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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 같은 사랑, 이제는 그만인가?”응답하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시편 77:1-10)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0.08.18 17:12
▲ 우리 기도에 대해 침묵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고통으로 몰아넣는다. 하지만 하나님은 침묵하시는지 생각해 보자. ⓒGetty Image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건강의 문제와 경제적인 어려움 등이 일상의 삶을 흔들지라도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완전한 평안이 이미 우리 안에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주어진 평안을 선택하고 누리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지난주 말씀을 통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빛’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빛으로 살다가 이 자리에 나오셨나요. 스스로가 이 세상에 빛을 비추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이 세상에 대한 책임이 나에게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빛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여러 형태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자랑스러운 삶일 수도 있고, 부끄러운 삶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삶은 중요치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신분도 중요치 않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세상의 빛이라는 새로운 신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빛이라는 신분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다시 한 번 소망합니다.

‘빛’이라는 신분으로 살기 위해서는 ‘나’ 중심으로 살던 삶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삶이 이동해야 합니다. 이런 삶의 이동을 ‘회개’라고 합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산다고 해서 내 삶을 버리거나, 자신을 사랑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 때 비로소 진정한 내 삶을 발견하게 되고,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시편 본문의 저자가 ‘나’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변화되는 믿음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변화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은 “한결 같은 사랑, 이제는 그만인가?”입니다. 오늘 시편 기자의 고백인데요. 우리도 이와 비슷한 고백을 기도 가운데 합니다. 언제 이런 고백을 할까요?

오랫동안 기도했던 제목이 응답되지 않을 때, 다급한 기도의 제목이 응답되지 않을 때 우리는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한결 같은 사랑, 이제는 그만인가?”라고 하나님께 묻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공동번역으로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1 내가 큰 소리로 하느님께 부르짖사오니 이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2 답답할 때에 나 주님을 찾았고, 밤새도록 손을 치켜 들고 기도하며 내 영혼은 위로마저 마답니다. 3 하느님을 기억하니 한숨만 터지고 곰곰이 생각하면 기가 막힙니다. (셀라) 4 당신께서 뜬눈으로 밤을 새우게 하시오니 너무나도 지쳐서 말도 못하겠습니다. 5 지나간 옛일이 눈앞에 선하고 흘러 간 세월이 6 머리를 맴돕니다. 그 때의 일을 생각하여 밤새도록 한숨짓고 생각을 되새기며, 속으로 묻습니다. 7 ”주께서는 영원히 나를 버리시려는가?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않으시려나? 8 한결같은 그 사랑, 이제는 그만인가? 그 언약을 영원히 저버리셨는가? 9 하느님께서 그 크신 자비를 잊으셨는가? 그의 진노가 따스한 사랑을 삼키셨는가? (셀라) 10 이 몸이 병든 것 생각해 보니, 지존하신 분께서 그 오른손을 거둔 때문이구나.“”

하나님을 향한 저자의 답답함이 공동번역에서 더 정확하게 전달되어 집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큰 소리로 부르짖습니다. 삶의 위기가 강하면 강할수록 하나님 앞에 엎드려 더 큰소리로 눈물 흘리며 기도합니다. 나에게 벌어지는 사건들로 인해 기도하지 않던 성도님들도 하나님 앞에 매일 같이 나와 기도하게 됩니다.

건강에 문제가 생기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고, 자녀가 아프고, 도대체 나에게 이런 일들이 왜 일어나는지 모를 때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나의 기도에 응답해 주십시오! 이 부르짖는 소리를 들어주십시오!”라고 호소합니다.

계속된 기도 가운데 시편 기자는 3-4절과 같이 고백합니다. “3 하느님을 기억하니 한숨만 터지고 곰곰이 생각하면 기가 막힙니다. (셀라) 4 당신께서 뜬눈으로 밤을 새우게 하시오니 너무나도 지쳐서 말도 못하겠습니다.”

