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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 알바레즈님, 안녕히 가세요필리핀의 인권과 평화를 위해 헌신했던 인권활동가
차미경 | 승인 2020.08.28 17:46
▲ 사진 제일 오른쪽 흰 티셔츠를 입고 있는 분이 희생당한 ‘자라 알바레즈’(Zara Alvarez, 39세) 여사 ⓒKarapatan Alliance Philippines
지난 8월 17일 필리핀 중부 비사야스 제도 네그로스 섬에서 활동하는 인권/평화 운동가인 ‘자라 알바레즈’(Zara Alvarez, 39세) 여사가 노상에서 자경단이 난사한 총탄 6발을 맞고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습니다. 주변의 상점에서 저녁 먹거리를 준비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고 합니다. 지난 8월 10일 농민운동가 렌달 에카니스(72세)가 자경단 총격으로 사망한 지 일주일 만에 또 다른 인권운동가가 살해되자 필리핀과 세계 시민사회는 큰 충격과 슬픔,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2월 “한국 필리핀 인권연대”는 자라 여사를 초청하여 필리핀 인권상황에 대한 긴급 보고대회를 가졌고, 그 후 자라 여사는 한국의 인권 단체들과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자라 여사와의 인터뷰 기사는 “필리핀, 인권침해와 민주화 후퇴라는 총체적인 난국”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글은 차미경 선생님의 자라 알바레즈 여사 추모의 글입니다. 또한 자라 알바레즈 여사의 11살 된 자녀를 돕고자 하시는 분은 편집 주간 신승민 목사(prokshin@hanmail.net)에게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 신승민 목사 주

자라 알바레즈(Zara Alvarez)님

당신을 고인이라고 부르며 슬퍼하는 것이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당신의 삶을 이렇게 끝낸 자들이 지금 이 순간도 네그로스 섬 사람들이 집 밖에서 나오지 못한 채 겁을 내며 당신과의 기억을 지우게 하려는 것이야말로 어둠 속 권력자들이 바라는 진짜 목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필리핀에서 이런 살인사건이 나면 마을 주민들이 모두 무섭고 두려워서 사건 현장과 멀찍이 떨어져 있거나 도망간다지요. 그러나 당신이 살해된 소식에 주민들이 모두 모여 사체를 보호하고, 더 이상 훼손되지 못하도록 지키며 “여기 자라가 있다, 자라가 죽었다 ” 모두 외쳤다는 소식을 존스 갈랑 선교사님으로부터 전해 들으며 예수님의 무덤 앞을 지키며 용감하게 애도하던 여인들이 생각났습니다.

맞습니다. 당신은 네그로스 섬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한 주민이며, 다른 이들의 죽음과 실종을 외면하지 않은 여인이며, 한 부모 엄마이며, 박해자들 앞에서 용감했던 정치범이자 양심수이며, 억울한 자들의 죽음을 법정에서 알린 변호사였습니다.

왜 이 순간 당신을 기억하는 전 세계 시민들이 슬퍼하는 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공포정치로 약한 자들을 능멸하는 필리핀 역사의 시간이 너무 길어지고 있습니다.
필리핀의 미래를 위해서 당신의 죽음을 기억하겠다는 말은 틀린 주장입니다.
우리는 이 순간까지 죽어간 사람들의 애통함이 서린 오늘까지를 기억할 뿐입니다.

아로요 정권 때부터 국민은 살해당하고 실종되고 외면하지 않는 종교인들과 변호사들과 운동가들은 탄압 당했습니다. 사람들을 살해하는 국가야말로 파시스트이고 전체주의자들이고 죽음의 테러리스트입니다. 명백한 사회적 타살 앞에서 애도하는 시민들에게 서로 다른 국가의 국민은 없습니다. 우리가 당신의 죽음 앞에서 깊은 애도의 자리에 연대의 약속을 다짐하는 까닭은 그 때문입니다.

소수이지만 이곳 한국에서도 오래 전부터 필리핀에서 시작된 정치적 학살에 항의하면서 시민연대의 역사가 이어졌습니다. 몇 월 이었는지 숫자의 기억은 이미 사라졌습니다. 10년도 더 지난 어느 날 여름, 이태원 필리핀 대사관 구옥 앞에서 처음으로 수십 명의 한국과 필리핀 친구들이 모여서 아로요 정권의 민중 박해에 항의하며 집회를 하고 대사를 만나서 연대서신을 전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던 정치관료들이 얼마나 무능하게 보였던지...

