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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의 경제 민주화는 빈 수레였다민중신학자의 눈으로 세상 읽기 (28)
강원돈(길마루글방 지기/사회윤리와 민중신학) | 승인 2020.09.07 17:07

주목받는 정치인 김종인

김종인 씨는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탁월한 경세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대학교에 다니던 1962년에 22세의 나이로 야당 지도자였던 조부(祖父) 가인 김병로(佳人 金炳魯)의 비서로 일하기 시작하였으니, 그때로부터 치자면, 참으로 오랜 세월을 정계에 몸담았던 인물이다. 독일에서 사회적 시장경제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서강대학교 경제학 교수로 일하기도 하였지만, 그는 유신정권 시절에 국민건강보험 제도 도입을 건의한 이래로 역대 정권에서 사회정책과 경제정책을 기획하는 탁월한 역량을 보였고, 1987년에 개정된 제6공화국 헌법 제119조 2항에 경제민주화 개념을 명시하는 데 이바지했다. 그를 가리켜 ‘경제 민주화의 원조’라고 하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1980년 전두환 군사정권이 설치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전문위원을 거쳐 1981년 민주정의당 전국구 의원으로 선출된 이래로 민주정의당, 민주자유당, 새천년민주당, 더불어민주당 등 여야를 가로지르며 다섯 차례에 걸쳐 제11대, 제12대, 제14대 전국구 의원 혹은 제17대, 제20대 비례대표 의원으로 일했고, 2016년과 2020년에는 여와 야로 맞서는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을 번갈아가며 맡았다. 역대의 거의 모든 권력자들이 그를 탐할 정도로 그는 시대가 필요로 하는 것을 읽어내고 이를 정치 프로그램으로 정식화하는 데 비범한 능력을 발휘했다. 여당과 야당을 가리지 않고 대통령 선거와 총선의 책사로 발탁되었는데, 2012년에는 새누리당을 위해 총선과 대통령 선거에서 능력을 발휘했고, 2016년에는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총선을 지휘했다.

최근에 그는 미래통합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당의 정강·정책을 개정하고 당의 이름을 ‘국민의힘’으로 바꾸는 등 당의 쇄신을 이끌어가고 있다. 그는 태극기부대로 상징되는 극우 세력에 대해 거리를 취하는 제스처를 취했고, 군부 정권이 조직한 정당의 맥을 잇는 당의 대표로서 그 당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적 지배세력이 광주민주항쟁을 짓밟고 그 역사적 의미를 뭉개온 죄과를 사과했고, 그 당에서 배출한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범죄에 대해서도 사과할 계획을 밝혔다. 그는 ‘국민의힘’의 정강·정책을 가다듬는 과정에서 ‘약자와 동행’하는 정당을 지향하겠다고 천명하고, 기본소득 도입과 경제 민주화 등을 기본정책으로 채택하도록 이끌었다. 물론 ‘국민의힘’이라는 새 명패를 단 정치적 결사체가 극우 보수로부터 합리적 보수로 환골탈태하여 국민의 지지를 끌어 모아 2021년 4월의 재보선과 2022년 3월의 대통령 선거를 치룰 것인가는 두고 볼 일이다. 다만, 필자는 ‘국민의힘’이 그러한 정치 노선과 입지를 확립하기를 바라고, 그러한 야당의 노선 설정과 정책 제시에 대응해서 집권 여당이 합리적 보수보다 더 진보적인 성격을 띠고 정치를 이끌어 가기를 기대한다.

위에서 말한 바로부터 짐작할 수 있는 바와 같이, 김종인 씨에게 정당 소속은 별 의미가 없는 것 같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정치적 소신과 정책을 실현할 수 있는 권력의 기회를 포착하고 이를 획득하는 일인 것 같다. 최근에 그는 모든 사람에게 실질적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기본소득을 도입하자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가 필생의 과제로 여기는 것은 그의 이름과 결부되곤 하는 경제 민주화일 것이다. 그가 말하는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그 구상이 더 구체화될 때 거론하기로 하고, 이 글에서는 그가 내걸고 주장하는 경제 민주화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다.

