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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맥(僊脈) 르네상스 : 빛은 동방으로부터고구려 도교는 중국 도교의 발원지이다
이호재 원장(자하원) | 승인 2020.09.01 17:07

신화는 역사의 생명이며, 역사는 신화의 발현이다. 신화는 의례를 통하여 반복적으로 재현되어 역사적으로 계승되며 공동체 위기 상황에서는 신화를 재창조되어 역사의 구심점으로 작용한다. 신화는 공동체의 기원이다.

역사공동체로서 한국은 환웅신화, 단군신화, 해모수신화, 동명신화, 주몽신화, 혁거세신화, 알영신화 등의 신화소를 기억공동체에 의해 공유한다. 우리가 집단전승하는 신화가 가지는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태양신화이다. 환인(桓因)의 환은 ‘환하다’는 의미로 태양 자체를 말하며, 환웅은 천상의 해가 지상에 강림한 ‘햇살과 같은 존재’이다. 부여의 동명신화와 이를 차용한 주몽신화에서 동명(東明)이라는 말 자체가 동방의 빛, 새 밝이라고 읽힌다. 혁거세(赫居世)는 세상에 밝히는 불이자 태양이다. 알도 태양을 상징하고 있다.

우리의 신화는 온통 해와 관련된 광명세계이다.(1) 최남선은 밝문화론을 말하고, 김경탁은 ‘밝족’이라고 한다. 동이족은 빛의 근원인 ‘본태양’의 후예이자 빛의 공동체이다. 변찬린의 언어맥락에서 빛은 동이족의 선맥(僊脈)의 ‘기의’이자 성서의 변화산의 ‘빛’과 맥락이 상통하는 근본어이기도 하다. 그래서 변찬린은 ‘한밝’이라는 호를 쓰며 동방의 선맥과 서방의 부활사상을 포월하려고 한다. ‘선맥 르네상스’의 대선언이다.

동이족의 신화는 의례화되어 역사적 광장에서 재현된다. 부여는 영고(迎鼓)라는 해맞이를 ‘국중대회(國中大會)’를 위해 청각적인 북 의례를 하여 ‘홍익인간’의 공동체 정신을 함양했다. 고구려는 동맹(東盟)이라는 제천의례로 동명(東明), 즉 시각적인 해맞이 의례를 통해 ‘제세이화’의 평화세계를 다짐한다. 동옥저, 예, 마한과 진한도 제천의례를 한다고 하였듯이 고대 한국인은 태양이 곧 하늘이고 하늘이 곧 태양이다. 태양과 더불어 동이족의 역사는 시작된다. 이런 빛을 신성화하고 빛자체가 되고자 하는 ‘알타이 문화’의 바른 맥락이 동이족의 선맥의 기층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선맥을 잊어버린 역사에서 살고 있다. 창조적 종교성인 선맥은 역사적 공간에서 사대주의와 식민주의로 그 맥이 발현되지 않고 은폐되었다. 이런 선맥은 신화적인 상상력으로, 유교의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불교의 몰이해로, 과학의 합리성의 이름으로, 기독교의 비신화론으로 종교 역사의 뒤안길에서 허황된 기념품으로만 장식되어 있다. 심지어 부활사상을 종교적 신앙의 핵심으로 하는 그리스도교마저 ‘변화와 부활의 도맥’을 오해하고 있다고 변찬린은 비판한다. 선맥담론은 형성 지점 자체가 잘못 설정된 채로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도교는 부여와 고구려의 역사적 근거지에서 발흥, 중원에 전파

사실 한국 도교의 자생설은 이능화를 시발로 최삼룡, 도광순, 김홍철 등을 포함한 한국 도교학자의 상당수가 주장하고 있다. 특히, 이능화는 『조선도교사』에서 원래 한국의 신선사상이 중국에서 도교화되어 한국에 역수입되었다고 하고, 김범부도 “신선의 선도(仙道)는 한국에서 발생”하였으며, 전국시대에 비로소 선인, 신인설이 등장하여 신선기원설을 주장한다.(2) 더 나아가 변찬린은 1978년 「선고(僊(仙)攷)」에서 당시 자생설로 언급되던 상당한 문헌을 인용하며 한국의 선맥은 중국 도교와는 다른 동이족의 독창적인 도맥이라고 주장한 사실이 김홍철과 김상일에 의해 인용되고 있다.

