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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Corona 시대의 기독교인, ‘연대하는 자유주의 아이러니스트’리처드 로티의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를 읽고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0.09.02 16:31

1. 자유주의 아이러니스트

유레카! 코로나-19 이후 교회 개혁에 관한 해답을 리처드 로티의 책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 (사월의책, 2020)에서 찾았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로티가 말하는 ‘자유주의 아이러니스트(liberal ironist)’, 곧 “자신의 사적인 영역에서는 새로운 어휘와 언어를 창안함으로써 자기 창조에 몰두하고, 공적인 영역에서는 이 세계에서 고통과 굴욕이 사라질 날을 희망하며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을 신학적 용어로 바꾸어 보면 이렇습니다. 교회와 교인들이 ‘신 앞에 선 단독자’로서 신앙적 깊이를 지니고, 동시에 모세와 바울과 같이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구원을 요청받은 존재로서 사회의 도덕적 정의 구현과 고통 받는 타자를 포용하는 공동체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코로나 바이러스 퇴치는 불가능하여 더불어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위드-코로나(With-Corona)’ 시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로티 철학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세상에는 ‘절대적 기준’이 없어서 불완전한 인간들끼리 조금씩 사회를 개선해 나갈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절대적 기준이 없다고 하니, 기독교 신자의 입장에서는 반박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로티의 생각을 따라가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되리라 생각됩니다.

2. 우연성

먼저 책 제목에 나와 있는 ‘우연성’을 살펴볼까요? 로티는 우연성을 성명하기 위해 그 대척점에 있는 것을 먼저 소개합니다. 그것은 바로 전통 형이상학에서 주장하는 ‘불변하는 실체·본질·본성’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연성의 반대라는 것입니다. 로티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아는 그 어떤 것도 불변의 본질로 이루어진 것은 없다.” 즉, 모든 것은 우연성에서 발생된 것이라는 말입니다. 알튀세르의 ‘우발성의 유물론’에 관한 관념론적 확장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로티 철학의 출발점이 됩니다.

그렇다면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합의를 도출하여 역사적 전통을 지닌 것, 우리가 진리와 본질, 혹은 전통이라고 믿었던 것이 있지 않느냐라는 반문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로티는 그 모든 것이 역사적 과정을 거치는 동안 ‘우연의 중첩’을 통해 형성된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가령 우리의 자아, 언어, 사회 공동체가 그 예입니다. 그 어떤 본질과 실체, 본성에 따라 구체화된 것이 아니라, 만나는 사건의 우연적인 중첩에 따라 형성된 것입니다.

따라서 종교적 절대자나 형이상학의 제1 원인, 그리고 초월적 존재로부터 시작되는 모든 철학과 종교는 로티 앞에서는 설 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로티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러한 형이상학적인 토대가 없는 상태에서 불완전한 인간들이 불완전한 도구들을 가지고 만들어가는 것이 인간 사회이다.”

그렇지 않나요? 지구상에 그 어떤 인간 공동체가 완전했었나요? 하다못해 종교 공동체도 불완전하지 않았나요? 기독교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모두 실낙원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로티는 솔직하게 시작해보자는 것입니다. 그런 연후에 로티는 인간이 만든 공동체, 곧 사회를 분석합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그나마 가장 괜찮은 공동체를 찾아냅니다. 바로 ‘자유주의 사회’입니다. 물론 이것은 ‘사회민주주의’ 혹은 ‘민주사회주의’를 포괄하는 자유주의 사회입니다.

3. 아이러니스트와 자유주의자

이러한 자유주의 사회를 구성했던 인간형을 로티는 ‘아이러니스트(ironist)’와 ‘자유주의자(liberalist)’라는 두 종류의 인간 유형에서 발견합니다(물론 파괴적이고 퇴행적인 인간 유형도 있겠지만, 그것은 접어두고).

먼저, 아이러니스트는 ‘창조적 자율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개인’을 뜻합니다. 새로운 어휘, 새로운 언어를 창조함으로써 자기의 자아를 새롭게 창조하는 사람입니다. 사실 아이러니에 반대되는 말은 ‘상식’입니다. 가만히 보면, 상식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습관화된 어휘로 자신을 서술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아이러니스트는 이러한 상식적인 사람들의 상식적인 삶은 자신만의 삶이 없이 그저 누군가의 삶을 살다가 생을 마감하는 것과 똑 같습니다.

따라서 로티에게 있어서 아이러니스트란 자신만의 어휘를 창조함으로써 자신만의 ‘사적인 자아’를 만들어가려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설가 프루스트와 나보코프, 또 철학자 니체와 하이데거, 데리다, 푸코 등이 바로 아이러니스트라고 로티는 소개합니다.

반면 자유주의자는 ‘더 자유롭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관심의 초점을 두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공동체주의자와 자유주의자를 거꾸로 놓은 느낌입니다. 특별히 로티는 자유주의자를 ‘마지막 어휘’라는 용어를 빌어 좀 더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로티의 말입니다.

