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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복음서의 ‘사가랴’Q복음서와 성전 및 제사장 (4)
김재현(계명대) | 승인 2020.09.16 17:11
▲ Mondadori Portfolio, 「성전 제사장 스가랴가 “그의 이름은 요한이다”라고 썼다(Zechariah, priest of the Temple, writes, “His name is John”)」 ⓒGetty Images

Q복음서에는 사가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제단과 집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인물이다(Q11:51). 제단 가까이에 있는 “집”은 성전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마태복음은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마23:35)라고 말하면서 Q복음서의 집이 성전임을 밝히고 있다. 마태복음서는 Q복음서의 집을 성전으로 해석해서 더 명료하게 이해하도록 돕지만 Q의 사가랴의 신원을 파악할 때에는 혼동을 불러일으킨다.

두 본문을 보면 다음과 같다.

Q복음서의 ‘사가랴’는 누구인가

이 사가랴는 누구인가? 몇 가지 주장이 제기되었었다. 첫째,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이다.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성전에서 살해당했다는 이야기가 초기 기독교 외경에서 나타난다. 둘째, 구약성서의 예언자 스가랴이다. 슥1:1에서 스가랴는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이라고 자신을 밝히고 있다. 셋째, AD 70년 경 성전에서 열심당원에게 살해당한 바리스의 아들 스가랴가 있다. 넷째, 대하24:20-21에 성전 뜰에 돌에 맞아 죽은 제사장 스가랴를 거론할 수 있다.(1)

마태복음서는 Q복음서에 있는 “사가랴”라는 이름에 “바라갸의 아들”이라는 말을 첨가함으로써 사가랴를 예언자로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구약성서에서 역대하의 제사장 스가랴와 예언자 스가랴가 서로 혼동되기도 했다. 마태복음서 버전의 바라갸의 아들 스가랴 주장의 문제점은 그가 성전에서 살해당했다는 전승이 명백하게 없다는 것이다. 바리스의 아들 스가랴는 Q복음서의 연대상 어려움이 있다.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도 Q복음서의 맥락에서는 연결하기가 쉽지 않다. Q복음서는 그저 사가랴라고만 밝히고 있는데, 아마 이 사람은 대하24장의 제사장 사가랴로 보는 것이 가장 개연성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해석의 장점 중 하나는 유대 버전의 구약성서에서 첫 책인 창세기의 아벨에서 마지막 책인 역대하가 수미쌍관하게 된다는 것이다.

앨리슨(D. C. Allison)도 Q11:49-51 + Q13:34-35(2)와 대하24:17-25 사이의 연관성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3)

만약 Q11:51의 사가랴가 구약성서에 나타난 제사장 사가랴가 맞다면, 사가랴에 대한 언급은 Q복음서가 제사장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에 대한 중요한 정보이다. Q복음서는 세례자 요한의 제외하고는 예수와 동시대의 인물을 거론하지 않는다. 하지만 Q는 구약성서에 나타나는 역사적 인물에 대해서는 상당 부분 언급한다. 아벨, 노아, 아브라함, 솔로몬, 요나 등이 언급된다. 대하 24장의 사가랴도 그러한 경우이다.

그렇다면 이제 아벨에서 시작하여 사가랴에 이르는 장대한 역사가 제시된다. 사가랴는 제사장이다.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인 제사장 사가랴는 아벨의 계보를 잇는 의로운 인물이며 Q복음서에서 긍정적으로 그려진다. Q복음서에서 유일하게 등장하는 제사장격의 인물이 긍정적으로 그려진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Q복음서는 구약성서의 주요한 인물들인 아벨, 노아, 아브라함, 솔로몬 등을 유대적 맥락에서 긍정적으로 보듯, 구약성서의 제사장 사가랴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Q복음서는 사가랴를 제사장의 전통에서 보지 않고 예언자의 전통에서 이해한다. Q복음서는 Q복음서에 등장하는 유일한 제사장격 인물을 예언자로 이해해버린 것이다. Q공동체가 예언자들을 중시했다는 점은 복음서 전반에 걸쳐 명확하게 나타난다. Q복음서는 구약 예언자의 구체적인 이름을 언급한다. Q복음서는 세례자 요한을 예언자 보다 위대한 자로 평한다. 예언자가 율법의 파괴자나 성전 제의의 파괴자는 아닌 것이다. 다만 예언자는 현행 성전 체제나 제사장의 범죄나 잘못에 대해서 규탄하며 성전의 멸망까지도 예고할 수 있다.

Q복음서에 따르면 아벨과 사가랴는 지혜(η σοφια)가 파송한 예언자와 지혜자의 계열에 속해 있다(Q11:49). 우리는 이러한 지혜의 자녀에 세례자 요한과 예수가 속해 있음을 안다(Q7:33-35). Q 공동체는 예언자들을 뒤따르는 사람들이었다(Q6:23; Q7:24-28; Q11:29-30, 32; Q11:49-51).(4) 그리고 예언은 묵시와 지혜를 포괄한다.(5)

Q복음서는 아벨에서 사가랴에 이르는 “피”를 강조한다. 이 피는 “예언자들의 피”다. 마태복음서는 아벨이 예언자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해서 “의인의 피”라고 말한다. 창세기에서는 아벨의 핏소리가 여호와에게 호소함을 강조하고, 땅이 그 입을 벌려 아벨의 피를 받았다고 말한다(창4:10-11). 역대하의 스가랴 이야기에서도 유사한 피의 이야기가 있다. Q복음서에서 아벨에서 사가랴에 이르는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예언자 살해의 전통이다. Q복음서는 예수의 죽음도 이러한 시각에서 이해한다. 예수를 살해당한 예언자의 전통에서 보는 Q복음서의 예언자적 입장은 예수를 어린 양으로, 대속물(ἱλαστήριον)로, 대제사장으로 보는 제사장적 시각과는 큰 차이점을 보여준다.