헌법 제119조 2항의 내용

1987년에 개정된 현행 헌법은 놀랍게도 ‘경제 민주화’라는 개념을 명시적으로 사용하고 있고, 경제 민주화에 관련된 헌법 규범을 제시하고 있다. 정치권과 사회단체들, 그리고 시민사회가 때때로 이 헌법 규범을 소환하여 경제 민주화에 대한 논의를 분출해 온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물론 이러한 논의에서 경제 민주화나 경제 민주주의 개념이 명확하게 정립되었는가는 별개의 문제이지만, 한국 경제와 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재벌의 막강한 경제권력을 제어하는 과제 때문에 경제 민주화는 국민의 관심을 끄는 주제가 되어 왔다.

경제 민주화에 관련된 헌법 규범은 현행 헌법 제119조에 담겨 있다. 제119조는 두 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1항은 대한민국 경제 질서가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규정하여 자유 시장 경제를 기본 경제 질서로 천명하고, 2항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엄격하게 따져서 말하면, 2항의 제1문은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추구할 것을 요구하는 시장경제의 사회적 규율에 관한 규범이고, 제2문은 경제권력의 형성을 제어하여 공정경쟁을 추구하라는 질서정책에 관한 계명이고, 제3문이 경제 민주화에 관한 계명이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헌법 제119조는, 그 자체만 놓고 본다면, 사회적 시장경제의 강령이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다. 사회적 시장경제는 경쟁과 효율을 중시하는 자유로운 시장 질서를 바탕으로 하되, 공정한 시장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경제권력의 형성을 제어하고, 사회적 연대를 최대화하기 위해 시장경제를 사회적으로 규율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의 역사를 되돌아보더라도, 이 헌법 규범은 두 가지 점에서 중대한 의미가 있다. 하나는 박정희의 개발독재와 결합된 국가 주도의 자본주의 발전 전략으로부터 자유로운 시장경제로 이행하여야 한다는 경제계의 요구를 담아내는 측면이 있다는 점이다. 경제의 자유화를 향한 요구는 헌법 제119조 1항에 담기게 되었고, 그 조항은 자유주의적 경제 질서를 뒷받침하는 헌법 규범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또 다른 하나는 국민의 행복추구권 보장(현행 헌법 제9조), 국민복리에 적합하게 재산권을 행사하라는 헌법 계명(현행 헌법 제23조 2항), 국가의 사회보장 의무(현행 헌법 제34), 국민복리 등을 위한 기본권의 법률적 제한(현행 헌법 제37조 2항) 등에서 도출되는 사회국가 이념에 합치하도록 시장경제를 운영하라는 요구를 담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규범적 요구는 헌법 제119조 2항에 담기게 되었다. 이 두 가지 점에서 보면, 헌법 제119조는 국가 주도적 자본주의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한 시장경제를 ‘사회적 시장경제’로 운영하도록 요구하는 헌법 규범이라고 성격화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경제 민주화는 헌법 제119조 2항 끄트머리에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모호하게 규정되어 있다. 시장경제에서 경제주체들은 서로 조화를 이루는 측면도 있지만, 시장경제의 조직원리 때문에 자본과 노동, 기업과 가계 등등은 서로 근본적으로 ‘대립’하는 측면도 있기 때문에 ‘조화’의 계명을 앞세운 경제 민주화가 현실주의적 기획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경제 민주화를 논의할 때에는 그 개념을 조금 더 명확하게 규정하고, 국민경제, 산업 부문, 기업, 작업장 등의 여러 층위에서 경제 민주화를 구현하기 위한 제도적인 과제들을 설정하는 숙제가 남게 된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현행 헌법 제119조 2항을 정식화하고 제6공화국 헌법 개정 과정에서 이 조항을 헌법에 자리잡게 하는 데 기여한 김종인 씨는 한국 경제가 언젠가는 성장을 위해 복지를 희생시키는 박정희 방식의 발전주의 국가 모델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내다보고, 성장과 분배, 경제발전과 복지가 역동적 조화를 이루는 경제질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무엇보다도 재벌의 경제권력을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 그 때문에 그에게 경제 민주화는 시장경제의 사회적 규율 정책, 재벌 등 경제권력의 통제를 위한 질서정책, 경제 주체들 사이의 관계를 규율하는 본래적 의미의 경제 민주화 정책 등이 서로 혼합된 개념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것은 경제 민주화 개념을 둘러싼 논쟁에서 두고두고 혼선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었다.

