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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역사에 대해 알고 싶었으나 감히 이집트에게 물어보지 못한 것이스라엘 역사 알기 (1)
이성훈 목사(한신대 구약학 박사과정) | 승인 2020.09.17 16:50

이스라엘 역사와 관련된 자료를 훑어보며 연대를 추정하려는 이 글의 목적은 학문적인 결과물을 남기기 위함은 아닙니다. 목회를 하시는 분들에게는 성경공부를 위한 자료를 제공하고자 함이며, 성도님들께는 성경과 이스라엘 역사를 생각해보는 기회를 마련하기 위함입니다.

왜 이스라엘 역사의 정확한 연대 추정이 힘들까

목회를 하다보면 때로 구약성경의 정확한 연대를 찾아보게 될 때가 있습니다. 주일 설교 말씀을 전할 때는 굳이 필요하지 않지만, 성경공부나 강해 설교를 진행할 경우, 성도님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성경의 연대를 전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 연대를 확인할 때, 자신이 직접 구약성경을 찾아가며 연대표를 작성하는 방식이 가장 바람직할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의 연대표를 작성하는 일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성경 안에서도 연대가 충돌하는 지점이 발생하고, 그 충돌을 피해서 실제 연대에 적용하는 일은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만약 이스라엘 역사에 관련된 책을 가지신 분이라면 책을 통해서 연대를 정리하실 수도 있지만, 학자들은 조심스러운 사람들이라, 성경의 연대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연대를 제시한 책이 있다고 해도, 대부분은 전체적인 연대표를 보기 쉽게 정리해놓지도 않습니다.

요즘 시대에 가장 쉽게 연대를 찾는 방법은 인터넷에서 검색하는 일입니다. 인터넷에서 원하는 왕이나 시기를 검색하면 대략적인 연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방법에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그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고 둘째는 여러 사람의 글을 참고하다보면, 서로 맞지 않는 연대를 말하게 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네이버’나 ‘다음’에서 ‘사울’을 검색하면 ‘두산백과’, ‘라이프성경사전’, ‘바이블키워드’에 적힌 내용이 제일 위에 표시됩니다. ‘두산백과’의 경우 사울의 재위 기간을 ‘주전 1030년~1010년’으로 적고 있습니다. ‘라이프성경사전’과 ‘바이블키워드’는 연대를 표시하지 않고 있으며, ‘다음’에서 검색해서 찾을 수 있는 ‘다음백과’에는 연대 미상으로만 표시됩니다.

인터넷을 조금 더 많이 활용하시는 분들은 ‘구글’ 검색을 통해 ‘위키백과’나 ‘나무위키’를 찾아보실 수도 있습니다. ‘위키백과’는 사울의 재위 기간을 ‘두산백과’와 마찬가지로 ‘주전 1030년~1010년’이라고 적었습니다. 반면 ‘나무위키’는 ‘주전 1038년~1010년’이라고 적습니다. 왜 8년의 차이가 나는지 이유는 적혀있지 않습니다.

영어에 거부감이 없는 분들이라면 미국 ‘위키피디아’를 찾아보실 수도 있습니다. 미국 위키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데, 사울의 재위 기간을 ‘주전 1037년~1010년’이라고 말합니다. 그 근거는 ‘이스라엘 핑켈슈타인’(Israel Finkelstein)의 논문, “The Last Labayu: King Saul and the Expansion of the First North Israelite Territorial Entity”(in 『Essays on ancient Israel in its Near Eastern context [Winona Lake, Indiana: Eisenbraun, 2006], 171-187)과 SBL(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미국성서학회])에서 출간한 ‘리처드 넬슨’(Richard D. Nelson)의 책, 『Historical Roots of the Old Testament』 (Atlanta: SBL Press, 2014)입니다.

마침 사울의 통치 기간은 구약성경에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이 중 아무거나 선택해서 말씀을 전해도 됩니다. 하지만 언젠가 사도행전을 살펴볼 때 문제를 발견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13장에는 바울의 안디옥 설교가 담겨 있는데, 여기에서 바울은 사울이 이스라엘을 40년간 통치했다고 말합니다.

만약 사무엘상하 성경공부에 열심히 참여하신 성도님이 사도행전 13장의 말씀을 읽으신다면, 목사님께 이런 질문을 할 수도 있습니다. “전에 말씀하신 사울의 재위기간은 28년이었는데, 왜 사도행전에는 40년이라고 나오나요?” 처음부터 원칙을 정하여 연대를 작성하셨고, 이런 근거를 설명하셨다면 받지 않았을 질문이지만, 누군가 적어놓은 연대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면 이런 상황이 벌어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집트 왕조 역사가 왜 중요한가

