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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현재와 과거의 십자가그리스도인의 생활 (2)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 승인 2020.09.12 16:10

『기독교강요』 제3권 제8장에서 칼빈은 자기부정의 보다 깊은 차원을 각자 자기의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경건한 마음은 더 높은 데로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 8장 서두의 진술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고통스러운 삶, 평생 십자가를 지는 삶을 요구하십니다(마 16:24). 그리스도 자신의 생애가 끊임없이 십자가를 지는 생애였으며, 히브리서 5장 8절이 지적하듯이 그리스도는 이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우리의 머리이신 분이 감당하신 것을 모면하려고 기대하거나 구해서는 안 됩니다. 그와 반대로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당하는 모든 불행과 재앙이라 할 만한 곤경에 빠지더라도 우리에게 힘과 위로를 주는 것은 우리도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고 있다 는 사실이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길을 걸으시고 마침내 하늘의 영광을 얻으신 것과 같이 우리도 그렇게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행 14:22).

현재의 십자가

칼빈은 우리가 짊어져야 하는 ‘십자가’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감당하기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기꺼이 감내하며 그것을 우리 자신이 짊어져야 하는 십자가라고 이해한다면, 칼빈이 말하는 그것에 가까운 이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칼빈은 이 세상에서 당하는 어떠한 고통이라도 인내로써 받아들이는 것을 십자가를 지는 일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이런 십자가를 져야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왜 사랑􏰀는 자녀들이 십자가를 지게 하십니까? 그것은 앞서 말했듯이 우리가 십자가를 통해서 인내와 순종을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본래 교만하여 모든 것을 우리의 육에 돌리는 경향이 너무나 강합니다. 자신의 육을 믿고 의기양양할 때는, 이런 자신감 이 허망하다는 것도 모릅니다.

또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하나님의 은혜 없이도 충분하다는 듯이 하나님에 대해서까지 오만불손한 태도를 취하기도 합니다. 성경은 이러한 자만심이 다윗과 같은 위 대한 예언자에게도 스며들었던 것을 보여줍니다: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여호와여 주의 은혜로 나를 산 같이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시매 내가 근심 하였나이다”(시30:6-7).

다윗은 번영했을 때에 교만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하고 자기를 내세우며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저 위대한 하나님의 종도 자만심에 사로잡혀 실족한 일이 있다면, 평범한 사람들이 자만심에 빠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의 자만심을 꺾으시려고 십자가를 지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견디기 힘든 재난을 당할 때, 우리는 곧바로 굴복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하나님의 능력만이 재난을 이기고 버티는 힘을 준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III.viii.2).

바울은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롬 5:3)고 하셨습니다. 이런 인내는 결코 자기 힘으로는 얻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환난을 당할 때에 약속하신 도움을 주신다는 것을 인내를 통해 체험하고, 이미 경험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미래에도 과거와 같이 확고부동하리라는 것을 기대하며 소망 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III.viii.3).

과거의 십자가

또한 십자가를 지는 일은 현재뿐 아니라 과거와도 관련됩니다. 따라서 환난을 당할 때마다 우리는 항상 즉시 우리의 지난 생활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징계를 받을만한 어떤 이유를 발견할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주께서 역경으로 우리를 징계하시는 것은 우리의 죄를 추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고전11:32)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불신자와 신자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가르칩니다. “불신자는 고질적이며 철두철미한 악의 노예와 같이 징계를 받으면 더욱 악하게 되고 더욱 고집을 부린다. 그러나 신자는 자유의 몸으로 태어난 자녀와 같이 회개할 줄 안다. 우리는 어느 쪽에 들기를 원하는지를 결정해야 한다”(III.viii.6).

그리스도인들이기 때문에 당하는 특별한 고난도 있습니다. 이것은 “의를 위해 당하는” 고난이기 때문에, 필시 세상의 멸시와 미움이 따르고, 그로써 우리의 생명이나 재산이나 명예에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아래서 고난당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에, 능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괴로움과 멸시를 당한다면, 우리는 그만큼 더 견고하게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게 된다. 모욕과 수치를 당한다면, 반드시 하나님 나라에서 더 귀히 여겨질 것이다. 죽임을 당한다면, 복된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이 우리 앞에 열릴 것이다(III.viii.7).

그러므로 우리가 고난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함”(롬8:17)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의 고난뿐만 아니라 영광도 함께 나누지 못한다면, 예수님처럼 고난받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칼빈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관한 세 번째 측면으로 “내세에 대한 명상”을 첨가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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