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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개혁을 위한 두 가지 방편 - 징벌적 손해배상과 형사처벌민중신학자의 눈으로 세상 읽기 (29)
강원돈(길마루글방 지기/사회윤리와 민중신학) | 승인 2020.09.14 17:07
▲ 독일의 언론들 ⓒGetty Image

독일 정론지의 위엄

필자가 독일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자료 수집이나 연구 수행을 위하여 독일에 자주 오가면서 독일 사회에서 부러웠던 것이 몇 가지가 있었다. 1천 8백만 권 이상의 장서를 갖춘 대학교 도서관들이 여기 저기 있는 것이 가장 부러웠고, 그에 못지않게 사회적 연대를 보장하기 위해 잘 갖추어진 사회적 안정망, 국민경제와 산업 부문 차원에서 강력한 힘을 행사하는 노동조합, 기업 수준의 노사결정 제도가 부러웠다. 독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정치에 입문하고 싶은 마음이 잠시 들었던 것은 독일연방의회에서 정파들이 진지하게 벌이는 의제 토론과 그것에 바탕을 둔 정치적 합의 능력이 필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기 때문일 것이다. 독일정치의 안정성과 생산성은 유권자들의 정치적 의지가 잘 반영되도록 설계된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힘입은 바 크지만, 독일의 유수한 정론지들이 없었다면 오늘과 같은 모습을 갖추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만큼 독일의 정론지들이 갖는 힘은 크고, 그 권위와 위엄은 굳건하다.

유학 생활을 하던 기간에 필자는 진보적 성향을 띤 「프랑크푸르터 룬드샤우」의 정기 구독자였다. 「디 차이트」는 주말 판을 기다렸다가 사서 읽었고, 주간지 「슈피겔」, 「슈테른」, 「포쿠스」(FOCUS) 등은 흥미 있는 주제를 기획으로 다룰 때 구입해서 읽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프랑크푸르터 룬드샤우」, 「디 차이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 「쥐트도이췌 차이퉁」 등을 더러는 무료로, 더러는 유로로 읽고 있다. 이 신문들은 독일이 자랑하는 정론지들이다. 이 정론지들은 사실에 입각한 보도, 많은 시간과 돈과 공을 들인 취재 기사, 공론 형성의 규칙에 충실한 사설과 논평 등을 싣고 있다. 신문마다 보수로부터 진보에 이르기까지 각기 다른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색채를 띠지만, 각 신문은 사실에 부합하고 설득력 있는 논거들의 뒷받침을 받는 다양한 의견들을 공론의 장에 제시하여 사회적 토론과 정치적 논쟁을 촉진시키고 사회적 합의와 정치적 합의를 향한 길을 열어가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 신문들을 가리켜 정론지라고 하는 것이다.

정론지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독일 언론인들이 기울이는 노력은 엄청나다. 독일 정론지에서는 기사가 사실에 부합하는가를 검토하여 기사의 등재 여부를 결정하는 일이 가장 중요시된다. 기사를 쓰는 사람과 기사를 검토하여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취재 과정이 절차에 따라 제대로 진행되었는가를 살피는 사람이 나뉘어져서 상호 체크하기에 정확한 사실보도를 위한 내부 통제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진다. 가짜뉴스를 생산하거나 이를 제대로 체크하지 못하게 되면 신문사의 신뢰성에 치명적인 타격이 가해진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기자나 편집인은 취재 준칙을 지키고, 사실 확인에 근거하여 기사를 작성하고, 기사의 진위 여부를 가리는 일을 정론지의 생명으로 간주한다. 취재 준칙을 지키지 않았거나 가짜뉴스를 작성한 사실이 발각되면, 그렇게 한 기자는 말할 것도 없고 그 기자가 작성한 기사를 지면에 올린 편집인도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에게는 언젠가부터 정론지가 사라졌다

우리에게도 신문은 사실을 보도하고 정론을 제시하는 권위 있는 매체로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그 일이 신문에 났대!” 하고 말하면, 신문에 실린 사건 보도를 사실인 양 받아들이고, “어느 신문의 주필이 이런 사설을 썼대!” 하고 말하는 것으로 논란이 많은 사회적 의제들과 정치적 의제들에 대한 분분한 의견이 정리되곤 했다. 독재자들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먼저 신경을 쓴 일들 가운데 하나가 신문에 재갈을 물리는 일이었고, 신문 기자들은 국민의 알 권리를 앞세우며 사건의 진상을 보도하기 위해 큰 희생을 치루기도 했다. 그렇기에 유신 시대에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에서 해직된 기자들이나 전두환 정권의 ‘보도지침’에 저항하다 해직된 기자들은 당대의 ‘지사’(志士)로 대접받았다.

