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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부정으로써의 그리스도인의 삶그리스도인의 생활 (1)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 승인 2020.09.05 18:00
▲ 선한 사마리아인 ⓒGetty Image

칼빈은 『기독교강요』 제3권 제7장에서 바르게 생활하는 방법에 대해 말합니다. 이 방법은 율법에 나타나 있지만, 칼빈은 로마서 12장 1-2절에 더 구체적인 규율이 제시되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칼빈은 이 말씀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성별되어 바쳐졌기 때문에, 이제부터 그의 영광을 위한 일만을 생각하고 말하며 명상하며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III.vii.1).

자기부정의 두 가지 지향

그리고 칼빈은 다음과 같이 풀어서 설명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이성이나 의지가 우리의 계획과 행동을 지배하게 해서는 안 되며, 우리의 육을 따라 우리의 유익을 구해서는 안 됩니다. 반면에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그의 지혜와 그의 뜻이 우리의 모든 행동을 주관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라”(고후10:5)는 바울의 말씀을 따라, 칼빈은 “자기가 자기 것이 아님을 배우고 자기의 이성에서 지배권을 빼앗아 하나님께 드린 사람은 참으로 큰 유익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인간의 삶을 이성으로 규제하는 것을 덕으로 간주한 철학자들에게 이러한 자기 부정은 낯선 개념일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철학은 이성을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그것을 성령께 굴복시키며, 그로써 더 이상 사람 자신이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시고 다스리도록 합니다”(III.vii.1). 다음과 같은 바울의 말씀은 우리가 방금 말한 것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그런즉이제는내가사는것이아니요오직내안에그리 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이러한 자기부정은 7장의 주제로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핵심으로 제목에 반영됩니다. 자기부정은 “소유욕과 권세욕과 명예욕을 우리의 마음에서 씻어버릴 뿐 아니라, 인간적인 영광에 대한 모든 야심과 갈망 그리고 그 밖의 더 깊이 숨어 있는 해독을 근절”할 수 있게 해 줍니다(III.vii.2). 이로써 그리스도인은 비로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soli Deo gloria!)을 살아갈 수 있게 되며, 칼빈에 의하면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가장 절실하게 요구하신 자기부정입니다(마 16:24참조).

이웃사랑을 위한 자기부정

자기부정은 두 가지 지향점을 지닙니다. 첫째는 동료인간을 지향하고, 둘째는 하나님을 지향합니다. 우선, 칼빈은 성경이 우리에게 이웃과의 관계에서 그를 자기보다 낫게 여기며(빌2:3), 전심으로 다른 사람에게 선을 행하라고(롬12:10) 요구한다는 사실을 환기시킵니다. 인간은 모두 자기를 맹목적으로 사랑􏰀는 자들이기 때문에, 이웃과의 관계에서 자기부정은 자기의 허물을 돌아보며 진심으로 자기를 낮추고, 남을 존중히 여기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III.vii.4).

그런데 이웃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당연히 가질 권리가 있는 것을 기꺼이 내놓고 다른 사람에게 양보􏰀는 일은 우리 본성상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칼빈은 우리가 받은 은혜는 교회의 공동의 유익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위탁하신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4:10). 그러므로 받은 은혜를 합당하게 사용하려면, 다른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친절하게 나눠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III.vii.5).

앙드레 비엘레(A. Biéler)는 칼빈이 여기서 말하는 은혜는 단지 영적인 것만이 아니라 물질적 재화, 특히 돈을 포함한다는 사실을 그의 책 『칼빈의 사회적 휴머니즘』에서 명료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1) WCC 초대총무로 재직하며 거의 20년간 교회일치운동에 전념했던 비셔트 후프트(W. A. Visser’t Hooft)가 이 책의 추천사를 썼는데, 거기서 그는 서구교회가 칼빈의 교훈을 따랐다면, 적어도 세계사의 불행한 일 몇 가지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오늘날 누구나 공산주의에서 주장하는 “자기의 능력에 따른 사람에서 자기의 필요에 따른 사람으로!”(A chacun selon besoins, de chacun selon ses capacités)라는 구호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습니다. 레닌은 이 구호가 현실화되는 바로 그 날 공산주의의 최종 목표가 달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레닌은 이 구호가 마르크스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마르크스는 실제로 그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레닌도 마르크스도 마르크스가 출현하기 300년 전에 칼빈이 이미 고린도후서 8:13-14를 주석하면서 그 사상을 정립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칼빈은 그 주석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공평과 균형이 있기를 원하신다. 즉 사람은 아무도 너무 많이 갖거나, 필요한 것도 가지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자기 재산의 정도에 따라 궁핍한 사람을 위해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누어야 한다.”

