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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기를 살았던 한 사람의 비극채수일 목사의 성경 인물 탐구 16
채수일 목사(경동교회) | 승인 2020.07.21 10:05

지파동맹에서 왕정으로의 발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서 정착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왕정(王政)이 시작될 때까지 약 200여 년 동안은 느슨하게 조직된 12지파의 동맹체제 아래에 있었습니다. 중앙정부나 국가체제가 아직 형성되지 않았던 것이지요. 이런 지파 동맹체제는 ‘야곱의 12 아들들’의 혈연을 중심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각 지파들이 차지한 영토를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지파 동맹체제가 심각하게 위협을 받게 된 것은 블레셋인들의 침략 때문이었습니다. 가나안 거민들을 지배했던 호전적인 귀족계급이자 강력한 군사적 전통을 갖고 있던 블레셋인들의 침략은 느슨한 지파동맹체제로서는 대처할 수 없을 만큼 강력했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을 침략한 것은 이스라엘이 해안으로부터 내륙으로 통하는 교역로의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블레셋인들은 철과 제철기술을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수한 병기들, 특별히 병거로 무장하고 훈련이 잘 된 병사들이었습니다.

결정적인 전투는 주전 1050년, 해안 평야의 가장자리에 있는 아벡 부근에서 벌어졌는데, 결과는 이스라엘의 대패였습니다. 아벡 벌판에서 전사한 이스라엘 사람은 4000명쯤 되었습니다(삼상 4,2). 패전의 이유가 실로에 있는 언약궤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실로에서 언약궤를 가져옵니다. 이에 놀란 블레셋인들이 다시 공격, 이스라엘은 크게 패하여, 보병 30000명이 전사하고 살아남은 이스라엘 군대는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언약궤를 모시던 제사장이자 엘리의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도 살해되었고, 언약궤도 블레셋 인들에게 빼앗겼습니다(삼상 4,10-11).

후에는 중앙 성소가 있던 실로도 파괴되었고, 군대는 무장해제 당했습니다. 전략적인 요충지마다 블레셋인들이 배치되었고, 그들은 이스라엘이 갖고 있던 금속공장을 모두 빼앗고, 철과 관계된 모든 용역을 블레셋인 대장장이들에게 의존하도록 만들었습니다(삼상 13,19-22).

이 어둡고 고통스러운 시대, 이스라엘을 이끌어 나간 지도자는 사무엘이었습니다. 사무엘은 지역 성소들을 돌면서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의 분쟁을 중재하면서 사사로서 활동하였습니다(삼상 7,15-17). 그러나 사무엘은 나이가 들게 되었고, 그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길을 따라 살지 않고, 돈벌이에만 정신이 팔려, 뇌물을 받고서, 치우치게 재판을 하였다”(삼상 8,1-3)고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사무엘을 찾아가 “왕을 세워 달라”(삼상 8,5)고 부탁하고, 사무엘은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사울을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으로 세운 것입니다.

그러면 사울은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① 겸손한 사울: 사무엘기의 보도에 의하면 사울은 열두 지파 가운데 베냐민 지파에 속한 “잘 생긴 젊은이였고,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그보다 더 잘생긴 사람이 없었으며, 키도 보통 사람들보다 어깨 위만큼은 더 컸다.”(삼상 9,2)고 합니다.

어느 날 잃어버린 암나귀 몇 마리를 찾아 나선 사울이 숩 지방의 산당에 거하는 사무엘을 만나는데,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우라고 지시하십니다(삼상 9,16). 이 말씀을 들은 사무엘은 사울에게 말합니다: “지금, 온 이스라엘 사람들의 기대가 누구에게 걸려 있는지 아십니까? 바로 그대와 그대 아버지의 온 집안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대답합니다: “저는 이스라엘 지파들 가운데서도 가장 작은 베냐민 지파 사람이 아닙니까? 그리고 저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의 모든 가족 가운데서도 가장 보잘것없는데, 어찌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삼상 9,20-21)

사울은 결코 스스로 왕이 되겠다고 나선 인물이 아닙니다. 사무엘이 사울을 왕으로 삼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을 모으고 지파들 가운데서 후보자를 찾아갈 때, 사울은 짐짝 사이에 숨었다고 합니다(삼상 10,22). 사람들이 달려가 그를 데리고 나와야 했습니다. 환호하면서 사울을 왕으로 맞아드린 사람들도 있었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런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할 수 있겠느냐? gk고 떠들면서, 그를 업신여기고, 그에게 예물도 바치지 않았다. 그러나 사울은 못 들은 척 하였다.”(삼상 10,27)고 합니다.