오늘 그러한 지사형 기자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기자들이 사실을 날조하거나 왜곡하거나 침소봉대해서 쓴 기사들이 멀쩡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기도 하고, 그 기사들이 겨냥하고 있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명예훼손과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가져다주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런 기사들이 밑도 끝도 없는 허무맹랑한 선동을 부추겨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들고, 심지어 극우 보수파를 준동시켜 파시스트 지배를 향한 길로 나아가도록 망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렇기에 그런 류의 기사를 쓴 기자들을 쓰레기나 구더기에 비유하여 ‘기레기’나 ‘기더기‘로 부르는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지난 해 법무부 장관으로 내정된 조국 씨와 그 가족을 둘러싼 엄청난 양의 기사들 가운데 사실로 판명된 기사가 과연 무엇인가? 기소할 수 있을 때까지 탈탈 털어 수사한다는 방침에 따라 무수히 많은 압수 수색을 연출하여 시선을 끌고, 범죄 혐의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그 혐의를 적절히 유포하여 여론의 뒷배를 확보하려는 검찰의 전략적 발언을 그대로 옮겨 적어 신문 기사로 작성한 기자들이 그 혐의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취재를 해야 한다는 의식을 과연 갖고 있기나 했을까? ‘표창장 직인 위조’로 알려진 그 유명한 사건의 증거가 되는 것이 지금까지 하나도 나오지 않았으니, 그 사건에 관한 허위, 날조 혹은 과장된 기사를 작성한 자들은 그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가? 지난 8월 28일자 「조선일보」 종이판에  “세브란스병원 피부과 일방적으로 찾아가 ‘조국 딸이다, 의사고시후 여기서 인턴하고 싶다’”는 제하로 실린 기사는 사실 확인은 고사하고 아예 없는 사실을 조작하여 소설을 쓴 전형적인 실례라 할 것이다.

최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아들이 군복무 시절에 사용한 병가를 둘러싼 신문 보도 역시 날조와 왜곡에 가깝다. 그 아들이 한 쪽 무릎의 십자인대 파열 병력을 무릅쓰고 군에 입대하여 복무하다가 다른 쪽 무릎을 수술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추가 휴가를 신청하고 허가받은 것을 두고서, ‘탈영,’ 탈영을 무마하기 위한 ‘외압’ 행사 등의 용어를 서슴없이 사용하는 기사들이 얼마 전까지 유수 신문사들에서 꼬리를 물고 나왔다. 지금까지 확인된 여러 자료들과 국방부의 해명에 의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법무부 장관 아들의 추가 병가 요청과 그 허가에 불법적인 요소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니 이제 묻지 않을 수 없다. 그 기사를 작성한 기자들은 취재원을 확보하고, 취재원의 진술이 사실에 부합하는가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는가? 그러한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고 사실이 아닌 것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기사로 작성한 저의는 도대체 무엇인가?

전·현직 법무부 장관 가족의 범죄 혐의에 관한 신문 보도들은 검찰개혁의 엄중한 과제를 위임받은 인사들의 도덕성을 훼손시키고, 그 범죄 혐의에 관한 수사 과정에서 혹시라도 주워 담을 수 있는 위법성이 있다면 그것을 물고 늘어져 그 인사의 리더십을 무너뜨리고, 검찰개혁을 오도 가도 못하게 하는 효과를 연출하려는 기획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른다. 그런 기획은 금융, 재벌, 관료, 검찰, 언론 등을 주축으로 하는 기득권 블록의 이해관계를 지키려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고, 그 중심에는 수구 언론이 있는 것 같다. 설사 그런 기획에 동조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수구 언론 바깥에 있었던 일부 신문사 기자들이 사실 확인 없이 작성한 기사들이 우리 사회의 공론 형성 과정에 가져온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그 폐해가 얼마나 컸으면 언론적폐라는 말이 나오겠는가?

