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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 바뀜 없이사선능(事善能, 출애굽기 13:21-22)
홍인식 목사 | 승인 2020.08.10 03:51
▲ 무위(無爲)의 삶이 무능력(無能力)의 삶을 의미하거나 아무 것도 안 하는 무사인일의 삶은 아니다. ⓒGetty Image

예수 닮기-예수담기-예수 따르기-예수 살기

우리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는 신앙에 대해서 생각해 오고 있습니다. 먼저 예수 믿음의 출발점인 하나님에 대해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갖고 오던 믿음의 모습들을 되돌아보면 성찰해 보자는 의미였습니다. 그래서 혹시 우리가 잘못알고 있던 신앙의 개념이 있다고 한다면 과감히 고쳐 나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목회 주제로서 “하나님 제대로 알기”라는 주제를 가지고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시며 또 우리가 믿고 오기는 하였지만 하나님에 대하여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은 어떤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하여 보다 심층적인 접근을 하기 위하여 한국 교인들을 위하여 2018년 “우리 안의 가짜 하나님 죽이기”라는 책을 번역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이 책은 우리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하나님을 모두 8가지 부분에서 지적하였던 바 있습니다.

우리 안의 가짜 하나님 죽이기

1. 공포의 하나님엣 사랑의 하나님으로
2. 일일이 간섭하시는 하나님에서 우리를 향한 선한 의지를 가지신 하나님으로 
3. 희생을 요구하는 하나님에서 생명의 하나님으로
4. 강제의 하나님에서 자유의 하나님으로
5. 멀리 계신 하나님에서 가까이 계신 하나님으로
6. 개인의 하나님에서 연대와 공동체의 하나님으로
7. 폭력의 하나님에서 평화의 하나님으로
8. 홀로 계신 하나님에서 함께 계신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하나님에 대하여 생각해 본 이후에 우리는 신앙의 핵심이며 우리를 완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는 믿음의 모습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예수 닮기” 두 번 째는 “예수담기”, 세 번째 “예수 따르기” 그리고 예수 믿음의 마지막 주제로 “예수 살기”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의 믿음의 목표는 “죽어서 천당 가는 것”을 넘어서서 “예수님을 닮아감으로서 예수님의 마음이 내 마음 깊은 곳에 담겨지고 담겨진 마음으로부터 예수님을 따라가며 예수님이 사셨던 바로 그 삶을 사는 것, 예수 살기”에 이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 닮기 ➔ 예수 담기 ➔ 예수 따르기 ➔ 예수 살기

그리고 다양한 측면에서 예수 살기를 생각하기 위하여 아시아의 고전 “도덕경(道德經)”을 통하여 성경을 좀 더 깊숙이 이해해 보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도덕경이 내세우고 있는 진리의 상징 “물”의 개념을 통하여 예수 살기의 구체적인 내용을 성찰해 보았습니다. 오늘은 이에 대한 9번째 설교입니다.

우리가 오늘 생각해 보고자 하는 물의 특징은 사선능(事善能)이라는 단어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사선능(事善能)
일 사(事) 착할 선(善) 능할 능(能)

‘일을 할 때는 능력 있게 한다.’라는 의미입니다.

물은 길 따라 흘러갑니다. 하는 일 없이 그냥 흘러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물은 한량과 같은 느낌을 줍니다.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그냥 흘러만 가는 느낌을 줍니다. 애씀과 땀 흘리는 것이 없어 보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가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면 마음이 평온해 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노자는 이런 물의 모습을 무위(無爲) ‘하는 것이 없다.’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그런데 무위(無爲) 라는 말은 우리에게 그린 반가운 단어가 아닙니다. 무위도식(無爲徒食)이라는 말이 있듯이 일은 안하고 밥만 축내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반가울리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노자에게 있어서 무위(無爲)라는 단어는 그냥 하릴없이 아무 것도 안하는 게으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에게 있어서 무위(無違)는 억지로 하는 것이 없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인위적으로 억지로 강제로 하는 일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이 무위(無爲)의 의미입니다. 하늘의 뜻을 따르고 진리를 따라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자연스럽게 하는 것을 무위(無爲)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자연의 도리를 따라 사는 삶이 무위(無爲)의 삶인데 이런 삶을 살면 안 되는 일이 없다고 합니다. 위 무위, 즉무불치(爲無爲, 卽無不治)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따라 살게 되면 우리에게 거치는 일이 없어질 것입니다. 예수님 살기는 이처럼 무위(無違)의 삶, 내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이 없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러한 무위(無爲)의 삶이 무능력(無能力)의 삶을 의미하거나 아무 것도 안 하는 무사인일의 삶은 아닙니다. 물은 무위(無爲)하지만 일을 할 때는 능력 있게 합니다. 바위를 만나면 아무 것도 안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위를 휘감으면서 돌아갑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그 바위는 어느 틈에 모래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바람이 불면 더위가 물러갑니다. 적당한 바람이 불면 곡식이 익어갑니다. 바다에서 바람이 불어 큰 파도가 일어나면 더럽혀 있던 바다 속이 정화되기도 합니다. 바람은 우리 눈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상황에 따라 때로는 조용히, 때로는 강력하게 그러나 능력 있게 자신의 일을 해 나갑니다.

