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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총성없는 학살은 계속되는 중라비찬드란 에마누엘 신부와의 인터뷰
신승민 목사 | 승인 2020.07.17 17:40
▲ 라비찬드란 에마누엘 신부

라비찬드란 에마누엘 신부는 타밀이 전통적으로 고국의 일부로 간주하고 있는 스리랑카 북부 자프나 교구에 속한 로마 가톨릭 신부이다. 일생 동안 자프나에서 살면서 수십 년간의 긴 전쟁과 2007-2009년의 마지막 전쟁을 경험했고, 스리랑카와 LTTE 간의 2002년 평화 프로세스도 경험했다. 2009년 전쟁이 끝났지만 지난 11년간 그는 스리랑카 보안군의 지속적인 인권침해를 고발하고 국토의 군사화에 반대하여 왔다. 그는 타밀 시민사회포럼의 대표로 자프나 대학교에서 기독교와 이슬람 문명을 가르치고 있다.

▲ 1980년대부터 2002년까지의 전쟁을 거쳐 2002년부터 2007년까지의 평화시대와 LTTE의 패배로 끝난 2007~2009년의 마지막 전쟁도 목격하셨습니다. 이제 스리랑카 국가의 군사적 승리 이후 11년이 지났는데, 이 11년을 어떻게 보시나요?

스리랑카 정부와 NGO를 포함한 외국 정부들은 스리랑카의 전쟁은 끝났고 이제 스리랑카는 자유롭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싱할라 다수와 외국 정부에게는 해당될 수 있지만, 타밀 북부와 동부에 살고 있고, 타밀 고향에 친척이 있는 타밀족에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 땅에서 철저하게 싱할라 군 통치를 받고 있는데, 전에는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1980년대~2002년 전쟁과 2002~2007년 평화시기에는 싱할라 군 통치가 전혀 없었고, 스리랑카 정부에 의한 타밀에 대한 전면적인 탄압도 없었습니다. 적어도 어느 정도의 평등과 서로에 대한 존경심이 있었고 정치적 협상의 여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평등은 없고 예속만 있으며, 존중은 없고 굴욕만 있습니다.

타밀에게는 자유도 없고 두려움만 있습니다. 모든 마을에 스리랑카 군인들이 있습니다. 일부는 제복을 또 다른 일부는 평범한 옷을 입고 있습니다. 이들은 우리를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있습니다. 이 억압적인 체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위협을 받으며, 체포되어 고문을 당하고, 여성들은 성폭행을 두려워하며 살아갑니다.

수천 명의 과부들과 전 LTTE 여성 전투원들이 있는데, 이들은 이곳에서 가장 취약한 집단입니다. LTTE는 이제 없지만 스리랑카는 타밀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스리랑카 치안부대는 그들이 원할 때,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곳에 군사캠프를 건설할 수 있습니다. 그들 마음대로 우리 땅을 지배합니다.

승려들은 이곳이 싱할라 불교국가라고 주장하면서 군부의 지원을 받아 사당을 짓습니다. 북부와 동부의 고대 타밀 고고학 유적지는 싱할라 불교 유적지로 이름이 바뀌었고, 타밀 이름은 싱할라 이름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스리랑카는 전통 타밀 마을에 원하는 대로 싱할라 정착촌을 지을 수 있습니다. 전쟁은 끝났다고 하지만 현실에서 우리가 타밀이 경험하는 것은 또 다른 전쟁입니다.

그런데도 이 시기를 정상적인 시기 또는 평화로운 시기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고통스럽습니다. 전쟁 기간 중에는 즉사하지만, 지금은 우리는 서서히 죽어 가고 있으며, 우리 땅도 그리고 우리 문화, 종교, 경제, 역사적 기억도 서서히 죽어 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서서히 불타고 있는 대량학살입니다.

구조적인 말살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승자의 평화이고, 군사력에 의해 유지되는 억압적인 평화입니다. 스리랑카의 가장 큰 지원국은 미국, 영국, 인도, 중국인데 그들이 없으면 스리랑카는 강해질 수 없고 타밀을 억압할 수도 없습니다. 이렇듯 개방된 감옥에서 사는 것이 타밀 인권침해의 원인입니다. 비무장화는 평화를 위해 필수적입니다.