김종인 씨가 정식화한 경제 민주화 헌법 규범에 관련해서 한 가지 더 지적할 것은 그가 현행 헌법 제119조 2항을 구상할 때 1967년 6월 8일 독일연방공화국 (서독) 연방의회가 제정한 ‘경제의 안정과 성장을 위한 법률’의 내용을 참조하였다는 것이다. 이 법률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에서 라인강의 기적을 일으킨 사회적 시장경제의 운영 방식을 1960년대 후반의 변화된 상황에서 재규정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이 법률의 핵심은 시장경제에서 서로 길항관계에 있는 고용과 소득분배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달성하여 국민경제의 균형 발전을 도모하여야 할 국가목표를 명시하는 것이었다. 경제운영에 관한 국가목표를 헌법에 적시하지 않고, 그 제정을 입법자에게 맡기는 독일의 입법 전통은 국가의 경제운영 방식을 세밀하게 헌법에 명시하였던 바이마르공화국 헌법의 경직성과 비효율성을 탈피하기 위해 확립된 것이었다. 그런데 김종인 씨는 사회적 시장경제를 운영한 경험이 없는 한국 사회에서 경제권력의 형성을 효과적으로 제어하면서 시장경제를 사회적으로 규율하기 위해서는 경제운영에 관한 국가 목표를 헌법 수준에서 명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헌법 제119조 2항은 경제 민주화를 어느 정도 촉진시켰나?

흔히 ‘87년 체제’는 민주적 선거 절차에 따라 정치적 민주주의를 신장시켰지만, 사회적 민주화나 경제적 민주화를 촉진시키지 못했다고 평가된다. 조금 더 엄격하게 살핀다면, ‘87년 체제’에서는 사회적 민주화와 경제적 민주화가 제대로 진척되지 못함으로써 정치적 민주주의의 기반이 침식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그것은 경제 민주화를 요구하는 헌법 제119조 2항이 그 동안 실효적인 규범으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것을 뜻한다.

헌법 제119조는 ‘87년 체제’의 첫 정권이었던 노태우 정부에서 개발독재 과정에서 억압과 희생을 감내하였던 민중의 사회경제적 요구를 수용하는 방식의 경제 민주화를 촉진시키기보다는 경제의 자유화를 거의 일방적으로 뒷받침하는 조항으로 사용되었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서서 실질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민주주의가 보장하는 민주주의적 법치질서를 바탕으로 해서 노동자들의 사회적 권리와 경제적 권리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제도들을 만들어야 했지만, 우리 사회는 거기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시장경제에서 관철되고 있는 자본의 노동 지배를 제어하기 위하여 노동의 권력과 자본의 권력이 제도적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 경제 민주화의 핵심적인 과제들 가운데 하나이지만, 민주노총의 결성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노동자의 단결권이 확장되었을 뿐 국민경제의 사회적 거시계획, 산별 노사교섭 제도, 기업 수준의 노사 공동결정, 일터의 민주화와 인간화 등 경제의 민주화에 필수적인 제도적 장치들은 전혀 마련되지 않았다. 1990년을 전후로 한 현실사회주의권의 몰락, 1990년대부터 가속화되기 시작한 한국 사회와 경제의 신자유주의적 개조, IMF 경제신탁 이래로 지구화 과정에 깊숙하게 편입되면서 정착한 금융주도적 축적체제 등은 실질적 민주주의를 추진하는 세력을 크게 위축시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종인 씨가 경제 민주화와 관련해서 한 일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노태우 정권 때 청와대 경제수석으로서 재벌이 소유한 비업무용 부동산을 매각하도록 압박하고,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에 제동을 걸고 업종 전문화를 유도하는 재벌 규제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한 것이 경제 민주화와 간접적으로 결부될 수 있는 정책일 것이다. 그가 경제 민주화를 정치적 아젠다로 들고 나와 적극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때는 2012년 총선과 대통령 선거 국면이었다.

