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말씀의 잔치 Sermonday
예수님의 질문사람 살리는 일에 분노한 사람들, 사람들(사 56,1-8; 눅 6,6-11)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0.07.23 17:20
▲ 예수께서 손마른 사람을 회당에서 안식일에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고쳐주셨다. ⓒGetty Image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병 고치는 일들을 자주 하셨고, 그때마다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일이 회당에서 이루어진 탓입니다. 이런 일이 그날도 일어났습니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 가셨을 때 한쪽 손이 마른 사람이 거기 있었습니다. 안식일이니 거기에는 서기관과 바리새파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평소 예수를 감시하던 사람들이니 그들에게는 손마른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 예수를 엮을 호재였을 것입니다. 그들을 여러 차례 겪어온 예수이시니 그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를 모르실리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께서는 시끄러워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그 자리에서는 가만히 계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번번이 그리 하지 않으셨고 이번에도 다르지 않으셨습니다.

팽팽한 긴장 속에서 예수께서는 그를 사람들 가운데 서게 하셨습니다. 고발하려는 사람들 외의 사람들은 긴장하며 호기심 섞인 눈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예수께서는 그리 하셨을까요? 예수는 그들을 향해 질문을 던집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살리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누구나 답할 수 있는 질문입니다. 그런데 이 질문은 안식일 일하지 말라는 명령과 연관해서 생각하면 잠시 주춤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를 일하다는 관점에서 볼 것인지 선악의 관점에서 볼 것인지를 생각해야겠기 때문입니다. 전자의 관점에서 보면 질문과 규정이 충돌할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후자의 관점에서는 곧 답할 수 있습니다. 안식일 아니라 어느 때도 악을 행하는 것이나 죽이는 것은 해선 안 될 일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질문에는 물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손이 마른 것은 생명과는 직접 관계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악을 말씀하시고 죽이는 것을 말씀하셨을까? 아마도 이 사안과 관련해서만 묻는다면 선을 행하는 것과 행하지 않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는 정도로 물을 수 있습니다. 선을 행할 수 있을 때 행하지 않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일까요?

잠언 3,27에는 ‘네 손에 선을 베풀 힘이 있을 때 그 선의 주인에게서 선을 거두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께는 그 손을 고칠 힘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순간 그 선의 주인은 바로 손이 마른 사람입니다. 이를 따르면 예수께서는 그를 고쳐주는 것이 되지만 그는 마치 주인처럼 받을 것을 받는 셈이 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돌려주어야 할 것을 돌려주지 않는다면, 악을 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는 그의 손이 말랐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속으로 무척 힘들었을 것입니다. 몸으로 일하기도 만만치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생명을 온전히 발현시키지 못한 채 살아왔을 것입니다.

그의 손을 고쳐준다는 것은 그의 몸과 마음을 회복시키고 생명의 기쁨을 누리게 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를 계속 죽음의 그늘 아래 방치해두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하는 것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인가요?

안식일이 일하는 것을 멈추는 날인 것은 맞습니다. 그날은 일하는 사람들과 가축들을 쉴 수 있게 하는 날입니다. 쉼이 없으면, 사람은 일에 지쳐 사람됨을 잃고 생명력을 손상당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날 일하는 사람들이 쉴 수 있도록 그들에게 일시키는 사람들 자신이 그날 쉬어야 합니다.

이처럼 6일 동안 힘써 생업에 종사하고 7일에는 생업으로부터 손을 떼라는 것이 안식일 규정입니다. 이 규정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사회체제가 이를 뒷받침해야 합니다. 동시에 그것은 일시키는 사람에게 돈 벌 욕구를 잠시 멈추고 타인의 사람됨과 생명을 돌아보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것이 보다 근본적인 안식일의 의미입니다. 그러나 안식일의 본래 취지를 잃어버린 세대는 일이 무엇인지 규정하고 그런 일을 하냐 안하냐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 사라지고 타인에 대한 감시만 늘었습니다.

예수의 질문은 이러한 현실을 들추어내고 쉼의 날이 살림의 날임을 다시 일깨웁니다. 그러나 빗나간 규정에 얽매인 사람들은 예수의 자유를 두려워하고 그에 분노합니다. 제도의 불의가 드러나는 것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자신들의 기득권이 부정당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생명에 대한 외경이 없고 사람에 대한 애정을 상실한 자들이기에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예수에게 분노합니다. 우리에게 이 날은 과연 어떤 날인지요? 나를 살리고 너를 살리는 쉼의 날이 되기를 빕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정의를 굳게 잡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선언하십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그 사람은 안식일을 더럽히는 것으로부터 안식일을 ‘지키고’ 온갖 악을 행하는 것으로부터 자기 손을 ‘지킴’으로써 정의를 굳게 붙듭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일과 악을 행하는 일은 양립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모든 사람에게 외면당하는 고자들과 이방인에게도 그 복의 선언은 유효하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안식일과 자기 손을 지키는 고자들을 하나님의 아들이나 딸들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보다 낫게 만들고 그렇게 하는 이방인들을 하나님의 집에서 기쁘게 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우리는 예수의 이 사건에서 그 약속이 실현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방인이었던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그 은총의 약속이 실현될 것입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을 막고 생명을 살리는 일을 금지하는 것은 안식일을 더럽히고 악을 행하는 것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바로 이 점을 그 질문을 통해 우리에게 일깨워주십니다. 우리에게 선을 베풀 힘이 있을 때 안식일이라고 그것을 막을 법은 성서에 없습니다. 쉼의 날에 선을 베풀고 생명을 살린다면 그 날은 다시 우리를 살리는 날이 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 몸에 새기운이 흐르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맑고 기쁘게 하실 것입니다. 거기서 우리는 주님이 원하시는 쉼을 맛볼 것입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상기 목사(백합교회)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윤인중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윤인중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0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