▲ 타밀 지역의 군사화와 군대의 토지점거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자프나 지구에서는, 군대의 밀도가 1~5 또는 6인데, 이것은 타밀 한 가정 당 군인 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는 체첸, 카슈미르, 바그다드(미국의 침략 직전)의 군사-민간 비율을 웃도는 비율입니다. 2012년까지 스리랑카군 19개 사단 중 14개 사단이 북부에 주둔했습니다. 자프나 지구에만 117개의 중소·대규모 군사캠프가 있으며, 이 곳에는 팔라리 지역에서 가장 큰 보안구역도 있습니다.

자프나 지구 사무국에 따르면 지역 군사화로 인해 8,500명의 농지 소유농이 땅을 빼앗겼습니다. 북부 물라이테부 지구에는 인구가 12만 명인데 6만명의 병사가 주둔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타밀 2명당 1명의 병사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상황을 이 세상 어디에서 볼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군인들의 가족을 수용하기 위해 북부와 동부의 일부 지역의 군사기지 옆에 군인가족숙소를 짓고 있습니다. 북과 동에 최소한 15만명의 보안군 병력이 있는데 이는 스리랑카 보안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병력입니다.

군사화의 과정은 본질적으로 광대한 민간토지의 대규모 취득과 맞물려 있습니다. 북과 동에 있는 총 18,000㎢ 중 보안군은 7000㎢의 땅을 취득했습니다. 스리랑카는 영국 식민지 정부가 싱할라 지배 엘리트들과 협력하여 도입한 1935년 토지개발조례를 근거로 군부의 토지점거를 정당화합니다. 이 법에 따르면, 국가가 토지를 점거하여 개발사업과 정착지를 건설할 수 있습니다. 이 점거과정에서 타밀은 차별 받고 싱할라는 특권을 가집니다.

이 땅에서 군대는 군사시설유지와 더불어 영농, 식량가공, 지역관광객을 위한 주택공급 등의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 땅들 중 일부는 타밀 주거지라는 점입니다. 게다가 자프나 지구의 발리카맘에서 4,589ac(에이커)에 이르는 가장 비옥한 땅은 수십 년 동안 군부에 의해 점령되어 왔습니다. 스리랑카 해군은 어업에 종사합니다. 물리쿨람과 마요르디는 풍부한 어장인데, 원래 거주자인 타밀에게는 출입이 금지된 상태입니다. 치안부대는 관광업에도 종사하며 칸카산타라이와 춘디쿰에 관광리조트를 건설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지역에서 다양한 식당, 미니 슈퍼마켓, 이발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중 일부는 남북을 잇는 A9 간선도로와 인접해 있으며 매일 수천 명의 국내외 관광객들이 자주 이용하는 도로입니다. 군은 이 외에도 대규모 농장과 전쟁박물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영구적인 구조물들이 이 비즈니스-군사 복합단지의 일부로 건설되었습니다. 북부 킬리노치 지구에만 현대기술을 이용해 콩, 옥수수, 땅콩 등을 재배하는 군농장이 12곳, 이들 농장에 2500여 명이 취업해 있습니다.

이들 중 일부는 LTTE 출신 전투원인데, 농장 노동자의 대다수는 여성입니다. 킬리노치 지구는 농경지대로 토양과 수자원이 매우 좋지만, 전쟁으로 인해 대부분의 마을들은 파괴되었습니다. 군부가 농업을 비롯한 많은 사업을 독점하기 때문에 이 지역에 정착한 타밀은 거의 생계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농사를 시작한 소수의 타밀 농민들도 군에서 운영하는 농장의 낮은 생산단가와 경쟁할 수 없습니다. 군은 저렴한 노동력과 대규모 농작을 통해 저렴하게 이들 농산물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타밀에 대한 총체적 예속은 이렇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가장 굴욕적인 것은 매일 수천 명의 싱할라 관광객들이 이 지역에 온다는 것입니다. 일부는 군인들이 관리하는 보안구역의 거처에 머무릅니다. 그러나 이 집들의 소유주인 타밀은 그곳에 갈 수가 없습니다. 타밀은 이렇게 계속해서 영구 실향민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싱할라 관광객들이 그들의 집을 어떻게 점령하는지 매일 보고 있습니다.