이명박 정권의 기업친화적인 정책이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자 2011년부터 통합민주당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재벌의 시장 지배를 규율하고자 했고, 그것이 경제 민주화를 이루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야당의 공세에 대응하고자 했던 새누리당도 집권 여당으로서 거의 같은 의견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엄격하게 말하면, 두 정당은 공정한 경쟁질서와 금융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경제권력을 제어하는 질서정책을 경제 민주화로 포장한 것이다. 거기서는 노동과 자본의 제도적인 권력 균형에 바탕을 둔 본격적인 의미의 경제 민주화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이러한 경제 민주화 개념에 어느 정도 근접한 구상을 선보인 것은 그 당시 오직 통합진보당뿐이었다. 통합진보당은 계열분리명령제를 도입하여 재벌의 시장권력을 아예 해체하고, 기업 차원에서 노동과 자본의 공동결정을 제도화하여 노동의 권력과 자본의 권력이 균형을 이루는 민주적인 기업 지배구조를 확립하자고 주장했던 것이다.

이처럼 경제 민주화를 둘러싼 정치적 논쟁이 벌어질 때, 김종인 씨는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박근혜 씨의 책사로서 경제 민주화를 당의 전략으로 설정하고 경제 민주화 실현을 대통령 선거의 간판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의 지도 아래서 정식화된 경제 민주화 정책은 시장경제에서 공정거래와 경쟁질서 확립을 위해 재벌의 경제권력을 제어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경제 민주화의 핵심은 “시장경제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경제세력의 불공정 거래를 엄단하여 공정한 경쟁풍토를 조성”하는 것이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공정경쟁과 동반성장을 촉진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확대”하는 것으로 설정되었다. 여기서 김종인 씨의 경제 민주화가 지향하는 바가 뚜렷이 드러난다. 그는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에 이론적 바탕을 제공한 발터 오위켄(Walter Eucken)의 질서자유주의 구상에 따라 공정경쟁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경제권력 형성을 제어하는 것을 중시하고 있다. 물론 경제권력의 형성을 제어하고 이를 통제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이지만, 그것은 국가가 공정거래법 등을 통하여 수행하여야 할 질서정책의 성격을 띤다고 보는 것이 마땅하다. 이러한 질서정책의 틀에서 경제권력을 제어하는 것과는 별도로 시장경제의 여러 층위에서 자본의 노동 지배와 수탈을 넘어서서 자본과 노동이 대등한 권력 균형을 이루어 협력적 대립관계를 맺도록 하는 것이 경제 민주화의 고유한 과제이다. 새누리당의 책사였던 김종인 씨는 공정거래를 위한 질서정책에 방점을 찍었을 뿐 본격적인 의미의 경제 민주화에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새누리당에서 더불어민주당으로 배를 갈아탄 뒤에 김종인 씨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상법 개정에 나섰다. 그는 더불어민주당 의원으로서 2016년 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였던 것이다. 2011년 경제 민주화에 관한 논의가 활성화된 이래로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관련된 상법 개정안은 이미 2013년에 법무부에 의해 제출된 바 있다. 그 개정안은 이사와 감사위원회 위원의 선임 절차, 이사회의 기능과 역할, 경영진의 위법행위에 대한 사법적 처리, 집중투표제 등을 통한 주주총회의 활성화 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 기업지배구조 개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감사위원회 위원 선임에 관한 조항이었다. 그것은 감사위원회가 집행 이사회를 감독하는 권한과 임무를 갖기 때문이다.