언론적폐를 청산하려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우리 주변에 많은 신문들이 있지만, 정론지의 이름에 값하는 신문은 없다. 그렇기에 신문사들이 정론의 길을 걷도록 촉진하는 제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 정론지가 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가짜뉴스를 생산하지 않고 사실 확인에 바탕을 둔 보도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우리 사회의 여러 부문들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진상이 제대로 파악되어야, 그 일들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놓고 공론의 장에서 제대로 의견을 형성할 수 있지 않겠는가?

적어도 정론의 길을 걷고자 하는 신문은 기자들이 사건을 취재하고 사건의 진상을 파악해서 기사를 쓰게 해야 하고, 사실 확인을 통하여 그 기사의 진위와 게재 여부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당연히 기사 작성과 검토에 시간과 공이 많이 들 수밖에 없고, 비용도 많이 지출되어야 한다. 일선 기자들은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한 인력이 부족하고, 기사를 송고하기까지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고 하소연한다. 인터넷 매체들이 발달한 오늘의 언론 환경에서 다른 매체들과 경쟁하면서 고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눈길을 끌 만한 콘텐츠를 재빨리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사실 확인을 제대로 할 겨를이 없다는 것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그 가족을 둘러싼 의혹처럼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에서 검찰이 흘리는 범죄 혐의는 사실 확인을 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은 채 매우 빠른 속도로 기사화되어 송고되고, 사실 확인에 관한 엄격한 검토 없이 신문에 게재되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의 보도는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검찰이 공소 이전에 공표하는 범죄 혐의는 범죄 사실을 살피거나 이를 법률적으로 구성하는 단계에서 나온 의견에 불과하고, 검찰의 공소도 범죄 사실에 대한 검찰의 의견이기에 그 의견의 진위는 엄격한 절차와 증거에 의해 법정에서 검증되어야 한다. 공소를 통해 재판을 청구하기 이전에 범죄 혐의에 대한 의견을 공표하지 못하도록 형법 126조가 금하는 것은 형법의 계명인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하여 범죄 혐의가 마치 범죄 사실인 양 공연히 낙인을 찍는 효과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고, 범죄 혐의를 받는 사람의 방어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는 상황을 피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 데도, 검찰이 수사중인 사건에 대해 위법하게 공표한 의견을 사실 확인 없이 그대로 기사화할 수 있는가? 그것이 과연 정론지가 할 일인가?

이러한 보도 행태는 더 이상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 취재원이 하는 말이 사실에 부합하는가를 확인하지 않고서 그 말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기사를 쓰고 그 기사를 지면에 올리는 것은 정론지로서는 더더욱 해서는 안 되는 짓이다. 허위 사실을 유포하거나 사건의 진상을 날조하거나 왜곡하거나 침소봉대하는 방식의 보도는 헌법 제21조 1항과 2항이 확인하고 보호하는 언론·출판의 자유를 초과한다고 보아야 한다. 헌법 제21조 4항은 언론·출판의 자유가 “타인의 명예나 권리, 공중도덕, 사회윤리 등을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고,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할 때에는 피해 배상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헌법 정신에 입각하여 허위 사실을 유포하거나 사건의 진상을 날조하거나 왜곡하거나 침소봉대하여 헌법 제21조 4항이 규정한 바와 같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할 때에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여야 한다고 본다. 공론의 장이 사실 확인 없이 유포되는 가짜뉴스들에 의해 혼탁해진 상황에서 어느 한 사건에 관한 징벌적 손해배상의 규모는 신문사의 존립을 뒤흔들 만큼 커야 할 것이다.

선동을 위한 가짜뉴스는 형법으로 규율할 수도 있다

국가보안법이 양심의 자유와 언론·출판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전파하는 행위를 형법에 의해 규율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매우 조심스럽게 판단하여야 한다. 징벌적 손해배상법이 언론 환경을 개선하여 사실 확인에 근거하여 의견을 제시하는 정론이 자리를 잡도록 효과를 발휘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언론·출판의 자유가 ‘타인의 명예나 권리’만이 아니라 ‘공중도덕, 사회윤리 등’도 침해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헌법 제24조 4항, 기본권을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하도록 규정한 헌법 제37조 2항 등의 규정에 근거하여 형법의 규율을 받도록 관련 법제를 보완하거나 법제를 제정하는 것까지도 고려할 수 있다고 본다.