▲ 전쟁에서 죽고 고문당하고 강간당하고 실종된 사람들에 대한 정의의 회복과정은 어떤가요? 스리랑카에 대한 유엔 인권이사회 결의가 스리랑카의 인권상황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었는가요?

아니요, 전쟁 막지막 단계에서 희생된 이들에 대한 공식적인 정의회복과정은 없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스리랑카는 지금 유엔 결의안에서 탈퇴했습니다. 전쟁의 마지막 단계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하여 책임지기 위하여 미국과 스리랑카가 협력하여 이 결의안을 만들었지만, 불행한 사실은 이 결의안이 법적 구속력이 없고 스리랑카 정부에게 인권침해에 대한 조사임무를 맡겼다는 점입니다. 가해자가 자신의 범죄를 조사할 수 있습니까?

또한 이 결의안은 개별적인 인권침해를 다루는 것으로 축소되었습니다. 한 국가로서의 타밀의 집단적 권리와 땅에 대한 그들의 권리는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타밀이 전쟁의 마지막 단계에서 겪은 집단적 파괴는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국제사회는 유엔 결의안을 통해 사법정의를 약속했지만, 정치적 정의는 이행되지 않았습니다. 이 약속은 이렇게 들렸습니다.

“국가로서의 권리, 국토에 대한 권리, 자기결정권에 대해 말하지 말라. 우리는 실종된 된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냄으로써 사법적 정의를 이루어 낼 것이다. 우리는 당신들의 땅을 되찾아 줄 것이다. …”

처음에는 많은 타밀들이 이 유엔 결의안을 믿었지만, 이제는 또 다시 속았다고 믿습니다. 사법적 정의도, 정치적 정의도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국제사회는 스리랑카 정부에 대해 도덕적, 법률적, 경제적, 외교적,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지 않습니다. 대신 매년 미국과 스리랑카 군대 간 합동 군사훈련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인도,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은 스리랑카의 계속되는 인권침해에 대해 문제제기 하지 않고 다양한 개발 프로젝트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스리랑카 보안군은 완전한 면책특권 아래서 살고 있습니다. 스리랑카는 무슬림뿐만 아니라 타밀에 대한 싱할라 인종차별 정책을 계속 유지하고 있습니다. 스리랑카 북부와 동부의 실정에 대해 한국 내의 시민사회단체들이 목소리를 내 주었으면 합니다.

▲ 스리랑카의 기독교와 이슬람 공동체의 상황은 어떠합니까?

2009년 스리랑카 정부가 LTTE에 대한 군사적 승리를 거둔 후, 싱할라 불교 인종주의는 절정에 달했습니다. 섬 전체가 싱할라 불자의 것이라는 믿음이 매우 강해졌고, 2010년 이후 이러한 싱할라 불교 승리론자들과 불교 인종차별주의 단체들에 의한 무슬림 공격이 증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 교회들도 공격을 받았지만,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는 스리랑카 보안군과 싱할라 인종주의 단체들에게 면책특권이 주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싱할라가 아닌 이들을 공격하는 것은 국가적 영웅주의로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이것은 싱할라들에게도 비극적인 일입니다. 그들 자녀들에게 어떤 도덕적인 가치를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타밀이 싱할라 지배에 억눌려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싱할라가 불쌍합니다. 그들은 도덕적 양심을 잃었습니다. 불행히도 2019년 부활절 주일에 교회를 공격한 것은 반 이슬람 정서를 증가시켰습니다. 기독교인과 이슬람교도 사이에 새로운 분열이 생겼습니다. 이것은 타밀족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스리랑카의 기독교인들은 싱할라와 타밀입니다. 이러한 스리랑카 분열의 최종 결말은 국가안보라는 명분으로 스리랑카의 군사화를 더 강화하고 정당화하는 것입니다. 군사력에 의존하는 억압적이고 인종차별적인 국가는 국민을 서로 의심하며 살게 합니다.

타밀과 무슬림이 서로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함께 모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사실, 타밀의 힌두교, 이슬람교, 기독교 지역에 위치한 모든 군대캠프에는 불교사당이 있습니다. 새로 지어지는 모든 불교 사당은 군대의 보호를 받습니다. 이런 종류의 불교는 두려움을 퍼뜨리고 탄압을 정당화합니다.