② 전사 사울: 일부 지파들의 반대와 비난에도 불구하고, 사울이 사무엘 선지자의 지명과 대중의 환호를 받으면서 왕으로 즉위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사울이 암몬 족속을 쳐 이겼고(삼상 11장), 이전의 사사들과 마찬가지로 카리스마적 자질을 드러내 보였기 때문입니다.

암몬 족의 나하스는 이스라엘의 어려운 처지를 틈타 요단 동편의 이스라엘 영토를 침입해서 길르앗의 야베스를 포위하고 치욕적이고 냉혹한 항복조건을 제시했습니다: “내가 너희의 오른쪽 눈을 모조리 빼겠다. 온 이스라엘을 이같이 모욕하는 조건에서만 너희와 조약을 맺겠다.”(삼상 11,2)

이 소식이 사울에게 알려지자, 그는 “하나님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어”, 밭을 가는데 사용하던 겨릿소를 두 마리를 잡아 여러 토막으로 자른 다음, 그 조각들을 각 지파의 씨족들에게 나누면서 말합니다: “누구든지 사울과 사무엘을 따라나서지 않으면, 그 집의 소들도 이런 꼴을 당할 것이다.”(삼상 11,7)

전령의 소식을 들은 각 지파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파병을 했고, 사울은 이들과 함께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사울이 왕이 되는 것을 비난했던 사람들을 쳐서 죽이겠다고 백성이 나섰으나, 사울은 이를 말립니다: “오늘은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여 주신 날이오. 오늘은 사람을 죽이지 못하오.”(삼상 11,13)

사무엘은 길갈로 가서 다시 한 번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임을 선포하고(삼상 11,15), 이로써 사울은 명실상부하게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나머지 삶은 사방에 있는 원수들과의 치열한 전쟁으로 점철되었습니다. 그는 모입과 암몬 자손과 에돔과 소바 왕들과 블레셋 사람들과 맞서 싸웠고, 아말렉까지 쳐서 용맹을 떨쳤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 아히노암과의 사이에서 요나단과 리스위와 말기수아라는 세 아들과 메랍과 미갈이라는 두 딸을 두었습니다(삼상 14,47-52).

③ 우울증 환자 사울: 그러나 사울은 개인적으로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그랬는지, 후에 병을 얻은 것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무엘기는 사울이 주님의 명을 따르지 않자, 하나님이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셨고, 사울은 괴로운 마음으로 밤새도록 주님께 부르짖었다(삼상 15,10-11)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신 후부터 그의 우울증이 더욱 심해졌으리라고 추정합니다. 사무엘기는 덧붙여 “주님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났고, 그 대신에 주님께서 보내신 악한 영이 사울을 괴롭혔다.”(삼상 16,14)고 합니다.

악한 영을 음악으로 진정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신하들은 사울 왕이 악한 영에게 괴롭힘을 당할 때, 수금을 타면 왕이 나을 것이라고 충언합니다. 신하들의 말에 사울은 수금을 잘 타는 음악가를 찾았고, 이 때 다윗이 선발되어 사울의 궁정음악가가 됩니다. 사무엘기는 다윗이 “수금을 잘 탈 뿐만 아니라, 용사이며, 용감한 군인이며, 말도 잘하고, 외모도 좋은 사람인데다가,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는 사람”이었다고 보도함으로써 사울과의 갈등을 예견합니다(삼상 16,18).

