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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곡 3: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단 6:1-23; 행 6:8-10; 마 10:16-23)성령강림후 열셋째주일(8월30일)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0.08.28 17:41

1. 삼위일체교회력 ‘다’해 마지막 주일

오늘은 성령강림후 열 셋째주일이자, 삼위일체교회력 세 번째 해인 ‘다’해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다음주일부터는 다시 삼위일체교회력 첫 번째 해인 ‘가’해로 돌아갑니다. 이렇게 3년 주기로 삼위일체교회력 세 본문 말씀이 순환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성령강림후 열한째 주일부터 열셋째 주일까지 알곡에 관한 말씀이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먼저 열한째 주일 설교에서 알곡은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사는 사람’이라고 배웠습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한 일, 곧 착한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나아가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를 맺는 이들이 바로 알곡과 같은 교회, 알곡과 같은 공동체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열둘째 주일인 지난주 설교에서 알곡은 죄악이 만연한 세상에서 믿음을 사수한 자들이며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특별히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서 바울 자신이 빌립보 교인들을 위해 전제로 드려질지라도 기뻐할 만큼 믿음이 좋은 빌립보 교인들이 바로 알곡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세 본문 말씀은 알곡에 관한 세 번째, 곧 마지막 말씀입니다. 복음서 말씀을 보면 알곡은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한 사람들이며, 구약 다니엘서 말씀을 통해서는 전에 하던 대로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니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는 사람이며, 마지막 사도행전 말씀을 통해서 지혜와 권능이 충만한 사람, 또한 박해 가운데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는 스데반과 같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 주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알곡이 박해 당하는 것을 아시고, 속히 오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럼으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이러한 알곡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2.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이리의 모습으로 세상의 걱정과 근심 앞에 선 교회

먼저 복음서 말씀을 볼까요? 오늘 본문 마태복음 10장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12제자를 선택하시고 그들을 복음 전도자로 파송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복음 전도자의 임무와 자세를 말씀하시는데, 곧 적대자들과의 마찰은 피하고 온유와 겸손으로 그들을 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세상과 타협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고도 당부하십니다.

말씀을 볼까요?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마 10:16a).” 여기서 세상은 이리고, 양은 예수님의 제자들이죠? 양은 이리의 먹이입니다. 그만큼 세상에서 복음 전도의 사명이 힘들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볼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마 10:17-18a)

그렇습니다. 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예수님과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공회에 넘겨져 채찍질을 당하고 고통을 받았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도 총독과 임금 앞에 끌려가서 갖은 고초를 당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한국 개신교는 이와는 반대로 교회의 잘못으로 공회에 넘겨지고, 회당에서 심판당하고, 총독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고 있습니다. 양이 아니라 이리의 모습으로, 세상의 걱정과 근심 앞에 선 것입니다.

▲ 이리의 모습으로 세상의 걱정과 근심 앞에 선 교회

이것은 하나님의 정의가 아니라 인간의 탐욕입니다. 제 2차 팬데믹(pandemic, 새로운 질병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것) 현상으로 온 나라가 방역과 사회적 거리두기에 참여하고 있는데, 일부 개신교 목사들과 교인들이 반드시 교회당에 모여서 예배드려야 한다고 고집하고 있습니다. 지난 2020년 8월 27일 대통령을 만난 교계 지도자도, 또 교계 원로라고 하는 목사님들도 “예배를 목숨처럼 중요시해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때의 예배는 교회당에서 모여서 드리는 예배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배 장소에 관해서 이렇게 말씀하시죠?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북이스라엘의 예배장소인 그리심 산 성전)에서도 말고 예루살렘(남 유다의 예배장소인 예루살렘 성전)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1, 23-24)

예배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장소의 문제가 아니죠? 영과 진리의 문제입니다. 어디에나 계시는 하나님께 진리를 추구하는 우리의 삶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계 지도자나 원로들, 그리고 현재 부산기독교총연합회(부기총)나 일부 개신교의 이러한 고집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감염병 차단을 막는, 혹은 생명을 경시한 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몇 주만 조심해서 일단 감염을 차단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바로 지금 교회당에서 드리는 예배를 중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 시인의 시 가운데, ‘풀’(1968)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시인의 치열한 사상적 고민이 드러나는 마지막 유작 시입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김수영 시인은 모더니즘 계열의 시를 쓰다가 4·19혁명 이후, 현실 비판 및 저항적인 참여시를 쓴 시인입니다. 시를 한번 볼까요?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져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 ‘풀’)