그러나 내가 이해하는 진정한 불교는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연민을 전파하며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합니다. 스리랑카는 위대한 불교의 가르침을 인종주의적이고 군국주의적인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천주교 신부로서 저는 부처님을 대단히 존경하지만 군사화된 인종차별주의 싱할라 불교에 저항합니다.

몇몇 한국의 승려들이 싱할라 스님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스리랑카에 자주 옵니다. 한반도에서의 전쟁과 군사화에 반대하면서 스리랑카의 인종차별과 군사화에 반대하는 한국 불교인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는 이러한 종류의 군사화와 인종차별이 불교, 기독교, 힌두교, 이슬람교 등 모든 종교의 최고의 가치를 파괴하기 때문에 종교를 진정으로 따르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모여야 한다고 믿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에서 두려움을 떨쳐내고, 인간의 존엄성을 확립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이 종교의 역할입니다.

▲ 신부님이 우리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매우 우울하고 희망이 없어 보이는데, 교회 지도자로서 주민들에게 어떤 희망을 주십니까?

네, 제 이야기는 우울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희망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탄압과 토지점거, 군사화에 계속 저항하고 있습니다. 전쟁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기억하도록 허락되지 않지만, 군과 경찰의 지속적인 위협 속에서 그들을 추모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지난 11년 동안 매년 우리는 물리바이칼 기념일, 즉 5월 18일에 있었던 우리 민족의 마지막 학살일을 기억해 왔습니다.

물리바이칼은 2009년 수천 명의 타밀이 마지막으로 학살된 곳입니다. 스리랑카에게는 군사적인 승리의 날이지만 타밀에게 이 날은 참담한 죽음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들을 기억함으로써 우리는 저항하고 희망을 지킵니다. 그뿐만 아니라 스리랑카 보안군에 의해 희생된 수천 명의 가족들은 스리랑카 정부를 향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진실을 말하라고 요구해 왔습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군에 의해 토지를 빼앗긴 사람들은 수 개월 이상 시위를 벌여왔습니다. 그들은 투쟁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희망입니다. 재판 없이 구금된 정치범들은 지금도 저항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희망입니다.

이 땅에 전쟁의 영향을 받지 않은 가족은 단 한 가족도 없습니다. 죽도록 견디기 힘든 인명 희생 후에도 우리는 대규모 군사화에 맞서 함께 항의하고 있습니다. 저는 인간의 정신은 파괴될 수 없으며,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과 저항 속에서 우리와 함께 있다고 믿습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저는 부활을 믿습니다. 우리는 상실의 고통 속에 있지만,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해방의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우리는 정의를 향한 우리 공동체의 개인적, 집단적 행위를 통해 이러한 희망을 경험합니다. 초기 기독교공동체는 예수에 대한 신앙과 하나님의 영에 의해 힘을 얻었으며, 로마 제국 하에서 잔인하게 죽음을 당했어도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으로부터 높임을 받고 하나님 안에 살아 계시다고 체험적으로 믿었습니다. 즉, 예수를 믿었던 공동체가 그들의 신앙과 하나님의 도움으로 예수의 부활을 가능한 현실로 만들어준 것입니다.

우리는 정의를 바라며 계속 투쟁할 것입니다. 우리의 투쟁은 싱할라의 복수가 아니라 정의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스리랑카 정부와 타밀과의 전쟁을 지지해 온 스리랑카 남부 싱할라 기독교인들에게 저는 이 점을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투쟁의 최종 목표는 화해이지만 범죄를 은폐하고 우리 민족의 억압과 비인간화를 정당화하는 값싼 화해는 아닙니다. 스리랑카와 세계 강대국들은 우리가 과거를 잊고 집단적인 정치적 포부를 포기하기를 원합니다. 진정한 화해는 십자가의 발끝에서 시작됩니다. 이는 화해의 출발이 정의, 평등, 자유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나라도 다른 나라보다 열등하게 또는 우월하게 대우받아서는 안됩니다. 싱할라들은 그들의 땅에서 두려움 없이 살고 싶어하고 우리 타밀도 우리 땅에서 살고자 하는 기본적인 인간의 열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평화의 토대는 이러한 인식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당신의 존엄성을 인정받기를 원한다면 당신의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고 이웃의 존엄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나는 이것이 한반도의 남북 사이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신승민 목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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