문제는 자생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신선’과 ‘진인’ 등 주장하는 개념이 현대인과 소통되는 언어로 정립되지 않고 많은 부분이 오해되고 있다. 필자는 신선을 ‘선화적 인간(僊化的 人間, Homo Spiritus)’ 혹은 ‘풍류체(風流體)’ 혹은 ‘영성생활인(靈聖生活人)’이라고 문맥에 따라 혼용하여 쓰기로 한다. 간단하게 말하여 시공우주에서는 성인처럼 무소유의 삶을 살다가 영성우주로 갈 때는 존재탈바꿈을 하는 인간을 말한다. 생물학적인 개념으로 선화적 인간은 호모사피엔스 다음에 출현하는 새로운 종의 인간을 말한다. 다음에 구체적으로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한국 도교의 자생설의 중핵은 동이족의 신선사상이다. 그러나 신선은 중국 도교에 가탁(假託) 되어 유교의 ‘괴력난신(怪力亂神)’의 장막에서 대화 상대조차 되지 못하였고, 도사들은 불교와의 논쟁과 유불도가 합일하는 시대적 추세에 효율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자리매김하지 못하였다. 단지 문학작품과 무술영화에서 신이한 인물로 묘사되어 현대 종교담론의 공간에 들어설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중국 담론의 연장선상에서 전개된 한국 종교계에서는 본격적인 담론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못한 상태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필자에게 정재서 교수(이화여대)가 『한국 도교의 기원과 역사』(2008)에서 언급한 “안동준 역시 고구려 도교와 관련하여 한국 도교의 독자적 발생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어 한국 도교의 자생설에 대한 논의는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86쪽)고 지적하는 글을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특히, 안동준 교수(경상대)의 『한국도교문화의 탐구』(2008) 등에서 주장하는 한국 도교의 자생설이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문헌자료와 유적자료를 종합적으로 해석한 ‘실체’를 가진 주장이라는 사실에 더욱 주목하게 되었다.

그동안 한국 도교의 자생설은 신선사상과 노장철학, 내·외단적 연금술, 음양오행 등 민간신앙이 혼잡된 중층적이고 다의적인 도교 개념 임에도 자생한 한국 도교가 무엇인지조차 모호하기 짝이 없는 채로 각 자의 주장이 전개된 경향이 있다. 일반적으로 ‘도교는 중국의 토생토장(土生土長)의 종교’라는 고착된 언어로 통용되기에 실체가 없는 주장은 ‘국수주의와 민족주의’로 오해받기 십상인 것이 한국 도교 자생설의 한계적 상황이다.

요하문명이라는 난제와 도교의 생성과 전파

여기에 한국 도교 자생설 혹은 기원론을 주장하려면 풀어야 할 더 큰 난제가 최근에 급부상하였다. 바로 요하문명의 존재이다. 1980년 초에 내몽고 등지에서 발굴된 요하문명은 세계 고고학계를 뒤흔든 문명사적 사건이다. 중화민족은 상고시대부터 황제족의 후예로서 황화문명에 뿌리를 둔다고 역사를 서술했지만, 황하문명보다 더 오래되고 발전된 요하문명이 발굴되자 전혀 문명의 결이 다른 요하문명도 황제족이 형성했다고 선전하고 있다.