“모든 사람은 그들의 행위, 그들의 신념, 그들의 인생을 정당화하기 위해 채용하는 일련의 낱말들을 갖고 있다. 그것들은 친구들에 대한 칭찬, 적들에 대한 욕설, 장기적인 프로젝트, 가장 심오한 자기의심, 그리고 가장 고결한 희망을 담는 낱말들이다. 그것들은 우리가 때로는 앞을 내다보면서 때로는 뒤를 돌아보면서 우리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말하는 낱말들이다. 나는 그러한 낱말들을 ‘마지막 어휘’라고 부르겠다.”

여기서 마지막 어휘는 말 그대로 인간이 절대적 가치로 생각하는 궁극 어휘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생명, 정의, 평화, 그리스도, 공산주의, 조국, 자유, 해방, 혁명, 민중, 민주, 행복’ 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유주의자는 이 마지막 어휘와 어떻게 관련이 될까요?

로티의 말입니다. “자유주의자는 이 어휘들을 통일시키거나 그 어휘들의 옳음과 그름을 판정해줄 최종 심급, 곧 초월적 진리는 없다고 믿는 사람이다.” 곧 각자가 고결한 희망을 담아 가슴에 품은 이 마지막 어휘들이 경합하는 사회가 자유주의 사회이며, 그 안에서 누구의 어휘가 더 설득력 있는지 보여주어 동의를 얻어가는 사회가 바로 자유주의 사회라는 것입니다. 자유에 방종이 아니라, 설득과 이해가 필요하다는 말이겠죠? 따라서 로티의 자유주의는 기존 공동체주의의 역설적인 ‘자유 옹호’라고 볼 수 있습니다.

4. 공감적 상상력과 연대

이렇게 우연성, 아이러니 개념(과 자유주의 개념)을 이해했다면 이제 마지막 남은 ‘연대’의 개념을 살펴볼까요? 로티는 연대를 ‘낯선 사람을 동료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로티의 말입니다.

“나의 유토피아에서 인류의 연대는, ‘편견’을 제거하거나 혹은 이전까지는 감추어졌던 깊은 진실을 캐냄으로써 인식될 하나의 사실이 아니라, 오히려 성취되어야 할 하나의 목표로 보이게 될 것이다. 그것은 탐구가 아니라 상상력, 즉 낯선 사람들을 고통 받는 동료들로 볼 수 있는 상상력에 의해 성취되어야 할 어떤 것이다. 연대는 반성에 의해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창조되는 것이다. 그것은 낯선 사람들이 겪는 고통과 굴욕의 특정한 세부 내용들에 대한 우리의 감수성을 증대시킴으로써 창조된다.”

그렇다면 낯선 사람을 동료로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로티는 ‘공감적 상상력’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공감적 상상력’은 앞서 말씀드린 ‘자유주의 아이러니스트’, 곧 사적인 영역에서는 자기 창조에 몰두하고, 공적인 영역에서는 이 세계에서 고통과 굴욕이 사라질 날을 희망하며 노력하는 사람들이 갖는 상상력입니다. 여기서 ‘공감적’이라는 말은 로티에게 있어서 자유주의의 맥락이고, ‘상상력’이라는 말은 아이러니스트의 특성입니다.

이렇게 로티는 인류사를 조망하며 ‘개인의 창조적 자율성 보호(=아이러니스트의 특성 인정)’와 ‘사회의 도덕적 정의 구현(공동체주의 같은 로티의 자유주의)’이라는 이 두 가지 가치가 어떻게 서로 조화로울 수 있는지를 고민합니다. 자, 그렇다면 어떤가요? 개인의 창조성과 사회의 정의구현이 ‘자유주의 아이러니스트’를 통해 잘 해결되었나요? 조금 더 나아가 이러한 자유주의 아이러니스트가 어떻게 코로나-19 이후 교회 개혁에 관한 해답이 될까요? 신학적 용어로 쉽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신 앞에 선 단독자로서 공동체의 구원을 요청받은 그리스도인!’

5. 신 앞에 선 단독자로서 공동체의 구원을 요청받은 그리스도인

물론 신앙은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입니다. 종교의 자유, 신앙의 자유, 중요합니다. 따라서 신 앞에 선 단독자로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 예배드리며 오직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할 뿐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세와 바울과 같이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구원을 요청받은 존재입니다.

따라서 신앙에 있어서도 개인의 창조적 자율성이 사회의 도덕적 정의 구현과 양립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를 이뤄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와 다른 타자를 동료로 받아들이는 포용력이 그 구원의 시발점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로티가 말하는 연대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이 ‘연대하는 자유주의 아이러니스트’가 될 때 개신교의 진정한 다른 세상이 열릴 것입니다.

사실 인간과 세계의 근원적 진리를 추구하는 영성가들에게 로티의 철학은 얄팍하게 보입니다. 또한 급진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혁명가에게는 너무 온건한 철학으로 비춰질 것입니다. 그러나 로티를 통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세상은 이러한 현실적인 대안에 있는 것이지, 천지개벽하는 이론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연의 중첩을 위해, 또 험난한 낯선 타자를 만나기 위해, 연대하는 아이러니스트가 되어 세상으로 나가 볼까요? 용기를 주기 위해 로티의 말을 다시 인용합니다.

“자유주의 아이러니스트란 괴로움이 장차 감소될 것이며, 인간들이 다른 인간들에 의해 굴욕을 당하는 일이 멈추게 되리라는 자신의 희망을, 근거지울 수 없는 소망 속에 포함시키는 사람이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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