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과 가라지는 같이 자라고 있다. ⓒGetty Image

제 큰 아들이 12살입니다. 한국에 있었다면 초등학교 6학년이겠지만 이곳 미국에서는 7학년 중학생입니다. 과거보다 영양상태가 좋기도 하고 식습관이 달라서, 그리고 유전적인 게 작용해 여드름이 얼굴에 가득합니다. 생각하는 거나 말하는 걸 보면 아직 어린애 같은데 키가 훌쩍 커버리고 말았습니다.

5살 꼬마 때를 기억합니다. 엄마에게 안겨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 나 이 다음에 크면 엄마랑 결혼할래” 엄마가 대답하지요. “그래, 알았어.” 사랑스런 눈으로 엄마는 아이를 꼭 안아줍니다. 자 어떻습니까? 엄마와 아들의 대화가 이상합니까? 다섯 살 꼬마 아이의 천진난만한 대화를 엿듣고 있다가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엄마와 아들이 결혼할 수 없어. 말도 안돼” 하면서 아이를 혼내고 이것저것 법과 질서를 들먹이며 훈계하거나, 엄마의 잘못된 태도에 대해 지적질을 하는 아빠는 없을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는 뻔하지요. 그 꼬마 아이인 제 아들은 몇 년 지나기도 전에 이미 엄마가 제 결혼 상대가 될 수 없음을 누가 말해주지 않더라도 깨닫았고, 지금은 그렇게 엄마에게 청혼했던 사실을 부끄러워하기까지 합니다. 제 아내는 아이가 그렇게 변심한 것에 대해 서운하기까지 합니다. 아이가 커가는 것이 못내 아쉬운 것이지요.

그러나, 문제는 제 아이가 이제 나이를 먹어 스무살을 훌쩍 넘긴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자기 엄마를 결혼 상대로 여긴다면 어떻게 될까요? 엄마를 사랑하는 거야 이해가 되지만 나이를 생각하면 전혀 상황이 달라지겠지요. 자 그렇다면 화제를 조금 바꿔보지요.

여러분께 누군가가 하늘나라에 대해 질문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하늘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하늘나라에 가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혹시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는지 궁금합니다. 예를 들면, 하늘나라에 가면 가장 높고 가장 좋은 자리에 하얀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시는 하나님께서 앉아 계시고, 그 오른편에 예수님이 앉아 계시는 상상 말입니다. 또 각자 믿음의 분량에 따라 여러 다양한 집에 흩어져 살며, 보석이 박혀 있는 으리으리한 집에 사는 사람, 조금 초라한 집에 사는 사람, 쓰러져 가는 초막집에 사는 사람이 서로 어울려 있고, 천 년, 만 년 영원히 사는 상상 말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하늘나라를 상상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 세상의 복지가 최고에 이르는 그런 세상을 하늘나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방 두칸 짜리 집에 살다가 하늘나라에 가서는 널찍한 방이 다섯 개 있는 집에 사는 것이지요. 평생 생계를 위해 직장생활을 하다가 하늘나라에 가서는 더 이상 돈을 벌지 않아도 되고, 집에서 편히 쉬어도 돈 걱정 없는 것이지요. 평생 지병을 달고 살아 병원을 들락날락 했었는데, 하늘나라에 가서는 건강한 몸으로 감기 한 번 걸리지 않고 편안하게 사는 것, 그게 하늘나라 아닐까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것은 엄마를 좋아하는 어린 아들이 엄마와 결혼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초급 수준의 상상력일 뿐입니다. 그런 생각이 아무리 절실하다 할지라도 고대인들의 세계관을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지구가 둥글다고 말하면 떨어져 죽을까 두려워 여행을 떠나지도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본문인 마태복음 13장은 하나님 나라에 관해, 하늘 나라에 관해 모두 7가지 비유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 7가지 비유를 하신 것인지, 아니면 여러 비유를 하셨는데, 성경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7개만 모아서 편집했는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어쨌든 마태복음은 하나님 나라에 관한 비유를 통해 무언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고, 우리는 그 의도와 본질을 찾아 가는 것이지요.