▲ 우실하, ‘고조선의 강역과 요하문명’, ㈜ 동아지도, 2007

현대 중국은 자신의 강역안에서 발생한 다민족의 역사도 중국역사라는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이라는 역사관을 수립하여 우리의 고대사인 고조선, 부여와 고구려의 역사마저 중국의 변경사로 재단을 시도하고 있다.(사진 ‘고조선의 강역과 요하문명’의 오른쪽 설명 참조) 중국 정부의 주도하에 진행된 하상주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 중화문명탐원공정(中華文明探源工程), 동북공정 등의 역사공정은 중국이 21세기 ‘대중화주의 건설’을 위한 치밀한 국가전략이다.(3) 우실하 교수는 “동북공정의 최종판은 요하문명론”이라고 하는 지적은 동이족의 고대사의 역사적 이해관계를 가진 우리에게 새로운 역사담론을 형성할 수 지점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동이족의 역사적 공간이었던 요하문명은 신화적 담론이 역사적 담론으로 전환되어 환웅신화, 단군신화, 부여신화, 해모수신화, 동명신화 등 신화소뿐만 아니라 고대사 연구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던 우리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역사텍스트가 공개되고 있다. 이에 대해 주의를 환기하는 최신의 연구성과로는 2007년에 『고대에도 한류가 있었다』는 연구와 2018년에 『고조선 문명 총서』 6권 등이 있다.

우리의 논제에 집중하면 요하문명은 동이족의 선맥을 실체적으로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 이런 구체적인 연구성과가 안동준 교수에 의해 발표되고 있었던 것이다.(4) 그의  학문적 전략은 상당히 전략적이고 치밀하다. 선맥에 대해 상당한 식견과 체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선적으로 제도적인 도교문화의 ‘동북지역 발생설’을 주장하는 우회로를 선택하고 있다.

그는 “① 도교의 신념체계와 의례체계의 주요한 부분이 요동반도에서 기원하여 태평도와 오두미교, 백가도의 강남도교 등에 영향을 미쳤다. ② 음양팔괘 사상도 고구려 고분벽화에 먼저 나타나 중국 내륙으로 전파되었다. ③ 신선사상은 청구인 동북지역에서 발생하여 중국에 전래되었고, 춘추전국시대의 방외인과 그들의 신선사상은 연과 제나라에서 전래되었는데 이 곳이 요동반도와 발해만 지역이다. ④ 노장철학을 도교라고 한다면 고구려 때에 당에서 전래되었다.”(5)고 도교를 범주화하여 구분한다.

이런 도교 개념의 범주화를 거쳐 ①, ②, ③의 발상지가 동이계의 신화구역인 고조선과 부여, 고구려 지역임을 말하고 있다. 도교는 이처럼 1) 신선사상, 2) 노장 등 도가사상, 3) 외단과 내단의 연금술, 4) 음양오행과 무교 등 민간신앙이 혼합된 하나의 종교체계이다. 일부 선학들이 선맥의 자생설을 주창했다면 안동준은 이를 포함하여 도교문화 자체가 동이계의 북방지역에서 중원에 전파되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고구려의 도교사가 “김부식의 유교사관으로 말미암아 잘려나가고, 일연의 불교사관에 따라 또 다시 분쇄된 것”(97쪽)이라고 진단하며 도교의 발상지는 중원이 아닌 고구려의 서성산을 중심으로한 서성산파(西城山派)라고 예단한다. 서성산(西城山)은 도교의 성지인 10대 동천(洞天)의 하나로서 요동성 환인현의 오녀산으로 추정되는 제3 동천이다. 이 곳에서 요양출신인 서성왕군 왕포와 해주 출신인 백중리가 구도한 곳이다. 특히 백중리는 강남 백가도의 조사로서 영보파와 상청파의 모태가 되었다는 점에서 서성산은 새롭게 인식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독자들이 도교에 약간의 관심을 가졌다면 『포박자』에서 말한 한족의 시조인 황제가 청구(靑丘)에 가서 자부선인(紫府仙人)을 만나고 〈삼황내문(三皇內文)〉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청구’와 〈삼황내문〉은 도교 자생설을 주장할 때 반드시 언급이 되는 지역이고 문서이다. 바로 이 〈삼황문〉이 고구려 서성산파 백중리를 조사로 받드는 백가도의 주요경전이고 이 백가도는 위진시대 천사도, 즉 오두미교의 일파라는 점에서 중국의 강남도교와도 관계를 갖는다고 논증한다.