본격적으로 이스라엘의 연대를 정리하기에 앞서 우리가 알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성경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방식의 연도를 전혀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동시에 이를 추정할 수 있는 근거도 미약합니다. 하지만 서력에 익숙한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사건들도 우리에게 익숙한 주전 몇 년, 주후 몇 년으로 나타내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우리가 성경만으로 이스라엘의 연대를 특정해나갈 수는 없지만, 주변 국가의 비문, 토판, 등의 도움을 받는다면 대략적인 연대 추정은 가능합니다. 특히 많은 기록을 남긴 이집트는 성경의 연대를 추정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으며, 출애굽기의 경우에는 이집트가 직접적인 당사자이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는 연대 추정의 기준이 되는 왕정 시대의 연대를 특정하기 위해서 아시리아와 바벨론의 기록을 참고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왕정 초기, 분열 왕국 이전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이집트 비문에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대로 올라갈수록, 이집트 이외의 기록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몇몇 예외로 나중에 살펴보게 될, 해양민족의 침입에 관한 우가릿 토판(약 주전 1180년)이나 ‘이집트-히타이트 평화조약’에 관한 히타이트(헷 족속)의 토판(약 주전 1258년)이 있지만, 이들이 기록하고 있는 사건들 역시 이집트와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집트의 비문들을 중점적으로 이스라엘의 역사와 비교하며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정말 안타까운 점은 왕조 형성 이전의 이스라엘에 대한 주변국의 자료가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주전 10세기 이전에 ‘이스라엘’이라는 명칭이 들어있는 자료는 이집트의 ‘메르넵타 석비(대략 주전 1208년의 사건을 기록함)’가 유일합니다.

▲ 메르넵타 석비 ⓒGetty Image

‘메르넵타’는 람세스 2세의 열세 번째 아들이었고, 그를 이어 파라오가 되었습니다. 람세스 2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할 때, 큰 아들을 잃었던 바로 그 파라오로 알려져 있습니다. 강력한 군주였던 파라오 람세스 2세가 죽고, 메르넵타가 파라오가 된지 5년째 되던 해에 북아프리카의 리비아 사람들이 이주해 들어온 해양 민족들과 동맹을 맺고 이집트를 무력으로 침공했습니다.

이집트를 가운데 두고, 동쪽과 서쪽에서 동시에 쳐들어왔던 이 전쟁이 이집트에게는 나라의 국운이 달린 아주 중요한 전쟁이었다고 합니다. 이 전쟁은 메르넵타의 승리로 끝납니다. 이렇게 큰 전쟁에서 이기고 나면, 왕들은 으레 자기의 승리의 기록을 약간의 과장을 곁들여 남겨 놓는 것이 고대 국가의 풍습이었습니다.

메르넵타도 이 승전 기록을 시의 형태와 이야기의 형태로 각각 카르낙 신전에 기록해 놓았습니다. 이야기 형태로 기록된 승전 기록에 의하면, 여섯 시간 동안 리비아-해양 민족 동맹군과 싸워서, 9,000명을 포로로 잡았다고 하니, 전쟁이 얼마나 일방적이었는지 짐작할만 합니다. 석비에는 리비아와 해양 민족들의 땅들로 진군한 파라오가 점령한 도시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석비에 기록된 가나안의 도시와 민족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지중해변, 해양 민족을 대표하는 도시인 아스겔론(수 13:3), (2) 지중해와 산지를 연결하는 지역(쉐펠라)을 대표하는 게셀(삿 1:29), (3) 갈릴리 지역을 대표하는 도시인 야노아(수 16:6), (4) 유대 산지를 가리키는 이스라엘 등입니다. 1896년에 이 석비를 발견한 영국 고고학자 페트리(Flinders Petrie)는 너무나 흥분했다고 합니다. 성경 이외에 이집트의 문헌에서 “이스라엘”이라는 말이 나온 최초의 고대 기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스라엘이라는 민족 또는 나라를 가리키는 유일한 이집트의 문헌이 바로 이 메르넵타의 석비입니다. 하지만 이 석비에 기록된 내용조차도 “이스라엘은 황폐해졌고, 그의 씨는 말랐다.”라는 한 줄 뿐입니다. 이 석비 부분을 해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 메르넵타 석비에 이스라엘이 언급된 부분 ⓒGetty Image

“테헤누(Tjehenu: 리비아 한 부족)는 정복당하였다. 하티(Kahtti: 히타이트족)는 평화로왔다. 가나안은 고통 가운데 포로가 되었다. 아쉬켈론(아스겔론: 블레셋 도사 중 하나)은 정복당했고, 게젤(게셀: 가나안 도시)은 사로잡혔다. 야노암(가나안 도시)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스라엘은 황폐해졌고, 그의 씨는 말랐다.”

▲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로 표기된 ‘이스라엘’ ⓒGetty Image

게다가 이집트 왕의 연대에 대한 연구 역시 아직도 여러 논쟁 속에 진행 중이며, 주전 1000년 이전의 연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최대 몇 백년의 차이까지 보입니다. 이집트 역사학에서 연대 추정에 주요하게 기여한 두 학자가 있는데, ‘제임스 브레스테드’(James Henry Breasted)와 ‘이언 쇼’(Ian Shaw)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이 두 사람의 책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얻게 될 것입니다. 브레스테드의 책은 Charles Scribner’s Son에서 1908년에 출간한 『A History Of The Ancient Egyptians』로 우리나라에는 ‘한국문화사’에서 『고대 이집트 역사』 1, 2권으로 올해 번역되어 출간되었습니다. 쇼의 책은 옥스퍼드 대학에서 2000년에 출간한 『The Oxford History of Ancient Egypt』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입니다.

