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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림이 있는가“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마태복음 10:34-39)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0.07.28 17:20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성도님들께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것들을 의지함으로 평안을 구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드렸는데요.

근래에 제가 눈에 보여 지고, 만져지는 것들로 평안을 구하며 살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 언제라도 사라질 수 있는 것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이처럼 언제라도 사라질 수 있고, 잃어버릴 수 있는 것들을 의지하고 산다면, 우리는 늘 불안하고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불완전한 평안이 아닌, 참 평안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참 평안을 구하고 누리실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수요예배 시간에 나누는 사도행전 말씀과 뉴스를 통해 접하는 목사들의 부끄러운 소식 때문에 한 주간 ‘목사’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역할이 무엇인지 묵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주중에 공금횡령과 성범죄를 저지른 한 목사의 소식을 들었는데요. 이 목사의 문제를 다루기 위한 토론회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토론회 당일 이 목사가 담당하는 교회 교역자들과 성도들이 토론회장으로 찾아와 토론회를 무산시키기 위한 무력행사를 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우리 목사님 죄 없어요.”, “우리가 좋다는데 뭐가 문제냐!” 등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해주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마태복음 18:6-7의 말씀입니다. “6 나를 믿는 이 작은 사람 가운데서 하나라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차라리 그 목에 큰 맷돌을 달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편이 낫다. 7 사람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 때문에 세상에는 화가 있다.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을 일으키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

이 뉴스에 나오는 목사는 스스로 범죄하였을 뿐 아니라 성도들까지도 걸려 넘어지게 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또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안타깝고, 슬펐습니다. 이 목사가 조금이라도 말씀을 진지하게 스스로에게 대했다면, 말씀으로 자신의 삶을 바라보았다면 이런 일이 생겼을까 싶었습니다.

이런 뉴스를 들을 때마다 ‘나는 저 목사와 다를까?’ 라고 질문하게 됩니다. 만약 우리 초도제일교회의 성도님들께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우리 안에 있는 온전한 사랑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면, 이는 전적으로 목사인 저의 책임이고, 저도 방금 말씀드린 목사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통해 목사로서, 성도로서 하나님 앞에 어떻게 하면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는지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 구절입니다. “34 너희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려고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려고 왔다.”

그리스도인들에게 “평화”는 중요한 주제 입니다. 마태복음 5:9의 말씀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셔서 제자들에게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기의 자녀라고 부르실 것이다.”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라고까지 말씀하십니다. 당시의 보수적인 사회, 가족이라는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 사회에서 이 말씀은 많은 사람들을 당혹케 했습니다.

▲ 예수께서는 자신의 삶을 따르는 사람들이 겪어야 할 고난을 칼로 표현하셨다. ⓒGetty Image

오늘 말씀에 나오는 ‘칼’은 예수님의 삶과 말씀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의 칼이 전파될 때 가족 간에도 불화가 생기고 원수도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한 예로 사도행전에 나오는 예수님의 제자 공동체는 이 ‘칼’을 들고 세상에 뛰어들었을 때 불화를 일으켰고, 갈등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과 믿음을 지키려는 자들과 대립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때론 옥에 갇히기도 하고, 돌에 맞아 죽기도 했습니다.

온전한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말씀이라는 칼에 우리 자신도 믿음의 공동체도 찔림을 경험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과 공동체가 바로 설 수 있도록 잘못된 신념과 행동, 가치관 등을 아프지만 말씀 앞에서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스데반 집사님이 복음의 내용 때문에 붙잡혀서 공회 앞에서 설교하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마음에 ‘찔림’을 경험합니다. 설교를 듣는 순간 자신들이 잘못이 드러남을 경험합니다. 사도행전 7:54에는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찔림이 우리 안에서 경험될 때 누군가는 분노하고, 누군가는 회개합니다. 불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이 과정을 지나게 되면 더 온전한 삶의 길로 향하게 됩니다.

그런데요. 오늘날의 성도들은 목사들의 선포 속에서 자신을 찌르는 말씀의 칼을 경험하고 있을까요? 그보다 먼저 말씀을 전하는 목사는 매일 말씀을 묵상하면서 자신에게로 향하는 이 말씀의 칼을 경험하고 있을까요? 자신이 찔리고, 변화해야 예수님의 말씀을 성도님들에게 온전히 전할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목사가 성경의 말씀을 온전히 전달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성도님들에게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음으로 인기를 얻고 싶어서. 교회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말씀을 공부하지 않고 묵상하지 않아서 등등입니다. 말씀이 자신을 찌르고 있음에도 이런 자신의 목적과 욕망 때문에 찔리는지도 모른 채 말씀을 선포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성도들에게도 말씀이 칼이 될 수 없습니다.

여러 선배 목사님들에게서 조언을 듣곤 했습니다. “골치 아프게 성도님들한테 그런 걸 왜 알려줘.” 이런 안일함으로 지금의 교회들이 비난 받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고, 온전한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드러내지 못하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히브리서 4:12-13의 말씀입니다.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어서, 어떤 양날 칼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뚫어 혼과 영을 갈라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놓기까지 하며, 마음에 품은 생각과 의도를 밝혀냅니다. 13 하나님 앞에는 아무 피조물도 숨겨진 것이 없고, 모든 것이 그의 눈 앞에 벌거숭이로 드러나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앞에 모든 것을 드러내 놓아야 합니다.”