다시 강조하면 도교의 중심경전인 〈삼황문〉이 고구려의 초기 도읍지인 오녀산에서 출현하고 이 경전은 요동출신인 백화에게 전수된 중국 도교의 경전이 아닌 오히려 고조선 혹은 고구려 계열의 부록(符籙)파의 경전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선학들이 주장한 도교 자생설은 그에 의해 지역(명)과 인물과 경전이 특정되어 중국 도교에 미친 구체적인 정황들로 제시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부여와 고구려 등 북방계의 천문신앙과 신격과 제천의례가 오두미교와 태평도 등 중국 초기 도교에 전유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예를 들면 “부여와 고구려에서는 태일성(太一星)에 천제(天帝)라는 신격을 부여했다. 이러한 천제사상이 북방계 신화의 근원으로 작용하면서 제의도교의 태일신앙으로 이어지는 점을 감안한다면 송대에 등장한 신소파(神霄派) 계열의 『옥추경(玉樞經)』은 고조선 지역의 신화에 남아있는 무교적 요소를 도교적으로 변용하였다”(36쪽)고 말한다.

또 다른 예로 고구려 등 북방계 도교의 특징인 태일성신(太一星)과 태일신앙을 중시하는 고구려의 신격은 지고신인 태일성신으로 추정된다. 이는 정명도의 태일신앙과 상청파(上淸波), 영보파(靈寶波), 신소파 등과도 일정한 관계를 맺고 있는 유력한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우리가 중국 도교의 신앙으로 알던 태일신과 태일신앙은 조선 시대까지 태일전에서 의례가 거행되었다.(참고 사진 참고)

경북 의성의 빙계계곡과 충남 태안의 백화산에는 태을전의 흔적이 남아있다. 또한 서울 삼청동의 삼청(三淸: 원시천존, 영보천존, 태상노군으로 도교의 최고신격)과 삼천동문(三淸洞門), 사대문의 성곽중 하나인 창의문은 자하문(紫霞門)이며, 도봉산의 도봉계곡에는 제일동천, 북악산에 도화동천(桃花洞天), 부암동에 백사실에는 백석동천(白石洞天) 등도 도교의 남겨진 흔적 가운데 일부이다.

▲ 창덕궁 후원 연경당의 태일문(좌)과 ‘太一門’의 현판(우) ⓒ2020년 5월21일 필자 촬영

고조선 지역의 도교가 중원 도교의 밑바탕을 형성했다는 안동준 교수의 주장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도교의 최고신인 옥황상제와 원시천존도 고조선의 신격에서 유래하였으며 그가 주재하는 도교의 이상향은 동방의 부상국(扶桑國)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중국도교학회는 옥황상제의 연원을 부려원시천존(浮藜元始天尊)이라 하는데 이 부려는 부상(扶桑)을 가탁한 언어로 요동지역의 부여와도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또한 고구려의 오방사상, 즉 오방성두(五方星斗) 사상이 후한 장릉이 창시한 오방성두를 신앙하는 오두미교의 연원이 되고 있으며 도교 영보파에서도 동방의 부려토(浮藜土)를 중시한다. 부려는 나라이기도 하고 최고신의 이름이기도 한 ‘태일(太一)’ 또는 ‘태을(太乙)’이라고도 하며 부려토는 도교의 지고신인 원시천존이 주재하는 동방정토이다. 그런데 중국의 도교와 불교의 논쟁에서 원시천존이 중국 동북방의 최고신격인 부려천존 신격이라는 정체가 드러나 불교측에서 동방의 지리적 공간이 고구려나 백제가 아닌가라는 반격을 받고 도교사에서 은폐된다. 중국 학자의 고증에 의하면 “옥황상제의 실체가 동방 부려토를 주재하는 ‘부려원시천존(浮藜元始天尊)’이다.”라는 점은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도교의 최고신의 연원에마저 일대전환을 요구하고 있다.(6)

