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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교회 건물에만 임재하시는 분이 아니다“가까이 계시는 하나님”(사도행전 17:24-27)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0.09.08 16:40
▲ 세상 모든 만물에 깃들여 계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보아야 한다. ⓒGetty Image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한 주간 뉴스를 통해 보고 듣는 소식은 우리의 마음을 답답하게만 합니다. 코로나19는 여전히 확진자와 사망자를 늘려 가고 있습니다. 의사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고자 환자들의 생명과 건강을 담보로 파업에 나섰습니다. 태풍으로 인해 주변 지역을 포함한 여러 지역민들의 삶이 피폐해졌습니다. 오늘과 내일에는 큰 태풍이 연이어 지나간다고 합니다.

우리를 둘러싼 상황만을 보면 평안을 누릴 수 없을 것처럼 여겨집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원한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평안이 주어지는 줄 믿습니다. 이 평안을 날마다 선택하고 누리시기를 소망합니다.

지역 주민의 생명과 안전을 생각하여 우리 스스로 지난 주일 예배당에 모여 예배드리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각 가정에서 예배를 드렸는데요. 오늘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각 가정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당에서 드리는 대면 예배가 아닌 온라인 또는 다른 방식의 비대면 예배를 드리게 되면서 많은 목사님들이 성도님들의 신앙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하루하루를 더 긴장하면서 보내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성도님들의 믿음이 약해지는 게 아닐까?’, ‘예배문과 설교문을 가지고 예배를 온전히 드리셨을까?’ 많은 고민과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됩니다.

답답한 마음에 주중 월요일에 홀로 새벽기도 시간에 맞춰 교회에 나가 이 시기를 통해 우리 성도님들의 믿음이 더욱 단단해지고, 하나님과 더 가까이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지금까지 능동적으로 신앙생활을 했는지, 수동적으로 신앙생활을 했는지 우리의 민낯도 이 시기를 지나면서 드러날 수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과 믿음의 선배들은 신앙을 ‘주체적’으로 세우라고 권면합니다. 장소, 사람 등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예배와 신앙을 세우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와 집사들을 핍박하고 옥에 가두고 돌로 쳐 죽이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핍박의 이유 중 하나는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우상처럼 떠 받들 던 ‘하나님은 성전에만 나타나시고 성전에만 거하신다는 성전 중심의 신학’과 다른 견해를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요한복음 2:19-20에서 건물인 성전보다 우리의 몸인 성전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 20 그러자 유대 사람들이 말하였다. “이 성전을 짓는 데에 마흔여섯 해나 걸렸는데, 이것을 사흘 만에 세우겠다구요?””

사도행전 7:46-50에서 스데반 집사는 하나님은 성전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라 어디에나 계시는 분이라고 말했습니다. “46 다윗은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사람이므로, 야곱의 집안을 위하여 하나님의 거처를 마련하게 해 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47 그러나 야곱의 집안을 위하여 집을 지은 사람은 솔로몬이었습니다. 48 그런데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건물 안에 거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예언자가 말하기를 49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다. 너희가 나를 위해서 어떤 집을 지어 주겠으며 내가 쉴 만한 곳이 어디냐? 50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만든 것이 아니냐?’ 한 것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3:16-17을 통해 몸의 성전을 강조했던 예수님의 말씀을 더 분명하게 선포했습니다. “16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멸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건물인 성전을 우상시 하고, 성전에만 하나님이 임하신다는 유대종교지도자들에게 예수님과 제자들이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다고 말하며 몸의 성전을 세워야 한다고 설교한 일이 2천 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인 24절에서도 사도 바울은 하나님은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그런데 2천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건물인 교회에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예배를 받으시는 것처럼 성도들이 여기며 살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미 예수님이 그리고 제자들이 2천 년 전에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다고 말씀하셨는데 왜 우리는 하나님은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이 아니라 하늘 위에 있고, 교회라는 건물 안에만 갇혀 계신 것처럼 신앙생활을 할까요.