사선능(事善能)입니다.

예수살기와 능력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본문은 하나님의 일하심이 사선능(事善能) 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도움과 인도로 이집트를 탈출했습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면서 허덕이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을 이집트의 학정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그러나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맞이한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험한 길이 예고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곧 바로 진입할 수 있는 지름길로 가지 않고 우회로를 택하도록 하셨습니다. 성경은 그 이유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로는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냈다. 그러나 그들이 블레셋 사람의 땅을 거쳐서 가는 것이 가장 가까운데도, 하나님은 백성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않으셨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바꾸어서 이집트로 되돌아가지나 않을까, 하고 염려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백성을 홍해로 가는 광야 길로 돌아가게 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은 대열을 지어 이집트 땅에서 올라왔다.(출 13: 17~18)

블레셋 사람들의 영토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진입로였습니다. 그곳을 지나가기 위해서는 블레셋 사람들과 전쟁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전쟁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엉뚱한 생각을 하도록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아직 훈련되지 못한 오합지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직 준비, 기본적인 자세를 갖고 있지 못한 사람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지름길을 버리고 우회로를 선택하도록 하십니다. 바위를 만났을 때 억지로 바위를 뚫으려고 하지 않고 바위를 휘감고 스쳐 지나감으로 결국에는 바위를 넘어서는 물처럼 백성들을 인도하십니다.

어쩌면 우리들의 눈에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방법이 마치 하나님이 아무 것도 안하시는 것처럼 보일수도 있습니다. 그냥 하나님의 능력으로 블레셋 군대를 한 칼에 물리치시고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신속하게 진입하게 했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잖습니까. 이런 방법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답답하게 만들기도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은 상황에 따라 가장 선한 방법으로 일을 하신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의 원리는 물의 원리와 흡사합니다.

사선능(事善能)입니다.

하나님은 구체적인 상황에서 구체적인 방법으로 일하십니다. 그것이 사선능(事善能)의 가장 중요한 내용입니다. 사선능(事善能)은 단순하게 효율(效率)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상황에 따른 구체적인 행동을 의미합니다.

어떤 때는 거칠게, 어떤 때는 소리 없이 부드럽게, 어떤 때는 뇌성벽력과 같은 요란함으로, 어떤 때는 가만히 지켜봄으로 어떤 때는 기도로, 어떤 때는 행동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

이집트를 탈출하고 그리고 지름길이 아닌 우회로로 접어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40년 동안 광야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험악한 삶이 그들 앞에 펼쳐 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의 삶을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성경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밤낮으로 행군할 수 있도록,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앞서 가시며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앞 길을 비추어 주셨다.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그 백성 앞을 떠나지 않았다.(출 13:21~22)

구름 기둥과 불기둥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상징적 표현입니다. 구름과 불은 신의 현존을 의미하는 종교적 의미가 강한 단어들입니다. 하나님이 구름기둥 그리고 불  기둥의 모습으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의 미래를 인도하신다는 매우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 할 기록은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그 백성 앞을 떠나지 않았다.”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낮에는 불기둥으로 밤에는 구름 기둥으로 이루어졌다면 그 도움은 진정한 의미의 도움과 인도함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낮의 불기둥은 백성들로 하여금 더워서 견디지 못하게 만들었을 것이며 밤에 구름 기둥은 별 빛을 볼 수 없게 되어 어둠을 더 짙게 해서 백성들이 아무 일도 못하게 만들었을 것에 틀림없습니다. 이런 도움과 인도함은 의미가 없는 도움과 인도함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도움은 이런 도움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과 인도하심,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능력이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사선능(事善能) 으로 일하십니다.

예수 살기와 사선능(事善能)

기업이 직원을 채용할 경우 직업능력을 평가합니다. 직업능력이란 특정 직업 또는 일반적인 직업에서 일정한 직무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능력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직업능력의 사전적 의미는‘직업에서 직무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능력’ 그러니까 ‘일하는데 필요한 능력’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요즘과 같은 능력중심사회에서 직업능력은 매우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고 있는데 특별히 직업기초능력과 직무수행능력을 합한 것을 의미합니다. 직업기초능력이란 직무능력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기본적이고 공통적인 직업능력을 뜻하며 직무를 수행하는데 기초가 되는 인지적, 정의적, 신체적인 능력을 모두 포함합니다. 주로 읽기, 쓰기, 말하기, 산술, 커뮤니케이션 능력 등 직무수행을 위해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할 능력입니다. 

