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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사는데도 왜코로나19와 기본소득
원용철 목사(대전 벧엘의집) | 승인 2020.08.08 17:24
▲ 코로나 사태로 한국 사회에서도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Getty Image

21년째 대전역 인근 빈곤지역에서 노숙인, 쪽방주민 등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사역을 하면서 가졌던 의문이, 왜 그들은 나름 열심히 사는데도 평생 가난하게 살아야 하며, 우리 사회가 한 번 실패한 그들에게 두 번째 기회를 허용하지 않느냐는 것과 대체 무슨 이유로 이들은 게으르다, 무책임하다, 일하기 싫어한다. 알코올 중독자다, 잠재적 범죄자다 등으로 낙인찍혀 살아가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또한 이미 계층 간의 이동 사다리는 끊어져 빈곤이 대물림 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빈곤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것이 과연 정의로운 사회인가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정의로운 사회를 말해야 할까? 마이클 샌덜이 말하는 철학적이고 정치적 담론을 말 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우리가 꿈꾸며 이루어야 가야할 정의로운 사회, 다시 말해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말해야 하지 않을까? 여기에서 잠시 샌덜이 말한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물음을 한 번 던져본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관차가 있다. 그런데 기관차의 정면에 5명의 인부가 있고, 기관차가 곧 그들을 칠 예정이다. 다행히 기관차는 차선 변경을 할 수 있는데, 그 길에는 1명의 인부가 있다. 차선을 변경하지 않으면 5명의 인부가 죽게 되고, 변경하면 1명의 인부가 죽게 된다. 당신이 기관사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소위 자유민주주의에서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 정의로운 것이기에 1명은 당연히 희생되어도 되는 것인가? 4명보다는 적은 수이기에 다수를 위해 희생당해도 된다는 것인가?

나는 정의에 대한 이 물음에서 중요한 한 가지가 빠져있다고 생각한다. “왜 기관차가 달리고 있는 위험한 상황에서 인부는 목숨을 걸고 선로에서 일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기관차가 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일해야 하는 인부는 1명이든, 5명이든 언젠가는 그런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기에 정의롭지 못하다. 정의는 기관차가 달릴 때는 선로위에 아무도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정의로운 사회란 목숨을 걸고 일하지 않아도 기본적인 삶이 보장되는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제적 불평등을 없애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인 것이다. 이런 정의로운 사회가 지금 우리사회에서는 기본소득제와 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기본소득이란 무엇인가? 기본소득은 국가나 지방자치체가 모든 구성원 개개인에게 아무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소득을 말한다. 그러므로 기본소득은 세 가지 점에서 기존 생활보장제도와 다르다. 첫째, 보편적 보장소득이다. 즉 국가나 지방자치체가 모든 구성원들에게 지급하는 소득을 말한다. 둘째, 무조건적 보장소득이다. 즉 자산심사나 노동요구 없이 지급하는 소득이다. 셋째, 개별적 보장소득이다. 가구단위가 아니라 구성원 개개인에게 직접 지급하는 소득이다. 따라서 기본소득은 보편적 복지이자, 그 이상이다. 모든 구성원의 적절한 삶을 보장한다는 점에서는 보편적 복지이고, 단순한 재분배정책이 아니라 사회적, 생태적 전환의 기초가 된다는 점에서 이행전략이기도 하다.

지금의 신자유주의 체제는 극단적인 이윤추구 속에서 소득분배가 너무나 불균형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다수가 소비할 수 있는 몫 자체가 줄어들었다. 따라서 경제위기는 항상적이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삶의 조건을 빼앗기면서 사회 자체가 해체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기본소득을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지급한다면 최소한의 삶을 재량껏 누릴 수 있는 물질적 토대가 마련되는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소비가 어느 정도 늘어 경제가 좀 더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재원을 무엇으로 마련하느냐에 따라 (소득세, 자본 이득세 같은 경우) 소득 재분배 효과도 나올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라 또 다른 더욱 적극적인 효과가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이 고용에 목을 매는 것은 다른 방법으로는 먹고 살 수 있는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다른 조건이 없다면 나쁜 일자리(저임금, 장시간 노동, 위험한 일)라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본소득이 주어지면 굳이 오랜 시간 일하지 않아도 되고, 임금이 적거나 위험한 일은 거부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이렇게 된다면 사람들이 더 많은 시간을 다른 활동, 예를 들면 문화 활동, 돌봄 노동, 정치 활동 같은 활동에 쏟을 수 있게 되어 이른바 문화사회로 이행할 수 있고, 민주주의도 더욱 확장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우리사회에서도 기본소득 논의는 생소한 것이 아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여러 형태로 실험적으로 실시되어 왔다. 특히 이번 코로나19를 지나면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경기도민에게 10만원의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므로 지역경제가 활성화되는 마중물이 되었다고 한다. 이 뿐만 아니라 문재인 정부도 전국민재난지원금이라는 명목으로 지급하여 사회구성원들이 어떻게든 기본소득을 경험하게 했다. 그러자 보수진영에서도 기본소득제 도입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제 우리사회도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길을 열어가야 하지 않을까? 샬롬.

원용철 목사(대전 벧엘의집)  bethelhouse525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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