감사위원회는 직무 및 회계 감사에 그치지 않고, 집행 이사회의 경제정책, 인사정책, 사회정책의 적절성을 평가할 수 있고, 장차 그 권한이 확대된다면, 집행 이사회의 정책 결정이 자본의 이익만이 아니라 자본과 노동의 이익이 균형을 이루도록 규율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그런 만큼 감독위원회의 구성은 매우 중요하다. 감독위원회에는 자본의 대표만이 아니라 노동의 대표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고, 자본의 대표와 노동의 대표가 동수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기업 차원에서 노사 공동결정 제도가 마련되는 길이 열릴 것이다. 경제 민주화가 어느 정도 제도화된 독일에서 기업 차원의 공동결정 제도가 감독위원회 구성에 관련된 법률에 근거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2013년 법무부가 제출한 상법 개정안에는 감사위원회 위원의 수효가 극히 한정되어 있었던 데다가 노동자 추천 이사를 감독위위원회 위원으로 선출하겠다는 발상은 눈을 씻고 보아도 볼 수 없었다.

2013년 법무부 안이 입법에 성공하지 못하자, 2016년 더불어민주당은 김종인 씨를 대표로 해서 상법 개정안을 발의하였는데, 이 개정안에서 주목되는 것은 노동자 추천 이사를 선출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설치한 것이다. 노동자 추천 이사 1인을 집행 이사회에 참여하도록 강제하는 조항이 들어간 법률안은 노동의 권력과 자본의 권력을 제도적 균형에 올려놓는다는 경제 민주화의 본래적 과제에 비추어 볼 때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제안이지만, 집행 이사회의 경영 전권을 배타적으로 주장하는 우리나라 기업의 지배구조에 작은 균열을 낸다는 점에서는 그 나름대로 전향적인 의미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에서 공동결정 제도가 갖는 중요성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김종인 씨가 노동자 추천 이사제를 상법 개정안에 넣으려고 시도한 것은 기억할 만한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자본과 노동을 대표하는 위원들이 동수로 감독위원회를 구성하고 기업의 경제정책에 관한 실질적인 공동결정을 요구하는 것을 경제 민주화의 본래적인 과제들 가운데 하나로 설정한다면, 노동자 추천 이사 1인의 집행 이사회 참여를 제도화하자는 김종인 씨의 경제 민주화 프로그램은 소리만 요란했지 빈 수레에 가깝다는 평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맺음말

오늘 한국 사회에서 경제 민주화는 하면 좋고 안 하면 그만인 정도의 프로그램이 아니다. 노조 설립을 오랫동안 봉쇄해 왔던 삼성 재벌이 막강한 경제권력으로서 공화국 전체를 쥐락펴락하고 있다. 그렇지만 경제권력이 정치권력을 도구화하는 것은 다만 삼성 재벌만이 아니지 않는가? 기업을 속속들이 지배할 수 있는 권능을 갖춘 금융의 네트워크 권력은 어떤가? 이러한 기업과 금융의 경제권력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실효적인 수단을 찾는 것은 우리 사회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반드시 수행하여야 할 중대한 과제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직시한다면, 정치세력들과 사회단체들, 그리고 시민단체들은 경제의 민주화를 실현시키는 제도적인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판을 새로 깔고서 본격적인 논의에 착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경제 민주주의 개념이 바르게 정립되어야 하고, 그 다음에는 금융질서, 국민경제, 산업부문, 기업, 작업장 수준에서 경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제도들을 정교하게 설계하고 입법의 길로 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김종인 씨의 유산은 엄정하게 평가되고 정리되어야 할 것이다. 그는 ‘경제 민주화의 원조’로서 경제 민주화에 관한 논의를 촉진하는 데 크게 공헌하였지만, 위에서 분석한 바와 같이, 그의 경제 민주화 구상과 그 프로그램은 개념적으로 혼란스럽고, 한계가 뚜렷하다. 최근에 ‘국민의힘’의 정강·정책에 자리 잡은 경제 민주화 프로그램은 질서정책과 재정 건전성 정책을 기괴하게 혼합시키고 있기까지 하다. 김종인 씨의 ‘경제 민주화’ 구상에 대한 비판은 조속하게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강원돈(길마루글방 지기/사회윤리와 민중신학)  kwdth5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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