반면에 직무수행능력이란 실제 일을 하는데 있어 필요한 능력으로 채용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요구되어지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훌륭한 직업능력은 일하는데 필요한 능력인데 그 직무를 수행하기 이 전에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할 능력과 더불어서 직접적으로 그 직무를 수행하게 될 때 필요한 능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업은 기업 발전을 위하여 직원을 채용할 때 능력 있는 사람을 발견하여 채용하는 방법을 여러 모로 연구하고 노력하고 또 그렇게 해서 개발된 방법을 직접 채용과정에 적용하며 실천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인재를 발굴하고 채용하여 그에게 일할 기회를 주는 것은 인재를 채용하는 기업뿐만 아니라 일하는 사람 자체에도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기업과 사람이 함께 발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업은 사선능(事善能)을 하는 사람을 찾습니다. 

예수 살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살기에 있어서 사선능(事善能) 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를 제대로 살기 위하여 기초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성경을 제대로 알고 예수님의 삶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하고 있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예수 살기에 있어서 기초 체력이 튼튼할 때 예수 살기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예수 살기의 기초능력을 갖고 있지 못할 때 발생합니다. 열심히 예수 살기를 하였는데 결과는 엉뚱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심지어는 천국 문 앞에서 예수님으로부터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라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릅니다. 무서운 결과를 맞이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마태 7:21~23)

그러므로 예수 살기에 있어서 사선능(事善能)하기 위해서 우리는 부지런히 예수님이 누구이신가에 대하여 질문하고 그 답변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 살기의 사선능(事善能)은 기초능력을 넘어서서 실천(직무수행)능력으로 나가야 합니다. 예수살기는 그냥 아는 것으로만 끝나서는 안 됩니다. 예수 살기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예수 살기를 어떻게 수행하느냐 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살기는 구체적인 상황에서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야고보서 2장은 이 같은 사선능(事善能)의 믿음에 대하여 명확하게 말합니다.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행함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 날 먹을 것조차 없는데, 여러분 가운데서 누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하게 하고, 배부르게 먹으십시오.” 하면서, 말만 하고 몸에 필요한 것들을 주지 않는다고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믿음에 행함이 따르지 않으면, 그 자체만으로는 죽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너에게는 믿음이 있고, 나에게는 행함이 있다. 행함이 없는 너의 믿음을 나에게 보여라. 그리하면 나는 행함으로 나의 믿음을 너에게 보이겠다.”(야고보서 2:14~18)

배고픈 사람에게는 먹을 것을 주어야 합니다. 옷이 없어 벗은 사람에게는 입을 옷을 주어야 합니다. 구체적인 상황에서 거기에 맞는 구체적인 행위를 해야 합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인도하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뒤바뀌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뒤바뀜 없이 이루어지는 예수 살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부지런히 예수 살기의 사선능(事善能)을 고민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구체적인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예수님을 살아가는 것일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구태의연하게 해 오던 방식으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살고자 한다면 많은 경우 본질이 전도되는 일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언제나 내 자신의 삶을 갱신하면서 예수 살기를 고민하는 우리들이 되어서 예수님을 믿는데 있어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합니다. 뒤바뀜없이 예수 살기를 실천하는 교우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사선능(事善能), 물은 일을 할 때는 능력 있게 합니다. 사선능(事善能)의 예수 살기를 합시다. 뒤바뀜 없는 예수 살기를 행합시다.

바람은 시들지 않는다

정인영

감나무에 바람이 잡혀 있었다
벗어나려 몸부림칠 때마다 노란 꽃이 떨어졌고
마당에서는 바람이 이불 손잡고 춤을 췄다
동생과 나는 감꽃으로 목걸이를 만들었지만
하루도 못가 검게 시들었다

꽃이 떨어진 자리마다 초록 풍선이 부풀어 올랐고
우리는 매일 나무 밑에서 그림을 그렸다
공주 무지개 엄마 얼굴 아빠 얼굴 곰…
발로 살살 문질러 흙으로 흙을 지우면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늦여름 어느 날이었다
바람이 거센 바람을 데려왔다
나무 밑에 초록 풍선이 떨어져 터졌지만
아무도 울지 않았다
떫은 냄새를 맡은 개미들이 길을 만들고
언제 그랬냐는 듯 바람은
나뭇가지에 매달려 평온하게 부풀었다

초록 풍선이 아빠 주먹만큼 커졌을 때
바람은 지는 해가 남긴 빛을 가져왔고
우리 손에 입가에 노을이 터지면 하늘에는 감물이 들었다

오늘도 바람이 분다
나는 빈손을 오므려 바람을 채운다
둥글게 부풀어 올라 투명해질 때까지.

홍인식 목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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