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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의 시민의식살아있는 말씀(신 30,11-14; 마 7,24-27)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0.08.06 01:10
▲ 하나님 나라의 시민은 그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설교는 바로 이 하나님 나라의 시민의식을 고양하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Getty Image

두 본문은 각각 신명기와 산상수훈 ‘설교’의 마무리 부분으로 설교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설교는 하나님을 이야기 하고 그의 뜻과 그의 나라를 증언합니다. 그렇지만 설교는 그에 대한 설명이나 해명으로 그치기를 거부합니다. 설교로 지식이 더해질 수도 있겠지만, 지식의 축적이 설교의 목표는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속사가 사람이 야훼를 하나님으로 모시고 하나님이 사람을 그의 백성으로 삼는 하나님의 나라 건설을 목표로 한다면, 설교의 목표는 말씀으로 그 백성을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양성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은 단순한 과거 회상이나 말씀들을 모아놓은 모음집일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 시민의식을 일깨우고 그 시민으로 살도록 우리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우리를 돌아보게 하고 그 삶에서 보람을 느끼고 기쁨과 평화를 누리게 합니다. 하지만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산다는 것은 정신세계에 머물거나 수도원이나 산사에 칩거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현실을 피해 도망가는 곳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그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고 그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 말은 모순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지으셨고 온 땅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땅 여기저기 금을 긋고 자신들의 소유라고 주장합니다. 그 땅에 하나님은 그의 주권을 세우려고 하십니다. 땅의 나라들이 하나님의 뜻에 저항하고 그의 나라를 거부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하늘에 국한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땅의 우리를 ‘속량하여’ 그의 나라의 시민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들을 통해 이 땅에 뿌리를 내립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산다는 것이 쉽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세상은 사람을 아끼지 않지만,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그 시민이 될 수는 없습니다. 세상은 돈과 권력과 명예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지만, 그런 것들은 그 시민이 되는데 최대의 장애물입니다. 그것들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모태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지 넉넉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삶은 늘 갈등의 연속이고 선택과 결단의 기나긴 과정입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탈출한 후 하나님과 계약을 맺고 그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따라 살기로 약속해습니다. 광야생활은 오늘 우리 삶의 축소판입니다. 먹고 사는 것이 위협받는 환경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충돌합니다. 새로운 도전들 앞에서 그들은 계속 실패합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를 포기하고 말 정도로 하나님은 그들에게 실망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꿈을 접으신 것은 아닙니다. 흔히 광야세대로 일컬어지는 세대와 함께 그의 계획을 계속 이어가십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들과 다시 계약을 맺으시고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를 갱신하시고 오늘의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과거 이스라엘이 그의 백성으로 살지 못했던 이유를 그들의 마음에서 찾으십니다. 그 마음에는 그의 말씀이 자리잡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는 그의 말씀을 살기가 어려워 보였습니다. 그 말씀의 핵심은 타인을 존중하고 약자들을 돌보며 악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욕심 앞에서 어리석은 것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타인을 위해 자기를 절제한다는 것은 자기를 포기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습니다. 말씀은 우리를 방해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말씀은 마음에서 멀어져만 갑니다. 그러면 그러한 삶은 더 행복해졌을까요? 사람들 가운데 고통은 늘어가고 울부짖음이 방방곡곡에 넘칩니다. 다른 사람을 불행하게 하고 빈곤하게 하며 죽음으로 내몰며 행복을 말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은 엄격한 수도승 같은 삶을 추구하지도 않고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복된 축제의 삶을 지향합니다. 누구도 거기서 제외되지 않고 삶의 기쁨과 충만함을 누릴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오랫동안 이 삶의 형태를 거부해왔고 지금까지도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럼에도 이 세상을 그의 뜻에 부합하는 새 세상으로 만드시는 일을 계속 하고 계십니다. 이를 그의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는 지금 산 위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십니다. 옛날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으시고 말씀하셨던 것을 생각나게 하는 사건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새사람의 길을 가르치십니다. 땅 위에 닦는 그 길은 땅에서 소멸되지 않고 하늘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그 길 위에 세우시고자 하십니다. 그 길을 가는 사람들은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을 보고 그 길 끝에서 하나님을 뵙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입니다. 마치 옛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갔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비전의 넓이와 깊이와 크기는 그와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 비전이 현재 우리의 것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말씀이 마음에 없어 가나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버림받고 그 땅에서 쫒겨 났습니다. 그들이 실천하기로 했던 하나님의 말씀을 배척한 어리석음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들과 다르기 원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 깊이 뿌리박기를 원합니다. 그 말씀이 우리 속에 살아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실천만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때에만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미래가 아니라 지금 여기의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세계는 미래를 인공지능과 기계에 종속시키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기계도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될 수는 없습니다. 세계의 미래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을 외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품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그 사람이 되기를 빕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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