사울의 정신병은 다윗과 자신이 비교당하면서 더욱 심화됩니다. 블레셋 대장 골리앗을 물리치고 돌아올 때, 백성은 노래불렀습니다: “사울은 수천 명을 죽이고, 다윗은 수 만 명을 죽였다.” 이 노래에 몹시 언짢아 화가 치밀어 오른 사울은, ‘사람들이 다윗에게 수만 명을 돌리고, 나에게는 수천 명만을 돌렸으니, 이제 그에게 더 돌아갈 것은 이 왕의 자리밖에 없겠군!’하고 투덜거렸습니다(삼상 18,7-8). 그 날부터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고 의심하기 시작했고, 하나님이 보내신 악한 영이 그를 덮치자, 미친 듯이 헛소리를 질렀다고 합니다. 사울을 진정시키기 위해 수금을 타고 있는 다윗에게 사울은 창을 던져 죽이려고 했지만, 다윗은 두 번이나 겨우 몸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사울을 피한 다윗이 라마의 나욧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죽이기 위해 출정한 사울에게 하나님의 영이 내리자, 그는 계속하여 춤추고 소리치며, 열광 상태에서 예언을 하며 걸었고, 사무엘 앞에서는 옷까지 벗어 버리고 춤추고 소리치면서 예언을 하고 나서, 그날 하루 밤낮을 벗은 몸으로 쓰러져 있었다는 보도도(삼상 19,23-24) 사울의 정신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음을 보여줍니다. 심지어 친구 다윗을 죽이려는 아버지 사울에게 항의하는 아들 요나단을 찔러 죽이려고 사울은 창을 뽑아 겨냥하기도 했습니다(삼상 20,32-33).

두 번이나 자신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죽이지 않은 다윗에 대한 사울의 태도도 그의 조울증 증세를 보여줍니다. 잠든 사울 왕의 겉옷자락만 자르고 손을 대지 않았다는 다윗의 말을 듣고 사울은 목놓아 울면서 말합니다: “나는 너를 괴롭혔는데, 너는 내게 이렇게 잘 해주었으니, 네가 나보다 의로운 사람이다. 주님께서 나를 네 손에 넘겨주셨으나, 너는 나를 죽이지 않았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오늘 너는, 네가 나를 얼마나 끔찍히 생각하는지를 내게 보여 주었다. 도대체 누가 자기의 원수를 붙잡고서도 무사히 제 길을 가도록 놓아 보내겠느냐? 네가 오늘 내게 이렇게 잘 해주었으니, 주님께서 너에게 선으로 갚아주시기 바란다. 나도 분명히 안다. 너는 틀림없이 왕이 될 것이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서 굳게 설 것이다.”(삼상 24,16-20; 26,21-25).

▲ Rembrandt, 「Saul and David(사울과 다윗)」 ⓒWikipedia

사울의 최후: 사울의 우울증 증세만이 아니라, 사울의 최후도 비극적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치기 위해 모든 부대를 수넴에 집결시킵니다. 사울도 온 이스라엘 군을 집결시켜, 길보아 산에 진을 쳤습니다. 사울은 블레셋 군의 진을 보고, 두려워서 마음이 몹시 떨렸습니다. 사울은 주님께 기도했으나, 주님은 그에게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예언자로도 대답하여 주지 않으셨습니다.”(삼상 28,6).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한 사울, 변장하고 신분을 감춘 채, 엔돌에 있는 무당을 찾아갑니다. 무당을 통해 죽은 사무엘의 영을 불러냅니다. 땅 속에서 올라온 사무엘의 영이 말합니다: “당신이 왜 나를 불러올려 귀찮게 하시오?

사울이 대답합니다: “제가 매우 궁지에 몰려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이 지금 저를 치고 있는데, 하나님이 이미 저에게서 떠나셨고, 예언자로도, 꿈으로도, 더 이상 저에게 응답을 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제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싶어서, 이처럼 어른을 뵙도록 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사무엘이 책망하며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이제 당신과 함께 이스라엘도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주실 터인데, 당신은 내일 당신 자식들과 함께 내가 있는 이곳으로 오게 될 것이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군대도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주실 것이오.”

그러자 사울은 갑자기 그 자리에서 쓰러져 땅바닥에 벌렁 넘어졌습니다. 사무엘의 말을 듣고서 너무나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그는 그 날 하루 종일, 그리고 밤새도록 굶어서 힘마저 쭉 빠져 있었다고 합니다(삼상 28, 19-20).

