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방이 곧바로 풍요를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다. 해방은 과정이며 풍요를 향한 여정이기도 하다. ⓒGetty Image

어제는 광복 75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36년의 어둡고 참혹했던 긴 시간에 마침표가 찍혔습니다. 그날은 예상치 못했던 순간에 찾아왔습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떠나던 밤과 같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미처 떠날 준비를 할 틈도 없이 해방의 순간이 왔고 그들은 길을 나섰습니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 얼굴에는 함박꽃 웃음이 피었고 입에는 만세 소리가 가득했습니다. 태극기를 휘날리는 손길들과 거리거리를 달리는 발길들입니다. 옛날 이사야가 해방의 소식을 전하려고 산 넘어 달려오는 발길을 노래했을 때도 이 발길들을 그렸을 것입니다. 어둠 속에 거주하던 사람들에게 빛이 비췬 그날 땅도 하늘도 덩실거렸을 것입니다.

그 날의 놀람과 환희는 지금도 우리를 감격케 합니다. 그 날의 빛은 조금도 쇠하지 않고 계속 찬란히 우리를 비추고 있습니다. 그 날은 우리에게 즐거운 그러나 어려운 과제를 주었습니다. 억압과 폭력이 없는 자유와 평등의 나라를 세우는 책임을 모두 부여받았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이 과제는 완수되지 못했고 그 책임은 이행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날은 다시금 우리를 그날로 다시 부릅니다.

그 자리에서 오늘의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 때부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대해 듣고 그 땅을 꿈꿉니다. 그 말이 풍요의 땅을 뜻하는 것은 맞겠지만 그것만은 아닙니다. 특히 신명기 26장은 이 말을 이집트에서의 처참했던 종살이 생활과 대비시키며 하나님의 구원과 복을 대변하는 말로 사용하고 신명기의 중요한 화두인 약자들과의 나눔과 즐김과 연관짓습니다. 그러므로 그 말에는 미래가 어떠해야 되는지 그 지표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해방은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감사드리며 미래를 설계합니다.

우리가 되찾은 빛은 어떤 과거 어떤 현재 어떤 미래를 담고 있는지요? 이스라엘은 긴 시간 하나님의 약속에 담긴 미래를 현실로 살지 못했습니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망각일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역사를 잊었고 그와의 계약을 잊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도 하나님 앞에 서있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집을 찾아도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들은 약자와 연대하고 나누고 함께 즐기지 않았습니다. 그들 속에 오히려 스스로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이요 그들의 왕되심을 거부했습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해방을 충분히 맞지 못했습니다. 해방은 껍질을 다벗고 나오지 못했습니다. 한반도 허리는 잘렸고 전쟁과 독재가 상당 시간을 지배했고 그 상처는 지금도 우리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해방이 무엇으로부터의 해방인지도 잘 몰랐고 무엇을 향한 해방인지도 충분히 살피지 못했습니다. 교회는 과거를 반성할 줄 몰랐고 하나님의 현존을 은폐시키고 하나님의 미래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교회는 달라졌을까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지금의 세상은 코로나19와 이상기후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것들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재난의 시작을 알리는 징조입니다. 이제까지 있었던 것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전혀 다른 것들로 사람들의 생활양식을 바꾸고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있습니다. 극단적으로는 사람이 무엇인지를 근본적으로 묻게 하고 사람됨을 포기하도록 만들지도 모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 대표되는 현실을 잊고 비인간적 현실을 만들고 살았던 것처럼 우리도 그럴지 모릅니다.

이 위기를 우리는 어떻게 맞이해야 되는지요?

예수께서는 세례 요한이 잡힌 후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가 잡힌 것에서 한 시대가 끝나는 것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요한의 사건에서 절망을 보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를 예언자로 보고 그에게 나아가 새삶의 길을 찾았는데, 그가 허망하게도 권력에 잡히고 말았으니, 모든 기대가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세상이 어둠에 휩싸이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께서 바로 그 어둠을 뚫고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빛을 드러내기 시작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그들은 무엇을 들을까요? 옛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말을 들었을 때 느끼던 것과 같은 것을 느끼지 않을까요? 억압의 땅도 아니요 광야의 땅도 아닌 곳, 사람과 땅이 어우러지는 곳, 사람들 사이에 사람 내음 넘쳐나는 곳을 생각하고 흐뭇해하던 곳입니다. 하나님이 주권자이고 하나님의 사람들에 대한 폭력이 멈추고 작고 낮은 사람들이 하나님 곁에서 높임 받는 나라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께서 어둠 속 사람들에게 비춘 빛입니다. 그 빛에 깨어나고 그 빛으로 옷 입은 사람들이 그 나라를 이 땅에 이루기 위해 예수를 뒤따를 것입니다.

예수의 해방은 아직 진행 중입니다. 그 가운데 우리가 있습니다. 주님은 그의 나라를 위한 그의 일꾼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가 그 해방의 사역에 몸과 마음과 생각을 씻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미래를 보며 그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되기를 빕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통해 이 땅의 해방이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빕니다. 빛을 되찾은 이 나라에 그 빛이 온전히 비쳐지기를 기도하며 주님 안에서 주님의 뜻을 따라 우리의 삶의 양식을 미래의 것으로 바꾸어 가기를 빕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