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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길·삶의 일치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0.07.26 15:47
▲ 자신이 걷는 길과 하나님의 요구가 합치하는지 돌아보라. ⓒGetty Image
만군의 야훼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너희 길에 마음을 두라.(학개 1,5=7)

학개는 포로들이 귀환한 후에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대략 반세기만에 자기 땅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성전 건축을 시작하지만 기초만 놓은 채 비유대계 그 땅 주민들의 방해로 성전재건은 중단되었습니다. 15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성전에 대한 열망은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때 학개가 등장했습니다. 사람들은 아마도 정치적 이유로 성전재건을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성전없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거기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는지도 모릅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누구나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계기가 없으면, 그 상태에서 좀처럼 벗어나기가 어렵습니다. 성전재건은 정치적 이유로 문제가 되고 정치적 결정에 의해 중단되었기 때문에 성전재건 재개도 다분히 정치적 의미를 갖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시 성전재건에 투신하려면 계기가 필요했고, 그 계기는 학개와 스가랴 같은 예언자들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학개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은 의외입니다. 옛날 다윗이 성전을 짓고자 했을 때는 하나님께서 그런 것을 요구한 적이 있었냐고 하시면서 짓고자 하는 다윗에게 복을 베푸셨습니다.

지금은 반대 상황입니다. 아직 지을 마음이 없는 사람들을 채근하시며 위와 같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너희 길에 마음을 두라. 지금 그들이 걷고 있는 길에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성전 재건에 대한 마음이 없다고 이렇게 말하면 좀 지나쳐 보일 수도 있습니다. ‘성전이 있음’을 안전의 표지로 생각했던 포로기 이전 사람들을 비교하면, ‘성전이 없음’에도 평안할 수 있는 지금이니, 양자 사이에는 참으로 큰  격차가 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릴 때 그것은 하나님을 지시하고 하나님을 향하게 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이 기능과 연관해서 보면 양자가 모두 하나님에게서 멀다는 공통된 문제점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너희 마음을 너희 길에 두라고 하십니다.

이를 자신의 행위를 살펴보라는 말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3-8절을 보면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과거보다는 미래에 적용되는 말이라면, 그것은 마음이 원하는 것과 가는 길이 합치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반성을 포함하지만, 그에 바탕해서 마음과 길을 일치시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학개의 말에 따르면, 마음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 길입니다. 성전 건축 자체보다는 성전을 넘어 그 이름의 주인인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 기억이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께 가까이 이끌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과 길/삶의 일치를 이루는 것이 오늘 우리의 과제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우리의 삶에 싣고 만족과 충만함을 얻는 오늘이기를.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그 마음이 우리의 길을 만들어가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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