16세기 유럽에 종교적으로 큰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 가톨릭 교회가 교황을 중심으로 금전이나 재물을 바친 사람에게 그 죄를 면한다는 뜻으로 ‘면죄부’라는 증서를 발행하는 등 아주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틴 루터를 비롯한 개혁가들이 ‘교황이 중심’이 아닌 개인의 신앙과 성서 해석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일으킨 것이 바로 종교개혁입니다. 종교개혁의 결과로 지금의 개신교 교회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루터가 ‘만인 제사장’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요. 성도라면 누구나 다 제사장이라는 이론입니다.

이 이론은 베드로전서 2:9 “그러나 여러분은 선택된 민족이고 왕의 사제들이며 거룩한 겨레이고 하느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두운 데서 여러분을 불러내어 그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해 주신 하느님의 놀라운 능력을 널리 찬양해야 합니다.”(공동번역) 라는 본문 등을 배경으로 나왔습니다.

너희가 곧 제사장이니, 주체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라는 말씀입니다. 누군가를 통하거나, 중보자를 두지 않고도 너 자신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황을 통해서만 예배를 드릴 수 있었고, 교황에 의해서만 성서를 해석할 수 있었지만 종교개혁 이후 비로소 성도 개인이 인간 중보자(교황)를 따로 두지 않고 스스로 예배를 드리고, 성서도 해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500년 전의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 목사들과 성도들의 모습을 보면 어떻습니까? 목사가 당시 500년 전의 교황처럼 행동하고 있지는 않나요? 또는 성도님들 스스로가 목사를 교황처럼 여기지 않으시나요? 자신은 예배를 주체적으로 드릴 수 없는 것처럼 여기시지는 않나요?

예배에 어떤 특별한 것이 필요할까요? 들어가기만 해도 절로 마음을 숙연하게 하는 훌륭한 예배당? 듣기만 해도 마음이 경건하게 되는 찬양과 성가대? 생각만 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필수가 아닌 그저 있으면 좋은 것들일 뿐입니다.

오늘 25절 말씀을 보실까요.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하나님은 부족하지 않으십니다. 특별한 무언가를 해야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저 우리의 진실한 마음을 받으실 뿐입니다.

우리는 이미 모두가 예배자입니다. 목사가 인도하고 선포하는 말씀이 더 전문적일 수는 있습니다. 그렇다고 성도님들이 가정에서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께서 소홀히 여기시지 않으십니다.

27절 말씀입니다.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하나님은 자신을 발견하기를 원하십니다. 매 순간 찾기를, 그래서 우리와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또한 교회라는 건물 안에 갇혀 계시지도 않습니다.

바로 성도님들 곁에, 성도님들 안에 계십니다. 믿으십니까? 지난주 삶의 예배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어디에서든지 이 삶의 예배라는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 만나기를 원하신다면 하나님은 예배를 받아주시며 넘치는 은혜를 부어주실 줄 믿습니다.

SNS에서 읽은 김재우라는 분이 쓴 예배와 관련된 글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친구인 아르헨티나 목사가 우루과이에서 선교사로 지낼 때 현지인을 통해 들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70년대 우루과이의 독재정권 시절 모든 예배가 금지되고 모든 성직자가 감옥에 갇혔다. 성도들은 너무나 성찬을 하고 싶어 정부에 자기들끼리 성찬을 할테니 물과 빵만 허락해 달라고 했으나 이마저도 거절당했다.

성도들은 아이디어를 냈다. 실제 포도주와 빵이 없이 성찬식을 하기로. 성직자 없이 모인 성도들은 빵이 있다고, 포도주가 있다고 상상하며 눈물의 성찬을 나눴다. 그 사건은 지금도 그 땅에서 교회의 순결함과 생명이 이어진 사건으로 회자된다고 했다. 신학적으로 틀렸다고 생각된다면 이렇게 물어보자. 자신이 그 상황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코로나19 시대는 오히려 목사에게만 맡겨 두었던 것처럼 여겼던 하나님과 말씀 그리고 교회 안에 가둬두었던 하나님을 성도님들이 가까이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2천 년 전의 말씀과 믿음의 선배들의 500년 전의 선언들이 온 세계의 성도들의 일상에서 그리고 우리들의 일상에서 비로소 실천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멀게 만 느껴졌던 하나님 또는 멀리 계시리라 생각했던 하나님을 가까이에서 찾고, 만나셔서 은혜와 사랑을 충만하게 경험하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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