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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를 부수는 바람 속에도채수일 목사의 성경 인물 탐구 21
채수일 목사(경동교회) | 승인 2020.08.25 16:50

주전 9세기 중반, 북이스라엘, 비교적 정치적 평화와 경제적 번영을 누리면서 12년 동안 왕국을 통치하던 오므리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를 버리고 바알 신을 섬겼습니다(왕상 16,23-26). 출애굽의 하나님에 대한 기억이 경제적 번영에 대한 욕망과 풍요의 신인 바알 숭배로 희미해지기 시작한 것이지요. 경제적 번영이 역사 망각을 부추긴 것입니다.

그 때, 등장한 예언자가 길르앗의 디셉에 사는 엘리야였습니다(왕상 17,1). 엘리야는 이스라엘의 왕궁에서 숭배 받던 ‘바알’ 신앙에 저항하여 야훼 신앙을 강력하게 대변한 예언자였습니다. 엘리야, ‘야훼는 나의 하나님’이라는 이름의 뜻에 걸맞게 엘리야는 이스라엘 역사상 등장한 모든 예언자들의 전형이었습니다.

행복과 재난을 가져올 수 있는 능력과 기적을 행한 예언자, 신앙적으로 신실하지 못하고 부정한 왕과 정면으로 대결한 예언자, 사회적 불의를 참지 못한 예언자, 제2의 모세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추앙받던 인물이, 엘리야였습니다. 사르밧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고(왕상 17,17-24), 하늘 문을 열어 비를 내리게 하고, 기손 강가에서 바알의 예언자들을 모두 학살한 예언자(왕상 18,40),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포도밭을 팔지 않는다고 음모를 꾸며 나봇을 죽인 이세벨과 아합의 폭정에 맞선 용감한 예언자(왕상 21,17-24), 그가 엘리야였습니다.

나봇의 포도밭 이야기는 토지에 대한 이스라엘의 오래된, 그리고 흥미로운 전통을 보여줍니다. 왕정 체제가 확립된 이후에도, 왕은 백성이 소유한 땅을 마음대로 처리할 수 없었습니다. 전쟁에서 이겨 전리품으로 획득한 땅이나 주인 없는 땅은 왕이 소유할 수 있으나, 백성이 소유한 땅은 강제로 빼앗을 수 없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왕궁 근처에 나봇이라는 농부가 포도원을 하나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아합 왕은 그곳에 정원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에, 나봇에게 다른 곳에 있는 더 좋은 포도원을 주거나, 아니면 돈을 주고 사겠다고 제안합니다. 그러나 나봇은 조상의 유산으로 물려받은 땅을 왕에게 주는 것은, 주님께서 금하시는 불경한 일이라고 거절합니다(왕상 21,3). 마음이 상한 아합 왕, 화가 나서 먹지도 않고 누워있자, 그의 아내 이세벨이 계략을 짭니다. 주인 없는 땅은 왕이 차지할 수 있는 관례를 이용하면 땅을 빼앗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이세벨은 건달들을 시켜,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고 거짓 증언을 하게 하여 돌로 쳐 죽이게 한 것이지요(왕상 21, 8-14).

그러나 하나님은 엘리야를 불러 아합 왕과 이세벨에게 전하게 하십니다: “네가 살인을 하고, 또 재산을 빼앗기까지 하였느냐? 나 주가 말한다.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바로 그 곳에서, 그 개들이 네 피도 핥을 것이다.”(왕상 21,19) 주님은 이세벨을 두고서도 “개들이 이스르엘 성 밖에서 이세벨의 주검을 찢어 먹을 것이다.”고 말씀하십니다(왕상 21,23). 나봇을 억울하게 죽이고 포도원을 빼앗은 죄악에 대한 책임은 이세벨과 아합에게만이 아니라, 아합 가문에 속한 모든 사람들에게도 미칩니다. 그들이 성 안에서 죽으면 개들이 찢어 먹을 것이고, 성 밖에서 죽으면 하늘의 새들이 쪼아 먹을 것이라고 하신 것이지요(왕상 21,24).

불의를 저지른 아합 왕과 이세벨 왕비에게 두려움 없이 저주의 말을 전한 엘리야, 그도 인간인데, 어찌 두려움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이 전에도 이세벨의 예언자들을 칼로 죽인 것에 대한 보복으로 이세벨이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엘리야는 급히 일어나 목숨을 살리려고 도망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왕상 19,3). 로뎀 나무 아래로 피한 엘리야, “주님, 이제는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나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라고 간청합니다(왕상 19,4).

이세벨의 번뜩이는 살의와 그를 추격하는 군대, 지친 육체, 희망 없는 미래에 대한 깊은 좌절에 빠진 것이지요. 지쳐 깊은 잠에 떨어졌는데, 천사가 그를 깨우며 “일어나 먹으라”고 합니다. 일어나자 머리맡에 구운 과자와 물 한 병이 놓여 있었습니다.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 살펴볼 기력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먹고 마신 후 곧바로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다시 천사가 와서 그를 깨우며, “일어나서 먹어라. 갈 길이 아직도 많이 남았다.”(왕상 19,7)고 합니다.