말씀을 들었을 때 우리의 속을 꿰뚫어 혼과 영을 갈라내고 관절과 골수마저 갈라져 마음에 품은 생각과 의도를 밝혀내도록 해야 합니다. 말씀을 묵상하여 내 삶을 살피고, 말씀의 불을 통과해 연단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런데 맛보아 조금 알게 된 얕은 은혜에 취해 더 깊이 들어가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더 이상 자신의 삶과 가치관을 깨려하지 않습니다.

목사들이 말씀 앞에 무책임하게 될 때 목사 자신도 공동체도 삶의 방향을 잃게 됩니다. 구약성경에서 이런 무책임한 지도자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32장에 나오는 아론입니다. 아론의 행동과 결정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범죄자가 되었고 수천의 백성들이 죽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해 자리를 비우고 산으로 올라갔을 때 모세가 한참을 내려오지 않자 아론에게 이야기합니다. “1 백성은, 모세가 산에서 오랫동안 내려오지 않으니, 아론에게로 몰려가서 말하였다. “일어나서,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어 주십시오. 우리를 이집트 땅에서 올라오게 한 모세라는 사람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출32:1)

아론이 말합니다. “여러분의 아내와 아들 딸들이 귀에 달고 있는 금고리들을 빼서, 나에게 가져 오시오.” 그리고 아론은 백성들에게 송아지상을 만들어 줍니다. 하나님이 이 일들을 보시고서 모세에게 “너희의 백성들이 타락했다. 내가 노하였다. 그들을 쳐서 완전히 없애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완전히 쓸어버리시려는 계획을 가지고 계셨지만 모세의 중보로 재앙을 거두십니다. 하지만 삼천 명의 이스라엘 백성이 죽은 뒤에야 이 일이 정리가 됩니다. 이 과정에서 모세는 아론에게 묻습니다. 출32:21 “모세가 아론에게 말하였다. “이 백성이 형님에게 어떻게 하였기에, 형님은 그들이 이렇게 큰 죄를 짓도록 그냥 놓아 두셨습니까?””

출 32:22-25 말씀입니다. “22 아론이 대답하였다. “아우님은 우리의 지도자입니다. 나에게 그렇게 화를 내지 마십시오. 이 백성이 악하게 된 까닭을 아시지 않습니까? 23 그들이 나에게 ‘우리 앞에 서서, 우리를 인도하여 줄 신을 만들어 주시오. 우리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 모세라는 사람이 어떻게 되었는지, 우리는 모르겠습니다'’ 하고 말하기에, 24 내가 그들에게, 금붙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 금을 빼서 나에게 가져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금붙이를 가져 왔기에, 내가 그것을 불에 넣었더니, 이 수송아지가 생겨난 것입니다.””

아론은 그저 백성들이 그걸 원하니까 나는 그냥 그렇게 했을 뿐이라고 대답합니다. 지도자는 당신이지 내가 아니라며 발을 뺍니다. 하지만 25절과 같이 성경은 이 책임이 아론에게 있다고 말합니다. “25 모세는 백성이 제멋대로 날뛰는 것을 보았다. 아론이 그들을 제멋대로 날뛰게 하여, 적들의 조롱거리가 되게 한 것이다.”

목사들이 출애굽기 32장에 나오는 아론처럼 무책임하게 말씀을 전하게 될 때 성도들은 삶의 방향을 잃게 됩니다. 하지만 목사가 먼저는 자기 자신에게 말씀의 칼을 대면하고 후에 성도들에게 말씀의 칼을 전한다면 불편하더라도, 불화가 일어날지라도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으로 극복하여 더 온전한 삶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런 불화를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온전한 삶으로 향할 수 있는 방향을 계속해서 알려주십니다.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이 말씀은 사랑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더 사랑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보다 내 가족, 내 삶을 더 사랑할 때 온전한 삶을 살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내 삶, 내 목적, 내 가치관이 중요해 질 때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해석하거나 받아들일 수 없게 됩니다.

우리가 말씀을 제대로 받았을 때,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신념, 경험, 믿음, 가치관 등이 뒤바뀌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 과정은 필수적으로 고통을 수반합니다. ‘내가 틀렸구나!’, ‘내 삶의 방향이 잘 못 되었구나!’를 경험하는 과정인데 당연히 고통스럽지 않을까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온전한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이런 고통의 과정들을 저와 성도님들이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말씀이 내 삶을 흔들 때, 내 삶과 목적, 가치관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말씀에 의한 연단의 과정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이라는 칼과 불에 뛰어들어 연단의 과정을 통과한다면 우리는 온전한 삶의 길을 발견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위해 살다 죽었습니다. 예수님처럼 죽음이라는 자신들의 십자가를 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삶과 말씀의 칼로 먼저 변화되었습니다. 그 뒤에 예수님이 자신들에게 했던 것처럼 세상 속으로 칼을 들고 나아가 변화시켰습니다.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다 칼을 주러 왔다.’라고 말씀하셨지만, 궁극적으로 칼은 진정한 평화를, 온전한 삶을 우리에게 줍니다. 이전의 잘못된 삶의 방향을 깨어버리고 다시 하나님 앞에 바르게 정렬하게 하십니다.

한 주간 목사 됨을 묵상하면서 성도님들께 참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말씀의 칼이 무뎌지지 않도록, 목사가 목사 될 수 있도록 성도님들이 신뢰해주시고 사랑해주시는구나.’, ‘여전히 부족하고 목사다움이 무엇인지 아직 찾고 있는 과정 가운데 있지만 성도님들 덕분에 찾게 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지금과 같이 서로를 향한 신뢰와 사랑 속에서 말씀의 칼을 삶속에 적용하려고 진지하게 노력한다면 우리 모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삶의 길로 전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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