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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교회입니다외형이 변할 수는 있지만, 그 중심은 바뀌지 않습니다(에베소서 2:20-22)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0.09.13 17:40
▲ 교회의 모퉁잇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Getty Image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작년 사순절 기간에 십자가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전하신 의미, 복음서의 교회들이 생각한 의미, 초대 교회가 생각한 의미가 어떻게 변해왔고 발전해왔는지를 살펴봤습니다. 그때 초대 교회가 십자가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했는지, 에베소서 2장의 본문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초대 교회에 있어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유대인과 이방인, 정결한 사람과 부정한 사람의 경계를 허무는 놀라운 은혜의 사건이었습니다. 특히 이방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에베소 교회에게는 더욱 큰 은혜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바로 앞에 나오는 19절 말씀에는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라는 말씀이 나오게 됩니다. 이방인도 유대인과 동일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의미입니다.

오늘 저희는 십자가의 의미를 전해준 에베소서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 성도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를 통해 교회가 무엇인지도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본문의 의미

이제 에베소서는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 백성의 자격을 얻은 이들을 향해 이렇게 요구합니다. “당신들은 성전,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로 말하자면 성도들을 향해 ‘교회’가 되라고 말합니다.

에베소서는 쉬운 이해를 위해 건축과 관련된 용어를 사용하여 성도와 성전의 관계를 비유합니다. ‘터’, ‘세우심(건축됨)’, ‘모퉁잇돌’, ‘건물’, ‘처소’, ‘지어져(건설되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간혹 이 비유적인 표현들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서 이를 ‘교회 건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성도 자신이 하나님의 처소가 되어야 한다는 비유적 표현일 뿐입니다.

조금 자세히 생각해보겠습니다. 우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워졌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배우고 따른 이들을 의미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선지자라 불린 사람을 굳이 따진다면 세례 요한을 떠올릴 수 있지만,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선지자(예언자)는 구약성경의 인물들입니다.

에베소서는 자신들이 유대교 전통에서 벗어나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유대교 신앙인 예언자들의 터전 위에 서 있다고 말합니다. 다만 그 신앙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하신 말씀, 사도들의 가르침도 함께 터를 이루고 있다고 말합니다.

지금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표현으로 말하자면, 성도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잇는 신앙 위에 세워졌음을 의미합니다. 구약에 나타난 선지자들의 신앙과 전통, 신약에 나타난 사도들의 신앙과 전통 위에 우리가 서 있다는 말입니다.

그 신앙의 전통 위에 우리가 세워졌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퉁잇돌’이 되셨다고 합니다. ‘모퉁잇돌’은 간혹 아치형 돌 구조물의 가운데 놓여서 균형을 잡는 돌이라고 설명되기도 하는데, 본래 헬라어 ‘아크로고니아이오스(ἀκρογωνιαῖος)’는 구조물의 가장 밑바닥에 놓이는 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말로 ‘모퉁잇돌’이라고 번역된 것이고, 일본 성경에는 ‘초석(礎石)’으로 번역합니다. ‘균형을 잡아주는 돌’이 아니라 ‘무게를 지탱하는 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모퉁잇돌’이 되셔서 우리의 기초가 되어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을 이루며 점점 커져간다 할지라도 결코 무너지는 일이 없도록 지탱해 주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와 동시에 우리의 기초에 예수 그리스도가 없다면, 우리는 바르게 세워질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21절 말씀은 언뜻 보면 조금 애매합니다.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간다’고 번역되어 있기 때문에 마치 여러 교회 건물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하나님의 성전을 만든다고 이해될 수 있습니다. 마치 교회의 연합인 노회나 총회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이미 앞에서 교회는 성도 자체라는 말씀을 드렸기 때문에 이 본문은 성도들이 마음을 합하여 하나의 성전을 이룬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이 가진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건물의 모든 구성 요소, 이쪽 벽과 저쪽 벽이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건물, 하나의 성전을 이루어간다는 의미입니다. 건물이 이렇게 지어져 가듯이 우리도 성령 안에서, 기초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거처로 세워져 간다고 에베소서는 전합니다.