왜 지쳐서 말도 못하겠다고 고백하고 있나요? 신변에 변화가 생기지 않을 때, 상황이 좋아지지 않을 때 그래서 좀처럼 기도의 제목이 응답되지 않을 때 나오는 고백입니다. 기도는 하고 있지만 동시에 한숨이 나옵니다. 이 기도를 언제까지 해야 할지 고민이 되는 상황입니다.

시편 기자는 “당신께서 뜬 눈으로 밤을 새우게 하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면 얼마든지 응답될 수 있는 기도인데, 왜 아직도 기도가 응답되지 않느냐는 고백처럼 들립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호소했는데, 들어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변하지 않는 상황들과 응답하지 않는 하나님이 자신을 괴롭힌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이러지 않으셨다고 하나님께 다그칩니다. “5 지나간 옛일이 눈앞에 선하고 흘러 간 세월이 6 머리를 맴돕니다. 그 때의 일을 생각하여 밤새도록 한숨짓고 생각을 되새기며, 속으로 묻습니다.”

옛 일과 지금의 일을 비교하며 시편 기자는 질문합니다. “7 ”주께서는 영원히 나를 버리시려는가?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않으시려나? 8 한결같은 그 사랑, 이제는 그만인가? 그 언약을 영원히 저버리셨는가? 9 하느님께서 그 크신 자비를 잊으셨는가? 그의 진노가 따스한 사랑을 삼키셨는가?“(셀라)”

자신의 기도 제목이 응답되지 않자, “주님이 나를 영원히 버리시냐고, 한결 같은 그 사랑, 이제 끝이냐고.” 질문합니다. ‘나’를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은 이런 고백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나 자신의 안전과 풍요를 위해 신앙생활하는 성도들은 이런 불평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는 이런 고백을 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죽음의 위협, 공동체를 향한 위협 앞에서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31 그렇다면, 이런 일을 두고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주신 분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거저 주지 않으시겠습니까?”(롬8:31-32)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곤고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협입니까, 또는 칼입니까?”(롬8:35)

사도 바울은 희망찬 미래를 바라보며 이런 고백을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기도대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이라 여기며 이런 고백을 하지 않았습니다. 불확실하고, 여전히 두려운 현재와 미래이지만 ‘하나님의 뜻과 계획대로 나와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하나님이 내 편이요, 그리스도의 사랑이 끊어질 수 없다고 확신하는 성도는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상황을 바라보지 않고, 성령님과 함께 믿음의 눈으로 보기에 절망하거나 낙담하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2:10-11 “10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이런 일들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성령은 모든 것을 살피시니, 곧 하나님의 깊은 경륜까지도 살피십니다. 11 사람 속에 있는 그 사람의 영이 아니고서야, 누가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나님의 생각을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서는 성령을 통해야 한다고 사도 바울은 고백합니다. 성령님과 함께 보기 위해서는 ‘나’ 중심의 삶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나’라는 자아가 성령과 함께 볼 수 없도록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시편 기자의 고백도 그렇지 않습니까? ‘나의 상황’, ‘나의 기도’가 중요하다 보니 하나님의 뜻을 살피지 않습니다. 살필 수가 없습니다. 그저 내 기도가 응답되지 않음에 대한 한탄만 늘어놓을 뿐입니다. 급기야 10절처럼 하나님을 향한 원망에까지 이릅니다. “10 이 몸이 병든 것 생각해 보니, 지존하신 분께서 그 오른손을 거둔 때문이구나.”

1618년에서 1648년까지 30년 동안 독일 내에서 종교전쟁이 있었습니다. 이 기간 전쟁과 전염병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마르틴 린카르트 목사님이 가족을 위한 식사 기도를 작성했는데요. 이 기도문이 ‘하나님’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할 때 드릴 수 있는 고백이기에 성도님들께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마르틴 린카르트는 독일 작센주에 있는 아일렌부르크 태생의 목사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그 작은 도시는 전쟁과 전염병을 피해 몰려온 사람의 피난처였다. 당시 그는 그 도시의 생존자 중 유일한 목회자였다. 그는 종종 하루에도 40-50명의 장례를 인도해야 했다. 그의 아내도 전염병으로 죽었지만, 린카르트는 살아남았다.

