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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이 이야기 하는 회개의 의미중생 (1)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 승인 2020.08.08 17:28
▲ 회개의 성서적 의미는 돌아섬이다. ⓒGetty Image

믿음을 다루고 난 후에 칼빈은 이제 그리스도의 은혜의 열매들에 대해 생각합니다. 칼빈이 누가복음 24장47절과 사도행전 5장31절을 이해한 바에 따르면, 믿음의 결과들은 회개와 죄의 용서입니다. 그는 여기서 회개를 “새로운 삶”이라고 부르고, 죄의 용서를 “거저 얻은 화해”로 부를 것입니다.

이 같이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은 신자들에게 비상한 기회를 제공하며, 그것은 그들의 존재와 그들의 실존 모두에 심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과 값없이 거저 화해하게 하고(칼빈은 이것을 ‘칭의’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그리고 그들의 소명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칼빈은 이것을 ‘성화’라고 부른다)(III.iii.1).

회개를 둘러싼 칼빈과 가톨릭의 논쟁

칼빈은 이 두 가지 주제를 동시에 다룰 필요성을 인식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한 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의롭게 하고 거룩하게 하는 저 은혜의 열매들을 동시에 받았기 때문입니다(고전1:30; 6:11 참고). 그러나 그가 성화를 먼저 다루고 칭의를 나중에 다루는 것은 그 자신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칭의의 근본적인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 핵심 개념을 소개하는 단락에서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함으로써 우리는 주로 이중의 은혜를 받는다. 첫째는 무죄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해함으로써 우리가 하늘의 심판 자 대신 은혜로우신 아버지를 소유할 수 있다. 둘째는 그리스도의 영에 의하여 성화됨으로써 우리는 흠 없고 순결한 생활을 신장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선물 중의 둘째인 중생에 대해서 나는 충분하다고 생각될 만큼 말 했다. 칭의의 주제는 그보다 가볍게 논했다. 왜냐하면 먼저 믿음은 선행을 결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는 편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만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비로 값없이 의롭다함을 얻는다(III.xi.1).

요컨대, 신자들이 행위에 의해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기 전에, 그는 신자들이 또한 행위 없이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 것입니다. 당시 가톨릭 측에서는 개신교의 칭의 교리가 부도덕과 방종으로 이끈다는 비판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칼빈의 이런 주장은 그러한 가톨릭의 비판을 효과적으로 무력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는 선행이 칭의의 필수적인 결과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고서, 선행이 칭의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한 것입니다. 이제 순서에 따라서 중생, 곧 회개에 대해서 그가 말하는 것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칼빈에 의하면 회개는 단지 믿음의 결과로서 일어납니다. 복음을 통해서 죄가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믿는 자들만이 과거의 생활을 청산하고 바른 길로 돌아서며 회개를 실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칼빈은 회개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먼저 회개는 믿음에 앞서는 것이며, 새로 개심한 사람들은 며칠 동안의 참회 기간을 거친 후에 비로소 복음의 은혜에 참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의 견해를 통렬한 어조로 비판합니다.

그러나 회개로부터 시작하려는 자들의 광태에는 하등의 이유도 없다. 그들은 새로 개심한 사람들에게 며칠 동안 참회하라고 명령하고 이 기간 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그들이 복음의 은혜에 참가하는 것을 허락한다. 이 런 사람들이 재세례파에 대단히 많고 특히 영적이라는 세평을 굉장히 기 뻐하는 사람들이 그렇다. 그들의 동반자인 예수회 회원들과 그들과 비 슷한 다른 사람들도 그렇다. 분명히 그들은 경박한 생각으로 회개를 겨 우 며칠 동안으로 제한하나 그리스도인은 일평생 회개를 계속해야 한다 (III.iii.2).

회개에 대한 칼빈의 성서 해석

칼빈은 성경에서 회개가 어떻게 정의되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히브리말로 회개는 ‘전환’ 또는 ‘돌아섬’이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마음 혹은 의도를 바꾼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 두 어원은 칼빈이 내리는 정의의 토대를 제공합니다.

그 뜻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떠나서 하나님께로 향하며, 우리의 이전의 마음을 벗어버리고 새 마음을 입는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회개 의 좋은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것이다. 곧 회개는 우리의 생활을 하 나님 쪽으로 전향하는 일이며, 그를 순수하게 또 진지하게 두려워하기 때 문에 생기는 전향이다. 그리고 회개의 요소는 옛 사람과 육을 죽이는 것과 성령에 의한 삶으로써 성립된다(III.iii.5).(박스)

그러니까 회개는, 지금까지 나 자신을 나의 삶의 주인, 주체로서 여기고 살아왔던 내가 이 회개를 통해서 이제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내 삶의 주체, 주인은 곧 하나님이시라고 인정하고 고백하며, 내가 이제껏 살아왔던 길에서 방향을 전환하고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것 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떨쳐 일어나 방향 전환하고 고백하며”.(미주 1) 이것은 칼 바르트가 그의 생애 마지막 밤에 가톨릭과 개신교도들을 대상으로 준비한 미완성 강연원고의 제목입니다. 그는 이 원고를 마무리 짓지 못하고 다음 날 아침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는데, 이 미완성 원고에서 가톨릭-개신교 신자 모두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방향전환을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습니다.

바르트의 이 미완성 원고는 교회의 개혁과 갱신의 나아갈 방향을 잘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르트는 회개를 기존의 익숙한 삶의 방식들, 이집트의 고기 가마와 같은 매우 매력적인 것들과 이별하고 하나님을 향해 방향을 전환하고 그리스도가 나의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구체적인 삶의 행위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굉장히 역동적입니다. 정적이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칼빈은 우리의 삶이 다할 때까지 이러한 회개의 과정이 지속되어야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칼빈의 회개 개념

칼빈은 앞서 내린 정의를 보다 자세하게 세 가지 점으로 구분하여 설명합니다. 첫째, 회개는 하나님께 돌아서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외면적인 행위뿐만 아니라 영혼 자체의 변화를 요구합니다. 그는 이것을 “마음의 할례”(신10:16)라는 표현으로 설명합니다(III.iii.6).

둘째, 회개는 하나님을 진지하게 두려워하는 데서 생깁니다. 죄인의 양심은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할 때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회개에 이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칼빈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회개의 원인이라고 말한(고후7:10) 바울을 따라서 이렇게 죄를 무서워하고 미워함으로써 회개에 이르게 된다고 말합니다(III.iii.7).

셋째, 회개는 육을 죽이고 영을 살리는 두 부분으로 성립됩니다. 여기서 육을 죽인다는 것은 우리가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는”(엡4:22)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우리에게 경고해주는 말입니다. 그래서 칼빈은 우리가 성령의 검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소멸되기 전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 생활에서 전혀 진척이 있을 수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III.iii.8).

그런데 이 ‘죽임’과 ‘살림’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진실로 그의 죽음에 참여하는 자들이라면, 이 죽음의 효력에 의해 우리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히고, 우리 안에 거하는 죄의 힘은 소멸되어 우리의 부패한 본성은 더 이상 활기를 띨 수 없습니다(롬6:5-6). 우리가 그의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이라면, 그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의에 부응하는 새로운 삶을 얻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또한 그와 함께 사는 것을 칼빈은 ‘중생’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나는 회개를 한 마디로 영적인 중생이라고 해석하는데 회개의 유일한 목적은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일그러지고 거의 말살된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 안에 회복시키는 것이다(III.iii.9).

 

미주

(미주 1) 칼 바르트/정미현 옮김, 『마지막 증언들』(서울: 한들출판사, 1997), 6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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