하나님 나라에 관한 비유를 통해 우리는 “아, 이게 하나님 나라의 본질이구나, 아 이렇게 사는 게 하나님 나라를 살아간다는 거구나” 깨닫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방법을 찾으려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라는 것이 죽은 후에 갈 수 있는 저 머나먼 세상이라고, 또한 우주 공간 어딘가에 위치한 신비한 마법의 세계처럼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그렇게 믿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과연 하나님 나라는, 하늘 나라는 몇 억 몇 십억 광년 떨어진 머나먼 별일까요?

오늘 본문 속에 등장하는 ‘가라지 비유’는 마태복음에만 수록되어 있습니다. 지난 주에 함께 읽었던 마태복음 본문은 가라지 비유였는데, 이 비유에 대한 해석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혹시 “예수 잘 믿으면 죽어서 천국에 가고, 안 믿으면 지옥에 떨어진다.”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어린 아이라면 이런 신앙이 문제되지 않습니다. 귀엽고 예쁘지요. 이런 생각이 틀렸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 한 사람의 목사요, 신학자로서 권해 드리는 것은 말씀으로 오시는 하나님의 초대에 정직하고 겸손하게 같이 서 보자 하는 것입니다. 내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뒤적거리면서 어쩌다 읽는 게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그리고 우리를 읽을 수 있도록 정직하고 겸허하게 무릎 꿇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마태복음 13장의 말씀은 우리에게 이렇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십니다. 주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가라지가 자라던 세상’이 ‘하나님 나라’와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관심사는 우리가 죽어야 비로소 갈 수 있는 피안의 세계가 아닙니다. 바로 오늘 여기 우리가 사는 이 세상과 우리 삶의 현장이 바로 주님의 관심사입니다. 주님의 심판은 반드시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 준엄한 심판은 주님께서 바라시는 재판이 아니요, 오히려 우리 삶에 자연스레 따르는 결과에 가까울 뿐입니다. 우리는 흔히 믿는 자로서의 우리 삶의 가치와 그 보상에 대해서 생각하곤 합니다. 굳건한 믿음을 통해 더 큰 행운을 누리고 더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삶을 살게 되고, 또한 죽은 후에도 복락을 약속받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과연 그것이 우리 신앙생활의 목적인가 하는 질문을 받는다면 “예”라고 대답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가라지 비유’를 통해 밀인 자기의 본성을 깨닫게 될 뿐입니다. 밀과 가라지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는 저로서는 밀과 가라지를 구별하지 못할 것입니다. 외양의 미묘한 차이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입니다. 밀 씨앗을 뿌린 자리에 가라지가 자라고 있다는 종의 보고가 있지만 중요한 차이는 밀과 가라지의 겉으로 드러나는 외양의 차이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밀과 가라지, 즉 잡초의 차이입니까? 어느 누가 본다면 둘의 차이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오늘날의 경제적 가치로 볼 때, 밀과 잡초 어느 게 더 높은지 확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농부가 보기에는 밀이 더 가치 있는 작물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바로 알곡을 맺는가의 여부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가라지는 알곡을 맺지 않지만 밀은 알곡을 맺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스스로 가라지 같은 인생을 살고 싶은 유혹을 받기도 합니다. 또한 세상에서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며 태연히 살아가는 가라지 같은 인간들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밀은 가라지를 부러워할 필요가 없고 적대감을 가질 이유도 없습니다. 다만 밀의 본성을 깨닫고 그것을 잘 실현하여 알곡을 맺는 일에 만족하는 것으로도 충분합니다. 그게 바로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사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언젠가 가게 될 하나님 나라에서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지금 사는 게 바로 구원입니다. 밀이 어느 날 갑자기 보석이 되는 게 구원이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를 뿌리신 뜻대로 살아가며 열매 맺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의 갈 바요 사명입니다.

오늘 본문을 읽다 보면 한 가지 떠오르는 의문이 있습니다. 왜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그것은 마태공동체를 위시한 교회공동체의 한결같은 질문이었습니다. 가라지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시면서 하나님 나라란 마치 밀과 가라지가 섞여서 자라는 밭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좋은 씨를 뿌렸더니 원수가 몰래 가라지를 뿌리고 갔습니다.