오래 지속된 전쟁의 한가운데서, 더욱이 전염병으로 죽은 많은 이들의 장례를 인도하며 그 자신도 전염병에 노출된 상황에서 이 찬송시를 작사했다.

지금 우리 모두 마음과 손과 목소리를 모아 우리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놀라운 일들을 행하신 그 분 안에서 온 세상이 기뻐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어머니의 팔에 안겨 있을 때부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랑의 선물을 주시며, 오늘도 여전히 베풀어 주십니다.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우리 삶의 모든 과정에 동행해 주시고 기쁨과 복된 평안을 주셔서, 우리를 위로해 주소서. 하나님의 은혜 안에 지켜 주시며, 어려울 때 인도하소서. 이 세상과 다가올 세상의 모든 악에서 구원하소서.’
- 『다시 춤추기 시작할 때까지』 (
IVP) 中에서>

전쟁과 전염병으로 자신의 가족이 죽고 자신도 전염병에 걸렸는데 기뻐할 일이 무엇이 있고, 사랑의 선물을 어디서 발견할 수 있었을까요? 하지만 ‘나’를 벗어나 ‘하나님’ 중심으로 삶이 이동한 성도는 기쁨과 위로, 하나님의 선물을 어디서든지, 어떤 상황에서든지 발견한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하나님께 “저는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라고 고백하며 성령님과 함께 보기를 간청해야 합니다. 내가 바라고 원하는 모든 것들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기도를 시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절망 속에서도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의 시편 기자는 나 중심의 신앙생활과 한탄으로 끝을 맺지 않습니다. 우리가 읽지는 않았지만 11절 이하에서 놀라운 변화를 보여줍니다. “11 야훼께서 하신 일을 내가 어찌 잊으리이까? 그 옛날 당신의 기적들을 회상하여 12 주의 행적을 하나하나 되뇌고, 장하신 그 일들을 깊이 되새기리이다.” 라는 고백을 통해 백성들의 뜻과 계획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뜻과 계획대로 인도되었던 이스라엘 역사를 되돌아봅니다.

시편 기자는 믿음의 조상들,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버리지 않으시고 구원하셨던 손길을 기억하며 자신을 구원해주실 하나님께 소망을 둡니다. 특별히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 넘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내셨던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살피고 있습니다. 나의 원대로는 아닐지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구원하신다는 확신을 가집니다.

“17 구름이 비를 뿌리고 하늘에서 천둥소리 진동하는데, 당신의 화살 비오듯 쏟아집니다. 18 당신의 천둥소리 휘몰아치고 번개가 번쩍, 세상을 비출 적에 땅이 흔들흔들 떨었습니다. 19 바다를 밟고 다니셨건만 대해를 건너 질러 달리셨건만 아무도 그 발자취를 몰랐습니다. 20 양떼처럼 당신 백성을 모세와 아론의 손을 빌어 인도하셨읍니다.”

시편 기자는 처음에는 ‘나’ 중심으로 기도의 제목을 살피며 하나님을 원망했지만,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서자 자신의 계획보다 더 놀라운 계획을 가지신 하나님을 발견하며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빛’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이런 ‘나’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삶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어제는 광복절 75주년이었습니다. 일본으로부터 나라를 되찾는 데 3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나’를 중심으로 살지 않고, 죽음도 마다하지 않고 나를 넘어 큰 뜻을 품은 이들의 헌신적인 삶을 통해 ‘광복’이라는 이름처럼 빛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한결 같은 사랑, 이제는 그만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여전히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십니다. 온전한 삶의 방향으로 우리를 안내하십니다. ‘나’를 내려놓고, 성령과 함께 보기를 청하면 그 길을 깨닫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역사의 빛이 되어 광복을 가져온 사람들처럼, 우리도 이 시대의 빛이 되어 세상에 광복을 가져올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빛’으로서 사십시오. 빛을 비추어 다른 이들을 깨울 수 있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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