▲ 김수영 시인과 바람에 날리는 풀

이 시에서 풀은 여리고 상처받기 쉽지만, 동시에 어떤 힘에 의해서도 죽지 않는 강인한 생명력을 뜻합니다. 김수영의 시세계 전체를 볼 때는, ‘민중의 강인한 생명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람이 불면, 풀은 그에 따라 흔들리기만 한다고 생각하지만, 김수영 시인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바람에 풀이 눕지만, 다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풀과 바람의 이 힘겨운 싸움은 이 세상에 있는 연약한 민중들의 굳센 생명력과 그것을 억누르고 괴롭히려는 세력의 싸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싸움 속에서 하잘 것 없어 보이는 생명의 끈질김이야말로 어떤 불의한 외부의 억압도 이겨내는 힘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마지막 구절이 비관적입니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지금 개신교와 교회의 앞날이 흐리다 못해 어둡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신앙의 덕목인 ‘사랑 제일’을 실천하지 못해, 그 기본을 감당하지 못해 무너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는 시 구절에는 바로 이러한 비관적인 좌절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동안 비바람에 맞서 그렇게 잘 지내왔는데, 이제 풀뿌리가 눕게 되면 끝이라는 것입니다.

교회의 본질을 깨닫지 못한 우리 개신교 전체는 이제 외적인 박해가 아니라, 내부적 모순으로 인해 눕게 된 것입니다. 교회가 이제는 자신의 탐욕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정치조직이 되었습니다. 교회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광신과 미신의 소굴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예수의 제자들은 뽑히지 않는 풀뿌리와 바람에 날려 눕지만 결코 부러지지 않는 부활로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우리 한국기독교장로회 교단과 기장 교회가 그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군부독재와 맞서 민주화 투쟁을 했던 기장 교회가, 또한 많은 교회들이 불의한 세상과 타협하고 물질숭배와 성장주의의 바벨탑을 건설할 때 사랑과 나눔을 실천했던 우리 기장교회가 늘 언제나 그랬듯이 시대의 화살촉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기장 교단은 이 위기 또한 잘 극복해 낼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제 가라지는 날아가 버리고, 진정한 알곡이 남아 새 역사를 창조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알곡들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지켜주십니다. 구약의 말씀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4. 사자가 상해하지 못하리니

오늘 구약 본문은 바벨론 제국이 멸망한 이후에 새로운 고대근동의 맹주로 자리 잡은 메대와 바사에서 다니엘이 신앙적 절개를 지킨 내용입니다. ‘사자 굴속의 다니엘!’ 너무나 유명한 말씀이죠? 구약 말씀은 6장 1절에서 23절까지 거의 6장 전체를 본문으로 해서 여러분들이 성서 쓰시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다리오가 자기의 뜻대로 고관 백이십 명을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하고, 또 그들 위에 총리 셋을 두었으니, 다니엘이 그 중의 하나이라. 이는 고관들로 총리에게 자기의 직무를 보고하게 하여 왕에게 손해가 없게 하려 함이었더라.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단 6:1-3)

여기서 다리오 왕은 메대 사람입니다. ‘키악사레스 2세’라고 불리는데, 우리가 잘 아는 바사의 고레스 2세의 외삼촌으로, 고레스 2세와 함께 앗수르와 바벨론을 정복한 왕입니다. 다니엘 5장에 보면, 바벨론의 마지막 왕 벨사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왕궁 촛대 맞은편 석회벽에 사람의 손가락들이 나타나서 글을 씁니다(단 5:5). 다니엘이 그 내용을 벨사살 왕에게 해석해 줍니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곧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라는 뜻입니다(단 5:25-26). 그리고 30절 이하를 보면 “그 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는데 그 때에 다리오는 육십이 세였더라.”(단 5:30-31)

▲ 벽에 쓰여진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글자와 신바벨론의 왕들

이렇게 바벨론이 무너지고 메대-바사 제국의 왕이 된 사람이 바로 다리오입니다. 다리오는 원래 메대국의 제 5대 왕(B.C.550-539)이었으나, 바사국과 동맹하여 연합정부를 출범시켜 기원전 539년에 ‘메대-바사’ 과도제국의 초대 왕으로 즉위하여 2년간 통치하게 됩니다. 그러나 동맹의 실질적 힘은 고레스 2세에게 있었습니다. 고레스 2세가 외부 정복 전쟁을 나가자, 내치를 다리오에게 맡긴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과도 제국은 고레스 2세의 정복 전쟁이 마무리 된 후, 막을 내리게 됩니다. 고레스 2세가 다리오왕의 외동딸과 결혼하고 사위 자격으로 메대-바사 제국 전체의 통치권을 정식으로 이어받았기 때문입니다. 바야흐로 인도에서 구스(북아프리카)까지 광활한 영토의 바사제국 시대, 곧 페르시아 제국 시대가 펼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튼 그 이전에 다리오 왕이 통치할 때, 그는 전국에 고관 120명을 두고 그 위에 총리 셋을 두었습니다. 그 중에 한 명이 다니엘인데, 오늘 말씀을 보니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총리들과 고관들이 다니엘을 질투하게 됩니다. 말씀을 볼까요?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단 6:4)

그러자 이들이 다니엘을 잡아 죽일 꾀를 냅니다. 따라서 다리오에게 찾아가 다리오 외에 다른 신에게 기도하면 사자 굴에 넣어달라는 법률을 제정하게 해달라고 합니다. 말씀을 볼까요?

