝날 줄 알았던 이야기는 저녁 먹기 전까지 2시간 가까이 이어졌습니다.

저녁을 먹으면서 뿐 아니라 저녁을 먹은 후에도 상담은 이어졌습니다. 상담 후에는 ‘아, 지금까지 내가 보험을 잘 못 들었구나.’, ‘내가 아는 사람한테 속아서 보험을 들었구나.’라는 등의 탄식이 따랐습니다. 이런 상담을 마친 후에는 가지고 있던 보험을 해약하고 보험비가 더 저렴하고, 보장이 더 되는 보험을 계약하는 절차를 밟기 마련입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보험보다 보험비를 더 줄일 수 있고, 게다가 보장은 더 늘어난다는데 어느 누가 자신의 보험을 계속 유지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다 보면, 우리가 지금까지 어긋난 삶의 길을 걷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길이 나의 길 보다 훨씬 더 복된 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깨닫게 된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더 좋은 길을 가기 위해 어긋난 길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왔고, 믿음의 길을 가기로 작정했다면, 하나님이 안내하시는 삶, 온전한 삶으로 나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을 통해 성도님들이 더 온전한 삶의 길로 나아가도록 안내하고자 합니다.

요즘 세상과 교회 모두에게 해당되는 핫이슈가 한 가지가 있습니다. 얼마 전 국회의원 10명이 모여 ‘차별금지법’을 발의했습니다. 성도님들 뉴스나 신문으로 ‘차별금지법’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모든 사람은 존중 받아야 하며,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차별했을 때에는 법적 처벌을 받게 하는 조항이 들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존중하고, 차별 없이 대해야 한다는데, 좋은 법이지 않은가요? 그런데 왜 이슈가 되고 있을까요? 차별금지법 안에 들어가 있는 한 가지 조항 때문입니다. ‘동성애자’, ‘성소수자’ 관련 차별금지에 대한 내용이 그것입니다. 그래서 초대형 교회를 비롯한 여러 교회와 목회자들, 성도들이 이 법안을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반대하는 목회자들은, 성경에는 동성애자, 성소수자가 죄인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앞으로 교회 강단에서 이들을 죄인이라 말하면 자신들이 처벌 받아야 하는 것이냐며 말합니다. 죄인을 죄인이라 말하지 못하게 하는 법이라고 말입니다.

이름만 들어도 모두가 알만한 목사들이 극도의 반대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형태의 반대이든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모든 주장의 결론은 다 같습니다. 결국 동성애자/성소수자들이 차별 받아도 상관없음을 말합니다. 어떤 좋은 말로 포장을 하더라도 결국 결론은 이성애자인 나와는 다르게 성소수자들은 차별 받아도 된다는 사실만 남습니다. 쉽게 말해서 차별하자는 말입니다. 

이러한 잘못된 주장을 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성경을 올바르게 읽지 못하고, 해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항상 이런 주장을 내세울 때는 이런 말을 가장 먼저 드러냅니다. ‘나는 성경을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 성경 글자, 일점일획 하나하나 틀리지 않았다는 주장입니다. 우리가 가진 성경 글자 그대로 믿어야 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이 주장은 명백하게 틀렸습니다. 성경이 정경화 되기까지 수십 명의 저자들이 있었습니다. 이 저자들은 사건이 벌어지면 그 사건을 자기의 가치관과 신앙관과 시선으로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수백 년의 시간이 걸리면서 또 수십 명의 편집자를 거쳤습니다.

단 한명에 의해 쓰여진 것도 아닌 성경을 어떻게 무오하다고 확신하며 말할 수 있을까요? 성경은 글자가 무오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 전체가 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 이 사랑을 위한 구원의 역사가 무오할 뿐입니다.

우리 한국기독교장로회 목사후보생 시험과 장로 시험 문제집을 보면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나옵니다. 해답의 몇 문장을 읽어드리겠습니다.

“한국기독교장로회는 개혁주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개혁주의 전통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영감을 받은 신앙인들의 고백임을 분명히 하되, 성경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는다.

성경해석은 그 안에 계시 된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밝혀내기 위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다양한 관점에서 본문을 읽고 현대 교회를 향한 진리를 드러낸다.

성경이 쓰였던 당시의 상황으로 들어가 원저자가 당대의 청중에게 전하고자 했던 말씀이 무엇이었는가를 살핀다. 즉 성경의 문맥적인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서는 히브리어, 희랍어 성경 원어를 비롯하여 역사학, 고고학 등의 도움을 받아 당시의 종교, 정치, 사회, 경제 및 국제 관계를 살펴보아 성경이 쓰인 역사적인 배경과 목적을 밝혀내는 일도 중요하다.”

이 긴 문장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영감을 받은 신앙인들의 ‘고백’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문자 그대로 읽으면 안 되고 글이 적혔던 과거의 상황들과 연관지어져 읽어야 하며, 그렇기에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실까요? 새번역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34 여자들은 교회에서는 잠자코 있어야 합니다. 여자에게는 말하는 것이 허락되어 있지 않습니다. 율법에서도 말한 대로 여자들은 복종해야 합니다. 35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으십시오.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자기에게 부끄러운 일입니다. 36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에게서 났습니까? 또는 여러분에게만 내렸습니까? 37 누구든지 자기가 예언자이거나 성령을 은사로 받은 사람이라 생각하거든, 내가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이 글이 주님의 명령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쓴 글이 주님의 명령임을 주장하면서, 여자들은 교회에서 잠자코 있으라고 말합니다.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집에 가서 자기 남편에게 물으라고 말합니다.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명백한 성차별적 내용입니다.