제사장 없이 제사장과 함께

Q복음서는 초기 유대교와 초기 기독교 사이의 “잃어버린 연결고리”(missing link)이다.(6) Q복음서의 제사장관은 여러모로 구약성서적 맥락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Q복음서에는 예수와 제자들 및 신도들을 제사장으로 보는 신학이 전적으로 결핍되어 있다. Q복음서는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에 대해서 예언한다. 그러나 완전한 파괴가 아니라 회개를 통한 희망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Q복음서는 제사장 중심의 공동체가 아니라 오히려 예언자들과 현자들의 공동체였던 것이다.

Q복음서는 원칙적인 제사장의 제도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제사장 제도를 인정하되, 당대의 제사장 실행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 Q복음서는 십일조를 지지했다. 그러나 십일조를 성실히 지키는 것보다 정의와 자비와 믿음을 더 중시했다. Q복음서는 정결법을 무시하지 않았지만 외적 정결보다는 내적 정결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Q복음서에는 제사장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반면 Q복음서에는 예언자라는 단어는 자주 등장한다. Q복음서에서는 제사장과 관련된 장소인 성전과 제사장과 관련된 제의인 십일조가 배경으로 등장하지만, 성전과 십일조에서 중요한 인물인 제사장은 언급되지 않는다. 심지어 유대교와 기독교의 전통에서 예언자로 언급되지 않은 아벨을 예언자라 부르고, 예언자적 인물이라기 보다는 제사장이었던 사가랴를 또한 예언자라고 부른다. 이는 Q복음서가 당대의 제사장직분을 모르지 않았고, Q의 표상 세계에서 제사장이 일정부분 역할을 하지만, Q사람들 내부에서 결정적인 중요성을 가진 것은 예언자의 전통이었음을 말해 준다.

Q 사람들을 거부하고 대적했던 사람들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그리고 당대의 백성들이었다. Q복음서는 우리에게 묻는다. 예언자적 목소리에 대해서 박해하는 편에 설 것인가? 예언자들과 그 운명을 함께 할 것인가? 창세로부터 예언자들을 박해하고 살인을 저질렀던 자들이 있었던 것처럼 예언자들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Q복음서라는 유대교적 예수 운동에서는 제사장적 실행보다 그것이 더 중요했다.

미주

(미주 1) T. W. Manson, The Sayings of Jesus: As Recorded in the Gospels according to ST. Matthew and St. Luke arranged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London: SCM Press LTD, 1971), 104-105.
(미주 2) Q11:49-51 다음의 본문이 Q13:34-35라는 입장, 즉 마태복음 23장이 Q복음서의 순서를 더 잘 보존하고 있다는 입장의 대표적인 학자는 제임스 로빈슨이다. 이외에도 하르낙(A. v. Harnack), 베른레(P. Wernle), 불트만(R. Bultmann), 뤼어만(D. Lührmann), 네이륑크(F. Neirynck)는 마태가 Q복음서의 순서를 잘 보존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J. M. Robinson, “The Sequence of Q,” ed. C. Heil, J. Verheyden, The Sayings Gospel Q: Collected Essay (Leuven-Dudley, MA: Leuven University Press, Uitgeverij Peeters, 2005), 567-587.
(미주 3) Allison, The Intertextual Jesus, 150에 있는 표를 간략하게 수정해서 제시한 것이다. 이러한 연관성은 로빈슨(J. M. Robinson)도 제시한 바 있다.
(미주 4) M. Sato, Q und Prophetie: Studien zur Gattungs- und Traditionsgeschichte der Quelle Q (Tübingen: J. C. B. Mohr(Paul Siebeck), 1988). R. A. Horsley, “Logoi Propheton: Reflections on the Genre of Q,” ed. B. A. Pearson, The Future of Early Christianity: Essay in Honor of Helmut Koester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1), 195-219.
(미주 5) M. Sato, “Wisdom Statements in the Sphere of Prophecy,” ed. R. A. Piper, The Gospel behind the Gospels (Leiden, New York and Köln: E. J. Brill, 1995), 139-158.
(미주 6) M. Tiwald, ““Get away form me, you who do lawlessness”(Q13:27): Introduction to the volume,” ed. M. Tiwald, Q in Context Ⅰ: The Separation between the Just and the Unjust in Early Judaism and in the Sayings Source(Die Scheidung zwischen Gerechten und Ungerechten in Frühjudentum und Logienquelle) (Göttingen: V&R unipress, 2015), 7.

김재현(계명대)  verticalkj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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