신약성경에 있는 서신을 읽으며 우리가 흔히 잘못 생각하는 점이 있습니다. 로마서, 고린도서, 등의 서신을 읽으며 우리는 편의상 로마 교회, 고린도 교회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는 우리가 편의상 붙인 이름이지 실제 ‘로마 교회’, ‘고린도 교회’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로마 지역에 있는 성도들의 모임이 ‘로마 교회’이고, 마찬가지로 고린도 지역에 있는 성도들의 모임이 ‘고린도 교회’입니다. 어떤 특정한 장소를 지칭하는 표현도 아니고 한 곳에 국한되는 표현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박해받는 시절에 건물을 가진 교회의 존재는 말이 되질 않습니다.

무엇이 교회인가?

중세 판타지 소설들을 읽다보면 단골로 등장하는 대사가 있습니다. 적군에 의해 성이 함락되기 직전 상황에서 왕이 하는 말인데, 대조적인 두 가지 대사가 자주 나옵니다. 나쁜 왕의 경우에는 이런 말을 합니다. “짐이 곧 나라다. 나만 살아나면 된다.” 반대로 선한 왕은 이런 말을 합니다. “백성이 곧 나라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백성은 살려야 한다.”

최근 어떤 목회자들은 목숨을 걸고 모임 예배를 사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교회 건물에 모이지 않으면 교회는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지금 정부의 종교 탄압이라고 말합니다.

교회는 분명 건물이 아닙니다. 건물 안에 모여있는 성도님들이 교회입니다. 아무리 교회 건물을 닫고 부순다고 할지라도 교회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다만 인간적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지금 시대에 교회라고 불리는 건물에 모여서 예배드리는 것만이 개신교를 지키는 일이고, 교회가 살아남는 길이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특히나 지금은 전염병으로 온 국민이 고통받는 시기입니다. 모임은 전염원이 될 수 있고, 이는 교회의 핵심인 성도님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일입니다. 혹시 교회 모임을 주장하는 목회자들은 성도 한두 사람 죽어도 교회 건물만 남아있으면 교회는 살아남는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교회 건물만이 남았을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 우리는 이미 유럽과 미국의 교회들을 보며 알고 있습니다. 성도가 떠나고 건물만 남은 교회는 이제 임대업으로 전환하여 교회 임대 수입으로 목회자의 사례비를 충당하고 있습니다. 거의 목회자가 혼자 임대하고 임대 수입을 얻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사례비라고 말하기에도 어렵습니다.

TV에서 보니 어떤 교회는 교회 문이 닫히자 몰래 모임을 갖고 있다고도 합니다. 단속에 걸리지 않도록 장소를 옮겨가며 예배드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한 가지는 맞습니다. 건물이 교회가 아니라 성도의 모임이 교회라는 점은 맞습니다. 다만 여전히 그 교회의 중심인 성도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는 점은 변하지 않습니다.

성도의 생명을 위협하는 모임과 장소는 결코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세상에 관한 이야기는 둘째치고 교회 내의 성도들의 생명을 위협하며 두려움을 주는 모임이 어떻게 교회가 될 수 있겠습니까? 교회는 성도 자체입니다.

성경 말씀의 터전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삶의 기초로 삼고, 성령 안에서 살아가며, 하나님을 모시고자 노력하는 성도님들이 있는 한, 교회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여러분 한분 한분이 바로 교회입니다.

이제 마스크를 벗고 밖을 돌아다니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전염병이 확산됨에 따라 예배를 비롯한 수많은 모임은 법적으로 금지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교회와 예배의 형태는 상당히 변해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이미 일부 교회는 교회 건물을 처분하고 영상 예배만 드리는 교회로 전환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 어떤 형태의 교회를 추구해야만 할 것인가, 지금 우리에게 놓인 가장 큰 고민거리입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만은 우리가 꼭 기억했으면 합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교회의 외형이 변할 수는 있지만, 그 중심은 바뀌지 않습니다.

다시 한번 반복합니다. ‘성경 말씀의 터전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삶의 기초로 삼고, 성령 안에서 살아가며, 하나님을 모시고자 노력하는 성도’가 교회입니다. 이 중심이 변하지 않는다면, 교회의 외형이 어떻게 변하던 그곳에 참된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질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거하시기 충분한 처소를 만들어가시는 명일한움교회 성도님 되시길 바랍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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