아래는 두 학자가 추정한 이집트 왕의 연대 중 우리가 살펴보려고 하는 이집트 18왕조부터 20왕조까지의 연대표입니다.

▲ 이집트 18-20왕조 연대표

두 학자가 추정하고 있는 정확한 연도에 차이가 있음은 한눈에 보입니다. 몇 가지 특이점을 더 설명하자면, 브레스테드는 18왕조 마지막 왕인 ‘호렘헤브’를 19왕조 첫 번째 왕으로 봅니다. 또 19왕조 마지막 여왕인 ‘투스레트 여왕’은 연대표에 넣지 않습니다. 브레스테드는 이 시기를 ‘완전한 무정부 상태’로 봅니다. 20왕조의 경우도 람세스 11세에서 끝나는데, 브레스테드의 경우 람세스 12세까지 있던 것으로 봅니다. 브레스테드의 연대표에서 ‘세티 2세’와 ‘시프타’의 통치 기간이 바뀌어 있는데, 브레스테드는 ‘시프타’ 다음에 ‘세티 2세’의 통치가 있던 것으로 봅니다. 쇼는 반대입니다.

두 학자가 연대표를 작성한 기간은 100년의 차이가 납니다. 브레스테드는 1908년에 이 연대표를 작성하였고, 쇼는 2000년에 연대표를 작성하였습니다. 나중에 작성된 쇼의 연대가 꼭 정확하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이집트 비문 해석의 차이가 연대 작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해석의 차이일 뿐이지 누가 맞고 틀렸는지 분명하게 말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브레스테드의 책이 110년이나 지난 2020년에 번역 출간되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그의 해석이 오래되어서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이렇게 두 학자 사이에 연대 차이가 존재하는 첫 번째는 이유는 역사를 해석한 이후 내린 결론의 차이입니다. 한 예로, 브레스테드는 ‘호렘헤브’를 19왕조의 창건자로 보는 입장이고, 쇼는 18왕조의 마지막 왕으로 보는 입장입니다. ‘호렘헤브’는 ‘투탕카멘’의 군사령관으로 왕위를 위협했던 사람으로도 해석되고, 이집트의 회복을 위해 노력했던 인물로도 해석됩니다. ‘투탕카멘’과 ‘아이’에 이어 왕위에 올랐지만, 왕조의 마지막에 이집트의 복구를 위해 노력했고, 결국 자기 아들이 아닌 당시 군사령관 세티 아들 람세스에게 왕위를 계승한 점을 볼 때, 이집트를 위해 노력한 인물로 평가가 기울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호렘헤브’를 ‘투탕카멘’의 의지를 이었던 18왕조의 마지막 왕으로 봐야 하는지, ‘람세스’를 등극시킨 19왕조의 창건자로 봐야 할지는 해석의 문제입니다.

브레스테드와 쇼의 연대에 차이가 생기는 두 번째 이유, 아마 가장 큰 이유는 쇼가 방사성 연대 측정법을 더 신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The Oxford History of Ancient Egypt』, 2-3참조). 그는 자신의 책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 측정 방법을 이집트 연대 추정에 사용합니다. 그렇기에 브레스테드와 다른 연대표를 작성할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학자들의 견해 차이만큼이나 우리를 어렵게 만드는 요소가 바로 고고학적 연구 결과입니다. 최근의 고고학 유적 발굴의 결과물, 쇼가 따르고 있다고 말하는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 측정법에 따른 결과까지 살펴보면 비문 등에 나타난 기록들과는 또 다른 연대를 보게 됩니다. 방사성 동위원소 측정에 따르면 때로는 학자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이른 시기가 측정되거나 훨씬 후기가 측정되기도 합니다. 이는 유적의 상태에서 추정할 수 있는 결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연대를 추정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준비 작업을 해야만 합니다. 바로 ‘선택’입니다. 이집트 연대에 있어서 비문 해석을 중심으로 했던 브레스테드의 연대표를 따를지, 고고학 발굴 결과를 적용하고 있는 쇼의 연대표를 따를지 선택해야 합니다.

앞으로 우리는 끊임없이 ‘선택’하는 작업을 하게 됩니다. 성경이나 고대 비문, 유적과 유물을 해석하는 일은 학자들의 일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결과물 중에 무엇이 더 옳고, 어떤 결과를 따랐을 때, 조금 더 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지 선택해 나가야 합니다.

처음에도 말씀드렸지만, 이 글은 학문적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글이 아닙니다. ‘선택’을 위한 자료를 제공하고 ‘선택’하는 작업에 여러분을 초대하기 위한 글입니다. ‘선택’ 작업은 연대 추정의 처음 작업부터 시작됩니다. 초기 왕정의 시점을 언제로 잡을지, 어떤 연도에서 출발해서 작업을 시작해 나갈지, 작업이 시작되었다면, 어떤 학자의 결과물을 중심으로 연대를 작성해 나갈지를, 이런 선택들이 있은 후에야 본격적인 연대 추정 작업이 시작됩니다.

이성훈 목사(한신대 구약학 박사과정)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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