필자는 안동준 교수의 주장을 아주 간략하게 《에큐메니안》에 담론화하자는 측면에서 소개하였다. 필자는 그의 기존의 연구성과보다는 앞으로 발표될 연구성과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왜냐하면 그는 유불도의 경전에 대한 충분한 전문지식을 가지고 고고학, 천문학, 신화학, 문헌학, 도상학, 도교신학 등을 포함한 융합적이고 다학제적 방법을 연구에 응용하기 때문이다. 특히 도교를 중심으로 ‘신화, 의례, 역사, 종교’를 아우르며 한국 종교의 원류의 독창성과 세계 학문 지평에 보편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도 동북도교 기원설의 방증자료로서 제시한 동이족의 신화와 의례에 관련되는 부분은 지면관계상 언급조차 하지 못하였다. 당장 눈앞의 과제로서 1) 사라진 부여의 동명왕과 그 신화도 중국 도교사에서 변용되어 출현하는가? 2) 부여의 영고와 고구려의 동맹 등 의례공동체에서 사용하던 제천의례에 사용되던 역사적 흔적도 고증할 수 있는가? 이외에도 우리가 그동안 오해하였던 한국 도교문화에 대한 많은 부분이 그의 치밀한 연구를 통해 세상에 얼굴을 내밀 것으로 기대한다. 그의 연구경향과 역량을 보면 단발성 연구가 아닌 선행 연구성과를 거의 완벽하게 소화한 후 고대부터 현대까지 관통하는 현재성을 가진 주제이기에 이런 필자의 기대가 기대로 끝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이제 우리의 문명적 시야는 사대주의와 식민주의 관념에서 형성된 테두리에서 벗어나 요하문명을 창출하는데 공헌한 세계 5대 문명의 역사적 주역이라는 주체성을 가지고 ‘신화와 역사, 종교와 유적(물)’을 해석하고 오늘날 재현해 내어야 한다는 큰 과제를 안고 있다.

알타이 문화의 한 맥을 이루는 동이족의 신화는 ‘태양’이라는 기표를 지시하지만, 그 속내는  ‘선맥’을 지향하고 있다. ‘태양신화와 선맥’이라는 한 축이 요하문명의 핵인 홍산문화가 적봉(赤峯)이라는 ‘붉은 산’에서 타올랐지만, 문명의 새 빛은 동방의 역사 속에서 선맥으로 은폐되어 면면약존(綿綿若存)하고 있다. 변찬린이 말한 “빛은 동방으로부터”라는 말은 “동방의 빛은 선맥으로 발현된다”라는 말과 동의어이다. 지금까지 다소 모호한 언어로 ‘선맥’이라고 지칭하였지만 선맥 르네상스의 본론을 이제 시작해보자.

미주

(미주 1) ‘새’에는 새롭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동쪽이란 의미도 있다. 예를 들면 동쪽에서 부는 바람을 새바람이라고 한다. 동이족의 신화와 고대 가요에 대한 어원과 의미는 다음을 참고할 것: 임재해, 『고조선문명과 신시문화』, 지식산업사, 2018, 309-462.; 양주동, 『古歌硏究』, 동국대학교 출판부, 1995, 1-12.
(미주 2) 김범부, 『풍류정신』, 정음사, 1986, 145.
(미주 3) 우실하, 「동북공정의 최종판 요하문명론」, 『단군학연구』, 2006.12, 5-35; 정경희, 「백두산 서편의 제천유적과 B.C.4000년~A.D.600년경 요동요서 한반도의 환호를 두른 구릉성 제천시설에 나타난 맥족의 선도제천문화권」, 단군학연구(40), 2019. 74-81.
(미주 4) 지면의 한계와 연재의 논제에 집중하는 관계로 이 분야에 관심있는 독자는 안동준의 연구성과를 참고할 것: 『한국도교문화의 탐구』, 지식산업사, 2008,;  「광개토대왕 비문에 보이는 ‘西城山’의 도교적 함의」, 『고조선단군학』30, 2014, 183-211 등 다수의 논문.
(미주 5) 안동준, 「한국 도교의 죽음의식」, 『洌上古典硏究會』54, 2016, 231.
(미주 6) 안동준,  「최치원과 오방사상」, 『고조선단군학』37, 2017, 77-105.

이호재 원장(자하원)  injiche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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