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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구원에 대한 소망 그리고 성령성령과 믿음 (3)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 승인 2020.08.01 02:58
▲ 성령을 보내시는 아버지 ⓒGetty Image

이제 칼빈은 제3권의 주제, 곧 성령과의 관련 속에서 구체적으로 믿음을 해명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이 어둡고 악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로 우리 안에서 믿음을 불러일으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조명을 필요로 합니다. 말씀과 성령의 상관성에 대해서는 제1권 9장에서 확인한 바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이끌어주시지 않으면 우리가 그리스도께로 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령의 조명이 없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결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믿음과 하나님의 말씀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두 제자에게 그의 나라의 비밀을 밝히 설명하려고 하셨으나(눅24:27),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눅24:45) 하시기까지는 아무런 발전이 없었던 사실에서도 확인됩니다. 사도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에게서 직접 배웠던 자들이지만, 그들이 귀로 들은 바와 같은 교훈을 그들의 마음속에 새겨 넣기 위해서는 진리의 영이 그들에게 오셔야 했습니다(요16:13).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태양과 같이 그 말씀이 선포된 모든 사람에게 찬란히 빛을 발하지만, 눈먼 자들에게는 아무 효력을 발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 점에서 우리는 원래 모두 눈이 먼 자들입니다.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에 나오는 주인공 의사의 아내가 유사한 발견을 합니다.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1)

따라서 성령이 내면의 교사가 되셔서 우리의 마음을 비추실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올 길을 마련하시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에 침투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III.ii.34). 찬송가 195장은 성경을 읽을 때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비추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해주시라는 기원을 담고 있습니다.

“성령이여 우리 성경 읽을 때 그 속에서 빛을 보게 하소서”(3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지성을 통해 배운 것을 마음속에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칼빈은 앞에서 믿음을 정의할 때, 성령을 통하여 복음이 우리의 지성에 계시되며 우리의 마음에 인친 바가 된다(III.ii.7)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 같이 하나님의 영은 지성을 조명하며 이해할 수 있게 하고, 마음에 확신을 줍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지성이 사상을 얻는 것보다 마음이 확신을 얻는 것이 더욱 더 어려운 일입니다. 이것은 17세기초 개혁교회 내에서 큰 논쟁을 일으킨 아르미니우스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는 칼빈의 수제자 T. 베자에게서 배운 사람이었지만, 그의 고향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돌아가서 얼마 지나지 않아 전향하여 칼빈과 개혁교회 신학에 맞서는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의 선조가 되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는 신학을 배운 자가 인간의 능력과 의지, 가능성에 더 많은 관심을 두는 신학에 빠지고, 개혁교회 내에서 악명 높은 아르미니우스주의를 대표하는 자가 되었다는 것은 지식으로 배운 것을 마음속에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실감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게 단지 아르미니우스만의 문제이겠습니까? 그러므로 바울이 말하는 것처럼 마음이 확실성을 얻기 위해서는 성령께서 마음에 인을 치시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엡1:13-14; 고후1:21-22).

믿음과 하나님의 약속

칼빈은 믿음에 대한 장을 믿음이 소망과 갖는 관계에 대한 논의로 끝마칩니다. 우선, 칼빈에 의하면 믿음은 믿음의 합당한 기초가 되는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합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 에게 약속하신 것들을 확실하고 또 안전하게 우리 것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에 속한 일들은 마지막 날에 “책들이 펴놓여질” 때까지는(단7:10) 우리가 알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그렇게 확실히 소유했다고 믿는 것들은 단지 소망 가운데 있는 것, 따라서 보이지 않는 것에 관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롬8:24).

따라서 믿음은 그것이 살아 있는 곳에서는 반드시 영원한 구원에 대한 소망을 불가분리적인 동반자로서 곁에 두어야 합니다. 믿음과 소망의 밀접한 상호관계에 대해 말하는 이 절(III.ii.42)은 칼 바르트가 『기독교강요』에서 가장 탁월한 구절들 가운데 하나라고 격찬하였기 때문에 좀 길게 인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믿음은 그 자체 내에서 소망을 일으키며 생산한다. 이 소망을 제거한다면, 아무리 웅변적으로 또 아름다운 말로 믿음을 논할지라도 믿음이 없다는 판단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진실성을 확신하는 것이 믿음이다. 곧 그것은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거나 우리를 속이거나 빈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확신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 약속들을 … 실현하실 때가 오리라고 기대하며 의심하지 않는다. 따라서 간단히 말하면, 소망은 하나님께서 진실하게 약속하셨다고 믿는 일들에 대한 기대이다. 이와 같이 믿음은 하나님을 진실하시다고 믿으며, 소망은 하나님의 진실성이 밝히 나타나는 때를 기다린다. 즉 믿음은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라고 믿으며, 소망은 그가 우리에게 대하여 항상 아버지가 되시리라고 예상한다. 믿음은 우리가 영생을 받았다고 믿으며, 소망은 영생이 언젠가는 나타나리라고 예상한다. 믿음은 소망의 토대요 소망은 믿음에 영향을 주며 힘을 준다. … 소망은 묵묵히 주를 기다리는 동시에 믿음이 너무 서두르다가 곤두박질하여 떨어지지 않도록 제어한다. 소망은 믿음에 힘을 주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거나, 그 진실성을 의심하지 않도록 한다. … 소망은 끊임없이 믿음을 갱신하고 회복함으로써 믿음에 견인하는 힘을 주는 것이다(III.ii.42).

이 믿음과 소망은 하나님의 자비라는 동일한 토대 위에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이 둘을 동의어처럼 여겨서 때때로 호환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칼빈은 베드로가, 우리는 “구원이 계시될 때까지 믿음을 통한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다고 가르칠 때에(벧전 1:5), 거기 언급된 믿음은 소망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러므로 소망은 믿음의 목표와 다른 목표를 가질 수 없습니다.

칼빈은 이러한 사실을 토대로 중세의 유명한 스콜라 신학자 피터 롬바르드가 하나님의 은혜와 행위의 공로를 소망의 두 근거라고 한 것을 비판합니다. 그는 “공로 없이 무엇을 감히 소망하는 것은 ‘소망’이 아니라, ‘참람’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하나님을 진실하다고 믿는 사람을 경솔하며 참람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고 공언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주의 선하심에서 모든 것을 기다리라는 것이 주의 뜻입니다. 따라서 칼빈은 우리에게 구원에 대한 확실한 소망을 가지라고 명하신 하나님을 기꺼이 믿고, 그의 자비만을 의지하며 행위에 대한 어떠한 신뢰라도 거부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립니다(III.ii.43).

그리고 또한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칼빈은 사랑이 믿음과 소망보다 앞서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스콜라 신학자들의 주장을 순전히 황당무계한 생각이라고 비판합니다. 그와 반대로 우리 마음속에 처음으로 사랑을 일으키는 것은 오직 믿음입니다.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본 사람만이 감동을 받고 기꺼이,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대한 열렬한 사랑으로 보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III.ii.41). 이 주제에 대해서는, 중생과 성화, 그리고 칭의를 다루는 이어지는 장들에서 보다 깊이 있게 다룰 것입니다.

미주

(미주 1) 주제 사라마구/정영목 옮김, 『눈먼 자들의 도시』(서울:해냄, 2008), 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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