대신 가여운 목숨들을 위해 손을 잡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저는 진실한 아름다움을 발견했습니다. 한국말과 필리핀 언어로 준비된 집회 후 한 여성 이주민이 운영하는 작은 가게 한 켠에 둘러앉아 필리핀에서 온 생선과 쌀로 단촐한 점심을 먹으며 나눴던 이야기가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어디서든 일할 자유가 있다면 박해와 탄압에 저항하는 사람 앞에는 자유와 웃음과 사랑만이 있지” 너무도 멋진 말에 브라보를 외쳤던 그 순간이 떠오른 까닭은 당신의 죽음 앞에서 누구보다도 슬퍼하는 한국 NCC 김민지 목사님께서 당신과 나눈 대화 때문입니다.

“자라, 그렇게 사는 게 힘들고 지치지 않아? 아니야, 나에겐 함께 싸우는 친구들이 있고, 사랑하는 나의 천사, 딸 제드가 있쟣아, 남편이 없으면 어때,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있어서 모든 게 괜찮아.”

타살되기 직전까지도 해외에서 보내 온 연대성금으로 쌀과 음식을 구입하여 네그로섬에서 먹을 것이 없는 가난한 주민들을 방문할 때 이를 저지하려고 “당신에게는 쌀을 나눠줄 권리가 없다”며 한 여인의 거룩한 삶을 능멸하고 박탈하려 했던 경찰과 군인들은 누구를 위한 병사들이었는지요. 저는 네그로스섬에서의 당신이 지나온 일상을 전해 들으며 공포를 이겨낸 정신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당신의 죽음에 슬퍼만 할 수 없는 한국의 신승민, 존스갈랑, 정진우, 이기호, 김민지, 나현필, 아담 샤우, 챗디마노 동료들이 모이고 있습니다. 그분들은 ‘죽음을 눈감아 주고 외면하면 다 죽는다는 것’을 가장 잘 아는 당신의 벗들이며 사회적 고통에 함께 하는 국민들입니다. 그리고 한국의 이주민공동체 카사마코(Kasmaco)가 가족을 떠나 살며 노동에 지쳐가도 한국시민들에게 정치적 박해를 알렸듯이 앞으로도 고국의 국가폭력을 외면하지 않을 것입니다.

애도할 권리마저 빼앗아가려는 어둠 속 무리들은 당신의 삶과 투쟁의 근원이 사랑이었고 그 사랑이 불의한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어 부활할 것을 몰랐을 것입니다. 설령 알았어도 그들은 그 빛이 두려워 총을 사들이고 무기와 돈으로 사람을 매수하여 군복을 입히고 국민들 앞에서 “봐라 우리는 이 나라 평화를 헤치는 테러니스트들을 체포했다” 라고 소리치며 공포정치로 필리핀 통치를 이어가려고 했을 것입니다. 자신들이야말로 의심과 미래에 대한 걱정에 사로잡혀 총과 칼에 피묻힘을 두려워하지 않는 테러리스트들이라는 사실을 속이고 말입니다. 우리는 당신이 국가를 전복하려고 폭력을 사용하여 살인이나 인명피해를 준 사실이 명백히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테러리스트로 규정한 것은 또 다른 의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타살되기 바로 전 케존 시티의 농민조직 대표이던 렌달 에카니스(Randall Echanis)씨가 살해당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닐라, 카비테, 일루일로, 민다라오, 네그로스에서 당신이 지키고 싶어했던 인간의 존엄성과 고난받는 사람들의 수난이 멈추지 않는 소식들 앞에서 또 한 번 슬픔이 밀려옵니다.

하여 당신이 감옥 창살에 갇혀서도 세상의 불의와 싸우며 감옥 밖의 사람들을 위로한 메세지로 조사의 마무리를 할까 합니다.

“하나의 목소리는 소음이지만 더 많은 목소리는 자유의 소리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곧 깨달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민중의 노래를 부르고, 정치적 박해를 끝내기 위해 행동하며. 희생자들은 정의를 바라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당신의 죽음 앞에서 가장 슬퍼하고 있을 홀로 남은 어린 딸 11살 제드 카이라(Zed Kaira)가 엄마 품을 그리워할 때 국경의 경계가 사라진 우리의 심장 속에서 당신의 삶과 투쟁을 기억하는 사랑으로 커갈 수 있도록 함께 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차미경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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