처음에는 몰랐으나 이삭이 패고 보니까 가라지의 가짜 이삭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즉시 뽑아 버려야 한다고 종들은 판단해 주인에게 보고합니다. 그러나 주인은 뜻밖의 대답을 합니다.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밀까지 뽑으면 어떻게 하겠느냐? 추수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추수때에 가라지는 뽑아서 불 태우고 밀은 내 곳간에 거두어 들이겠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몇 가지 깨닫는 게 있습니다.

우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라는 분명히 우주 공간이나 죽음 이후의 이상향은 분명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가라지 같은 헛된 것들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입니까? 그것이 말하는 바는 예수님의 관심이 하늘에서 이미 이루어진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이 땅 위에서 이루어질 하늘 나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바로 여기 “악한 이가 더 잘 되고, 선한 이들이 고통받고 있는 현실, 즉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나고 있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다스림이 이루어지는가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구체적인 현실에 무관심하며 홀로 저 세상으로 옮겨지기를 바라는 것은 옳지 못한 이기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또한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이 본래는 선하게 지어졌음을 우리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이 세상의 죄악과 고통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에 그 원인이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일에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또한 심판 때까지 우리 가운데에 죄악과 고통이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절대로 죄를 짓지 않고, 악을 철저히 없애며 고통이 완전히 사라지도록 하는 것은 우리의 능력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누구나 잘 알듯이 우리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결코 전지전능하지 않습니다. 죄악과 고통을 해결하려는 우리의 노력이 또다른 죄악과 고통을 일으키는 것을 자주 경험하게 되지 않습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모든 걸 맡기고 죄를 용서하고, 악을 맞서서 이겨내며, 고통을 사랑으로 감싸주는 일일 것입니다.

어떤 신학자는 오늘의 비유를 이렇게 해석합니다.

“지상에서 하나님 나라는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항상 악마의 나라와 뒤섞여 있다. 사람들이 사는 세계에서는 어떤 것도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혹시 우리는 선과 악이 뒤섞여 있는 상태를 참아내지 못하고 있지는 않는가? 교회 안에 밀과 가라지가 뒤섞여 있는 상태를 참아내지 못하고 있지는 않는가? 당장 악에서 회개하려 들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기를 바란 적은 없는가? 하나님의 지혜는 악한 사람들까지 포용한다. 세계 역사 전체를 통하여 악한 사람들이 계속 활동할 것이고 하나님 나라는 그들 가운데서 길을 찾아 나갈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는 관용에 있지 파괴하는 승리에 있지 않다. 악한 사람들과 선한 사람들을 결정적으로 갈라놓는 일은 마지막 때에 가서야 일어날 것이다. 누구나 살아 있는 동안에는 선하다가도 악해질 수 있고 악하다가도 선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선하십니까? 혹은 악하십니까? 잘 분별하십시오. 지금 아무개가 선한 사람이라고 해서 영원히 선할 거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또한 아무개가 악하다고 해서 죽을 때까지 악할 거라고 누가 장담합니까? 우리 인간은 늘 그렇게 변하는 존재입니다. 우리 인간은 그렇게 의인이자 죄인입니다. 아무리 선한 자라도 악한 모습이 있고, 아무리 악한 자라도 선량한 구석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선한 씨앗인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게 얼마나 힘드냐고 하나님을 원망하지는 않으셨습니까? 악한 가라지들을 당장 뿌리째 뽑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셨습니까?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저는 잠시 생각이 멈춰졌습니다.

“아, 내가 죄도 저지르고, 세상의 유혹에도 넘어가면서도 스스로 밀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구나. 내가 가라지라면 어떨까? 죄의 길에 늘 서서, 열매도 맺지 못하면서, 자기 중심적인 생각을 버리지도 못하면서 … 내가 가라지인데 … 밀밭을 바라보며 추수를 기다리는 것은 내가 아니라 주님이신데 … 추수를 기다리시며 내가 죄에서 돌이키기를 원하시는데, 내가 풍성한 열매를 맺길 원하시는데.”

로마서 8장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그렇습니다. 주님께 맡기십시오. 우리를 중보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강한 팔에 우리의 인생을 맡기십시오. 주님은 선하십니다. 주님은 기다리십니다. 겸손하고 정직하게 주님 앞에 서십시오. 주님의 기다리심과 부르심에 응답하여 날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민기욱 목사(미국 트리니티 한인장로교회)  minics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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