비셔트 후프트는 만일 교회가 이 가르침을 중요하게 여기고 제대로 실천했다면 공산주의자들이 이 근본적인 성서적 사상을 기독교에서 떼어내 자기들의 유물론적 전체주의적 견해에 접목시키는 일은 결코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2) 그런데 이 정신은 원래 구약의 출애굽 정신입니다. 출애굽기 16장 18절을 보면, 만나를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능력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서! 건강하고 힘 있는 사람이 그 능력에 따라서 자기 앞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취하도록 한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서 한 사람이 먹을 거면, 한 사람 먹을 분량만, 두 사람이 먹을 거면 두 사람이 먹을 분량만 적당히 취하여 공동체의 모든 사람들이 그 은혜를 나누도록 한 것입니다. 그리고 초대교회가 이 정신을 이어받았고(고후8:13-15), 16세기 칼빈이 제네바에서 다시 구현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서 구교회가 이 정신을 잃어버려서 공산주의 사상이 침투할 기회를 주 었다는 것입니다. 제네바 공동체가 구현했던 출애굽 정신을 오늘의 한국교회가 실현해낼 수 있다면, 한국교회의 미래는 밝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칼빈은 나아가 이웃사랑을 정의합니다. 그는 이웃사랑이, 특히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하며, 우리에게 악한 일을 행하고, 우리를 비난􏰀는 사람을 축복한다는 것은(마5:44) 어려운 일일 뿐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 전혀 반대되는 일입니다. 그에 의하면, 이런 이웃사랑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길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악의를 생각하지 않고 그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주시하는 것을 잊지 않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성경의 교훈에 의하면, 우리는 사람 자체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보며, 그 형상에 대해서 경의와 사랑을 표시하라고 한다. 그러나 특히 믿음의 식구들 사이에서(갈 6:10), 그리스도의 영을 통하여 중생하고 회복된 하나님의 형상을 보도록 더욱 주의해야 한다(III.vii.6).

하나님께 대한 자기부정

칼빈은 이어서 자기부정의 더 중요한 부분, 곧 하나님께 대한 자기 부정에 대해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과 우리가 지닌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내맡기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재물이나 명예, 권력 등 을 끝없이 탐하는 욕정이 있습니다. 우리는 가난과 무명과 비천한 상태를 몸서리치듯 두려워하고 􏰀혐오하며, 어떻게든 이런 처지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한편으로는 재물이나 명예, 권력 등을 끝 없이 탐하려는 것에 의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가난과 무명과 비천함 을 어떻게든 피하려고 애쓰다가 인생은 점차 피폐해집니다.

칼빈은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을 하나의 길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주께서 주시는 복을 받지 않고서 어떤 다른 방법으로 번영하겠다는 욕망이나 희망이나 계획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III.vii.8). 하나님을 멀리하고도 세속적 성공과 번영을 이룰 수 있으나, 그것은 저주받은 성공이고 번영입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엄청난 부와 재물을 놓고 부모와 자식 간에, 형제끼리 법정 다툼을 하는 경우를 자주 대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경건하게 살면서 가난한 것이 무한히 더 행복한 상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 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잠15:16-17).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만을 의지하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이 미친듯이􏰀 구하는 것을 얻기 위해 사악한 행동이나 책략, 간계 그리고 탐욕 등 악한 술책을 쓰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악한 술책을 쓰는 곳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과 도움이 임􏰀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또한 일이 잘 될 때에는 그것을 자기의 공로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간주하며 하나님의 공로로 돌릴 것입니다.

비록 다른 사람들은 사업이 번창하고 자기 일은 진척이 미미하거나 심지어 뒷걸음질 하더라도, 그는 평정심을 잃지 않고 겸손한 마음으 로 이 부진한 상태를 참고 견딜 것입니다. 설령 자기가 이룬 것이 기 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해도 세속적인 사람이 느끼는 압박감에 비하면, 그의 마음은 더 평화로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최고의 부귀나 권력보다 더 위대한 안식과 평화를 주는 위로를 받기 때문입니다 (III.vii.9).

그러므로 자기부정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과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며, 인자한 아버지와 같이 만물을 지배하시고 유지하시며 돌보신다는 것을 신뢰하는 사람만이 자신과 자신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내맡길 것이며, 그러한 사람만이 자신을 충분히 부정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III.vii.10).

자기부정을 드러내야 할 그리스도인

칼빈에 의하면 신자들은 자기부정을 통해 얻는 이러한 평화와 인내, 그리고 자유를 현세 생활에서 당하는 모든 일에서 드러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인생은, 칼빈이 적절하게 표현한 바와 같이, “죽음에 둘러싸인 삶”(I.xvii.10)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수 없이 많은 위험에 직면하여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견디기 힘든 일들을 당할 때, 흔히 자신의 생명이나 태어난 날을 저주하기도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하나님이 공정하지 않다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역경을 운명이라 여기고, “운명은 소경이며 사려 분별이 없기 때문에, 허물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에게 동시에 상처를 입힌다”고 말하며 자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기부정이 철저한 사람은 견디기 어려운 일들을 당하거나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일을 당하더라도, 그 모든 일이 선하시고 인자하신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임을 알기 때문에 평정심을 잃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내하며, 하나님의 섭리에 저항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그가 선악 간에 운명을 정하고 지배하는 것은 선하신 하나님의 손뿐이심을 믿고 자신 과 자신의 모든 소유를 하나님의 뜻에 영원히 양도했기 때문입니다 (III.vii.10).

미주

(미주 1) 앙드레 비엘레/박성원 옮김, 『칼빈의 사회적 휴머니즘』(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3), 49-70을 참고.
(미주 2)  Ibid., 18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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