“나라의 모든 총리와 지사와 총독과 법관과 관원이 의논하고 왕에게 한 법률을 세우며 한 금령을 정하실 것을 구하나이다.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 그런즉 왕이여, 원하건대 금령을 세우시고 그 조서에 왕의 도장을 찍어 메대와 바사의 고치지 아니하는 규례를 따라 그것을 다시 고치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매,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에 왕의 도장을 찍어 금령을 내니라.”(단 6:7-9)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단 9:10)”하였습니다. 이를 본 무리들이 왕을 찾아가 다니엘을 해코지 합니다. 그러자 왕도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말을 듣고 다니엘을 사자 굴에 던져 넣으라고 명령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리오 왕은 다니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항상 섬기는 너의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단 6:16b)

다니엘이 모함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던 왕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제 다니엘은 사자굴 속에 던져졌습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났습니다.

“이튿날에 왕이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 굴로 가서 다니엘이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서 슬피 소리 질러 다니엘에게 묻되,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 하니라.”(단 6:19-20)

이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말씀을 볼까요?

“다니엘이 왕에게 아뢰되, 왕이여! 원하건대, 왕은 만수무강 하옵소서!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에게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단 6:21-22)

▲ 카타콤 벽화 속의 다니엘과 루벤스의 <사자굴 속의 다니엘>(1614-6)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시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고 다니엘을 지켜주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놓치는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다니엘을 핍박하는 사람이 누구인가요? 다리오 왕이나 국가 권력이 아닙니다. 다니엘과 같은 동료들입니다. 총리들과 고관들이죠? 지금 진실 된 알곡 그리스도인들을 사자 굴로 집어 던지는 이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가라지와 같은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다리오 왕은 다니엘을 걱정합니다. 지금 국가의 지도자는 교회의 타락을 염려합니다. 진실된 그리스도인들이 가짜 그리스도인들로 말미암아 사자굴이라는 모함에 빠져듭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복음서 말씀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마 10:21)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을 지키신 것처럼 알곡 그리스도인들을 지키신다는 말씀입니다. 구약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왕이 심히 기뻐서 명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의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단 6:23).”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다니엘을 구원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실 되게 믿는 알곡들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해코지 하려고 했던 이들은 어떻게 됩니까? 오늘 본문 말씀은 아니지만, 찾아볼까요?

“왕이 말하여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을 끌어오게 하고 그들을 그들의 처자들과 함께 사자 굴에 던져 넣게 하였더니, 그들이 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사자들이 곧 그들을 움켜서 그 뼈까지도 부서뜨렸더라.”(단 6:24)

해코지하려는 그 방법 그대로 자신들이 당했습니다.

5.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서 말씀 본문에서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 10:16b).” 비록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지만, 그 고난이 바로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마 10:18b)”시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이리 가운데 양을 보내어, 소금의 짠 맛으로 혹은 그리스도인들의 선한 행실로 말미암아 이리와 같은 이들(또한 거짓 그리스도인들)에게 참된 생명이신 예수님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러한 알곡들을 그냥 내버려주지 않으십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죠?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마 10:19-20)

▲ 위드-코로나(With-Corona)의 시대, 새로운 일상(New Normal)

이제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은 뉴노멀(New Normal)의 시대입니다. 곧 새로운 기준이 필요한 세상입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완전히 없애지는 못하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위드-코로나(With-Corona)’의 시대가 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물론, 우리의 자녀들이 살아갈 세상은 위험하고 힘들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에 방역을 책임져야할 의료계가 집단 파업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의사가 생명을 담보로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고자 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부 개신교회가 정치화되어 많은 사람들이 ‘종교-샤먼(사이비 무당)’에 빠져 참 진리의 모습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들은, 또한 알곡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또한 생명과 평화, 정의를 따르는 길에 미움을 받아도 끝까지 견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다 아십니다. 따라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10:22).” 그리고 이 박해를 잘 견디면 마침내 예수께서 다시 오셔서 새로운 세상을 만드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마 10:2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그때까지 좋은 믿음, 가라지가 아니라, 알곡과 같은 믿음으로 살아가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것은 오늘 사도행전 본문에 나오는 스데반과 같은 믿음입니다. 이러한 알곡과 같은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큰 기사와 표적을 행하게 하시며 또한 할 말을 가르쳐 주십니다. 사도행전 말씀을 볼까요?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이른바 자유민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 새,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행 6:8-10)

▲ 첫 순교자 스데반 집사

그렇습니다. 스데반처럼 지혜와 권능이 충만한 사람, 또한 박해 가운데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알곡이 박해 당하는 것을 아시고, 속히 오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이러한 알곡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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