어떠신가요, 과연 말씀대로 입니까? 여자들은 교회에서 잠자코 침묵하고 있어야 하고, 집에 가서야 비로소 남편에게 물어야 합니까? 여자가 교회에서 무언가를 주장하면 부끄러운 일인가요? 사도 바울은 주님의 명령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님들은 성경 안에 있는 이 본문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이 드시나요?

“아, 그래 성경 말씀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으니 앞으로는 교회에서 아무런 주장도 하지 말아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시나요? 그래서 일지는 알 수 없으나 아직까지 여성이 목사가 되고, 여성이 교회 안에서 장로나 지도자가 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교단과 목회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성을 교회학교 교사로 두어 아이들을 가르치게 하는 교회들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우스운 현실입니다.

더 기가 차는 본문이 있는데요. 고린도전서 11:13-16입니다. 역시 새번역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13 여러분은 스스로 판단하여 보십시오. 여자가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은 채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겠습니까? 14 자연 그 자체가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지 않습니까? 남자가 머리를 길게 하는 것은 그에게 불명예가 되지만, 15 여자가 머리를 길게 하는 것은 그에게 영광이 되지 않습니까? 긴 머리카락은 그의 머리를 가려 주는 구실을 하는 것입니다. 16 이 문제를 두고 논쟁을 벌이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나, 그런 풍습은 우리에게도 없고, 하나님의 교회에도 없습니다.”

무슨 내용입니까? 여자는 머리카락을 짧게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입니다. 머리카락을 길러서 머리를 가리라고 말합니다. 교회가 여성의 두발을 규제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심지어 이 법은 논쟁거리 자체가 될 수 없다고 못을 박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하기에 논쟁도 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지금 우리 가운데 긴 머리를 하고 있지 않은 성도님들은 성경 말씀대로라면 죄인입니다. 불법을 행하는 성도입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성경 말씀이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고 무오하다면 대체 이런 내용들을 교회는 왜 지키고 있지 않은 걸까요? 왜 일관성 없이 성경 말씀을 적용하고 있나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노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 편한대로 성경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려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이익에 맞게, 자기 상황에 맞게만 해석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활동했던 시기는 굉장히 가부장적인 사회였습니다.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여성과 아이는 인구로 계수되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당시의 문화와 가치관에 영향을 받지 않고 살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도 이런 문화와 가치관들에 영향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한계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오늘 사도 바울의 권면을 통해 깨닫게 되는 점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과 성도들이 교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무던히 애썼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은 교회가 무질서해져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글자 그대로의 순종이 아닌, 현 시대에 맞게, 상황에 맞게 우리 교회의 질서를 만들어 가겠다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아가 오늘 본문을 통해 명백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 문화적 배경 등 때문에 사도 바울 조차도 하나님의 뜻을 온전하게 드러낼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더 겸손하게 성경 말씀, 성경의 본문들이 뜻하는 바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사도 바울이 살던 시대, 먼 과거보다 지금 시대에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의식이 더 많이 성숙되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예전보다 더 명확하고 온전하게 하나님의 뜻을 해석하는 신학자들과 목회자들, 성도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과거가 틀렸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약간의 오류도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이런 고백과 해석의 과정들이 쌓여 왔기에 오늘의 해석이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거에 왜 그렇게 했는지 보다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물어야 합니다. 과거의 신앙을 그대로 따라 사는 신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더 성숙된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도 십계명의 안식일 법을 어기셨습니다. 왜 안식일 법을 어기셨나요? ‘생명에 대한 사랑’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100% 답안지가 아닙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로 가게 하는 안내서입니다. 이 안내서를 따라, 예수님처럼 때로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만 성경의 글자적 한계를 뚫고 온전한 삶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앞에서 말씀드린 차별금지법에 대해 다행히도 우리 한국기독교장로회는 지난 수요일인 7월1일 “모두의 평등한 삶을 위하여 차별은 금지되어야 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차별금지법을 환영하는 성명서를 냈습니다. 동성애자를 비롯한 모든 성소수자들이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고, 이들도 완전한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존중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주께서는 사람을 차별해서 대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 두십시오.(에베소서6:9)”

점차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은 그 어떤 인종, 문화, 종교 그리고 그 밖의 분야에서 차별 또는 혐오로 인한 사회적인 불평등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지난 10여 년간 차별금지법이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한국 개신교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과 자비는 누구를 배제하거나 혐오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온 피조물을 위한 구원의 축복을 말하고 있음을 분명히 알고 있다. 하지만 지난 시간 한국교회는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혐오로 차별방지법의 통과를 방해 해 왔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간을 저주하고 낙인을 찍는 참담한 죄악을 저지르고 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성도님들께 권면합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온전한 삶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 한국기독교장로회 초도제일교회도 교단과 뜻을 같이 하여 차별금지법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며, 어떤 성소수자도 이성애자와 동일한 완전한 한 사람임을 고백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성소수자는 죄인이 아닙니다. 성소수자를 포함한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완전하게 창조된 사랑받는 자녀입니다.

우리 한국기독교장로회 초도제일교회는 그 어떤 차별도 용납하지 않으며, 사랑보다 우선시 될 수 있는 그 어떤 법도 없음을 이상중 목사는 선언합니다. 모두를 사랑할 수 있는 이 좋은 길, 온전한 삶의 길로 성령님은 우리를 안내하고 계십니다. 이 축복의 길을 따라 걸을 수 있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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