▲ Ferdinand Bol, 「엘리야에게 음식을 주는 천사(Elijah Fed by an Angel)」(1660-1663) ⓒWikimediaCommons

일어나서 먹고 마시고 힘을 얻은 엘리야는 밤낮 사십 일 동안을 걸어 하나님의 산 호렙 산에 도착합니다. 동굴에 몸을 피한 어느 날 밤, 하나님께서 묻습니다: “엘리야야, 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왕상 19,9)

엘리야가 두렵고 무서워 몸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몰라서 물으신 질문이 아니지요. 엘리야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하신 질문입니다.

엘리야가 대답합니다: “나는 이제까지 주 만군의 하나님만 열정적으로 섬겼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주님과 맺은 언약을 버리고, 주님의 제단을 헐었으며, 주님의 예언자들을 칼로 쳐서 죽였습니다. 이제 나만 홀로 남아 있는데, 그들은 내 목숨마저도 없애려고 찾고 있습니다.”(왕상 19,10)

열정적으로 하나님만 섬겨왔으나, 주님 백성은 주님과 맺은 언약을 버리고 주님의 제단을 헐고 바알 신을 숭배했으며, 주님의 예언자들을 모두 학살하여 혼자 남아 도망쳤는데, 자기 목숨마저 없애려고 이세벨의 군인들이 혈안이 되어 자기를 찾고 있어 두려움에 동굴 속에 몸을 숨겼다는 것이지요.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제 곧 나 주가 지나갈 것이니, 너는 나가서, 산 위에, 주 앞에 서 있어라.”(왕상 19,11)

주님 말씀대로 산 위에 선 엘리야,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쪼개고, 바위를 부수었으나, 그 바람 속에 주님께서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 바람이 지나가고 난 뒤에 지진이 일었지만, 그 지진 속에서도 주님께서 계시지 않았습니다. 지진이 지나가고 난 뒤에 불이 났지만, 그 불 속에서도 주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엘리야는 야훼 하나님을 산을 쪼개고 바위를 부수는 크고 강한 바람, 지진과 불 속에서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크고 강한 바람, 지진과 불이 지난 후,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가 들렸습니다.(왕상 19,13)

엘리야는 그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가 어떤 소리였는지 몰랐습니다. 그 미세한 소리를 확인하려고 엘리야는 외투 자락으로 얼굴을 감싸고 나가서, 동굴 어귀에 섰습니다. 바로 그 때에 그에게 소리가 들렸습니다: “엘리야야, 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왕상 19,13)

호렙 산 동굴에 몸을 숨겼을 때, 처음 들은 질문과 같은 질문입니다. 같은 질문에 대한 엘리야의 두 번째 대답도 같습니다: “나는 이제까지 주 만군의 하나님만 열정적으로 섬겼습니다. 그러나 … 이제 나만 홀로 남아 있는데, 그들은 내 목숨마저도 없애려고 찾고 있습니다.”(왕상 19,14)

다른 예언자들은 모두 학살당하고, 이제 자기만 철저하게 혼자 남은 것에 대한 두려움, 산을 쪼개고 바위를 부수는 크고 강한 바람, 지진과 불덩어리 심판의 이적도 더 이상 보여주시지 않는 야훼 하나님에 대한 의심이 그를 사로잡고 있었던 것이지요. 하나님을 오직 크고 강한 것, 심판과 이적에서 찾았던 엘리야는 잘 들리지도 않는 미세한 소리 안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새로 깨달아야 했습니다. 아주 작은 신음 소리도 들으시는 하나님은 폭풍과 우레 소리로만 자신을 드러내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이스라엘에 칠천 명을 남겨 놓을 터인데, 그들은 모두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도 아니하고, 입을 맞추지도 아니한 사람이다.”(왕상 19,18)

엘리야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도 아니하고 입을 맞추지도 아니한 사람들이 칠천 명이나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엘리야는 철저하게 혼자라는 생각에 빠져 있었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남은 자들을 예비해두셨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그의 자녀들을 혼자 남겨두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혼자라는 생각에 외로움에 빠져 절망할 필요도, 나만 신앙을 지키고 남아 있다는 자만심에 빠질 필요도 없습니다.

엘리야 이야기는 이적과 심판으로 역사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은 아주 작아 들리지 않는 미세한 소리로, 너무 작고 평범해서 우리가 귀를 기울이지 않는 소리 안에서 말씀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그리고 엘리야 같은 위대한 예언자만이 아니라 이름을 알 수 없는, 그러나 아직도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입을 맞추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은 역사를 바꾸고 새롭게 만들어 가신다는 것을 확인해줍니다.

채수일 목사(경동교회)  sooil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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