엔돌의 무당이 불러낸 사무엘의 영혼의 신탁을 듣고 사울은 최후의 전투에 나섭니다. 이미 승패가 결정된 전투, 자신과 자식들의 죽음이 확정된 절망적인 전투에 나서게 된 것이지요. 왜 사울이 자신에게 불리한 지형에서 압도적인 강적과 전투를 준비했는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자포자기 상태에 이르러 최후의 도박을 하려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사울은 길보아 산 전투에서 화살을 맞고 중상을 입습니다. 적에게 능욕을 당하기 전에 무기 담당 병사에게 자신을 죽이라고 명령하지만, 겁이 난 병사는 그를 찌르지 못합니다. 사울은 자기 칼을 뽑아서, 그 위에 엎어짐으로써, 세 아들과 함께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사울의 목을 자르고, 그의 갑옷을 벗긴 다음에, 블레셋 땅 사방으로 전령을 보내 승리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런 다음 사울의 갑옷은 아스다롯의 신전에 보관하고, 그의 주검은 벳산 성벽에 매달아 두었습니다. 길르앗 야베스의 주민들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밤에 몰래 사울의 주검과 아들들의 시체를 가져와 화장하여 야베스에 있는 에셀 나무 아래에 묻고, 이레 동안 금식하였다고 합니다(삼상 31,1-13).

사울에 대한 평가: 사울은 비극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준수한 외모를 가졌고, 겸손했으며, 자신의 전성기에도 도량이 넓고 기꺼이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기도 했으며, 언제나 대담하고 용감했지만, 자신을 파멸로 이끌었던 정서 불안이 있었습니다. 언제나 흥분하여 격노하기 일쑤인 변덕스러운 성미 때문에, 압박감을 느끼면 암울한 기분에 빠졌다가, 잠시 평정을 되찾는 상태를 왔다 갔다 하면서 정신이 시계추처럼 흔들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평생을 전쟁과 전투 속에서 지도자로서 카리스마적인 자질을 극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무서운 긴장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지파 동맹의 힘을 빌려 전쟁을 해야 했지만, 지파들은 독립심이 강했기 때문에 실제적인 권한도 행사할 수 없었습니다. 자기 세 아들들과 자신의 소수 가신들을 제외하고는 신뢰할 만한 전투부대를 편성하여 싸움터로 이끌고 나갈 수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선지자 사무엘과의 불화도 그에게 크게 불리했습니다. 두 사람의 불화는 사무엘을 기다리다 못해 사울이 스스로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가져다가 번제를 올린 것이 발단이었습니다(삼상 13,8-9). 사울이 제사장 직무를 남용했다는 것이지요. 또 아말렉 족을 진멸시키지 않았다는 것도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의 파멸의 근본적인 원인은 새로운 체제가 옛 체제의 유지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 사무엘과 좀 더 폭넓은 권한을 가지려고 했던 사울 사이의 갈등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은 공공연하게 사울의 지명을 취소했고, 이런 조치는 사울의 몰락을 가속화시켰던 것입니다.

스스로 지도자가 되겠다고 나선 인물도 아니고, 겸손하면서도 준수하고, 용감했던 전사, 그러나 부족들의 전폭적인 지원도, 제사장의 지지도 받지 못해, 자기 부족만을 이끌고 평생을 전쟁과 전투라는 극심한 긴장 속에서 살아야 했다면, 사울 아니라, 누구라도 정신분열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가 평생 믿고 의지한 하나님마저 자신을 버려 응답하지 않으신다는 생각에 휩싸였을 때, 그가 엔돌에 있는 무당을 찾아가 죽은 사무엘의 혼을 불러냈다는 것도 이해할 만합니다. 그러나 사울은 패배와 죽음이 확실한 전투에 나갔고, 화살을 맞아 중상을 입은 후, 적에게 치욕을 당하기 전에 자결을 선택한 전사였습니다.

우리는 사울 왕에게서, 역사적 전환기에 하나님에게 쓰임 받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비극적인 지도자의 전형을 봅니다. 아무리 영웅적이고 위대한 삶을 산다고 해도,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는 것만큼 비극적인 삶은 없을 것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선택한 인간이 어떻게 파멸에 이르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일 것입니다.

채수일 목사(경동교회)  sooil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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