인종 혐오를 선동하는 극우 파시스트 독재를 경험한 독일은 네오 나치가 준동하자 형법 제130조에 인민선동죄를 규정하고 이를 무겁게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국적, 인종, 종교, 혹은 종족을 달리하는 집단, 그 인구 집단의 일부 혹은 개인에 대해 증오를 부추기거나 폭력 혹은 자의적 행위를 유발하여 치안을 어지럽히는 자,” “위에서 특정한 집단이나 그 일부나 개인을 모욕하거나 악의적으로 비방하거나 부정하여 타인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자”는 최소 3개월에서 최고 5년까지 징역형에 처하도록 하고, 출판물이나 공중매체 등을 통하여 위에서 말한 행위를 하도록 선동하거나 요구하거나 그 사람들의 인간 존엄성을 침해하도록 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나치 지배 아래서 자행된 대량학살을 “공개적으로 혹은 집회를 통하여 정당화하거나 부인하거나 하찮게 여기도록 해서 치안을 교란하는 자”는 최고 5년형 혹은 벌금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가짜뉴스 유포를 통한 선동이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혐오와 증오를 자극하는 방식의 선동 행위가 나날이 극심해지는 한국 사회에서는 독일 형법 제130조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정론을 확립하여 건강한 공론의 장을 한 시라도 빨리 형성하여야 한다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유포하는 신문 매체의 폐해도 크지만, 공중파, 인터넷 신문, 유튜브, SNS 등의 폐해는 더 말 할 것도 극심하다. 이에 대해서는 따로 긴 글을 써야 하겠지만, 여기서 필자는 건강한 정론지가 몇 개만 있어도 공중파, 인터넷 신문, 유튜브, SNS 등에서 벌어지는 언론 활동 혹은 유사 언론 활동을 바로 잡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온갖 언론 매체들이 가짜뉴스를 양산하여 혹세무민에 가까운 선동 행위를 부추기거나, 혐오와 증오를 확산시키도록 기름을 붓거나, 공연한 색깔론을 앞세워 분열을 심화시키고 비타협적인 대립을 조장하는 것은 공론의 장을 황폐화시키고 파시스트 독재의 길을 여는 지극히 해로운 행위이다. 이러한 선동과 주장의 빌미가 되는 가짜뉴스를 걸러내고 의사표현의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서는 정론지가 굳건하게 자리를 잡아야 한다.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유포하는 언론 매체들을 앞세워 파시스트 선동에 나선 세력이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언론 환경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고, 정론지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야 찾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그대로 내버려 두면, 우리 사회에서 재벌, 관료, 검찰, 언론 등이 주축이 되어 민주주의적 헌정질서를 뒤흔들고 파시스트 독재를 향한 빗장을 여는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보장할 수 없다. 이러한 헌정 위기를 예방하고 회피하기 위해서라도 시민사회와 정치사회가 나서서 한 시라도 빨리 정론을 세우고 공론의 장을 건강하게 육성하는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징벌적 손해배상제나 어쩔 수 없는 경우에 고려해야 할지도 모르는 형법적 규율은 정론을 세우고 공론의 장을 튼튼하게 형성하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에 불과하다. 정론지의 육성만 놓고 본다면, 인터넷 환경에서 정론지가 수익 모델을 만들어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한 수익 모델이 없다면, 신문사는 거액의 광고를 제공하는 광고주에 예속되기 쉽고, 인터넷에서 기사를 클릭하는 숫자 경쟁에 내몰려 인터넷 흑색 언론이나 황색 언론과 경쟁하는 초라한 신새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사주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이데올로기적 편향이 신문 편집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편집의 자유와 취재의 자유를 보장하는 제도를 더 정교하게 설계하고 법으로 제정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한국의 언론 상황에서는, 이 모든 제도적 장치들과는 별도로, 징벌적 손해배상법을 반드시 마련하여야 한다. 징벌적 손해배상법은 언론 종사자들로 하여금 정론을 형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 것이다. 무엇보다도 공론의 장에서 흑색 언론이나 황색 언론을 추방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오직 이러한 조건들 아래서만 건강한 공론의 장이 형성될 수 있다.

필자는 징벌적 손해배상법이 효과를 발휘하여 사실의 날조, 왜곡, 침소봉대 및 허위사실의 유포 등을 통해 국민을 선동하는 행위를 형법으로 다스리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강원돈(길마루글방 지기/사회윤리와 민중신학)  kwdth5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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